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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이야기는 섬진강 트레킹을 위해 생일도 트레킹 중 부상을 당한 4명을 중심으로 섬짐강 트레킹에서 발생한 부상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동 중 부상자가 많이 발생하여 그룹이 나뉜 경우가 있는데 섬활2기 조유현양과 함께 있었던 그룹을 중심으로 쓰여졌습니다.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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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일 월요일 / 생일도 - 백운면
비바람이 몰아치던 05년 8월 1일 새벽.. 전날 생일도 트레킹 중 부상을 당한 4명과 함께 가기로 결정을 했지만 도무지 어떠한 방법으로 함께 다닐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며 우리는 섬진강 트레킹을 위해 생일도를 나섰다. 마량에 도착하자 선생님께서 미리 예약하신 우등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원까지 3시간 정도.. 모두들 흩어져서 쇼핑과 점심을 즐기는 동안 부상자 4명은 눈병이 있었던 명철오빠, 의료담당 동주와 함께 터미널 근처의 병원으로 갔다. 정형외과에서 기다리는 동안 걷는 것을 보면 모두 뼈에는 문제가 없을텐데.. 꾀병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X-ray를 찍고 나오는 순간!! 우리의 기대는 헛된 것이었다. 가벼운 염좌일거라 생각했지만 의사선생님은 보호대가 필요하고 무리해서 걸으면 후유증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약만 바르면 될거라 생각했던 내 다리는 염증이 생겨서 물에 닿으면 안된다며 드레싱을 하자고 하셨다. 드레싱... 소독하고 약바르는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국자'의 1/100 (귀이개 2배)정도 되는 것으로 다리의 상처를 긁어내셨다. (당시의 고통으로는 후벼 파냈다고 하고 싶다.) 쏟아지는 눈물을 어찌 멈출 수 있으랴.. 아마도 섬진강 트레킹을 하며 여학생들이 흘렸을 눈물을.. 나는 병원에서 10분 사이에 모두 쏟아냈을 것이다. 이렇게 모두들 물리치료까지 마치고 약속시간이 되어 서러움(?)과 배고픔을 안고 만남의 장소로 돌아가야했다.
버스를 타고 다시 한시간 가량 지나 우리는 데미샘이 있는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마을에 도착했다. 일행은 산에 오르고 4명의 부상자들은 마을 앞에서 고픈배를 움켜쥐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어떻게 주린 배를 채울까 생각 중 이었다. 때마침 말려놓은 고추를 거두러 오신 할머니께 공작이 들어갔다. 덕분에 우리는 입구에 있는 할머니댁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담소를 나누며 즐겁게 일행을 기다릴 수 있었다. 조금만 올라오면 데미샘이 섬진강으로 흐르는 것이 보인다며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움직이기 어렵다는 경아를 집에 둔 채 우리는 천천히 발을 옮기며 데미샘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함꼐 이야기 나누었다. 과연 우리가 이러한 몸으로 어떻게 걸을 수 있으며 우리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 아직은 얼마나 힘든지 모르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하자고 말했지만.. 정말 몸이 힘들게 되면.. 서로 마음까지 힘들어 지지 않을까? 때마침 대진오빠가 내려오며 데미샘물을 전해 주었다. 약간은 씁쓸한 약수 같은 그 맛을.. 짭쪼름한 바다와 만나는 망덕포구에 도착할 때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꼭 기억하리라...
일행들이 떠날 채비를 하고.. 우리는 어떠게 갈 것인가를 고민 하던 중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서 히치로 반송리까지 오세요." 그 때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섬진강을 완주할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히치로 섬진강을 완주한다.. ' 순간 우리는 서로 아무런 말 없이도 같은 다짐을 했다. 일행이 내려가고 우리는 몇 분을 기다렸지만 데미샘이 있는 마을을 지나는 차가 거의 없었다. 일찍이 올라갔던 차들도 가족 여행인지 좌석이 모두 차 있었다. 택시를 불러야 할 것인가.. 때마침 트럭 한 대가 올라갔다. 생일도에서 김위원님과의 드라이브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점지해 두었다. 뒤에 짐이 실려있긴 했지만.. 우리 넷이 타기엔 충분하리라.. 한참이 지나자 위쪽에서 소독차의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올라갔을까?' 우리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저 차라도 타볼까 생각했다. 차가 내려 올 때쯤 우리는 아게 되었다. 아까 올라간 트럭이 바로 그 소독차였다. 차를 세우고 아저씨께 부탁을 드렸다. 흔쾌히 허락하시며 다음 마을을 다녀올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셨다. 첫 히치에 성공하며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히치를 할 수 있구나...
