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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3일 금요일 의정부문인협회 2월 월례회
1. 詩 <저녁 무렵에 모자 달래기> 안태현. 2017. 시로여는세상012
1959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 2011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이달의 신간> 여행산문집 <피아노가 된 여행자>가 있다.
백 마리 새의 저편에는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백 마리 새라면 이 가을날 나를 수긍하고
볕이 잘 들지 않는 창가에 서서 백 마리의 새를 바라보고 있다
저 흥건한 새의 문장을 휘저으려 막대기를 들고 비탈을 내려가는 아이는 아직 필연을 모르고 사라지고도 다시 만들어지는 평일의 삶을 모른다
산란과 찬란 사이에서 풀려난 빛들이 시계바늘을 품고 부지런히 내려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백 개의 시선으로 문장을 품고 산다면 나도 새처럼 어디론가 날아갈 수 있을까
시를 허공에 던져놓으면 신생아 울음처럼 고이 받아 쥐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촉지도 한 장 없이 다만 성의껏 스러지는 오후 네 시의 햇살을 끌고 온 백 마리 새의 저편에는
2. 산문 <불안의 書> 페르난두 페소아/ 배수아 옮김. 2014.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António Nogueira Pessoa, 1888년 6월 13일 - 1935년 11월 30일) 는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작가, 문학 평론가, 번역가, 철학가이며 20세기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자 포르투갈어 최고의 시인으로 손꼽힌다.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로도 글을 썼고 번역했다. 그는 시인으로 활동했지만 생전에 크게 각광받지는 못했다. 1935년 간질환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모국어로 낸 시집은 단 한 권뿐이다. 그러나 사후 엄청난 양의 글이 담긴 트렁크가 발견되었고, 페소아가 사망한 지 80년이 지난 지금도 분류와 출판이 진행되고 있다. 페소아는 수십 명의 가상 인물들을 만들어 그들 각각에게 개별적인 페르소나를 부여했다.
12. 사실 없는 자서전 ...상호 어떤 연관성도 없고 연관성을 구축하고 싶다는 소망조차 배제된 인상만을 이용하여, 나는 사실 없는 내 자서전, 삶 없는 내 인생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이것은 내 고백이다. 내가 고백 속에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건 털어놓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308. 나는 내 삶의 무능력을 천재성이라 부른다. 내 비겁함을 완벽함이라고 부르면서 징벌한다. 나는 스스로를, 가짜 금으로 도금한 신과 함께, 대리석처럼 색칠한 마분지 제단에 올렸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속일 수가 없고, 내 자기기만의 (...)도 속일 수가 없다. 387. 내 생각에 나는 사람들이 데카당이라 부르는 부류에 속한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영혼이 예상하지 못한 언어로 표출되며, 그런 인위적인 낯선 언행에 드리운 슬픈 광채로 인해 그들의 정신이 외적으로 규정되어버리는 데카당. 그게 바로 내 이야기이고, 내가 그렇게 부조리한 인간임을 나는 느낀다... ...이 모두는, 여기 이렇게 기록되는 사이, 공허와 좌절, 번민의 감정을 일으키는데 그것은 내게 황금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다. 내가 이미지에 대해 말을 하자마자 내 안에서 이미지들이 피어난다. 아마도 이미지를 남발해서는 안 되겠다는 말을 하려던 참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나는 펜처럼 옆으로 누워 망토로 몸을 감싼다. 등을 쭉 편다. 홀로, 멀리서, 두 세계사이의 패배자로. 난파선에 타고 있는 나는 침몰의 순간 시야에 들어온 그림 같은 섬들을 보고 있다. 그리고 금빛으로 빛나는 제비꽃색의 푸른 바라 한 가운데서 깊이 가라앉는다. 머나먼 침상에 누운 조난자는 실제로 이것을 꿈꾸었다. ..................
아, 길고 긴 여자의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나부낀다. 한낮의 정적이 바다와 맞닿아있는 하늘에 가득 찼다. 온몸과 영혼이 말 갈퀴처럼 곤두서서 일어날 때 여자는 뜀박질을 하여 바다 끝까지 다다랐고 망설임 없이 절개 면이 보이지 않는 아득함 속에 선뜻 몸을 밀어 넣었다. 그 고요함 속에 물의 부딪힘. ...여자는 엔진을 끈 보트에 몸을 맡기고 바닷물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생을 순응하는 일은 힘들었고 매우 어려웠다. 불행의 피가 두 손에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다. 여럿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다낚시를 하는 목소리들은 엇갈리거나 합쳐지거나 높은 옥타브의 웃음소리와 탄성으로 제 빛깔을 드러냈지만 그녀에게는 변별성이 없었다. 모두 생동감이 넘쳤지만 여자는 그것이 오히려 낯설어 견딜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의 단 한 사람이여. 시간은 그렇게 중첩되거나 비스듬히 잘려지거나 녹이 슨 액자 속으로 스며들어가 버린다. 나는 고요히 시간 속을 흘러가고 있으며 그 시간은 바다처럼 출렁거리며 나를 흔들리게 하고 울게 하고 적시게 하고 이윽고 수장시켜버리는구나. 여자는 조그맣게 울기 시작했다. 생의 멀미가 목소리들의 존재를 무화시키고 마침내 나를 홀로 남게 만들고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을 환과 멸에서 피어오르게 하는구나. 어지러웠다, 모든 것은 흔들릴 것이고 계속 흔들릴 것이며 그 속에서 가장 흔들리는 영혼을 오늘 저자거리에 팔려고 내놓는다. 그것으로 생의 수채화에 물을 끼얹을 것이며 희미해진 영혼을 기어이 지워 버릴 테다. 여자는 눈을 떴다. 어느 새 물속이었다. 멀미가 사라진 세상을 보았다. 뿌옇게 흐려진 물속에서 모든 것들이 가볍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자는 다시 행복해졌다. 작은 포구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떠내려 오고 있다.
- 이숙경 산문 '바다 위의 여자' |
첫댓글 - 이숙경 산문 '바다 위의 여자'
살아 있는 동안에 행복을 만족하여 기에 그러므로 여자는 다시 행복해졌다 !!!
매월 문학강의를 기쁘게 해주시는 이숙경부지부장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