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알림] 정부인 영양김씨(퇴계조모) 묘소 가는 길작 성 자행랑아범
[탐방기]
2000년 12월 3일 오후
진성이씨 가문으로 출가한 정부인 영양김씨 여식의 산소를 찾아갔다.
귀로는 듣기만 했었지 한번도 찾아보지 못하였는데 오늘에사 그 뜻을
이룰 기회가 왔다.
2000년 12월 3일 안동에서 있은 종친회 총무 희락님의 혼사에 참석하였다가
오후 시간을 내어 족숙 영표씨와 족형 영식 도식 화술, 족제 극술과 함께
영양김씨 상계의 주거지인 안동댐 상류쪽을 한바퀴 돌았다.
먼저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이퇴계선생의 생가를 찾아 갔다. 족형 영식씨가
퇴계 직계 후손이신 이근필씨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라 쉽사리 찾아가 사랑방
에 들어 커피 한잔을 마시는 넉넉한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워낙 갈길이
바쁜지라 나와 화술 족형이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며 엉덩이를 들썩이는데
예절바른 족형 영식씨는 점잖은 말로 자꾸 눌러 앉힌다.
해는 서산과 동무하자는데 화술 족형과 나는 애가 탄다. 인근에 퇴계선생의
묘소가 있다고 하는데 참배할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슬며시 영식 족형
을 부추켜서 예의는 아니지만 계획을 토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행은 퇴계선생의 생가에서 동남쪽으로 1.5km 남짓 떨어진 하계로 갔다.
온혜천이 굽이치다 안동댐으로 떨어지는 지점의 가파른 언덕위에 퇴계선생의
묘소는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감회에 잠겨 묘소를 참배하고 주위의 비석
과 주변을 둘러보고는 급히 내려왔다.
이곳 하계에서 안동댐 물가를 한 2km정도 돌아가면 도산서원에 도달할 수 있지
만 서원은 그 전에 자주 가보았으니 이번에는 퇴계선생이 극진히 모셨던 할머니
정부인 영양김씨의 산소로 향하기로 했다.
우리의 자랑스런 영양김씨 11세 金有庸(김유용, 副司直)의 맏딸이 진성이씨 집안
李繼陽선생에게 출가하여 생후 7개월 만에 早失父(조실부)한 손자 李晃(이황, 호
퇴계)을 정성으로 길러 성현에 이르게 하시고, 國不遷(국불천)의 성은을 입으셨
으니 이는 우리 영양김씨 가문에도 큰 긍지요 자랑이 아닐 수 없다.
퇴계선생이 그의 조모 정부인 영양김씨 비석에 이렇게 썼다.
정부인영양김씨묘갈지 - 부인김씨의 본관은 英陽(영양)이니 증조부 휘
道生은 진도군수요. 조부 휘 지로는 신천부사요. 부친 휘 有庸은 별시위
부사직을 지냈고, 비(어머니)는 영천이씨 의흥현감 휘 坡의 따님이니 宣德
(명나라宣宗의 년호) 경술(1430년 세종12년)10월 4일에 나셨다.
천성이 후덕하고 정성스럽고 순수하여 간곡한 마음으로 증판서공 휘 繼陽
을 섬겨서 창업기반을 세우고 문호를 이루었다. 자손들이 번성하였고 계자
우는 수십년 동안 좋은 의복과 음식을 봉양했다. 부인은 부덕을 가지심에
떳떳한 법도가 있어 부귀의 습관에 마음을 옮기지 않았으므로 자손의 부녀들
사이에는 조금도 간언하는 일이 없었다. 여러 자손들이 나아가 뵈올때면
반드시 부지런히 공부하여 입신양명할 것을 권하고, 학업을 폐하고 행실을
그르치는 것을 경계하셨다. 童顔鶴髮로 천수를 마치시고 임오년(1522년)
9월 18일 향년 93세에 돌아가셨다. 묘소는 선조고 산소뒤 임좌에 안장했다.