아저씨께서 다시 오시고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한참을 내려가도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빠르구나.. 우리가 함께 했다면 이만큼 걸을 수 없었을텐데..' 이런 생각도 잠시 바다와는 다른 부드러운 바람과 푸르디 푸른 산,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에 눈과 귀를 맡겼다. 곧 일행이 보이고 크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우리 차 탔으니까 걱정 하지마.. 마음은 언제나 함께란다..열심히 해!!' 반송리에 내려 정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앞으로 이렇게 미리 도착해서 일행을 기다리겠구나.. 그냥 무작정 쉴 수 밖에 없을까?? 어찌되었든.. 시원한 섬진강물의 소리를 들으며 아픈 다리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일행이 도착하고 선생님은 지나는 차를 잡아 우리를 미리 태워 덕현교회로 보내셨다. 차에 타고 보니 '무슨무슨 음악동호회 인천지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백운면이 고향인 아저씨를 따라 3살된 아기와 엄마가 휴가를 오셨단다. 지금 우리가 내려온 길을 어렸을 적에는 걸어다니셨다며 우리의 트레킹을 격려해 주셨다.
먼저 덕현교회에 도착한 우리는 미리 식사준비를 하라는 임무를 명 받고 도착했기에.. 전도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주방으로 드어갔다. 그러나 이미 주방에는 반찬과 밥이 준비되어 이었고 우리는 감자를 삶기위해 창고에서 감자를 고르고 일행이 도착하면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청소를 하고 짐을 옮겨 놓았다. 덕현교회의 전도사님은 지난번 선생님께서 자전거순례 중 들러 가셨다며 그 때의 인연으로 오늘도 숙식을 마련해 놓으셨다고 한다. 전도사님은 어르신들, 몇 몇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시며 많은 사랑을 베풀고 계셨다. 우리 때문에 일이 생기지 않으셨는가 여쭈었더니 언제라도.. 누구라도.. 쉬어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하셨다. 덕분에 정말 푸짐한 식사를 하고 포근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히치경로 : 데미샘 - 반송리 : 보건소 소독차
-> 반송리 - 백운면 : 음악동호회 차
숙 소 : 백운면 덕현교회
데미샘 올라가는 입구.. 라면 끓여 먹은 할머니 댁 앞에서..
데미샘에서 반송리까지 탔던 소독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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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2일 화요일 / 백운면 - 운암대교
새벽 4시.. 우리가 약속했던 시간.. 모두 출발 준비를 하고 교회 앞에 모였다. 모두들 아침 인사를 하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혜경이가 오더니 걷고 싶다는 것이다. 제주도 트레킹을 하는 줄 알고 자전거 연습을 하다가 무릎을 크게 다쳐 생일도 트레킹도 참여하지 모했던 혜경이.. 섬팀과 함께 추억을 만드는 것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나 중간에 히치를 하게 될 경우 혼자 차를 타야 되기 때문에 조금 더디긴 하지만 내가 함께 걷기로 하고 다른 환자들은 전도사님의 차를 타고 점심까지 사선대로 모이기로 했다. 새벽길은 고요하고 섬진강을 만날 때마다 들리는 강물소리가 정말 아름다웠다. 처음에는 선두를 따라 거기 시작했지만 조금씩 처지고.. 역시나 맨 뒤에서 겨우 일행을 쫓게 되었다.
