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뿔도 없는 것들이 권위에 기댄다.
활터에 나가서 前手撇而後手絶별절로 쏜지 두달이 조금 넘어간다. 그 前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활터가 폐쇄되어서 못 쏘았고, 그 前前전전에는 활터를 협회에서 장악해서 자기들끼리 쏘았기 때문에 아예 안 나갔었다.
일단의 종교 일파들 관련 코로나19가 2단계 격상으로 활터가 또 폐쇄되어 못 쏘게 되었다.
한산이 撇絶별절궁체로 쏘아도 세상은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웬 미칭겡이가 활개짓을 하면서 활을 뿌리고 각지손을 휘둘러 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수해로 활터가 피해를 입은 곳에서 일단의 궁사들이 활을 쏘러 왔다. 그들이 보기에 난생처음 撇絶별절로 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는지 몇가지를 물어보길래 선의로 撇絶弓體별절궁체와 조선철전사법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들에게는 도와 덕에 부합하는 바르게 쏘는 활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시수가 지상최대목표였기 때문이다.
한산이 撇絶弓體별절궁체를 설명하자 당장에 자기들의 활선생과 존경하는 명궁의 궁체가 엉터리로 판명 났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헛소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강한 부정과 함께 반박을 당했다. 그저 침묵하고 허허 웃어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갈릴레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권위가 있었을까?
‘갈’선생에게 세상에 모르는 게 없었던 무불통지의 ‘아’선생은 진리도 모르면서 권력에 빌붙어서 권위에 기생하며 세상을 혹세무민한 개뿔도 아닌 존재였을 따름이다.
예기 射儀사의에 따르면 공자가 확상의 벌판에서 향사례를 행하면서 제자 자로를 시켜서 잔을 들고 대중에게 권했던 “賁軍之將 亡國之大夫 與爲人後者 不入 其餘皆入(분군지장 망국지대부 여위인후자 불입 기여개입) : ‘패전한 장수와 나라를 망친 대부와, 남에게 빌붙어 이익을 탐하는 자는 나가고 그 밖의 사람들은 모두 들어오라.’고 했다.”에서 말하는 與爲人後者여위인후자 즉 “남에게 빌붙어 이익을 탐하는 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산이 활을 배우면서 우리 활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바른 활쏘기를 찾으면서 전국대회와 승단을 멀리했기 때문에 無段무단 백의한사 무명소졸로 남았다. 그래서 한산에게는 권위가 없다. 활터에서 시수도 별로인데다가 대한궁도협회의 무단으로 자기들이 보기에 궁체도 요상하게 쏘니 도무지 이해불가의 인간인 것이다.
지금의 한산의 처지가 지구가 돈다고 이야기하여 신성모독으로 재판에 회부된 갈릴레오와 별 다를 바 없는 상태인 것이다. 목숨의 위협을 받았던 갈릴레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인정했겠는가? 무단이고 신체적 한계성으로 인하여 시수가 별로라 해서, 撇絶별절로 못 쏘는 대궁 고단자들, 자칭 명궁들의 권위를 인정해야 할 건덕지가 없지 않는가?
우리나라(한국•고려•조선)의 활쏘기가 撇絶별절로 쏘았음이 명백하게 밝혀진 이상 무과가 폐지된 이후 撇絶별절로 쏘지 않았던 모든 활과 그 역사에 대하여 냉정한 평가를 하고 재정립할 필요성이 있는 마당에, 턱밑살대 게발각지로 쏘아 시수를 올리고 명궁칭호를 받았다고 해서 권위가 생기고 활터 어른으로 자리매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하고 진리 앞에 머리 수구리고 백배사죄해야 하며 지금까지의 잘못을 반성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적어도 갈릴레오가 중력장내에서 무거운 거와 가벼운 게 같이 떨어진다고 증명해 낸 이후의 아리스토텔레스나, 한산이 우리나라(한국•고려•조선)의 활쏘기가 撇絶별절로 쏘았음을 명백하게 고증하고 밝힌 이후의 활터 궁사들 입장은 다르지 않다.
이런 소식을 듣는 즉시 사과하고 반성해서 고치는 것이 역사에 죄짓지 않는 일이며 바른 삶이며 제대로 된 인간성을 보여주는 절차일 것이다.
진리에 대한 경외와 인류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지 않다면 엉터리 활쏘기로 패거리지어서 권위를 드러내며 군림하는 것은 패악이다.
턱밑살대 게발각지로 쏘는 명궁 여러분의 궁체 어디에 전통 정통의 활쏘기가 들어 있나? 줌손을 흘려서 그듯쳐 잡았나? 발디딤이 비정비팔인가? 그리 당신의 궁체가 책 「조선의 궁술」과 부합한다고 주장하고 전통궁체로 국궁을 쏜다고 떠벌리고 다니는데, 왜 쏘고 나면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으로 떨어지지 않고, 윗고자가 우궁의 경우 오른 신발로 아랫고자가 왼쪽 겨드랑이를 찰싹 치지 않는가?
조선무과급제자이고 조선특급무장이었으며 영조 임금앞에서 활을 쏘아 당상관까지 했던 웅천 이춘기공과 금군의 활선생이었던 청교 장언식공의 이야기가 우리활은 撇絶별절로 쏘아야 한다고 하고, 풍석 서유구선생의 사결과 책 「조선의 궁술」은 활을 쏘고 난 이후에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으로 떨어지고 우궁의 경우 윗고자는 오른 신발로 아랫고자는 왼 뒷겨드랑이를 찰싹 소리가 나게 쳐야 제대로 쏜 활이라 하는데, 쏘고 나면 줌손이 어디로 갈지 몰라서 어정쩡하게 있는 ‘막줌 턱밑살대 게발각지’ 명궁 여러분의 견해는 어떠하오?
무단이고 시수도 별로인 백의한사 무명소졸 한산에게 개해부당해서 만고의 우사꺼리로 전락해도 모르쇠 하는 명궁이나, 명궁의 권위에 기대고 거기에 기생하는 회색인간들에게 전하건데, 활을 접고 활판을 떠나는 게 사람 사는 도리이고 인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