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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11:13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1:14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11:15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면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1:16 성전 뜰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다.
11:17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1:18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서는, 어떻게 예수를 없애 버릴까 하고 방도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리가 다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11:19 저녁때가 되면, 예수와 제자들은 으레 성 밖으로 나갔다.
11: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지나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보았다.
11:21 그래서 베드로가 전날 일이 생각나서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선생님이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11:22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어라.
11:23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11:24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11: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11:26 (절 없음)
◈ 주해
1. 세 번의 수난 예고와 제자들의 몰이해에 후에, 예수님은 제자도를 말씀해 주셨다.
1) 십자가와 반대 길을 가면서도 베드로는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한다.
2) 세 번의 수난 예고(8:27-10:45) 앞뒤에 나오는 두 소경은 제자들의 영적 상태를 반영하며, 예수님에 의해 영적으로 깨어남을 상징한다.
3)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로 고백하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함으로 고침을 받고 예수님을 따른다.
2.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경계인 벳바게에서 나귀 새끼를 타고 겸손의 왕으로 입성하신다.
1) 제자와 무리들은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메시야인 줄 알고 환호하고 찬양한다.
2) 예수님의 자기 계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자신이 세울 하나님의 나라(왕국)을 가르쳤으나 제자들조차 전 이해에 사로잡혀서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야관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
3) 예수님은 성전에서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십자가에서 성소 휘장을 찢어 하늘 성소로 들어가는 새로운 산길을 여시려고 한다(마 27:51, 히 10:19-20).
3. 이튿날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시장하셨다.
1)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나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으나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는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2) 열매를 기대했던 예수님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고 실망하며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하신다(21절 참고).
4.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을 무화과나무에 비유한다.
1) 이스라엘은 무화과나무의 첫 열매로(호 9:10) 비유되며, 좋은 무화과 열매와 나쁜 무화과 열매로 비유된다(렘 24:1-10).
2) 미가서에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다’면서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미 7:1).
5.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입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이스라엘과 성전에 대한 심판의 선고이다.
1) 따라서 성전청결 기사는 무화과나무의 저주와 결합된다.
2) 무화과나무의 때가 이르지 않았으면 열매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3)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나무는 봄에 작은 열매를 맺는다. 이 열매는 작고 보잘 것이 없어서 수확하거나 팔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이 작은 열매를 즐겨 따서 먹었다.
6. 이 작은 열매가 중요한 이유는, 이 열매가 맺혀야만 여름에 수확하는 좋은 무화과나무 열매가 맺히기 때문이다. 즉 이 나무처럼 봄에 작은 열매가 전혀 없는 것은 수확철의 열매도 맺지 못함을 뜻한다.
1) 입만 무성하고 생명의 열매가 없는 이스라엘과 성전은,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7.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후 예수님은 입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성전에 들어가신다.
1)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신다. 또 누구든지 물건을 가지고 성전을 지나가는 것을 금하셨다.
2) 그리고 성전의 영적인 상태가 ‘강도의 소굴’이라고 책망하신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부를 것이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어버렸다.”
3) 외적으로는 예배에 열심이지만 대제사장들과 매매하는 자들, 환전상들은 예배보다 성전에서 나오는 수입에 골몰하였다. 물질을 탐하는 강도의 소굴이 되어 버렸다.
4) 멀리서 예배하러 온 순례자들에게서 이득을 챙기기 위한 좌판들을 ‘이방인의 뜰’에 설치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기도해야 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음을 책망하신다.
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찾는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서는, 어떻게 예수를 없애 버릴까 하고 방도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리가 다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막 11:18, 새번역)
1)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전하는 진리와 메시야임을 증거하는 표적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름으로 즉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9.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성전청결 후,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다.
1) 예수님은 입만 무성한 성전을 허무시고, 죽으시고 부활한 그의 몸을 성전으로 세우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19-21).
2) 신약시대 성전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아 생명 얻은 성도이며(골 2:12; 고후 6:16), 그들이 모인 생명의 공동체이다(고전 3:16).
10. 개인성전과 교회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지, 강도의 소굴인지 살펴봐야 한다.
1) 보란듯 하지만 열매가 없는 성전은 무너지고 참된 성전이 세워져야 한다.
2) 예수님이 먹고자 한 무화과나무 열매는 생명의 열매다.
- 내적으로는 성령의 열매요 외적으로는 생명을 증거하는 것이다.
11. 다음날 아침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본 베드로가 “보소서, 선생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라며 놀란다.
1) 이스라엘이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처럼 심판받은 것은 “불신앙” 때문이다.
2) 그러므로 예수님은 뿌리째 마른 무화과나무를 통해 “믿음을 가지라”고 하신다.
“(22)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막 11:22~24, 새번역)
3) 하나님을 믿으라는 ‘하나님의 믿음’과 ‘하나님을 믿으라’로 모두 해석이 가능하다.