그래도 힘든 내색을 않고 일행을 만나면 웃으며 장난을 쳤다. 말은 안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우리가 길을 잃을까 느린 걸음으로 우리에게 길안내를 해주었다. '이렇게 걸을 수 있구나' 모두에게 고마웠지만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은 무리였다. 걸음이 느린 아이, 자주 쉬는 아이, 모두가 우리를 기다리다가는 섬진강 완주는 어려운 소망일 뿐이다. 출발할 때 혜경이와 목표했던 목표시간보다 2시간 가량 더 걷게 된 우리는 혜경이가 무릎의 고통을 호소하며 다시 히치를 하게 되었다. 사선대에 도착한 우리는 청소년 수련관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공간과 식수를 확보해 두었다. 정자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자 선생님과 병광오빠가 보였다.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 또다시 미안한 맘.. 일행과 식사를 하고 다시 걷겠다는 혜경이를 만류하며 일행을 먼저 보냈다. 모두가 걷고 싶고 일행과 함께 하고 싶지만 앞으로 내 몸이 어찌 될지.. 상처가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혜경이는 다른 일행들도 힘들어 하는데 그 앞에서 차를 타는 것이 미안해서 꼭 걸어야 겠다고 했다. "차라리 일행을 먼저 보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를 타자.. 모두가 힘들구나.."
우리는 지도를 펴고 옥정호를 찾았다. 그러나 지도의 길과 차가 다니는 길이 달랐다. 지름길이 있다고 해야 하나? 사선대 앞에서 길을 헤매다가 히치를 시작했다. 히치를 하다가 반대 방향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장소를 바꾸었다. 4명의 환자들 그룹을 나누어야 하는가 고민하던 중 다행히 광주로 가시는 의사 선생님께서 차를 세워주셨다. 여학생들이 길에서 뭐하냐고 어서 타라고 하시며 우리를 위해 가시는 길을 바꾸어 목적지 가까운 곳까지 데려다 주셨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우리는 급하게 우비를 구입 하고 10km를 걸어 볼 작정이었다. 노랑 병아리 같은 한 벌우비.. 우리가 길을 알아보기 위해 우비를 쓰고 나오자 마자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우리를 보는 것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며 주차된 차로 가서 길을 묻다가 히치를 했다. 역시나.. 한 번에 성공.. 그러나 아저씨 세분이 타고 계신 가족용 승합차.. 비가 오기 떄문에 이미 차에 올라 탄 학생도 있고 뒤에서 아저씨들이 무섭다는 학생도 있었다. 일단 모두 자리에 태우고 혜경이와 트렁크 자리에 앉아서 각자의 역할을 분담했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고마운 분들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맘에 앞쪽에 앉은 진희는 표지판을 주시하며 아저씨들께 계속 이야기를 하고 혜경이와 나는 트렁크 문이 열리는가 확인하며 운암대교를 건넜다. 차에서 내리며 잠시나마 두려움을 품었던 우리가 어찌나 부끄러운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두 팔을 들어 크게 흔들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무작정 운암대교 앞에 내리기는 했지만 마땅히 들어갈 곳도 숙소를 할 곳도 없었다. 두 사람은 빗속에 기다리고 혜경이와 숙소 할만한 곳을 알아보려고 했으나 다리가 너무 길고 호텔뿐이었다. '선생님께서 지나신 곳이라면 묵으신 곳이 있겠지..' 다시 돌아와 콘도 같은 건물이 있는 곳에 슈퍼로 들어갔다. 아저씨 쳠분이 술을 드셨고 으리는 자리를 피해 한쪽에서 우비를 벗기 시작했다. "아가씨들이 아저씨들 앞에서 옷을 막 벗고 그러네.." 당황스러웠지만 아버지 친구분과 닮으신 분이 계셔 다시 장난으로 대답을 하고.. 하다가 아저씨들께서 어떻게 온 것이냐며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동안 히치를 할 때마다 했던 멘트로 다시 말씀을 드리며 숙소를 구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다. 얼마면 되겠냐는 말씀에 숙박업계에 계신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파트를 콘도처럼 사용하시는 집주인 아저씨들이셨다. 아저씨들께서는 선뜻 집을 내주시며 선생님과 확인 전화를 하셨다. 덕분에 우리는 호텔보다 좋은 집에서 편히 쉴 수 있었다. 오후 내내 비가 내리고 일행은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동생들을보며 따뜻한 숙소와 좋은 식당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렸다
히치경로 : 덕현교회 - 사선대 : 덕현교회 전도사님 차
(도보 후 - 사선대 : 전주서머나교회 목사님 차)
-> 사선대 - 임실군 강진면 : 광주에 사시는 안과 의사선생님 차
-> 임실군 강진면 - 운암대교 : 전주 가시는 아저씨 세분 차
숙 소 : 운암에 있는 엘드호수가 아파트
운암.. 엘드호수가아파트에서 바라 본 옥정호..
