2년 가까이 전쟁을 치르는 두 장수, 푸틴 대통령(이하 푸틴)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하 젤렌스키)이 각각 14일과 19일 국민과의 소통에 나섰다. 푸틴은 기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기자회견) 국민들로부터 직접 질문을 받는 '국민과의 대화' 형식으로, 젤렌스키는 보안을 이유로 장소와 시간을 알리지 않은 채,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갖는 형식으로 올 한해, 나아가 전쟁 2년차를 정리하는 자리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기자회견(위)와 푸틴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모습/사진출처:각 대통령실
두 곳의 분위기와 오간 발언들이 '형식의 차이'보다 훨씬 더 두드러지게 달랐다는 평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여름철 대반격을 물리치고 전선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푸틴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모든 질문을 능수능란하게 받아 넘겼고, 젤렌스키는 '불편한 진실'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반박하거나 무시하고, 애써 피해갔다. '푸틴 행사'는 사전에 잘 짜여진 각본(영 BBC 평가)에 따라 진행됐고, '젤렌스키 행사'는 '날 것 그대로' 였다는 비교도 가능하다.
하지만 젤렌스키에 대한 현지 언론의 평가는 좀 박하다. 곤혹스런 2시간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기자회견 다음날인 20일 "대통령의 어제(19일) 대규모 기자회견은 우크라이나전 개전 이후 지금까지 가졌던 회견과 아주 달랐다"며 "승전 분위기는 식고, 답변은 간단하고 가끔 불명확했다"고 전했다. 예민한 대통령이 기자들과 말다툼을 벌였다고도 했다.
이 매체가 분석한 이유는 분명했다. 전선에서 들려오는 승전 소식은 부족하고 큰 희망을 걸었던 반격작전은 실패하고, 서방의 지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강압적인 군동원 등으로 사회적 불만은 고조되고 정치적 상황도 뜻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 개인에게 가장 불편한 질문은, 갈등설이 나돈 발레리 잘루즈니 군총참모장(합참의장 격)에 대한 솔직한 심정. '잘루즈니 총참모장과의 갈등이 사실이냐?' '그를 해임할 계획이 있느냐?' 요지의 비슷비슷한 많은 질문에 젤렌스키는 답변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 또 불리해진 전황에 대한 질문에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기자들의 질문을 듣는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이 매체에 따르면 이날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최전선의 부족을 병력을 보충하기 위한 사회적 동원 문제였다. 기자회견은 이 질문으로 시작했고, 여러 차례 다시 이 문제로 돌아왔다.
젤렌스키는 군부가 최대 50만 명의 추가 징집을 제안했지만 두 가지 이유로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최전선에 배치된 병력의 순환 근무와 동원 해제에 대한 계획이 없고, 동원에 소요되는 5,000억 흐리브냐의 추가 예산을 확보할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스트라나.ua는 "대통령이 동원계획을 군과 논의한 사실을 공개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며 "일반적으로 이는 군사 비밀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굳이 이 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그가 여론이 나빠지고 있는 동원 문제에 관한 한, '악역'(나쁜 경찰)을 맡지 않겠다는 의도를 가진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소개했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이 매체의 논리적인 결론 대목이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사실 그대로 다 말했다고 믿는다면, 젤렌스키의 전쟁 수행 방식에 큰 의문이 생긴다고 했다. 대통령이 군의 50만명 동원 요구를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면, 이제라도 남은 병력으로 '방어 작전'에 나서든가, 전쟁 종식을 위해 러시아와 협상에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젤렌스키는 같은 자리에서 "러시아와의 협상은 아직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스트라나.ua는 나아가 "두 가지 옵션중 방어 작전을 선택할 경우, 대통령의 전쟁 목표에도 의문이 간다"며 "방어만으로는 절대 점령된 영토를 해방할 수 없는데, 러시아가 언젠가는 병력이 부족하거나 (6.24 군사반란과 같은) 내부 혼란을 겪다가 군이 붕괴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시간을 끌고 있는지, 우크라이나군이 적은 병력으로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도록 서방측이 질적으로 새로운 무기를 엄청나게 제공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지, 나토(NATO)가 이 전쟁에 직접 참여할 것을 기다리고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같은 '소모전'이 우크라이나에게 유리하고, 앞으로 1년 후에 전쟁을 끝내기 위한 여건이 지금보다 더 유리할 것이라는 확신하느냐?"고 반문했다.
