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교훈』
수필가ㆍ시인 / 주현중
우선 생각나는 말은 ‘미련한 곰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 죽을 줄도 모르고 날 뛴다.”라는 해석도 해볼 수 있고, “문도 없는 벽을 뚫으려 한다.”라는 해석도 해보게 된다. 임들도 다 그리 생각되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필자만의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을 해본 것은, 글의 표제에서 비롯되었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숙어(熟語)에 깊게 생각하게 된 것은 2000년대를 들어서서 텔레비전에서 방영하였던 사극드라마 ‘명성황후’를 시청하면서였다.
물론, ‘명성황후’라는 드라마나 ‘고종황제’의 본처이자 중전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명성황후’라는 사극드라마에서 ‘고종황제’의 친부인 ‘흥선대원군’의 굽힐 줄 모르는 고집 때문에 극중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대사가 나왔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숙어(熟語)를 생각할 때마다 또 다르게는 역시 누구나 익히 자주 듣게 되는 우리의 속담 중에 ‘하다가 말면 아니한 만 못하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또 다른 말로는 ‘쇠뿔도 내친김에 뽑아라.’라는 말이다.
먼저, 앞의 속담에서 ‘하다가 말면 아니한 만 못하다.’라는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짧은 학창시절을 끝내고 밥벌이를 하기 위해 타관객지생활을 하던 중 당시 강원도 원주시 태장동에 위치해 있던 모 주유소의 사장으로부터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어른들의 말 중에는 이치에 맞지도 않는 말들이 너무나 많다.”라고 했던 기억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다가 말면 아니한 만 못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왜냐 하면 하다가 말더라도 한만큼은 아는 것이 아닌가?”였다. 그러면서 이어하는 말이 있었는데, “하다가 말 것 같으면 아예 시작부터 하지 말라는 말인데, 이 말은 모순이다, 전혀 모르는 것보다는 백번 낫지 않는가?”였다.
그 때 필자는 당시 그 사장을 다시 보았다. 놀래서가 아니라, 그 분으로 하여금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그 분의 그런 어필로 하여금 교훈을 하나 얻게 된 것은, ‘옛 어른님들이나, 우리 민족만의 속담이 전하는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해서는 아니 된다는 가르침을 어기면 족보에 붉은 줄이 쳐지는 법령처럼 따른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바보스러운 일이다, 살아가면서 참고삼으라는 말을 가지고 맘에 내키지 않는 준법처럼 따르며 속내로는 답답해하고 있지 않는가?’이다.
주유소 사장과의 인연으로 터득하게 된 삶의 진리는 여기에서 일단락 짓고, 이 글의 표제가 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에 대해 필자의 생각을 이어본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물론 다양할 수는 있으나, 가까운 일전(日前, 2007년5월 중)에 인터넷 사이트 중 ‘다음(Daum)’의 어느 문학카페에 필자가 쓴 수필 한편을 올린 일이 있는데, 이름 모를 어느 네티즌 중 한분께서 그 담론에 대한 소감을 댓글로 단 내용 중에서 ‘불광불급’이라는 있지도 않는 한자(漢字)를 우리 한글로 쓰고 있었다.
그 이름 모를 네티즌의 댓글이 불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 네티즌이 단 댓글 중에 ‘불광불급’이라는 말을 접하고, 이런 말도 있는가 싶어, 그 낯선 용어에 대해 정말 있는 말인지를 알아보려고 언제나 컴퓨터 옆에 놓여 진 국어사전을 펼치고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의복(衣服)에서 이를 잡듯이 훑어보아도 ‘불광불급’이라는 용어자체가 등재(登載)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한자옥편에서도 그러한 숙어(熟語)에 대해선 등재(登載)되어 있지 않았으며, 인터넷 검색으로도 검색되지 않는 그야 말로 낯선 용어였다.
찾아볼 수 있는 채널을 모두 찾아보아도 설명되어 있지 않은, 필자로서도 생전 처음 듣게 된 낯선 용어 ‘불광불급’에 대해, 그 이름 모를 네티즌에게 답 글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은 있어도 ‘불광불급’이라는 말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처음 듣는 말인데 그런 말도 있나요?”라고 하였는데, 지금(5월13일)까지도 아무런 언급(言及)이 없다.