운암을 떠나 덕치면에 도착할 즈음
아파트 주인 아저씨께 온 문자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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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3일 수요일 / 운암대교 - 지북리
전날의 피로와 따뜻한 숙소의 덕에 일행은 7시까지 식당으로 모였다. 모두들 식당에서 바로 다음 목적지로 출발을 하고 우리는 아파트를 청소하고 늦게 출발했다. 주인 아저씨께 가마 문자를 보내고 일행이 적은 페이퍼를 잘 보이도록 두고 히치를 했다. 경아와 나는 강진읍으로 가서 약과 우비를 준비하고 어제 합류한 은성이 그룹은 덕치면사무소까지 히치를 했다. 우리는 먼저 차를 타고 후에 들은 얘기로 은성이네는 차가 오지 않아 그 자리에 앉아 통성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덕치면사무소에 내리자마자 감사기도를 드리는 센스까지.. 강진에 도착한 우리는 경아의 다리에 번진 멍 때문에 병원에 있었다. 곧 혜경이에게 전화가 오고 진료를 위해 혜경이는 혼자 히치를 하려다 경찰차를 타고 다시 강진으로 왔다.
혜경이는 강진의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한방선생님께서 우리의 섬진강 트레킹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식사시간인데 미리 배달을 했기 때문에 함께 식사를 하지 못 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며 식사 후에 복숭아도 쥐고 아이스크림도 사 주셨다. 그리고 진료비를 내려고 하자..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무슨 돈이 있냐며 그냥 가라고 하셨다고 한다. 다시금 감사를 드리며 덕치면사무소까지 히치를 했다. 다시 일행들과 만나고 일행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출발할 준비를 했다. 3일간의 도보로 물집이 심하게 잡힌 두 사람이 합류를 하고 이정일선생님과 순창으로 갔다. 그리고 나머지는 두 그룹으로 나눠 순창에서 만났다. 순창 군청 근처의 평상에서 잠깐 쉬고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지북리로 향했다. 혜경이와 나는 먼저 출발을 해서 숙소를 알아보기로 했다. 시내에서 히치가 쉽게 되지 않아 근처의 과일가게 아주머니께 여쭈었는데 버스를 타락 하셨다. 섬진강 트레킹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 지북리에는 잘 곳이 없을 것이라며 걱정해 주셨다. 그리고 안되면 학교라도 찾아보라시며 지북리 가는 길목을 알려주셨다. 길목까지 걸어 나온 우리는 가까슬 적성가는 차를 얻어 타고 아저씨들께서 지북리까지 데려다 주셨다. 히치를 할 때마다 모두들 우리 딸같은 학생들을 그냥 길에 둘 수 없다고 하신다. 섬진강을 따라 히치를 하며 섬진강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까지 느끼게 된다.
지북리에는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에 신축한 노인정이 있는데 그 곳을 섭외하기 위해 마을 한바퀴를 돌며 집집마다 찾아 인사를 드리고 양해를 구했지만 쉽지 않았다. 다시 처음 내렸던 장소로 돌아왔는데 할머니들께서 모여계셨다. 교회차를 기다리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먼지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묻지도 않고 함께 올라탔다. 함께 차에 타신 할머니들께서 이야기를 들으시고 교회도 안된다고 하면 우리 집이라도 가자고 하셔다. 교회에 도착하자 다행히 목사님께서는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혜경이는 바로 감사기도를 위해 저녁 예배에 참석하고 나는 일행들을 기다리며 저녁 준비를 했다.
마침 섬활의 현환오빠의 생일이라 은성이와 진희가 밥케잌을 준비했다. 모두들 저녁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다음날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플루오르의 몇몇과 나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은하수를 보았다. 우리의 땀방울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별들을..
히치경로 : 운암대교 - 강진읍 : 지나가는 아저씨가 카풀하신 차
운암대교 - 덕치면사무소 : 기도 후 탄 한덕연선생님 고등학교 선배님 차
-> 덕치면사무소 - 순창 : 중학교 동기 커플 차, 미꾸라지 배달 차, 이정일선생님 차
-> 순창 - 지북리 : 적성가시는 아저씨 차, 할머니께서 표를 내주신 버스
숙 소 : 지산리 계성교회
덕치면사무소 앞에서 일행을 먼저 보내고..
