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는 자리
어떤 장소는 다녀온 뒤에야 비로소 마음속에 도착한다. 그곳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돌아와 일상을 살다가 문득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바람이 지나던 나무, 낮게 들리던 물소리, 그리고 손끝으로 더듬어 보았던 한 사람의 이름.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가 내게 그런 곳이다.
뉴욕은 위를 향해 자라는 도시다. 빌딩은 하늘을 밀어 올릴 듯 솟아 있고, 유리창마다 햇빛이 부서진다. 사람들의 걸음도 빠르다. 신호가 바뀌면 물결처럼 길을 건너고, 노란 택시는 끊임없이 거리를 가른다. 누구도 오래 머물지 않을 것 같은 도시, 어제보다 오늘이 더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다.
그런 맨해튼 한가운데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자리가 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다. 그날의 장면은 세월이 흘렀어도 쉽게 과거가 되지 않는다. 검은 연기와 불길, 무너져 내리는 건물, 먼지를 뒤집어쓴 채 달리던 사람들. 한 도시의 비극이었지만 세계가 함께 바라본 상처였다.
그러나 세월은 잔해를 치웠고 도시는 다시 일어섰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들은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지는 않았다.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자리에는 두 개의 거대한 사각형 공간이 남아 있다. 그 가장자리에서 물이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가까이 다가가면 물소리가 먼저 마음을 붙잡는다.
물은 쉬지 않는다. 어제도 흘렀을 것이고 오늘도 흐르며 내일도 흐를 것이다. 세월도 그렇게 흘러왔다. 사람들은 다시 웃고 사랑하고 아이를 낳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흘러간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은 떨어지면서 오히려 한곳으로 모인다. 잊히는 듯했던 기억도 어떤 순간 다시 마음 깊은 곳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 물 앞에서 오래 서 있고 싶어진다. 검은 난간에는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다. 처음에는 이름의 행렬처럼 보인다. 그러나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숫자가 사람이 된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
그들에게도 그날 아침이 있었을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집을 나섰을 것이며, 가족에게 “다녀올게”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늦잠을 잔 아이를 깨웠을 수도 있고, 저녁 약속을 떠올리며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수도 있다.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모른 채 너무 자연스럽게 내일을 약속한다.
“저녁에 봐.”
“주말에 만나.”
“다음에 전화할게.”
평범해서 기억조차 하지 않는 말들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그 한마디가 마지막 인사가 된다. 그래서 나는 살아 있는 동안 나누는 사소한 인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뒤늦게 생각한다. 이름 위에 흰 장미 한 송이가 놓여 있다. 화려한 꽃다발도 아니다. 작은 꽃 한 송이일 뿐인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멈춘다. 누가 놓았을까. 가족일까, 친구일까. 아니면 얼굴조차 모르는 누군가가 이름 하나 앞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았을까.
장미는 아무 말이 없다. 그 침묵이 오히려 오래 말을 건다. 사람은 죽으면 무엇으로 남을까. 한동안은 목소리로 남을 것이다. 웃는 얼굴과 걸음걸이, 좋아하던 음식과 자주 쓰던 말로 기억될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기억은 조금씩 흐려진다. 얼굴의 윤곽도 목소리도 희미해질지 모른다. 그래도 이름은 남는다. 누군가 그 이름을 다시 불러 주는 동안 한 사람의 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라운드 제로는 죽음을 전시하는 장소가 아니라 이름을 부르는 장소처럼 느껴진다.
주변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도시의 거대한 빌딩 사이에서 초록의 잎을 흔드는 나무들은 놀랄 만큼 평온하다. 새가 날아들고 바람이 가지 사이를 지나간다. 계절이 바뀌면 잎이 돋고, 짙어지고, 물들고, 다시 떨어질 것이다. 그 가운데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참사의 잔해 속에서 살아남은 나무다.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사람들의 손길 속에서 다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었다.
나는 그 나무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상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부러진 가지를 가진 채 다시 잎을 내는 것이다. 이전과 똑같아지는 것도 아니다. 상처를 품은 새로운 모습으로 또 한 계절을 살아내는 일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무너지는 날이 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믿었던 관계가 끝나기도 하며, 오래 품었던 꿈을 내려놓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완전히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대신 다시 살아갈 수는 있다. 상처 난 자리 옆에서 새순 하나를 밀어 올리면서. 그것이면 충분한지도 모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흰 구조물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오큘러스다. 맨해튼의 직선적인 건물 사이에서 부드럽게 벌어진 흰 선들은 마치 커다란 새가 막 날아오르려는 순간처럼 보인다. 검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곳 가까이에서 흰 날개가 위를 향한다. 그 대비가 가슴을 친다.