그 이름 모를 네티즌이 필자의 담론에 대한 댓글로 왜? ‘불광불급’이라는 낯선 용어를 사용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생각하기에 아마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잘못 알고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더라도 혹 잘못 알고 사용하였더라도 부끄럽더라도 그 낯선 용어에 대한 해명이 있으면 좋으련만ㆍㆍㆍㆍㆍㆍ,
앞에서의 사연에서 필자가 말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숙어(熟語)는 설명하지 않아도 익히 잘 아는 말이지만,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中庸)의 소중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숙어(熟語)에 대한 뜻풀이를 하다 보니, 불현듯 필자의 직장에서 유별나게 한문(漢文)을 즐겨 쓰는 한 분이 생각나기도 한다. 필자 역시도 이미 10여 년 전에 작고하신 친할머니께서 한학(漢學)이 깊었던 영향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한문(漢文)을 즐겨 사용하고는 있다. 직장의 그 분이나 ‘나’나, 아마 한문(漢文)이 뜻글자라서 거기에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 알지는 못한다.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다보니 우연찮게 글의 맥이 엉뚱한 곳으로 빠진다는 느낌은 들지만, 이 글의 표제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교훈’이라 정한 것은, 그 이름 모를 네티즌이 쓴 필자의 담론의 댓글에서 태동하게 된 것으로서, 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숙어(熟語)가 품은 뜻은, ‘가까이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다.’는 말로서, ‘가까이 하려니 그렇고, 멀리 하려해도 그렇다.’는 말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엔 다르게는 ‘그저 그렇다.’라는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또 다르게는 ‘나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여 사면초가(四面楚歌) 빠지다.’라는 말인데, 사면이 벽으로 둘러싸여 한 치의 눈앞도 가늠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된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은 ‘항우본기(項羽本記)’에 나오는 말로, 오래된 중국역사 중원대륙의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 군사 사이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러면, 그 이름 모를 네티즌과 필자의 사연에서 생긴‘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문득 필자의 직장에서 한문(漢文)을 생활용어처럼 즐겨 쓰는 한 분의 말씀이 떠오르는데, 회식 도중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100%보다는 80%로가 났다.”라고 한 일이 있는데, 이 말에 대해 필자가 받아치기를 “꽉 찬 사람보다 좀 모자란 사람이 더 났다는 말씀이지요?”라고 대화한 사연이 있었다.
어찌됐던, 필자가 생각하기엔 우리인간사회에서는 자신보다 좀 났다고 생각되는 사람 앞에서는 ‘전광석화(電光石火)’만 같던 용기와 기개도, 그 앞에서는 껄끄러워 대하기를 꺼려하며, 만사(萬事)에 있어 마주치지 않으려하는 심리가 인간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괜스럽게 명분 찾기에 급급하여 어디 꼬투리 잡을 때 없을까만 생각하는 게 보통사람들이나 난 사람들이나 다 같은 정서인 것 같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넘친다는 것은 곰을 비유하여 미련하다는 의미를 말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지는 않는다. 넘친다고 하는 것은, ‘주제도 모른다, 밥그릇은 작다.’는 말도 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한다. 주제라는 것은 됨됨이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밥그릇이라는 것은 주제보다는 배경이다. 일테면, 사람은 난 사람인데, 주변 환경이나 배경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 한다.
필자가 말하는 환경이나 배경이라는 말의 의미는, 넘치는 것을 받아 담아 줄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즉 인맥을 말함이다. 현 정부 누구 못잖게 말이다. 그래서 바른말 잘하는 사람은 외롭다. 외롭다 못해 고독하다. 들어 줄 사람이 많지 않아 그런 것이다. 아니 듣기는 다 듣는다. 그러나 속으로는 옳다고 하면서도 겉으로 외면을 한다. 왜냐 하면 바른말을 따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나무밭에 가면 잡초가 없다, 크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인 산천어나 열목어가 서식하는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 두메산골 같은 곳에 가면 고기의 주식인 플랑크톤이 많잖다. 그 이유는 물이 너무 맑아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 산천어나 열목어는 주식인 플랑크톤보다 맑은 물만 먹을 때가 더 많다.
