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섬산로드 / 승봉도] 사랑의 코끼리와 합격의 부채가 있는 여름 섬
월간산 2023.07.07
붉은 기암과 10여 개 모래해변 거느린 섬 6km 일주
여름 해변의 낭만을 즐기는 김민지·최동혁씨. 이일레해수욕장은 승봉도에서 가장 넓고 쾌적한 피서 1번지다. 야영이 가능하며 화장실과 개수대, 샤워실이 있다.
신씨와 황씨의 섬이다. 옛날 신씨와 황씨가 고기를 잡던 중 풍랑을 만나 이곳에 피했다. 며칠 동안 굶주렸기에 배를 채우고자 섬을 둘러보았는데, 땅이 비옥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정착했다고 한다. 섬 이름도 그들의 성씨를 따서 신황도申黃島라 불리다가 섬 모양이 봉황이 하늘을 나는 모양 같다 하여 승봉도昇鳳島가 되었다.
승봉도의 백미는 단연 코끼리바위다. 해안의 독특한 기암으로 코끼리가 코를 뻗어 바닷물을 마시는 것만 같은 독특한 바위다. 바다와 바람이 공동 작업으로 만든 신비로운 예술 작품인 것. 기둥처럼 바위가 뻗어 가운데가 뚫려 있어, 대문 같다 하여 남대문바위라고도 불린다.
블랙야크 섬&산 100 인증지점이라 숱하게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이곳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조선시대 신씨와 황씨 남녀가 서로 사랑했는데, 여인이 다른 섬으로 시집을 가게 된 것. 두 사람은 코끼리바위에서 양쪽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기로 맹세했고, 그 덕분이었는지 사랑이 이루어져 혼인해 오순도순 잘 살았다고 한다. 이후 코끼리바위 아래를 연인이 손을 잡고 지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승봉도를 대표하는 명물이자 BAC 섬&산100 인증장소인 코끼리바위. 남대문바위라고도 불린다.
여름과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와 승봉도를 찾았다. 대학산악부 출신 최동혁(연세산악회)·김민지(경기대산악부)씨와 함께 배에서 내렸다. 섬을 둘러보고 해변에서 야영할 요량으로 큰 배낭을 둘러멨다. 선착장에서 이일레해수욕장까지 1.4km이며, 버스나 택시는 없다. 정보를 얻으려 선착장 부근의 행정복지센터에 들렀다.
작은 사무실은 섬 사랑방에 가깝다. 직원이나 마실 나온 주민들이 모두 친절해 하나를 물어보면 10가지를 알려주려 한다. 예부터 물이 많고 완만한 땅이 많아 벼농사를 지었으며, 한 해 수확물로만 3년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로웠다고 한다. 지금도 주민들 상당수가 흑미 농사를 짓는데, 대부분 판매가 예약된 것들이라고 한다.
승봉도는 여의도 면적의 4분 1 크기로 아담한데 해안선 길이가 10km에 이르며, 최고봉인 당산은 높이 93m이다. 산세가 순해 느리게 걸어도 3~4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다. 상쾌한 숲과 수려한 기암, 해변 10여 개가 있어 "섬이 보면 볼수록 예쁘다"는 것이 주민들의 한결 같은 말이다.
이곳이 고향인 남편 따라 25년을 살았다는 장미경씨는 '승봉도 사진가'로 꼽힌다. 날씨가 쾌청해 일출과 일몰이 예쁜 날이면 섬 곳곳을 돌며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 취재진에게 부채바위, 코끼리바위, 촛대바위, 신황정 전망대, 당산수목산책로, 이일레해수욕장은 꼭 들를 것을 당부한다.
삼형제바위를 오르내리며 바위 맛을 즐기는 김민지·최동혁씨.
조선시대 사랑과 장원급제 전설 전해
아기자기한 마을 가운데는 늪지를 데크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작고 정갈한 승봉성당은 종교가 없는 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찻길 따라 낮은 고개를 넘자 길이 끝나는 곳에 탁 트인 모래해변이 있었다. 1km가 넘는 긴 해변은 여백으로 가득했다. 개수대 하나, 화장실 하나, 물놀이 감시탑 하나. 꼭 있어야 할 것만 있어 담백한 자연미를 즐기기에 충분했다.
