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437-5 / 064-784-9907
폐교된 터를 구하여 펼친 사진 작가의 꿈, 그것은 꿈으로서만 남은 것이 아닌 현실에 남은 실제의 터전이 됩니다. 제주에, 사진에, 글에 담은 그만의 아름다운 삶, 김영갑 에세이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두모악 정원을 거닐며 그의 글들을 소리내어 읽어 봅니다.
길손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길손은 그를 존경한다. 사진에 대한 열정과 보이는 것에 대한 작가만의 프레임, 그리고 사물에 담은 생명력. 그러나 길손은 작가의 삶은 존경하지 않는다. 길손의 눈에 작가는 아둔하였으며, 고집 불통에 자기만을 아는 이기주의자로 보인다. 주위의 아픔, 주위의 둘러 서 있던 그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그는 자신만의 평화를 위해 버린것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만의 평화로 인해 많은 이들이 행복해 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날이 올 줄 미리 예견하고 있던 것이다. 예술인, 아니 그 이전에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를 담던 그는 이미 신(神)이 되어 버린것이었다. 작가 스스로가 제주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내 마음은 돌아선다. 숨을 내쉬는 동안의 스스로에게 그 얼마나 다짐을 했었겠는가,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얼마나 지쳐갔겠는가..
사진작가 김영갑, 불치의 병을 알고 난 후, 그는 갤러리를 만들고자 한다. 변변치 않은 몸으로 한땀한땀 일구어내는 그를 보고 주위에서는 혀를 찼다. 지인들은 모두 그를 말렸다. 그러나 이미 마음속 굳게 다짐한 그를 말릴 길을 없었다. 작가를 아끼고 사랑하던 지인들은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지인들은 그렇게 말했다. 저 죽는지 모르고 왜 자꾸 일만 벌이느냐고.. 당신의 신변을 자존심 안 건드라고 도와줄수 있는데 그렇게 일을 벌리고 있는 상황에선 앞이 안보인다고.. 제발 십만원, 만원..갤러리를 만드는 것 말고 먹고 입고 하는 다른데 쓰시면 안되느냐고... 가족은 어떠 했을까? 잘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은 동생에게서 시한부인생이란 말을 들은 누이의 심정은 어떠 했을까? 넋이 나간 누이, 의욕을 잃고 눈물로 지새웠다 한다. 갤러리를 다녀간 누이는 매일같이 전화를 통하여 안부를 묻는다. 그 괴로움을 작가는 오히려 결혼 하지 않은 자신을 다행이라 한다. 그 괴로움을 또 다른 사랑하는 이와 나누지 않았음을 행복으로 여긴다.
그는, 애당초부터 갤러리를 완성하겠다는 욕심은 버린 상태다. 하루만, 한주만, 한달만..그렇게 힘이 되는 데까지만 해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손가락에 힘이 없어 더 이상 셔터를 누를수도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고개를 옆으로 돌릴수도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다리의 힘풀려 맥 없이 쓰러지기를 수십, 수백번을 거쳤음에도 작가는 기어이 갤러리를 만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2002년 여름, 기어이 갤러리를 완공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넓지 않은 운동장을 정원으로 만들어 갔다. 제주를 상징하는 것들로 나무와 억새, 야생초와 버려진 돌들로 담을 만들었다. 자신만의 작은 제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작가를 ?았고, 갤러리를 ?았다. 그리고 2005년 5월 29일,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갤러리에서 고이 잠들었다. 그의 뼈는 두모악 갤러리의 마당에 뿌려 졌다. 그렇게 작가는 영원히 자신이 사랑한 제주에 머물게 된다.