4) ‘하나님의 믿음’이란 인간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믿음이다.
5) “하나님의 믿음”으로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
13. 하나님으로부터 난 믿음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의심이다.
1) 믿음의 선포와 믿음의 기도는 “그대로 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단, 의심하거나 불신해서는 않된다.
2)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
- 하나님의 믿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14. 하나님에게서 난 믿음으로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은 입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는 대비된다.
1) 믿음이 없는 보란듯한 기도는 열매 없어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와도 같다.
2)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며 책망하신 주님이 말하는 기도는 외식이나 탐심으로 하는 기도는 아닐 것이다.
3) 주기도문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를 할 때, 기도한 것을 받을 줄로 믿으라고 하신다.
- “할 수 있거던, 가능하시면”이 아니라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된다”고 하신다.
4) 의심하지 않으면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마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15. 기도를 이루시는 분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25)”이기 때문에 기도의 전제로 공동체 안에서 신자 간의 화해를 말씀하신다.
1) 기도하기 전에 먼저 용서함으로 하늘 아버지의 가족 공동체가 되라고 하신다.
2)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만민이 기도해야 할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다.
- 믿음이 없으면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를 세상적인 조직으로 만들어 버린다.
3) 하나님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기도대로 이루시는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자.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는 것”이다.
◈ 나의 묵상
잎사귀도 없고 열매도 없으면 간단하다. 그러나 잎사귀를 보면 열매가 풍성할 것 같은데, 막상 열매는 없는 현상이 이스라엘과 성전에 나타났다. 그리고 나에게도 나타났다. 잎사귀가 풍성했다. 헌신하는 모양이나, 헌신의 결과나, 사람들의 반응이나....잎사귀가 풍성하여서 나도 열매가 많이 맺힐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주님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신다. 주님이 먹을 만한 열매가 없다고 하신다. 마음 아픈 현실이다. 46년간 성전을 짓고, 이렇게 열심히 예배를 드리는데 ‘강도의 소굴’이라고 하신다. 강도의 소굴이라는 책망에 회개하고 저주와 심판이 합당함을 인정하기 보다는 대제사장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하는 기도, 믿음의 기도가 드려지는 성전이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된다는 말씀은 기도와 치유 사역에서는 유명한 구절이다. 그런데, 이 놀라운 말씀대로 기도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기도들을 되돌아보니, 하나님이 기뻐하는 대로 기도하는 것조차 의심하고 있다. 사단은 의심할 수 있는 많은 이유를 나에게 제공한다. 현실도 의심하게 한다. 보이는 것, 현실, 경험, 확률...을 보면 의심하게 된다. 만물 안에 속한 눈을 닫고, 만물 위 하나님을 보는 눈을 열어야 한다. 모세가 보니 실패하였고, 하나님이 보니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이 보시니 좋았고, 여자가 보니 타락하였다. 육신이 보는 것으로는 아무리 선한 의도이고 기도여도 무익하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마음(지각)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간구하게 된다. 주님의 눈으로 보고 주님의 믿음으로 기도하기를 원한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는 선포는 항상 불가능할 때에 선포되었다. 주님이 오셔서 행하신 대부분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능하면 내가 하면 되지만 불가능하기에 기도한다.
다시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 내 안에 생명 있음을 들여다 본다. 내 안에 있는 생명으로 기도해야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로 기도하면 구하는 대로 받는다. 최근에 교회에 어려움이 많아서 기도하게 된다.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는 좋지만, 주님은 더 나아가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하신다. 내 안에 있는 생명으로 기도하고 믿으라고 하신다. 육신에서 생겨나는 의심을 이기는 부활의 생명으로 기도하라고 하신다. 십자가로 나아간다. 옛사람이 드러나면 의심은 자동이다.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확인한다.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성전을 세우시기를 기뻐하신다. 주님이 세우신 성도 성전과 교회 성전을 온전하기를 기뻐하신다. 주님의 몸된 교회와 각 지체를 머리되신 주님의 통치 아래에 놓는다. 주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이루실 주님을 찬양한다.
◈ 묵상 기도
주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의심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로 보고, 그리스도로 기도하게 하옵소서.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소멸하시고 영을 따라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의 권세가 어마어마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불가능한 일을 행하시는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게 하소서. 자격 없으나 아들의 의를 힘입어 기도하게 하소서. 입만 무성한 저의 기도와 신앙생활이 심판을 통과하길 원합니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신으로 무너진 모든 것들을 다시 일으켜 주시옵소서. 회개의 영이 부어지게 하시고, 십자가를 사랑하며, 주님과 연합된 믿음으로 서게 하옵소서. 청년부와 교육부와 학당을 온전히 주관하시고 통치하여 주옵소서. 토요일에 있는 복생캠프와 한 주 남은 비유의 공연도 돌보아 주옵소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국내외 선교지와 사역자들을 성령충만함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