야영 가능한 해변임에도 텐트는 한 동뿐이었다. 최동혁·김민지씨가 텐트를 치는 소리에 쓸쓸하던 해수욕장이 생기를 찾은 듯 보였다. 처음보다 파도가 더 우렁차게 밀려오고 있었다. 짐을 풀고 섬 여행에 나섰다. 촬영 담당인 프리랜서 사진가 민미정씨는 "코끼리바위로 가요"라며, 중요한 것부터 보자고 했다.
마을길을 따라 남쪽 해안선에서 북쪽 해안선으로 넘어갔다. 너른 해변 끝에 거인이 푹 꽂아놓은 것만 같은 부채바위가 있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부채를 펼친 바위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붉은빛이 감도는 빛깔, 바위 위에 뿌리내린 나무 한 그루와 풀이 있어 예쁘장했다.
작은선배해변의 장식. 3년 전 고향 섬으로 돌아와 까페를 차린 김선규 사장의 솜씨다. 옛날 이곳에 배가 난파된 적 있어 이름이 유래한다.
승봉리 마을의 습지공원. 특이하게도 마을 가운데에 습지와 데크가 있다.
미적 감각이 있는 거인이 마당 장식을 위해 부러 가져다 놓은 듯 했다. 코끼리바위가 사랑을 이뤄준다면 부채바위는 학업을 이뤄준다. 옛날 이곳에 유배 온 선비가 지겨움을 달래기 위해 부채바위를 즐겨 찾아 시를 썼는데, 유배가 풀린 후 과거 시험에서 부채바위를 보고 썼던 시로 장원급제를 했다는 전설이다. 허무맹랑한 전설만은 아닌 것이 햇볕이 비치면 바위가 황금색으로 빛나, 외지에서 온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해안가를 따라 난 데크를 걸어도 코끼리바위는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도 눈에 띌 것 같은데 왜 드러나지 않나 생각할 때쯤, 계단을 따라 작은 바위를 넘자 맘모스의 출현이었다. 보통 기암은 실물로 보면 실망하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코끼리보다 더 큰 붉은 맘모스가 바다를 향해 막 걸어 나가는 듯한 웅장한 힘이 바위에 실려 있었다.
전설이 없었으면 서운했을 정도로 독특하다. 코끼리 머리에는 소나무가 있어 멋스럽다. 밀물이었다면 데크에서 보기만 했을 텐데 구멍 사이를 걸어 본다. 이 구멍 탓에 남대문바위란 이름이 생겼는데, 남대문보다는 코끼리가 사실적으로 잘 어울린다. 연인은 아니지만 두 사람이 장난스럽게 바위 아래를 지난다. 기념사진을 남기지 않고선 배기기 어려운 곳이다.
코끼리바위 가는 길목의 명소인 부채바위. 부채처럼 가로가 넓은 바위인데, 옆에서 보면 뾰족해 보인다.
하늘을 향해 뻗은 바위기둥처럼 신비로운 코끼리바위. 보는 각도에 따라 독특한 풍경을 내어준다.
해안도로 따라 걸어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바다, 꽃, 바위, 숲이 번갈아 나와서다. 여백의 미가 있는 주랑죽공원을 지나 아무도 없는 해안선을 따른다. 가파른 고개가 나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성질 부렸냐며 내리막이다. 다시 아무도 없는 자갈해변. 손님 없는 카페에서 옛날 팝송이 흘러나오고, 나른한 오후의 바다가 강물처럼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벤치에서 컵라면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자, 세상을 다 가진 듯 몸과 마음이 푸근했다. 들어본 적 있는 팝송을 흥얼거리며 수평선 끝에서 아지랑이가 몽글몽글 솟는 것 같은 여름 풍경을 반쯤 눈 감은 채 바라보았다. 해먹을 치고 한숨 눈을 붙이고 싶었으나 해 지기 전에 돌아갈 길이 빡빡했다.
