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맨 처음 K리그 제패했을때 무려 7년이 걸렸었다 =ㅅ=; 그때는 선수파악과 전술파악에 상당한 애로사항과 무조건 이름있는 선수들만 데리고 오느냐고 꽤나 애를 먹고 겨우 K리그랑 FA컵 우승만 했다.
초기... 일단 16세의 박주영과 패치전(지금은 3.11 아마도 비공식 포함해서 가장 최근의 패치) 최강의 오버래핑이었던 노지영을 우선 영입했다. 그 와중에 김종현 선수와 기타 등등 선수들이 나갔다. 이적은 간단했다. 이적제의 들어오면 무조건 팔았다. 비싸게 =ㅅ=! 그런식으로 2년정도 되니까 보유자금이 20십억원은 되더라=ㅅ=;;; 좋다 이거야~
그러나 아디다스컵 패배와 (3위) 동부아시아 패배는 나를 참 서럽게 만들었다. 우선 코치부터 영입할려고 했으나... 다들 거부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그리고 잦은 빨간색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하지만 코치진 영입에 젤 마음에 들었던건 바로 최은성선수. 2~3류의 코치진으로 망했구나 생각한김에 재계약을 제의하여 에라이 모르겠다고 한 심정으로 계약.. 얼라리요? 이건 1류급 코치였다. 골키퍼 능력은 13으로 좀 떨어졌지만 기술 슈팅 전술 기타등등에 필요한 능력치는 다 수준급이었다. 아싸 좋구나 해서 이동국 선수를 영입. 그리고 미들에는 중거리슛이 장점인 이관우선수와(온리 중거리 =ㅅ= 패스 세트 크로스 기타등등은 거의 15...) 그리고 쓰루패스와 주력이 일품인 이용철선수 크로스로 먹구살자의 윤용구선수, 최고의 드리블러 공오균(도움 많이 받았따 =ㅅ- 만세~~~) 온리 세트플레이어 임중용(수비능력이 많이 떨어졌따)
그리고 한국 골키퍼의 희망 성경일(이선수는 후반부에 영입했는데 또래의 유망주보다 훨씬 뛰어났고 최은성하고 비교했을때 삐까떴다)
아 그리고 소속은 어딘지 모르지만 아마추어의 최고 오버레핑 이원준선수
그렇게 우리는 1년을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약했다. 아디다스 3위의 저조한 기록 그리고 K리그는 이기는 팀이 부천뿐 =ㅅ=;;; 그리고 아시안 클럽전에서 떼놈이들에게 패배 =ㅅ=;;; 시련의 나날속에 이동국이는 나 돌아갈래를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FA의 올인한 결과 우리는 이겼다 =ㅅ=! 그것이 우리의 첫번째 타이틀이었다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