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5일(금)
* 시작 기도
주님...
누구나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하물며 베데스다 연못에 누워 있는 38년 된 병자이겠습니까?(요 5장).
나 역시 이보다 더한 병자요 죄인임을 알기에 온전한 베데스다(자비의 집)이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만이 나를 온전케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만물 안에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만물 위에 계신 우리 주님의 생수 곧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성령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환난과 고통을 기꺼이 수용하는 믿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말이 앞서는 자가 아니라 말과 행실이 하나 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주의 십자가에 나의 옛 사람을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하루도 주를 바라는 주바라기가 되어 주의 날을 기쁨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53:1-6
제목 : 어리석은 자(나발)는...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네가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였도다.
6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 나의 묵상
본시는 시편 14편과 거의 흡사하다.
5절이 좀 다른데 이는 14편이 무신론자의 대상을 이스라엘 내에서 찾고 있는 반면, 본시는 무신론자의 대상을 이방인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본시는 다윗이 젊은 시절 14편을 짓고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지었다고 볼 수도 있거나 14편의 다윗의 시를 후대의 편집자가 새롭게 다듬어서 다시 수록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1-4절, 1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자들’로 표현되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우매자들의 타락상을 보여준다.
이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한다.
그들은 부패하고 가증한 악을 행하되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깨달음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땅을 굽어보신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뒤돌아 서서 잘못된 길로 갔다.
그들 모두는 부패했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죄악을 행하는 이들이 언제쯤 깨달을 수 있겠는가?
내 백성을 떡 먹듯이 먹어버리고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는데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5-6절, 어리석은 자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엇갈리는 종말론적 운명을 대조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두려워할 것이 없음에도 두려워 떤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하여 공격하는 원수들의 뼈를 부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주의 백성들이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가 시온으로부터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의 운명을 회복시키실 때 야곱은 즐거워할 것이고 이스라엘은 기뻐할 것이다.
‘어리석은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발’은 상식이 없다, 불경건한, 사악한의 뜻을 가진다.
이런 어리석은 자가 바로 다윗 시대에 ‘나발’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그는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의 남편이다(삼삼 25장).
선지자 사무엘이 죽고 난 뒤의 일이다.
마온에 큰 부자 나발이 살고 있었다.
마침 나발이 양털을 깎고 있었다.
양털을 깎는 일은 그 집안에 축제와 같다.
다윗은 그와 함께 하는 소년 10명을 그에게 보내서 평안의 인사를 나누고 먹을 양식을 구하였다.
그렇게 한 것은 다윗 일행이 나발의 목동들과 양들을 늘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발은 그런 은혜를 걷어차고 모욕하며 원수로 갚았다.
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즘에 주인을 배신하고 도망하는 종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게 다윗 아니냐고 하면서 온갖 모욕을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모든 군사들을 모아서 나발을 치러 출발하였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하인으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즉시 각종 식물을 싣고 지름길로 다윗을 쫓아가서 만났다.
거두절미하고 다윗 앞에 엎드렸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남편의 이름이 나발 아니냐?
그는 미련한 자다. 나는 당신이 보낸 사람들을 보지 못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보복을 막으셨다.
다만 당신의 원수들과 당신을 해하려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어리석은 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가져온 각종 음식들을 주면서 화를 누그러뜨렸다.
그렇게 일단락된 후 나발은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자기의 운명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왕의 잔치를 배설하여 먹고 마시고 취하여 있었다.
아비가일은 나발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다음날 아침에 그간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알리자 그가 낙심하여 몸이 돌 같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한 열흘 쯤 후에 그가 죽었다.
‘나발’ 어리석은 자, 불량한 자를 뜻하는 대명사처럼 사용되는 이름이다.
나는 극히 어리석은 자, 나발이다.
내 입술로는 주를 인정하고 영생을 말하면서도 삶으로는 정작 주를 부인하는 자이다.
나는 지극히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마음으로는 선을 원하나 행함으로는 선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주께서는 위에서 나를 바라보시는데 나는 부끄러워 도무지 주의 얼굴을 바라볼 수도 없고 고개를 들 수조차 없다.
나는 지각, 곧 하나님을 알지도 찾지도 않는 가련하고 불쌍한 자요, 패역하기 그지없는 자이다.