"양식이 떨어지는 것은 덤덤하게 넘길수 있어도 필름과 인화지가 떨어지면 두렵다.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괴로움은 작업하며 견딜수 있지만, 필름이 없어 작업을 못하는 서글픔만은 참지 못한다. 그럴때는 불안과 초조속에 잠 못 이루며 서성이다가 밖으로 나간다. 초원으로, 바다로, 밤이슬을 맞으며 헤멘다. 그렇게 사진 작업을 하다보면 순간순간 느끼는 신명이 있으니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세상에서 제일 뱃속 편한 놈 中-
"작고 하찮은 것은 버리기가 쉽다. 흩어진 천조각들을 모아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바느질을 한다. 그것을 보고 있으며 마음이 상쾌하다. 예쁜 조끼나 저고리 등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든다. 그리고 감물로 염색을 한다. 완성된 옷을 입고 다닐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설렌다." -울적한 날에는 바느질을 中-
"안개속에 드러난 억새 그리고 야생화, 나무...모두가 신비롭다. 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떠올렸다. 정오가 지난 이 시간에는 조용하던 새들의 노래 소리가 요란스럽다. 늘 듣던 풀벌레 소리도 새롭다. 장마철에 흔히 대하는 안개도 새롭다. 이런일이 처음은 아닌데도 늘 분위기에 압도된다." -나는 바람을 안고 초원을 떠돈다 中-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색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산간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오름에서 맞는 오르가슴 中-
"어머니를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때 눈물에 인색한 나도 펑펑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의 삶은 나의 안경이다. 나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 보고 삶을 배운다. 삶의 고비마다 어머니의 삶을 통해 기운을 얻는다. 살아생전에 어머니는 나의 육신을 키워주었고, 돌아가신 뒤에는 나의 영혼을 살찌웠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어머니의 쌈지 中-
"밑 빠진 독에 물 채우는 나를 보고 살마들은 정신나갔다고 혀를 찼다. 그래도 나는 웃는다.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밥벌이를 못한다고 핀잔을 주어도 나는 웃는다. 그 나이에 장가를 못가고 뭐했냐고 다그쳐도 웃는다.... ....홀로 사진 찍는 것보다 즐거운 일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영개바, 나이 들엉 어떵하려고 中-
"그렇게 살다 떠난 토박이들의 흔적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제주도에 정착하게 된 것은 섬에서 나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뭍의 것들이기에 일상적인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내 사진에 표현하고 싶은 주제(마음)가 다르기 때문이다." -뭍의 것들, 육지 것들 中-
"어떤 순간이나 이미지를 상상하고 원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쉽게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받을수도 있고, 기다림이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다. 상상력이 빈곤한 사진가는 작업을 적당히 마무리하기 위해 기술적인 장치에 의존한다. 자연을 소재로 하는 풍경 사진도 작가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개입 시킬 수 있다. 우연히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지만 철저한 준비 뒤에 얻는 사진의 감동을 따라갈 수는 없다."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자의 몫 中-
"살레덕 포구에서 마을 사람들을 떠나 보내고 언덕에서 배를 지켜보았다. 가파도 멀리 하얀 배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 보는 동안 나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여행객들을 보내는 토박이들도 그렇게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민박집 주인들이 손님에게 필요 이상의 정을 붙히려 하지 않는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나는 늘 떠나는 사람이기에 떠나 보내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여행객들을 퉁명스럽게 대하는 토박이들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떠나보내는 심정 中-
"동박새는 모른다. 동백꽃을 피우기까지 나무가 견뎌낸 고통의 시간을... 동박새는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눈, 비, 바람, 가뭄, 혹한과 무더위를... 동박새는 꽃이 떨어지면 동백꽃을 기억하지 않는다. 동박새는 다음해 동백꽃이 피어야 다시 올 것이다." -동백꽃은 동박새를 유혹하지 않는다 中-
"병이 깊어갔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지인들의 발길도 전화도 뜸해졌다. 밤이 되면 갤러리는 적막하다. 적막함을 즐기며 홀로 정원을 걷는다. 몸이 피곤해지면 편안한 상태로 침대에 눕는다.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다면 밤늦도록 사진 작업에 매달렸을 테지만 이젠 한가로운 일상에 익숙해졌다. 루게릭 병이 내게 준 선물이다." -기다림은 나의 삶 中-
"건강이 악화될수록 행동반경이 점점 좁아지고 지나온 세월을 떠 올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거부하지 못할 것이 과거의 추억이다. 내 앞에 펼쳐질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피하려야 피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인정하고 끌어안으면 또 다른 길이 보일것이다." -길 끝에서 또 다른 길을 만나다 中-
by 박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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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길손의 旅行自由 원문보기 글쓴이: 길손旅客
첫댓글 작품 과 마음만 남기고가셨네요감 합니다
제가 뽑는 국내 여행 베스트 10에 속한 곳입니다.. 제주에서 몇달 머무르며 이 갤러리와 오름들을 찾아다녔던 기억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