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계시판 가입인사방에 현재 계시된 글입니다. 광원스님께서 '진정'으로 올리신 글이므로 여기 자유게시판으로 옮겨 드립니다. 많은 불자님께서 보시고 도움의 손길을 주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세요.
운영자님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없어 이곳에 올리니 양해 바랍니다.
죄송하지만 공지나 모든회원분들께 메일 보낼 수 있으면 보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수고하십시요.
불교계의 모든 사부대중 분들과 국민들께 청원합니다.
청원자: 광원스님
1991년 곡성 태안사·의성 대흥사·지리산 벽송사·하동 쌍계사 행자를 거쳐 1994년 부산 범어사 청련암에서 양익 큰스님을 은사로 득계 하였습니다. 범어사 강원을 거쳐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 동국대학교 대학원과 경기대 대체의학 대학원에 재학중입니다. 1995년 자원입대 하여 7사단 637대대 법왕사 건립을 시작으로 포교 활동을 하였습니다.
전쟁을 겪는 한 개인과 가족 희생의 고통은 국가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6. 25 전상 유공자 등록 및 배상 대상자
성명: 박 춘기(박판암)
주민등록 번호: 280411-*******
본적: 전라남도 대덕면 용대리 736번지
주소: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 성도리 203번지
본인의 아버님은 일제시대 일본 놈 쪽바리 선생이 왼손잡이라며 구타하고 핍박하여 학교를 그만두신 글씨를 모르시는 80세가 다된 노병의 6.25참전 전상자입니다. 1950년 어머니와 결혼하여 부모님을 부양하였으나 조국의 가장 큰 비극의 6.25 전쟁에 1952년 25살의 나이로 징집되어 5사단에 배치되어 백마 94고지에서 북한. 중공군과 전투 중에 목숨을 걸고 싸우시다가 포탄파편을 맞고 정신을 잃었고 깨어나 보니 아군은 전몰되어 수 천명의 사상자뿐이었답니다. 혼미 기진맥진하여 임진강을 건너오다 아군에게 발견되어 경기지역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군의 열악한 환경에 집에 보내져 방치되었으며 치료받던 중 군대에서 찾아 무정지서에 보고하였으나 상처가 너무 심해 집에서 치료를 받아 라고 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님의 지극한 간호로 살아난 부친은 이미 최고도의 정신 이상자가 되었고 신체가 회복 되어가며 어머니께 행패와 폭력을 가하며 자살을 시도하였습니다. 본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죽이고 싶도록 증오하였으며 제 마음속의 아버지는 죽고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고통을 보고 고등학교를 포기하였으며 출가를 결심하였습니다. 본인이 1995년 군대를 지원하여 군대에 가서 강릉 무장 간첩 침투를 겪으며 조금이나마 아버님을 이해하기 시작하며 자료조사를 하여 유공자 신청을 하게 된지 벌써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서울에 살며 중앙승가대학교를 다니던 본인이 전남 광주로 내려가 2000년 제1차 보훈청에 접수 할 당시 서류가 미미하다며 자료보충 요청을 하였습니다. 2001년 제 2차에도 서류가 미미하다고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2002년 제 3차에도 서류가 미미하다며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6.25 전상으로 신체와 정신적 장애로 고통받은 한 맺힌 아버님을 모시고 보훈청에서 시키는 대로 진단서 3차례 호적등본 3차례 인우 보증서 아버님과 할아버님의 본적지 조사까지 이를 악물고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던 2003년 이러다가는 아버님 살아생전에 명예를 찾기는커녕 보훈처의 장난에 시달려 돌아가실 것 같아 국민고충위원회에 접수를 하고 나서 보훈청에 가니 접수를 받아 주었습니다. 접수된지도 벌써 1년이 다되어서야 최종심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2월 초 보훈처를 방문하여 이용희 사무관의 심의 자료를 확인하며 너무 황당한 것은 본인이 수집한 자료가 대부분이며 6.25 당시 아버님의 성함과 본적지가 다르다는 것을 단 한 장의 서류를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이용희 사무관이 큰 문제는 아니지만 본적지 조사를 요청하여 전남 무안군 몽양면 양장리로 되어 있는 본적지를 마을에서 평생 사신 어른 분들에게(60-80세) 조사 확인하였으나 박판암씨는 살지도 않았으며 전혀 모른 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실로 보아 본인은 박판암씨가 본인의 부친임을 확실히 장담하게 되었고 국가의 행정 실수를 한 것 같다는 사실 확인서를 팩스로 보냈습니다.
