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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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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詩 읽기 스크랩 한 잎의 女子 1, 2, 3 / 오규원
동산 추천 0 조회 22 15.04.04 17: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 잎의 女子 1 / 오규원

 

- 언어는 추억에 걸려 있는 18세기형 모자다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한 잎의 女子 2 / 오규원

 

- 언어는 겨울날 서울 시가를 흔들며 가는 아내도 타지 않는 전차다

 

 

  나는 사랑했네 한 女子를 사랑했네. 난장에서 삼천 원 주고 바지를

사입는 女子, 남대문시장에서 자주 스웨터를 사는 女子, 보세가게를

찾아가 블라우스를 이천 원에 사는 女子, 단이 터진 블라우스를 들고

속았다고 웃는 女子, 그 女子를 사랑했네. 순대가 가끔 먹고 싶다는

女子, 라면이 먹고 싶다는 女子, 꿀빵이 먹고 싶다는 女子, 한 달에

한두 번은 극장에 가고 싶다는 女子, 손발이 찬 女子, 그 女子를

사랑했네. 그리고 영혼에도 가끔 브래지어를 하는 女子.

 

  가을에는 스웨터를 자주 걸치는 女子, 추운 날엔 팬티스타킹을

신는 女子, 화가 나면 머리칼을 뎅강 자르는 女子, 팬티만은

백화점에서 사고 싶다는 女子, 쇼핑을 하면 그냥 행복하다는 女子,

실크스카프가 좋다는 女子, 영화를 보면 자주 우는 女子,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다는 女子, 더러 멍청해지는 女子, 그 女子를

사랑했네. 그러나 가끔은 한 잎 나뭇잎처럼 위험한 가지 끝에 서서

햇볕을 받는 女子.

 

 

 



한 잎의 女子 3 / 오규원

 

- 언어는 신의 안방 문고리를 쥐고 흔드는 건방진 나의 폭력이다

 

 

  내 사랑하는 女子, 지금 창밖에서 태양에 반짝이고 있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를 보네. 커피 같은 女子, 그레뉼 같은 女子,

모카골드 같은 女子, 창밖의 모든 것은 반짝이며 뒤집히네,

뒤집히며 변하네, 그녀도 뒤집히며 엉덩이가 짝짝이가 되네.

오른쪽 엉덩이가 큰 女子, 내일이면 왼쪽 엉덩이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女子, 줄거리가 복잡한 女子, 그녀를 나는

사랑했네. 자주 책 속 그녀가 꽂아놓은 한 잎 클로버 같은

女子, 잎이 세 개이기도 하고 네 개이기도 한 女子.

 

  내 사랑하는 女子, 지금 창밖에 있네. 햇빛에는 반짝이는

女子, 비에는 젖거나 우산을 펴는 女子, 바람에는 눕는 女子,

누우면 돌처럼 깜깜한 女子. 창밖의 모두는 태양 밑에서 서

있거나 앉아 있네. 그녀도 앉아 있네. 앉을 때는 두 다리를

하나처럼 붙이는 女子, 가랑이 사이로는 다른 우주와 우주의

별을 잘 보여주지 않는 女子, 앉으면 앉은, 서면 선 女子인

女子, 밖에 있으면 밖인, 안에 있으면 안 女子, 그녀를 나는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처럼 쬐그만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

 

- '한 잎의 女子' 오규원 시인 (1941~2007)  

'날(生) 이미지의 시'를 추구하면서 많은 애송시를 남긴
중진시인

오규원 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2일 오후 5시10분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강원도 영월과 경기도 양평 등지에서 요양생활을 했던 고인은

최근 지병인 폐기종이 악화돼 입원했다.

1941년 경남 삼랑진 산. 부산사범학교를 거쳐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를 시작으로

1968년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돼 등단했으며

'분명한 사건'(71년)에서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2005년)에 이르기까지 시집 10여권을 출간했다.

 

고인은 자연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 언어의 리듬을 통한

이미지 재현, 광고이미지를 비튼 독특한 시세계를 펼쳐

보이면서 전통적인 시작법에서 탈피하여 개성 강한

시세계를 보여왔다.

 

20여년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길러낸 고인은 2002년 회갑 때는 신경숙 함민복 하성란

천운영 장석남 마르시아스 심 등 제자 문인 46명이 <문학을

꿈꾸는 시절>을 기념문집으로 내기도 했다.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학부문(2003)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유족으로는 시인이자 방송 다큐작가인 부인 김옥영씨와

2남 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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