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의 옛詩 (4) 漢 詩 (1) 新羅·高麗時代(1) 漢 詩 (1) 新羅·高麗時代(1) 題伽倻山 讀書堂(제가야산 독서당) -崔致遠 -統一新羅末期의 學者. 狂奔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물결 거세게 흘러 산을 울리고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가까운 거리에서도 말을 알아들을 수 없네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시비 따지는 소리 들릴까 두려워 故敎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농산)/흐르는 물소리로 귀먹게 하였던가. (*伽; 절 가 *倻; 가야 야 *奔; 달릴 분 *疊; 거듭 첩 *吼; 울부짖을 후 *巒; 메 만 *咫; 여덟 치 지 *恐; 두려울 공 *盡; 다할 진 *籠; 대바구니 농) *自然속을 거닐던 作者가 陜川 伽倻山 紅流洞溪谷 瀑布를 바라보며 쓴 詩로, 崔致遠이 伽倻山에서 神仙이 되었다는 傳說이 전한다. (*陜 좁을 합) *崔致遠(857~?) -慶州 崔氏의 始祖 -字 孤雲 -諡號 文昌侯 新羅 景文王 8년(868) 12세에 唐에 留學, 874년 科擧에 及第, 宣州 溧水縣尉가 된 후 都統巡官에 올랐으며, 885년 歸國했다. 侍讀兼 翰林學士. 瑞書監知事에 올랐으며, 894년 時務策을 上疏하고, 眞聖女王에게 外職을 自請해 大山(現在 全北 泰仁)等地의 太守를 지내고 阿飡이 되었다. 以後 官職을 辭職하고, 亂世를 悲觀하며 各地를 流浪하다가 伽倻山 海印寺에서 餘生을 마쳤다. 그가 쓴 <鸞郞碑序文>은 신라시대의 花郞徒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諡; 시호 시 *溧; 강 이름 율 *翰; 편지 한 *疏; 소통할 소 *飡; 먹을 찬 *鸞; 난새 난) 大同江(대동강) -鄭知常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 갠 언덕 위 풀빛 푸른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남포로 임 보내는 구슬픈 노래 大同江水何詩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別淚年年添綠波(별루연년첨록파)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것을. (*歇; 쉴 헐 *堤; 둑 제 *盡; 다할 진 *淚; 눈물 루 *添; 더할 첨) *許筠은 이 詩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 詩는 지금에 와서 絶唱이라고 말들을 한다. 다락에다가 여러 詩를 적은 懸板들을 걸었는데, 中國에서 使臣이 오면 현판들을 모두 걷어 치운다. 그러나 오직 이 詩의 懸板만은 그대로 두었다. (*懸; 달 현) *鄭知常(? ~1135) -本貫; 西京 -出生地; 平壤 -初名; 之元 -號; 南湖 -活動分野: 政治, 文學 -主要著書; <鄭司諫集(정사간집)> 高麗 睿宗 9년(1114) 文科에 급제, 仁宗 5년(1127) 좌정언(左正言)으로서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하여 유배되게 하고, 1129년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시정(時政)에 관한 소를 올렸다. 음양비술(陰陽祕術)을 믿어 묘청(妙淸)·백수한(白壽翰)등과 삼성(三聖)이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수도를 西京(平壤)으로 옮길 것과 금(金)나라를 정벌하고 고려의 王도 황제로 칭할 것을 주장하였다. 1130년 지제고(知制誥)로서 《산재기(山齋記)》를 지었으며, 뒤에 기거랑(起居郞)이 되었다. 1135년(인종 13) 묘청(妙淸)의 난(亂) 때 이에 관련된 혐의로 김안(金安)·백수한과 함께 김부식(金富軾)에게 참살(斬殺)되었다. 시(詩)에 뛰어나 ‘高麗 12詩人’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역학(易學)·불전(佛典)·노장철학(老莊哲學)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림·글씨에도 능했으며 저서로는 《정사간집(鄭司諫集)》이 있다. 洛山寺(낙산사) -金富儀(1079~1136) -高麗時代 文臣 一自登臨海岸高(일자등림해안고)/해안 높은 곳에 있는 낙산사에 오르니 回頭無復舊塵勞(회두무복구진로)/바다가 보이고 묵은 티끌 씻어져라. 辱知大聖圓通理(욕지대성원통리)/성인들의 통달한 마음을 알려 하면 聽取山根激怒 (청취산근격노도)/성난 저 파도소리를 들어볼 지니라. (*儀; 거동 의 *塵; 티끌 진 *辱; 욕될 욕 *激; 격할 격 *怒; 성낼 노 *濤; 물결 도) (*登臨: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다. *舊塵勞: 묵은 티끌을 씻어버리는 수고로움. *大聖: 孔子 *圓通理: 원만하여 맺힌 곳 없이 理致를 통함.)