나는 틈만 나면 주님의 눈을 피하여 악을 행하니 어느 한 구석도 선을 찾으나 보이지 않는다.
이런 패역을 행하는 나는 정말 주께 대하여 무지한 자이다.
밥 먹듯이 생명 영생의 말씀을 부르짖으면서도 중심으로는 주를 찾지 않는다.
어찌 내가 패역한 자, 나발이 아닌가?
악한 자들은 전혀 두려워 할 일이 없는데도 두려워 떤다.
그런데 나는 그들보다 더 하다.
두렵고 떨리는 주님 앞에서도 악을 행하면서 두려워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악한 자를 대적하여 그 뼈를 꺾으시며 흩으실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버리셨고 또한 선한 자들로 하여금 나를 포함한 악한 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나발을 향한 아비가일의 예언적 고백이 나를 향한 것과 다름없다.
하나님의 집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실 분이 누구시란 말인가?
바로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신가?
패역과 거짓을 양식 삼는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주의 나라 곧 아버지 품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패역을 일삼는 이 땅에서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되신 주님께 걸려 넘어져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거짓과 속임수, 추악과 탐욕, 수군수군하는 것과 악독, 주의 말씀을 모독함과 주님을 모독함, 우매함과 우상숭배, 음란과 부정, 정욕과 세상의 소욕, 술취함과 방탕, 향락과 쾌락 그리고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하는 자가 바로 나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향하여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지적한 그 손가락이 오늘 나를 향하여 가리키고 있다.
다윗은 그 순간 엎드려 철저히 참회하고 토설하였건만, 나는 마음이 무덤덤하고 둔하다.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임을 알면서도 그래서 정말 주께 나를 죽여달라고 원하면서도 여전히 세상과 벗하여 살아가는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가 바로 나 아니던가?
나는 오늘 죽기만을 바란다.
나의 손과 발을 자르고 눈만 빼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 아주 죽기를 바란다.
그래야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나는 전혀 그리스도인 답지 못하다.
성도들에게는 진짜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자고 외치면서도 내가 정작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고 있음은 어불성설이다.
사람들은 나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준다.
그러나 나는 나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
악한 죄와 벗 삼아 살고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회개의 신앙을 잃고 내가 하나님처럼 되어 살아온 자가 어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사람을 속이고 나를 속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속인 자이다.
그러면서도 입술로는 주를 찬양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노라고 떠벌렸던 자가 바로 나다.
이런 나는 죽는 것만이 답이다.
주여, 나를 죽여주소서.
그리하여 죄가 출렁이는 이 바다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나는 오늘 죽었다.
덕지덕지 묻어서 쌓인 죄의 때를 이 시간, 주의 보혈로 씻어 부끄럽고 염치없지만 주님께로 한 걸음 내딛는다.
주님은 더럽고 추한 영혼을 받으실 수 없기에 주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산 제물이 되어 나아간다.
주의 보혈이 나를 덮는다.
죄의 때로 켜켜이 쌓인 내 육신은 십자가에서 흐르는 보혈의 강물에 던지고 내 영혼, 주의 품에서 고이 잠든다.
이 시간, 주님을 향한 사랑이 나를 감싼다.
나를 안으시는 주님의 인자하신 품에 나는 내 영혼을 내어 맡긴다.
그리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 묵상 후 기도
주님...
세상의 정욕과 죄악에 물든 몸을 주의 십자가 앞에 못 박습니다.
나를 죄악으로 이끌어가는 내 안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하오니 내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여 주옵소서.
나의 육신은 아직 구속받지 못하여 끊임없이 죄악으로 달려가려 하오니 이 육신, 장막을 벗어버리고 오직 주님 품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기 원합니다.
내 안에는 티끌만큼의 선함도 없사오니 오직 주의 의로 날 붙드소서.
주의 보혈로 날 씻어 정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이 시간 진정한 영생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만이 나의 소망이요 안전과 평화임을 아오니 나를 심판하사 참 안식과 평강을 누릴 수 있도록 날 죽여주소서.
주님만 구하나이다.
주의 얼굴을 나의 죄악에서 돌리시고 이제는 내 안에 오직 주님의 선함이 자리잡게 하소서.
나는 죽으나 오직 예수로 살아 예수만 부요케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