이 사실 확인서를 받은 이후 부친의 본적지가 다른 것 빼고는 별 문제가 없다며 2월 말 까지 최종 답을 주겠다던 보훈처의 이용희 사무관은 27일 이해가 안돼는 답변을 하였습니다. 아버님의 본적지의 행정적 문제가 밝혀져 국가기관의 실수를 감추려는지 아니면 배상 문제 때문인지 본인의 부친을 박판암 당사자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이미 청와대와 국가보훈처장의 이 메일 답변에서는 3. 박춘기(박판암)님의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에 대하여는 육군 참모총장으로부터 국가유공자 등 요건 관련사실확인 통보가 되어 현재 보훈 심사위원회에서 상이가 국가유공자요건해당 상이 인지 여부에 대한 심의의결 중에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라는 이 메일 답변을 받았는데 말입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이용희 사무관의 답변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조사를 하였으며 무슨 근거로 심의를 하였는지 납득이 가질 않으며 또 다시 행정심판이나 소송 및 제3의 방법을 통해서 하라고 하였습니다.
---- 아래는 본인이 보훈처의 요청에 의해 아버님의 인우 보증과 군번 본적지 조사를 통해 보훈처에 보낸 사실확인서의 일부입니다. ----
가장 중요한 사실 증거 자료 - 1. 위 박춘기(박판암 군번: 8804346)씨는 1952년 3월 6일 친구 박종택(군번: 8804345 보훈 번호: 22-022741)씨와 이혁수. 민영준(전사)씨등과 같이 여수를 거쳐 제주도 제 1훈련소 2연대 46대대 3소대를 배치 받아 같이 훈련을 하며 박종택씨는 글을 모르던 친구 박춘기씨에게 항상 편지를 써주는 등 같이 생활하며 항상 붙어 다녔답니다. 이후 내용은 이전에 제출한 6.25 전상 유공자 등록 및 배상청원서의 서식과 동일하며 위 내용 및 청원서 내용의 서식은 1997년 당시 글을 모르는 박춘기씨의 군번과 성함 등을 일체 찾지 못한 상태에서 어머니의 6.25때 군대에 같이 가신 아버지의 친구 박종택씨가 살아 계신다는 제보로 시작되었으며 본인은 박종택씨를 수소문하여 부모님과 같이 집을 찾아가 박종택씨의 가족들이 있는 가운데 박종택씨에게 진술 받은 내용입니다. 박종택씨는 진술과정에서 아버님을 박춘기라 부르지 않고 항상 판암(마을 어른 분들과 박종택씨는 박춘기라 부르지 않고 판암(판바우)이라 부름)이라 불렀습니다. 그 동안 글을 모르는 아버님은 군번을 880???? 정도만 희미하게 기억하였으며 육군본부·병무청·보훈처·유공자 단체들과 어느 누구에게도 찾지 못했던 아버님의 군대 성함과 입대날짜 훈련소 및 군번을 박종택씨의 진술과정에 찾게 되어 자필로 받아 둔 가장 중요한 사실 증거 자료를 첨부하오니 필히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보훈처의 최종 확인 요구 사항 본적지 조사 - 박춘기씨와 박기관(박기환)씨의 본적지가 무안군 몽양면(몽양면은 없고 몽탄면만 있음) 양장리라는 곳은 경찰의 도움까지 받아 조사했으나 본적지라는 자료를 찾지 못하였고 족보까지 찾아 봤으나 전혀 무관하였습니다. 아버님에게 확인한 결과 무안에 대해 전혀 모르며 무관하답니다. 본인이 동명 2인이 있을 수 있어 몽탄면 양장리 1구 정영교(80세 전화 061-452-3185)씨 양장리 2구 임기호(80세 전화061-452-3185) 양장리 3구 정병철(65세 전화061-452-7933)씨 등에게 박판암씨와 박기관(박기환)씨를 알거나 살았던 적이 있는지 물었으나 전혀 알지 못하시며 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로 보아 박판암씨는 본인의 부친이 확실하며 본적지는 6.25 전쟁 당시에는 확실한 증빙 서류 없이 군대에 징집되어 간 사람이 많았으며 행정적으로 문제가 많아 이름 주소지 군번 기타 등 인적사항이 잘못 기재되거나 틀린 경우가 많다는 것으로 보아 분명 행정적 실수가 발생하였거나 무학자인 아버님의 본적지를 고의로 다른 곳으로 기재한 것 같습니다.