고로 저질스럽고 더럽고 추잡한 인사도 마찬가지지만, 곧은 자(者)와 바른 자(者) 보기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밥그릇이 작다고 넘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의기소침해할 필요도 없다. 넘치면 누군가 주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 지인(知人)을 사귀어야 한다. 그런 의인(義人)을 알아야 한다. 넘치면 그가 받아 주거나 주어 줄 것이기에 그렇다. 우리 속담에는‘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이 있다. 살다보면 일부러 흘릴 필요성도 있다. 돌아오는 반대급부(反對給付)의 소득이 적잖게 있을 것이라 본다. 다만, 남에게 피해만 입히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글을 다 집필하고 나니 어두운 밤이다. 새벽으로 달린다. 마치 무슨 시험을 친 기분이 든다.
{집필이 끝난 한 시간 후, 그 이름 모를 네티즌이 댓글로 달았던 ‘불광불급’이라는 숙어(熟語)를 찾을 수 있었는데, 솔직히 공식적인 교육부 관계문헌에 나와 있는 숙어(熟語)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한자로 표기하면 ‘不狂不及’이었다. 이 말은 말 그대로 ‘미쳐야 미친다.’라는 뜻이었다.
필자의 무지함에 그 이름 모를 네티즌에게 마안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다만,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숙어(熟語)가 품은 뜻은 조금 난해한 구석도 있음을 생각해 본다. ‘미치지 못하면 미치지 못한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미쳐야 미친다.’라는 뜻 풀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첫댓글 아 반갑습니다 ......... 글세요 다음 어디에 글을 올리셧는지요? 언제쯤인가 그런글을 읽은거 같아서요 . 불광불급..이라고 꼬리를 단적이 잇는대 그게 님의 글은지 다른분 글인지는 모르겟습니다 .불광불급(미치지않으면 미치지못한다)........ 책으로도 나와잇습니다.. 저가 지식이 부족해서 꼬리를 재대로 못달앗나요 ..그냥 별뜻없이 단것인대 혹시라도 기분나쁘셧다면 미안합니다 .. 글 잘 읽고갑니다 .... 건강하세요.
네, 불광불급이 한어로 기존에 있는 말인지, 아니면 어느 작가가 임의로 조합해서 만들어 낸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암튼 불광불급에 대해 문헌이나 사전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고, 워드 프로세서로 입력을 해봐도 없는 말로 표기됩니다, 기분 상한 것은 없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다만, 한자는 조합해서 그럴 듯하게 만들어 내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아마 한문이 뜻글자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선 공식적인 교육부 문헌이나 학자들의 문헌에 나와 있다면......., 학자와 작가는 좀 다른 면도 있습니다, 고운날 되소서,
참 그리고 불광불급을 한자로 표기해 주셨으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혹시 (不狂不及)이 아닌지요? 지금 생각되어 지는 한자를 써 보았습니다, 이게 아닌 또 다른 한자어라면 알려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이 글은 정식으로 발표작이 아니니, 부족하면 수정할 수 있기에 그렀습니다. 다만, 미치지 않으면/미치지 못한다는 말에서 미치다라는 말의 의미가 어느 것인지 난감해집니다, 다다르지 못한다는 말인지? 말 그대로 미친다, 미쳤다/등의 미치다라는 의미인지 난해한 말이네요! 부탁합니다, 한자 표기요.
아, 나 민이님! 불광불급이라는 말에 대해 찾았습니다, 그런데 왜 사전이나, 한자숙어에는 나와 있지 않은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원문 끝에 정정해 놓았습니다,ㅎㅎㅎ 덕분에 하나 배웠습니다.
네에 .....ㅎㅎ 좋은날되시고,,,,,,,, 건강하십시요 ..
아주 오래 된 글이군요,不狂不及은 어떠한 일을 하고자 뜻하였을 때 그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뜻한 바에 미치도록 매진 하여야만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건방진 댓글입니다.ㅎㅎ
사실 제가 불가근 불가원의 유래를 알아보려 들어왔습니다만,
이 의미를 예로 들면 자영업을 하는 일반인이 공무원을 업무상 알고 있을 경우 업무상 필요하여 만나기는 하나 너무 친밀하면 구설수 등등 안좋은 일에 휘말릴 수 도 있고, 너무 멀리하면 해를 당하거나 상대적 손해를 볼 수 도 있기 때문에 이런 인간관계를 불가근불가원하여야 한다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주제넘어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