작은선배까페의 김선규 사장은 "해변 이름이 작은선배라서 까페 이름을 그리 지었다"고 한다. 해안선을 따라 더 가면 해변이 또 있는데 그곳은 '큰선배'라 부른다. 옛날 이곳에 난파선 배가 발견되어 이름이 유래한다. 승봉도가 고향인 김씨는 인천에 나가서 자영업을 하다 코로나로 벌이가 줄어 폐업하고, 3년 전 고향섬에 들어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작은선배해변에 카페를 차렸다고 한다.
삼형제바위를 오르는 최동혁씨. 과거 연세산악회 재학생 주장을 맡았다.
승봉도는 작지만 독특한 바위와 깨끗한 해변, 상쾌한 숲이 어우러진 알찬 여행지다.
낮고 순한 산, 당산
임도를 따라 소박한 숲길을 따른다. 섬 동쪽 끝으로 간다. 이정표를 따라 해안가로 나서자 바위의 향연이다. 삼형제 바위라 불리는 덩치 큰 바위가 여럿이다. 작은 덩치들까지 포함하면 육형제로 불러도 될 성 싶다. 제일 큰 바위 위는 칼로 자른 듯 매끈한데, 고정로프가 있어 오를 수 있다. 해안 데크를 따라 모퉁이를 돌아서자 바위가 하늘을 찌른다. 누가 보더라도 촛대처럼 뾰족하게 생긴 촛대바위다.
전설이 없으면 섭섭하다. 고기를 잡으러 간 아버지와 어머니가 풍랑에 휘말려 돌아오지 않자, 삼형제가 여기서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고 한다. 흔한 전설이지만, 열악했던 과거 섬살이에선 흔한 비극이었기에 전설로 남았을 터다.
숲으로 들어가 오르막을 짧게 두 번 올려치자 신씨와 황씨가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는 곳, 신황정이다. 해안 절벽 꼭대기라 경치는 승봉도에서 가장 시원하다. 텐트를 여기 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야영은 이일레해수욕장과 옹진군에서 운영하는 승봉힐링캠핑장에서만 가능하다.
이일레해수욕장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짙은 소나무숲으로 휴식 같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휴식 같은 길을 따라 해안선을 지나자 목섬이다. 미인의 목선처럼 희고 예쁜 모래사장이 목섬으로 이어진다. 이름 없는 예쁜 해변이 널려 있어, 걸을수록 걸음이 가벼워진다. 모래해변 하나 없는 섬이 많은데, 승봉도는 피부가 희고 고운 미인격의 섬이다.
덩그러니 화장실이 있는 부두치해변은 아무도 없는 것이 잘 어울렸다. 흰 백짓장 같은 해변은 무언가 써주길 기다리는 듯했다. 추억 하나쯤 선명히 새겨줄 수 있는 20대 남녀의 출연을 반기고 있었다. 파도며 새소리가 "외로웠어. 머물러줘"라고 부르는 것만 같았다.
찻길을 따라 이일레해변으로 갔다. 개수대는 물이 나와서 편했고, 화장실도 깨끗했다. 야영이 허가된 곳이라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재잘재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밤새 밀물이 들었다가 돌아갔다. 텐트에서 자다 문득 파도가 얼마나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건가 싶었다. 서해치곤 파도 소리가 컸다. 지우고 싶은 기억을 모두 삼키는 파도가 있는, 스스로를 정화하는 의식 같은 밤이었다.
해안데크에서 본 부채바위. 데크를 따라 모퉁이를 돌아가면 코끼리바위가 나온다.
해발 93m는 산행보다 아침 산책에 가깝다. 섬 최고봉 당산을 오른다. 이일레해변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자 짙은 소나무 세상이다. 걷는 것이 휴식인 발 디딤 푹신한 솔향기숲. 숨을 들이마실수록 몸이 초록으로 변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완만하고 둥글둥글한 오르막이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운동기구와 정자가 있는 정상부에 닿자 벤치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당산에 왔으면 당산나무 보고 가야지"하며 아름드리 소나무를 가리킨다. 마을 산신령 격의 나무를 지나자 정상이다. 경치는 없지만 높이에 어울리는 편안한 소박함이다.
