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넘는 박달재
- 박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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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재홍-울고넘는 박달재악보, 박재홍악보, 울고넘는 박달재악보, 피아노악보, 코드악보, 최신악보, 악보교실|작성자 mjkim323000
박달재 사연
박달재 표지석
박달재 유래
금봉이 살던 금봉루
박달이 허리춤에 매달아 주던 도토리묵집 ..지금은 금봉이 후손 집이런가
박달도령과 금봉낭자 목각
박달도령의 장원급재를 기도하던 금봉이의 성황당
지금은 터널이 뚫혀 지나가는 차량이 뜸하기만..
해후를 기약하며.. 마지막 포옹이런지 ~~
낭자! 이제 그만 나오구려 ..내 꼭 급재를 하고 다시 오리~~
땅거미 질쯤 금봉이 집을 찾는 박달 도령
박달공원
멀리보이는 곳이 천둥산이런지..
박달 조각공원
부디~~ 박달도령님의 급재를 성황님께 비옵니다.._()_
낭자! 내 꼭 급재하여 잊지않고 낭자을 찾으리~~~~
낭군님~~~~지금도 아련한 목소리가 들릴 듯 한데...
반지로 후일을 기약하면서~~내 다시 오리오 낭자~~(이별장면)
금봉이 환상을 쫓다 천길 낭떠러지로..
박달재 휴게소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랫말
머무는 동안 내내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가 다양하게 들리기만..
박달도령과 금봉낭자 ..이승에서 못맺은 사랑
저승에서나 해후하여 잘 살고 있는지 !!
울고 넘는 박달재 / 박재홍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임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임아
둘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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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넘는 박달재〉 는
대한민국 건국 직후인 1948년 박재홍이 부른 트로트 곡이다.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의 곡으로,
발표했을 때부터 인기를 끌며 박재홍은 대스타가 되었고
노래에 담긴 서민적인 정서가 공감을 얻어
이후로도 오랫동안 애창되고 있다.
반야월이 악극단 지방순회 공연 중
충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길에
농부 내외인 듯한 남녀의 이별 장면을 목격하고
작사했다는 일화가 있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라는 가사로 시작되며,
비 오는 날 박달재에서 이별한 뒤
홀로 남은 화자가 가슴이 터지도록 울면서 소리치는 내용이다.
2절 마지막 부분의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라는 노랫말 중에
"금봉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박달이라는 선비와 금봉이의 사연으로 각색되어
구전 전설이 되었다.
제천시에서는
이 전설 속의 인물들을 박다리와 금봉이라는 캐릭터로
마스코트화하기도 했다.
한국방송의 성인가요 전문 프로그램인《가요무대》가
2005년 방송 20돌을 맞아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를 조사해 발표했을 때,
방송 횟수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제천시 국도변에 박달재휴게소 입구에는
노래 가사를 적어넣은 박달재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가사 첫머리에 등장하는 “천등산 박달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박달재가 천등산을 넘는 고개인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천등산은
충청북도 제천시와 충주시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 산을 넘는 고개의 이름은 다릿재이다.
박달재는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헤럴드경제: 천=남민 기자 2013. 1. 24]
조선 중기, 경상도 청년 박달(朴達)은 한양 과거 길에
험준한 고개 아랫마을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마침 그날 밤 주인집 딸 금봉이와 눈이 맞아
둘은 사랑을 약속한다.
한양 간 박달은 하세월 돌아오지 않는다.
금봉이는 매일 고갯마루에 올라 성황당에서 기도하지만
결국 상사병이 도져 죽는다.
그리고 딱 3일 후 박달은 낙방거사로 도착한다.
금봉의 사연을 들은 박달이
성황당에 오르자
저만치 앞에 금봉이가 나타났다.
달려가 끌어안으려는 순간 금봉이는 사라지고
박달은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게 된다.
환영을 본 것이었다.
‘비련의 고개’ 박달재는 박달의 이름을 딴 고개(재)로
충북 제천에서 충주와 장호원으로 넘어가는 험준한 산길이다.
지난 1960년대 이후
공전의 히트를 친 대중가요 ‘울고넘는 박달재’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노래의 탄생 배경은 따로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박달재를 찾아
여느 때와 같이 새벽길을 나섰다.
아직 잠든 도시를 조용히 빠져나가는 사이,
차 안에는 작은 정적을 깨뜨리는 감미로운 음악이 흐른다.
“너를 향한 내 맘이 너무 가엽다…미치도록 그리운 사랑아…
아무리 울어봐도…지울 수도 없는 내 사랑아”
지금 막 혜성 처럼 등장한
따끈따끈한 남자 신인가수 신재의 ‘맘이 너무 아프다’ 라고 한다.
남자가수가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호소력있게 부를 수 있을까.
게다가 내가 지금 향하는
이별의 고갯길 박달재의 사연을 마치 예언이라도 한 듯
이 노랫말과 가락은 그 분위기 그대로다.
처음 듣는 순간부터 가사가 머릿 속에 꽂혀버렸다.
박달재의 사연을 잘 아는 분을 수소문했는데,
마침 지난해 작고하신
‘대중가요의 대부’ 반야월 선생님과 교분이 있었던
황금자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황 선생님 제천에서 언론과 관광에 종사하시는데
반야월 선생이 제천 명예시민이 돼 자주 찾으면서 만남이 있었고
노랫말 지은 배경도 직접 들려주셨다고 했다.
노래 탄생 배경은 이렇다.
반야월(본명 박창오) 선생이 1964년 지방순회공연 차
박달재를 오르다 버스가 고장나 멈췄다.
잠시 산책을 하는데 보슬비가 내리는 저 앞에 젊은 남녀가
애처로운 이별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떠나자
반야월 선생이 여인에게 다가가 사연을 물었다.
“남편이 서울로 돈벌러 떠나 잠시 헤어지게 돼 슬프다” 며
가다가 먹으라고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줬다고 했다.
반야월 선생 눈 앞에서 벌어진 이들의 모습이
박달과 금봉의 이별을
그대로 연상케하는 그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선생은 서울로 돌아가 몇 달 후
어느날 문득 이 얘기가 생각나 노랫말을 썼다고 한다.
<단풍이 물든 박달재>
“천둥산(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필자가 찾은 날 도로 외에는 온통 눈밭이었다.
정상 휴게소에서 크게 흘러나오는 구슬픈 이 노래는
멈출 줄 모른다.
곳곳에 박달과 금봉의
애처로운 사랑을 그린 조각작품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박달과 금봉이 그랬고,
서울로 돈 벌러간 젊은 남편이 그랬고,
충주에서 제천으로 시집간 그 옛날 새댁이 그랬듯이
이 고개는 눈물없이 넘지 못했다.
지금은 38번 국도가
박달재 밑으로 터널을 내서 휙 지나가버린다.
이 옛길은 관광도로로 남아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만의 장소가 되고 있다.
노랫말에 나오는 천둥산은 천등산을 말하는데
실제 박달재는 천등산의 옆 시랑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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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가 좋아하는 노래구나 잘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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