히치를 시도하는 섬진강의 딸들..
드디어 성공입니다!! 시내에서 화물차 뒤에는 못타요..
결국.. 두 팀으로 나누는 섬진강의 딸들..
내 몸 챙기랴.. 네 몸 챙기랴..
의료팀 모지 않게 약품이 완비된 섬진강의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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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4일 목요일 / 지북리 - 곡성
히치경로 : 지북리 - 순창 : 딸 등원해 주시던 어머니 차
-> 순창 - 옥과 : 지나가던 경찰차
-> 옥과 - 압록유원지 : 의사선생님 차, 무서운 아저씨 차
-> 압록유원지 - 곡성 : 순천 농협 아저씨 부부 차, 낚시 하시던 아저씨 차
숙 소 : 녹주 맥반석 찜질방
히치의 난관에 부딪힐 때 이용하는 경찰차..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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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5일 금요일 / 곡성 - 하동
히치경로 : 곡성 - 가정 : 기차마을 열차
-> 가정 - 구례 : 유치원 차
(가정에서 도보 후 청소년 수련관 아저씨 차, 구례 가시는 부부 차)
-> 구례 - 화엄사 : 택시(할인)
-> 화엄사 - 하동 : 자유여행 부부, 광주 은혜학교(특수학교) 선생님
숙 소 : 하동읍 하동읍교회
모두가 찜질방을 다녀간 후..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한 곡성 기차역에서..
모처럼 맘껏 즐겨보는 섬진강의 딸들과 손님..
은성이와 목표지점까지 도보후 히치를 시도하는 유현..
걸을 수 있다며 하루 도보를 하고..
마사지 해주는 우주복을 입은 섬진강의 딸.. 경아..
섬진강의 딸들과 합류한 유일한 총각..
막내가 병원에서 양치하다가 혼나서..
밖에 나와 힘들어 하는 큰언니.. (자고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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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6일 토요일 / 하동 - 망덕포구
히치경로 : 하동 - 송림공원 : 지나가던 트럭 아저씨 차
-> 송림공원 - 망덕포구 : 진상 가다가 돌아서 데려다 주신 아저씨, 도보!!
숙 소 : 마량 테마모텔
일행과 떨어져 하동에서 하루 묵고..
송림공원에서 일행과 연락중인 섬진강의 딸들..
본팀과 만나기 위해 하동에서 도보를 시작한..
섬진강의 딸들..
섬진강의 딸들과 거쳐간 사람들..
각자 아픈 부위를 강조하는 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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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섬진강 트레킹을 떠나기 전날.. 모든 팀원이 모여 환자들과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힘들어도 함께 가겠다는 사람들과 환자들을 생각해서 쉬게 하자는 사람들.. 모두가 섬팀이기에 한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같이 갑시다."라는 한 말씀으로 모두들 밤새 짐정리를 했다.
우리는 출발하며 마음이 무거웠다. 역시나 남원에서부터 우리나 늦게 내리는 동안 일행은 거의 사라지고.. 각자의 트레킹 장비를 준비하기에 바빴다. 트레킹이 시작된 후 하루하루 지날 수록 일행의 힘든 여정을 보며 우리는 몸으로 함께 힘들어 할 수 없기에 마음이 더욱 힘들었다.
다행히 일행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강점을 활용하여 일행이 쉴 수 있도록 잡자리와 식사를 준비 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 힘들다기 보다는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지나고 우리 안에서도 섬진강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진정으로 우리만의 섬진강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힘들게 걷는 일행에게는 미안하지만 오히려 섬진강을 따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이동을 하고 명소에 들러보며 뜻깊은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강을 즐길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일행들과 함께 하며 마음 아파하고 그만큼 일행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었다.