덩굴이 운치 있는 터널을 만들었다. 덩굴터널을 지나자 편안했던 산책길이 정글로 변한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공원 같은 산길로 가면 되는데, 오기가 발동한다. 직진해 묵은 덤불을 뚫는다. 산길은 있는데 사람이 다니지 않아 덤불이 높다. 한두 달은 아무도 오지 않은 은밀한 산길을 빠져나오자, 정적으로 가득한 모래해변이 햇살에 한가로이 빛나고 있었다. 마치 해변이 "뭘 그리 아등바등 사냐"고 한마디 툭 던지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아무도 모를 것만 같은 해변에 파도가 철썩 밀려오고 있었다.
당산 정상 부근의 당산나무. 마침 산책 나온 할머니가 영험한 나무라 일러주었다.
텐트를 해체하기 전, 텐트 안의 모래를 털어낸다. 이일레해수욕장은 마을에서 야영을 허가한 유일한 해변이다.
드넓은 모래, 깨끗한 바다, 상쾌한 바람이 있는 여름 해변의 낭만을 즐긴다.
섬 여행 가이드
선착장은 승봉도 서쪽 끝이고, 명소인 코끼리바위(남대문바위)와 이일레해변은 양쪽에 나뉘어 있다. 섬 끝에서 끝으로 걸어도 3.5km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섬이라 한 바퀴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최고봉이 93m일 정도로 완만해 자전거로 둘러보는 것도 효율적이다.
선착장에서 찻길을 따라 이일레해변에 들렀다가 화장실 옆 계단을 따라 산길로 당산에 오른 뒤 부두치해변으로 내려선다. 해안산책로를 따라 신황정에서 트인 경치를 감상한 뒤 내려와 촛대바위에 갔다가 작은선배해변을 지나 코끼리바위로 간다.
이때 도로를 따라 가면 땡볕이므로 갈림길에서 임도 숲길을 따라 가는 것이 낫다. 부채바위에서 해안데크를 따라 200m 가면 BAC 인증지점인 코끼리바위가 나온다. 이후 마을을 거쳐 선착장으로 되돌아오면 승봉도 여행이 끝난다. 선착장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코스로 6km이며 4시간 정도 걸린다.
선착장 부근의 승봉도 조형물.
데크길에서 본 부채바위.
교통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1599-5985)과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032-886-7813)에서 승봉도행 배편이 운항한다. 안산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서는 하루 2회(주말 08:40, 12:50) 운항하며 1시간 20분 걸린다. 대이작도에서 나오는 배편은 하루 2회(11:00, 15:20) 운항한다. 철부선이라 차량을 실을 수 있다. 편도 요금 1만700원, 차량 편도 요금 4만2,000원.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는 고려고속해운(1시간 20분 소요)의 배가 주말 하루 2회(08:30, 토요일 12:00/일요일 14:00) 운항하며 요금은 1만8,400원. 차량은 실을 수 없으며 승객만 탈 수 있다. 인천으로 나오는 배는 토요일(10:15, 15:00)과 일요일(12:20, 16:10) 운항 시간이 달라 주의해야 한다. 문의 고려고속훼리(1577-2891).
인천에서 승봉도로 가는 대부고속페리호는 1일 2회(07:50, 13:10) 운항하며 1시간 50분 걸린다. 요금은 1만4,300원이며 차량을 실을 수 있다. 나오는 배는 1일 2회(09:35, 15:35)이며 오전 배는 인천까지 2시간 30분, 오후 배는 2시간 걸린다. 배 운항 시간은 매달 바뀔 수 있으며 여름철엔 배표가 없을 수도 있으므로 미리 확인해야 한다.
문의 대부해운(887-6669).
숙식
플러스 가이드 기사 참조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