한쪽에는 내려가는 것이 있고 한쪽에는 올라가는 것이 있다. 한쪽에는 떠난 사람이 있고 한쪽에는 살아갈 사람이 있다. 한쪽에는 어제가 있고 한쪽에는 내일이 있다. 그 사이에 오늘을 사는 우리가 서 있다. 삶이란 어쩌면 그 두 방향 사이를 걷는 일인지도 모른다. 잊지 않되 붙들려 있지 않는 것. 슬퍼하되 다시 웃는 것. 떠난 사람을 기억하면서 남은 사람의 하루를 살아내는 것. 말은 쉽지만 실제 삶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람은 사랑했던 만큼 오래 아프다. 함께했던 시간이 깊을수록 빈자리도 깊어진다. 어느 날 문득 익숙한 노래를 듣다가 울고, 길을 걷다 비슷한 뒷모습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때로는 잔인하다. 세월은 모든 것을 낫게 하지 않는다. 다만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가르쳐 줄 뿐이다. 그래서 그라운드 제로의 빈자리가 더 깊게 다가온다. 그곳은 빈 공간을 억지로 채우지 않았다. 우리는 빈자리를 견디지 못한다. 떠난 사람의 자리를 다른 무엇으로 메우려 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새로운 일로 덮으려 한다. 마음이 아프면 더 바쁘게 움직이기도 한다. 멈추면 슬픔이 따라잡을 것 같아서다.
그러나 어떤 빈자리는 채우지 않아도 된다. 그 자리가 있었기에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떠난 뒤에도 그가 앉았던 의자를 쉽게 치우지 못하는 마음,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하는 마음, 오래된 편지를 버리지 못하는 마음도 어쩌면 같은 이유일 것이다. 기억은 미련이 아니라 사랑이 남긴 흔적일 수 있다. 그라운드 제로의 두 빈자리는 그래서 거대한 무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을 보관하는 두 개의 깊은 그릇처럼 보인다. 물은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이름은 그 자리에 남아 있다.
흐르는 것과 남는 것. 우리의 인생도 그 둘로 이루어진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떠난다. 계절도 흘러간다. 젊음도 흘러가고 기쁨과 슬픔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건넨 따뜻한 말, 함께 걸었던 길, 오래 잡았던 손의 온기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남는다. 어쩌면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지 모른다.
나는 다시 흰 장미를 생각한다. 그 한 송이는 거대한 역사를 설명하지 않는다. 정치도 전쟁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을 기억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가장 강하다. 역사는 숫자를 기록하지만 사랑은 이름을 기억한다. 수천 명이라는 숫자보다 한 사람의 이름 앞에서 우리가 더 오래 머무는 까닭이다. 저녁이 가까워지면 맨해튼의 빌딩 사이로 빛이 기울 것이다. 사람들은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오큘러스 아래에서는 또 다른 하루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이다. 누군가는 약속 장소로 서두르고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비극이 있었다고 해서 세상이 멈추지는 않는다. 꽃은 다시 피고 나무는 잎을 내며 아이들은 자란다. 그것은 망각이 아니다. 오히려 떠난 사람을 품은 채 살아가는 인간의 방식이다. 그라운드 제로를 떠나며 나는 한 번 뒤돌아본다. 물은 여전히 아래로 흐르고 있다. 흰 날개는 여전히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그때 문득 알 것 같다. 기억한다는 것은 슬픔 속에 오래 머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떠난 사람의 삶을 내 삶 속에서 한 번 더 살아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사랑했던 세상을 조금 더 사랑하고, 그 사람이 걷지 못한 하루를 성실하게 걸어가는 것. 우리는 언젠가 모두 누군가의 기억이 된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조금 더 따뜻하게 이름을 불러 주는 것. 미뤄 둔 안부를 묻는 것.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말하는 것. 함께 있는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내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누구에게도 없으므로.
맨해튼의 하늘은 여전히 높다. 도시의 빌딩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간다. 그러나 그날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것은 높은 건물이 아니었다. 낮은 곳으로 끝없이 흐르던 물이었다. 그리고 이름 하나 위에 놓여 있던 흰 장미 한 송이였다.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지만 때로 우리는 잠시 뒤돌아보아야 한다. 뒤에 남겨진 이름들을 불러 보기 위해서다. 그 이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물은 흘러도 이름은 남는다. 계절은 지나도 사랑은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떠난 사람을 누군가 다시 기억하는 순간, 한 사람의 생은 잠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나는 죽음보다 삶을 생각했다. 무너짐보다 다시 돋아난 잎을 보았고, 깊은 빈자리보다 그 위를 지나가는 바람을 느꼈다. 아래로 흐르는 물 너머에는 여전히 하늘이 있었고, 그 하늘을 향해 흰 날개가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이제 그곳을 떠올리면 슬픔만 생각나지는 않는다. 한 문장이 조용히 마음에 남는다. 기억한다는 것은 떠난 사람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랑했던 세상을 우리가 조금 더 오래 살아 주는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