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아트락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아트락의 향기가 진동하는 음반입니다. 특히 2부작 "죽음과 소녀"에서 나타나는 멜로트론은 마치 ange를 듣는듯하네요 강추입니다.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제목이 낯이 익다. ‘볼레로’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작곡가 ‘J.M. 라벨(Ravel)’의 무곡 ‘죽은 왕녀의 파반(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에서 힌트를 얻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실제 사랑하는 사람을 먼 곳으로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로젝트 록 밴드 글렌(Glen)의 첫 번째 앨범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는 연인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낸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애절하게 담아내고 있다.
스스로 ‘시네마틱 록’이라 명명하고 있는 만큼 이번 앨범은 하나의 주제에 음악을 맞춘다는 컨셉을 향한 통일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실제 ‘여인의 죽음’이라는 컨셉에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 곡을 교체했다고 하니 ‘시네마틱 록’이라는 틀에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이들이 펼쳐보이고 있는 음악은 다분히 과거 지향적이다. 해외는 물론 록 발라드가 지배하고 있던 한국 록 씬까지 네오 펑크, 모던록, 하드코어 등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따라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음악은 한국적 멜로디, 스피드 메탈이 추가된 일본식 비주얼 록이기 때문이다. 컨셉을 따르고자 하는 방향성 또한 과거 아트록 밴드들이나 북유럽 메탈 밴드들이 주로 사용하던 것들임을 고려할 때 글렌이 선보이고 있는 음악은 분명 미래 지향성이나 실험성에 있어서는 약점을 가진다.
하지만 오랜 경험을 가진 실력파 뮤지션들이 뭉친 프로젝트인 만큼 개개의 음악성 만큼은 탄탄하며, 앨범 앨범 곳곳에 묻어 있는 헬로윈 류의 극적 스피드, 윙위 맘스틴 류의 바로크 메탈 성향의 기타 사운드 등은 1990년대 감성을 가진 음악 팬들에게는 충분히 공감할만한 것들이다.
타이틀 곡으로 정해진 ‘영원히’는 부서질 듯 연약하게 고음부로 치닫는 일본식 록 발라드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곡으로 멜로디가 가장 돋보인다 할 수 있으며, 서정적 발라드 넘버 ‘너에게로’ 역시 돋보인다. 하지만 인위성이 보일 정도로 감성 자극을 위해 너무 연약한 보컬을 취한 것은 과장된 감성으로 비춰진다는 점에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명 타이틀의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는 이 프로젝트가 헬로윈에 대한 추억으로 만들어 지지는 않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Keeper of the Seven Keys]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고딕 성향의 습한 느낌과 스피드를 즐기면서도 서정적 멜로디를 잃지 않는 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외에도 피아노의 적극적인 활용, 바이올린이나 사운드 효과를 이용하여 오페라적 느낌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할 수 있다.
과거 지향적 사운드가 지배하는 데뷔 앨범을 받아 들고 당혹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1990년대 메탈의 인위적 감성을 추억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근래 쉽게 접할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었으며, 음악을 담아내는 수단이 과거 지향의 메탈 음악이었을 뿐 다른 영역을 개척하려는 시도 자체에 있어서는 충분히 새로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첫댓글 들어 봤는데 좀 역부족이더군요. 회고적인 가치 이상의 어떤 의미를 지닐지... 청중을 기만하는 실험과 회곡적인 작업을 넘어서는 작품을 기대한다면 한국 현실에서 너무 무리한 걸 바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