섬진강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면 히치 노하우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로 했었다. 섬진강의 딸들 역시.. 데미샘부터 망덕포구까지.. 함께 걷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모두 히치로 이동을 하며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히치를 할 때 인원구성이 중요하다. 이 인원은 히치를 하는 사람의 인원이기도 하지만 차를 타고 있는 사람의 인원이기도 하다. 대부분 여학생이었던 섬진강의 딸들은 아저씨들이 운전하시는 차를 타는 거이 수월했다. 위험함이 있지만 남학생보다는 여학생이 히치를 할 경우 차가 더 잘 선다. 아저씨도 그렇지만 아주머니들도 그렇다. 운전하는 사람이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또 3명까지는 아슬아슬하지만 3명이 초과될 경우 승합차가 아니면 함께 타는 것이 어렵다. 또한 차를 운전하는 사람도 남녀 커플이 있거나 가족이 탄 차는 잘 서지 않는다. 이런 경우 히치 인원을 그룹으로 나누어 목적지를 장하고 한 곳에서 만나기로 한다.
두번째.. 히치를 하는 장소이다. 아무곳에서나 히치가 잘 된다면.. 서울 한 복판에서도 히치를 하고 싶을 정도로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히치를 하는 장소가 중요하다. 섬진강을 따라 히치를 하며 가끔은 한적한 시골길을.. 어떤 때는 시내 한복판에서 히치를 했다. 결과는 시골길에서의 히치가 성곡적이다. 시내에는 버스나 택시가 많기 때문에 학생들이 가방을 한 짐메고서 차를 세우면.. 지나 가던 사람들도 버스를 타라고 말을 한다. 이러한 경우 시내 외곽으로 이동을 하면 조금 수월하다. 또한 가고자 하는 목적지 방향의 길목에 서면 히치 성공의 가능성이 훨씬 높아 진다. 일단 내가 가는 방향으로 가는 차들이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아무차를 세워도 목적지로 향하는 차일 가능성이 높다.
세번째.. 차가 섰을 때는 감사인사를 먼저 드리고 밝은 얼굴로 정중히 부탁한다. 왜 히치를 하는지도 말씀드리면 좋다. 대부분 차를 태워주신 후 물으신다. 혹시 차를 세췄지만 히치를 거부한다거나 그냥 지나가는 차에게도 불편한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인데 뭐 그렇게 까지 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기억하라.. 뒤에 오는 차가 우리를 보고 있다.
우리는................................섬진강 환자집단
.......................................우비소녀들
.................................노랑병아리군단
...................................옐로우 치킨스
...................................섬진강의 딸들
첫댓글 수고했어 유현아~^,^!
앙~~우리들만의 추억~~^^'' 지나고 나지 즐거웠네요 ㅎㅎㅎ
자세히도 기록했네^^ 한 눈에 쏙쏙 들어와. 정말 고생많았다♡
언니가 없었다면...어떠했을까 생각되어요. 고마워요~~~ ^^
천담마을 - 백운면 : 음악동호회 차 / 반송리 강가에 있는 정자에서부터 백운노인요양원(덕현교회)까지입니다. 천담마을이 아니라 반송리입니다.
어떻게 이 많은 걸 기억하지? 대단해~사진을 보니 다르게 간 팀도 참 많은 추억이 쌓였겠다!
운암호수가 아파트 -> 운암에 있는 엘드호수歌 아파트형 콘도입니다. / 강진 -> 임실군 강진면이라고 하면 더욱 분명하겠군요.
이정길선생님 차 -> 2차복지순례단 이정일 선생님 승용차
유현이가 정리를 참 잘하는거 같아요. 히치로 망덕포구까지^^ 난 센과치히로의 모험 그거 말하는줄 알았음.ㅡ.ㅡ
헐..아직도 수정중이여?? 책한권 나오겠는걸..^^;
히치과정에서 느낀점...나보다 주님이 날 더 사랑하심...!!
진정한 복지인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재워주고 먹여주고 태워주고 믿어준 그들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시간을 누리진 못했지만 느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눈에 쏙~ 마음에도 쏙~ 들어와요 힘든 여정이었겠지만 또 그만큼 마음속 깊이 남아 좋은 추억이 되리라 생각되요 문자 메세지가 참 인상적이네요^^
히치로 여행을 한 건 처음이었지만 대단한 모험이었던 것 같아요! 유현언니와 일행이 있어서 힘이 많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이 글만 세번쨰는 보는 듯 해요~ 하하 ^^ 좋은 추억 많이 만드셨네요~은근슬쩍 부럽기도...^^;;
낭만과 열정 가득한 여행... 넘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