*金富儀 -本貫 慶州 -字 子由 -初名 富轍 -諡號 文懿 -金富軾의 동생. 肅宗 2년(1097) 19세에 文科及第, 直翰林院이 되고, 1111년 書狀官으로 樞密院副使 金緣을 따라 宋나라에 가서 文名을 떨치고 歸國, 監察御史가 되었다. 仁宗이 世子때, 詹事府司直이 되어 문학으로 優待받고, 仁宗 卽位年(1123) 御史中丞으로 特進했다. 1124년 謝恩副使로 되어 宋나라에 다녀오고, 大司成과 吏部·戶部·禮部의 尙書, 翰林學士承旨등을 歷任했다. 1134년 妙淸의 主張을 金富軾등과 極力反對, 이듬해 妙淸이 亂을 일으키자, 平西十策을 올리고 左軍帥·樞密院使가 되어 出征, 平定하고 돌아와 金帶를 下賜받았으며, 刑部尙書·寶文閣大學士· 樞密院志士등을 歷任했다. 守司空尙書左僕射政堂文學判尙書禮部事修國史柱國이 追贈되었다. (*轍; 바퀴 자국 철 *樞; 지도리 추 *懿; 아름다울 의 *緣; 인연 연 *詹; 이를 첨 *丞; 정승 승 *亂; 어지러울 난 *僕; 종 복 *贈; 줄 증) 漢 江(한 강) -李奎報(1168~1241) -高麗의 文臣·文人 朝日初昇宿霧收(조일초승숙무수)/아침햇살 퍼지자 안개 걷히니 促鞭行到漢江頭(촉편행도한강두)/닫는 말을 휘몰아 한강 가 왔네. 天王不返憑誰問(천왕불반빙수문)/천왕은 안 오니 뉘게 물을까 沙鳥閑飛水自流(시조한비수자류)/물새는 날고 있고 강물 흐르네. *天王: 周나라 昭王으로 南方巡視중에 中國의 漢江에 溺死했다. (*霧; 안개 무 *促; 재촉할 촉 *鞭; 채찍 편 *返; 돌이킬 반 *憑; 기댈 빙 *誰; 누구 수 *閑; 한가할 한) *李奎報 -本貫 驪州 -字 春卿 -號 白雲居士·止軒 -諡號 文順. 明宗 19년(1189) 司馬試, 이듬해 文科에 及第, 1199년 全州司錄을 거쳐 兵馬錄事兼修製, 1207년 權補直翰林으로 발탁, 司宰丞·右正言을 거쳐 左司諫으로서 地方官의 罪를 默認해 桂陽都護府副使로 左遷되었다. 高宗 7년(1220) 禮部郞中·翰林侍講學士를 거쳐 衛尉寺判事가 되었으나, 八關會行事에 잘못을 저질러 한때 蝟島에 流配되었다. 高宗 19 祕書省判事, 이듬해 集賢殿大學등을 거쳐 1237년 門下侍郞平章事·太子大保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豁達한 詩風은 當代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感想을 읊은 卽興詩는 유명하다. 몽골軍의 침입을 陳情表로써 격퇴한 名文章家였다. 詩·술·거문고를 즐겨 三或好先生이라 自稱했으며, 晩年에 佛敎에 歸依했다. 著書에 <東國李相國集> <白雲小說> <麴先生傳>등이 있으며, 작품으로 詩에 [天摩山詩] [慕中書懷] [古詩十八韻] [初入翰林詩] [東明 王篇], 文에 〈茅亭記〉〈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등이 있다. (*卿; 벼슬 경 *翰; 편지 한 *宰; 재상 재 *丞; 정승 승 *遷; 옮길 천 *蝟; 고슴도치 위 *豁; 뚫린 골짜기 활 *麴; 누룩 국 *摩; 문지를 마 *韻; 운 운 *慕; 그릴 모 *懷; 품을 회 *韻; 운 운 *茅; 띠 모) 熊津渡(웅진도) -康好文 (?~?) -高麗時代 文臣 江水茫茫入海流(강수망망입해류)/강물은 흘러흘러 바다로 가고 靑山影裏一扁舟(청산영리일편주)/푸른 산 그림자속에 배 흘러가네. 百年南北人多事(백년남북인다사)/세상은 언제나 어지럽게 마련이니 只有沙鷗得自由(지유사구득자유)/저 갈매기처럼 자유롭기 원하네. (*茫; 아득할 망 *鷗; 갈매기 구) *熊津나루를 건너면서 그 느낌을 쓴 것으로. 詩人은 갈매기처럼 自由로운 몸이 되어 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熊津渡=곰나루; 忠南 公州市 熊津渡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곰나루(公州市 熊津洞에서 맞은편 牛城面 道川里를 연결하던 나루)의 地名傳說이자 인간과 동물의 結緣談 性格의 說話.]
*康好文 -字 子野 -號 梅溪. 詩文에 뛰어났으며, 恭愍王 11년(1362) 文科에 及第해 벼슬이 전교시판사(典校寺判事)에 이르렀다. 夫人 文氏는 禑王 14년(1388) 倭寇가 침입했을 때 倭寇에게 납치되어 가던 중 純潔을 지키기 위해 絶壁에서 뛰어내려 탈출, 烈女라고 稱頌되었다. (*愍; 근심할 민 *禑; 복 우 *寇; 도적 구 *潔; 깨끗할 결 *稱; 일컬을 칭 *頌; 칭송할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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