박종택(군번:8804345 보훈번호: 22-022741)씨가 박춘기씨와 같이 병사계 이승한씨의 인솔로 신검을 받고 제주도 훈련소로 가서 훈련소 생활과 군 생활 하셨던 과거를 생생하게 기억하며 자필로 쓴 가장 중요한 사실 증거 자료를 아래와 같이 첨부합니다. (아버님의 군번이 아래의 8804346번 8804344번 둘 중 하나라며 적어주셨습니다.) ------- 박종택씨의 자필을 첨부하여 2004년 2월 11일 팩스로 보냈습니다. 모든 자료는 보훈처 이용희 사무관이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계의 모든 사부대중 분들과 국민들께 호소합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 것은 보훈처에 이용희 사무관이 보훈처에 대해 진정에 대한 감정 표출이라고 생각됩니다.
남한이 존재하고 유지되어 이용희 사무관 같은 공무원이 살아가는 것은 분명 부친과 같은 분들의 희생에 대한 은혜를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본인은 종교인이며 2개의 대학원을 다니는 지식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일을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국가 보훈처 행정에 지쳐가고 있으나 글씨도 모르는 연로하신 수많은 국가유공자 등록 대상자 분들은 아마 접수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가에서 6.25 유해 발굴을 하는 현 시점에서 담양군 일대의 모든 증인들이 살아있고 군번까지 다 찾은 살아있는 국가유공자 대상자 한 분 공정하게 조사하여 인정하지 못한다면 연로한 국가유공자를 두 번 죽이는 무지를 범하는 것입니다.
불교계의 모든 사부대종과 국민들께 연로한 아버님과 전라남도 담양군 지역의 살아 계시는 수많은 증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숭고하고 순수한 어른신분들의 인우 보증을 묵살하고 매장시키지 마시고 80이 다 된 한 맺힌 노병을 여러분들의 아버님과 할아버님으로 생각하시고 돌아가시기 공정하게 심의하여 억울하고 한 맺힌 명예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 이 자료를 모든 게시판에 옮겨주시거나 보훈처에 항의 전화를 요청 드리며 차후 진정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각 언론관계자 분들과 변호를 해 주시거나 도움 주실 분들은 HP: 011-9502-9558 연락 주시면 모든 자료제시와 진술을 통해 도움을 받겠습니다. --
항의전화 보훈처 (02) 782-0842 이용희 사무관 담당자
첫댓글 국가 유공자 선출등록 기간에 신고치 못한 부분도 엿보입니다.허나 분명코 군번 하나만으로 판명이 됄줄 알고 있습니다.다가올 유월이 오기전에 모든일이 순조롭기를 합장 합니다.^^*()
우리의 행정처리 아직도 답답하군요 저도 남편이 북파공작원입니다. 각기관 에서 담당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이라면 이렇게 할까싶을정도로 답답함이 많이 있습니다. 이용희 사무관 말고 호소할때가 없는지요. 혹 청와대 민원실등 ..조금더 폭넓게 알리시어 도움을 청하셔야 겠습니다. 아직도 담당의 소신이 문제라는 것
꼭 이렇게 목소리 높이고 옳고 그름을 따져야 많이 해결되는 행정 정말이지 가슴아프답니다.저희는 김성호 국회의원의 도움으로 이세상에 알려져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가족과 본인의 삶은 정말이지 가막히답니다. 당하지 않으면 상상이 않되는 생활들이지요. 분명 방법이 있으리라봅니다.
조금더 적극적으로 따지고 알리셔야 합니다. 지치지 마시고 힘내세요......
무명 거사님 및 여러분들의 관심과 격려 감사드립니다. 국가보훈처에서도 처음에는 다 됐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징집 당시 분명 국가의 실수로 본적지를 이상한곳으로 하였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유공자 등록이 아니라 국가의 실수를 인정 하는 것이 엄청난 이미지 손실이 되는거라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라 봅니다.
이 사실은 군대를 보낸 모든 부모님들과 군인들을 위해서나 국민들을 위해서 밝혀져야만 합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도 분명 밝혀져야 하구요.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본적지도 이름도 잘못 기재하여 탈삭을 하였는데 어느누가 국가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lucky580 보살님 고맙구요. 전화 좀 주세요.
스님의 바램이 속히 이루어지도록 자관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불자분! 보훈처에 국가는 국민을 위한 올바른 행정을 펼치기를 독려하는 마음으로 이건의 메세지를 올립시다.
아하~ 이런사연이 있었네염 그것도 모르고.......나무아미타불()
광원스님 내용에 저희 아버님과 비슷함을 보게 됩니다. 저희 아버님은 참전용사증이라던가 하는 거 있는 것 같은데... 혹 서로가 아시는 사이였으면 좋겠네요. 전화 한통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아마 잘 될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부산에 오신다면 만나뵈었으면 합니다.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