젤렌스키는 이같은 의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이 매체는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아직 밖으로 말할 준비가 안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면/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그는 또 기자 회견에서 친서방 매체 '제르칼로 네젤리'(Зеркало недели, '한주일의 거울'이라는 뜻) 소속 기자와 미흡한 '부패와의 전쟁', 건설적인 활동에 관한 법, 야당과의 통합정부 구성 등을 놓고 10여분간 논쟁을 벌였다. 대통령은 어느 것 하나 (기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정부는 공무원의 비용을 줄이고, 정부를 더 작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사람이 전혀 없으면, 국가를 관리하기 어렵다"고 반박할 뿐이었다.
푸틴의 행사에도 전국 각지에서 온 불편한 질문들이 많이 나왔다. 그는 달걀 가격의 폭등에는 러시아 정부의 사전 대처 부족에 사과하고, 신속한 대응을 정부측에 지시했다. 이후 러시아 정부는 아제르바이잔 등지에서 달걀을 긴급 수배하고 수입 관세도 폐지했다.
또 자동차 가격에 대해서는 '생산이 늘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시장경제 원리를 인용하면서 서방의 자동차 파트너들이 모두 철수한 상황에서 생산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 답변 며칠 후, 현대자동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매각 안을 임시 이사회에 올려 승인을 받았다. 현지 매체는 상트 공장을 인수한 '아트 파이낸스'(아빌론 그룹 산하 자회사/편집자)이 1, 2개월 안에 남아 있는 자동차 재고 부품으로 다른 엠블렘(브랜드) 차량 7만대 조립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푸틴 대통령의 행사장 스크린에 올라온 불편한 질문들/캡처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푸틴 행사에서도 매우 일반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동안, 행사장 내 대형 스크린에는 그에게 불편한 질문이 많이 올라왔다.
'당신이 말하는 현실은 왜 지금 우리 현실과 다른가?', '전쟁은 언제 끝나나?',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느냐'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한 비판성 질문 외에도 '왜 우리 군대가 반코바야(우크라이나 대통령실)를 공격하지 않는가', '(전쟁을 비판하고 떠난 러시아 국민가수) 푸가초바의 귀국을 왜 허락했는가' '(푸틴의 정치적 대부인 아나톨리 소브차크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의 딸인) 크세니아 소브차크는 언제 처벌을 받게 되나?' 등등이 스크린을 채웠다.
그러나 푸틴은 그의 옆, 혹은 등 뒤 스크린에서 흘러가는 불편한 질문에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는 평이다. 이런 질문도 있었다. '(러시아 최대 에너지 국영기업) 가스프롬의 부패를 언제까지 용인할 것인가?' '해외에 계좌와 부동산을 갖고 있는 공무원이 어떻게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 있느냐?' '크림대교를 건너 크림반도도 들어갔는데, 크림반도가 러시아라면 왜 휴대폰 '로밍'을 해야 하나?' '동원은 언제 하나?, 해제는 될까? 왜 30만명이나 가야 하나?'....
푸틴 대통령 기자회견 장면/사진출처:크렘린.ru
한때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을 맡았던 알렉세이 아레스토비치는 '푸틴 행사'의 형식이 우크라이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행사장이 노란색과 파란색(우크라이나 국기 연상)으로 꾸며졌다"고 감탄했다. 그는 "젤렌스키가 흰색-파랑-빨간색(러시아 국기 연상)을 배경으로 행사를 가졌다면 난리가 났을 것(19일 회견장은 노란색과 파란색 위주/편집자)"이라며 "푸틴은 우리(우크라이나)를 형제이자 한 민족이라고 부르는데, 우리(우크라이나)는 그들(러시아)을 '돼지, 오크('반지의 제왕'에 나온 야만인/편집자)'라고 부른다"고 비교했다.
아레스토비치 전고문은 또 "푸틴 행사장 스크린에는 러시아인들이 불편한 질문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점점 더.. 위는 쳐다보지 말라'는 주문에 빠져들고 있다"며 "우리와 그들 중 누가 유리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이 발언은, 당연하지만 우크라이나 소셜 네트워크(SNS)에 '폭풍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당장 그를 처리(?)하라'는 요구도 빗발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