손자 황 삼가지음
위의 비석글은 한문으로 되어 있지만 번역글은 진성이씨 온혜공파 족보에서
입수했다. 정부인의 친정쪽 후손으로 누구라도 정말 자랑스러워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이 글을 보시는 족친께서는 혹시 안동댐 상류나 도산서원 쪽으로 가시는
길이 있다면 우리 정부인 영양김씨 묘소를 한번 참배하기를 권하는 마음
에서 가는 길을 상세히 적고자 한다.
일단 안동에서 도산서원 가는 길로 20여 km를 자동차로 가면 우측으로 도산
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길을 만난다. 도산서원으로 가지말고 곧장 직진을
하여 2km를 더 가면 합강이라는 마을이 나타나고 마을이 끝나는 곳에 온혜천
건너가는 다리 온혜교를 만나게 된다.
온혜교을 건너기 전 우측으로 온혜천을 따라 하류로 가는 길이 있는데
포장된 시골길이 계곡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진다. 이길로 들어가면 1.5km
거리에 퇴계종택이 있는 상계마을이 있고, 1km 남짓 더 가면 퇴계선생의
묘소가 있는 하계마을 다다른다.
정부인 영양김씨 묘소를 가려면 합강마을 온혜천에서 우측 길로 들어서지
말고 곧장 온혜교를 건너서 달린다. 양쪽이 넓은 들인데 500m 쯤 앞에 마을이
보이는데 이곳이 온혜리이다. 마을중심 쯤에 왼쪽 상촌으로 가는 큰 길이
나오는데 이길로 들어가도 되지만 그러지 말고 3백미터 쯤 앞쪽 왼쪽에
보이는 온혜초등학교 앞에서 좌회전을 하면 묘소가 더 가깝다. 좌회전을
하여 온혜초등앞을 지나면 1백미터 정도 거리에 거대한 참나무 한 그루가
꼭 잘키운 분재처럼 위풍을 뽐내며 서있다.
이 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내려서 보면 오른쪽으로 골짜기가 열려 있다.
골 안으로 들어가면 쉽게 정부인 영양김씨 묘소를 찾을 수 있다. 차를 타고
골안까지 들어가도 되지만, 타 문중의 종중산을 시끄럽게 해서야 안되지
않겠는가?
골짜기 입구에 커다란 밭이 하나 있고 밭 우측으로 난 길을 들어가면서 보면
가운데 산이 있어 골짜기를 갈라 놓는데 이산이 바로 찾아가고자 하는 곳이다.
이 곳을 향하여 가면서 우측 골짜기를 들여다 보면 골짜기 안에는 제궁이라
불리는 제실이 일부 보인다. 진성이씨 문중에서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다.
산 아래에 서너기의 산소가 보이는데 이 들 산소는 우리가 찾는 산소가 아니다.
이 산소 곁을 지나서 30여m 정도 오르면 산밑에서는 보이지 않던 산소3기가
연봉을 이루며 줄을 서 있다.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맨 뒤쪽이 정부인 영양
김씨의 묘소이고 가운데가 부군 眞城李氏(진성이씨) 李繼陽(이계양)님의 묘소
이다.
올해가 정부인 영양김씨가 돌아가신지 478년 만이다. 성현 퇴계가 할머니를
위하여 오르내리던 그 길을 우리는 우리의 선조를 찾아 온 것이다. 모두들
감회에 젖어 비석을 만져보고 읽어보고 산천을 둘러보고 그 때를 상상하며
흐뭇해 한다. 정부인의 묘소가 부군과 나란히 모시지 아니한 것은 산세를
보니 자리가 안되어서 그런 것 같은데 비석이 앞을 보고 서있지 아니하고
90도 옆으로 보고 서있는 것이 무슨 연유인가? 아마도 부군보다 더 윗쪽에
자리 잡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뜻이 담겨 있는것일까?
서산에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우리 일행은 다음 정부인 영양김씨의
불천위 제사일인 음력 9월18일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노송정 종택)에 기회를
내어 참석하기로 하고 하산했다.
부군 이계양씨의 비석글도 당연하게 손자 퇴계가 글을 지어 올렸는데
참고로 한글로 번역된 이 비문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