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Ⅱ-71]세상이 온통 ‘꽃잔치판’이었으면 좋겠다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온통 ‘꽃잔치’ 세상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한들, 세상에 어느 누가 이런 꽃향연을 베풀 수 있을까? 달나라를 가고, AI가 바둑을 통째로 집어삼켜도 꽃 한 송이 피어내지 못하고, 나무 한 그루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게 너무 신기한 일이다. 심지어 인간까지 복제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또 한번의 봄, 또 한번의 꽃세상, 그 느낌이 지난해와 같지 않은 게 이상하다. 오늘 서울에서 불쑥 방문한 친구에게 보자마자 악수도 하지 않고 대뜸 말했다. “야야야, 내가 확실히 나이를 먹어가나 봐. 이리 와 홍도화紅桃花 좀 봐라. 작년에는 그렇게 예쁜지 몰랐는데, 요새 이 꽃색깔만 보면 왜 그리 곱고 좋으냐?” “그려? 나는 모르것는디. 시골에 사니 그런 정서가 있는 개비다잉” 하여 웃었다.
며칠 전, 우리집 대문 앞, 내가 이름지은 30여평의 ‘동네꽃밭’에 백양사 고불매Junior가 피워낸 홍매紅梅가 어찌 그리 예쁜던지 작년에는 참말로 몰랐다. 보고 또 보았다. 엊그제부터 뒤란 ‘손바닥 꽃밭’과 마당의 ‘가족꽃밭’에 수선화水仙花 몇 그루가 노-오-란 꽃을 피워 황홀지경에 노닐 게 하고 있다. 그냥 툇마루에서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좋다. 그 옆에 앵도꽃, 자두꽃, 복사꽃은 보지 않아도 좋다. 앵도꽃 아래에는 상사화相思花의 새파아란 잎이 질세라 무성하다. 아아-, 봄이란 이런 것이구나. 누구는 ‘봄’이 ‘보다’의 명사형이라지만, 무엇인가를 감탄하며 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뒷산에 띄엄띄엄 피어나는 진달래의 연분홍빛 꽃이 눈에 띈다. 소월의 <산유화>가 바로 저 꽃이리라. 왜 저 꽃들은 ‘저만치’서 홀로 피는 것일까? 영변에 약산 진달래는 군락群落을 이루어 ‘진달래 왕국’이라고 하더구만.
다시, 수선화 이야기이다. 추사 김정희가 다산 선생에게 수선화를 선물했다던가. 문호文豪이자 대학자가 어찌 시 한 줄 쓰지 않으랴? “어린 손자는 처음 보는지라 부추잎 같다고 하고/어린 여종은 마늘싹이 일찍 피었다며 놀란다”고 했다. 하기는 언뜻 보면 부추잎이나 마늘싹 같기도 하다. 제주 귀양살이를 하던 추사는 매화와 거의 동시에 잔설 속에서 피어나 설중화雪中花라 불리는 수선화의 강인함을 보며, 시를 짓는 느낌이 남달랐을 것이다.
一點冬心朶朶圓일점동심타타원: 한 점의 겨울마음 송이송이 둥글다
品於幽澹冷雋邊품어유담냉준변: 그윽하고 담박한 기품, 냉철하고 빼어났네
梅高猶未離庭砌매고유미리정체: 매화는 고상하나 뜰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淸水眞看解脫仙청수진간해탈선: 맑은 물에서 해탈한 신선을 보는 것같다
한자 공부시간. 朶: (나뭇가지가) 늘어질 타, 꽃송이나 꽃가지를 세는 말, 品: 기품이나 품위 품, 幽: 그윽할 유, 澹: 담백할 담, 冷: 냉철할 냉, 雋: 빼어날, 영특할 준, 高: 고상할 고, 砌: 섬돌 체, 解脫해탈: 굴레로부터 벗어남.
수선화를 '해탈선'이라고 한 추사의 마음을 어찌 짐작이나 하련만, 결론인즉, 우리집 손바닥꽃밭과 마당꽃밭에 피어난 나팔 모양의 몇 송이 수선화꽃을 가까이나 멀리서 감상하는 나의 마음이 온통 노랗게 물들어 심히 좋다는 이야기이다. 분양을 받으실 분들은 말씀하시라. 딸래미 잘 키워 시집 보내는 친정어머니의 마음도 알고 싶다. 하하. 며칠만 지나면 <봄날이 간다>는 노래를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메들리로 들으며 ‘가는 봄’을 서러워할 판이지만, 온통 ‘꽃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어느해 봄날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