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나는 이 영화를 두 번 보았다. 낮에 기자 시사회에 참석한 이후, 저녁에 다시 일반 시사를 보았다. 장선우 감독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한국영화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데뷔작이었던 선우완과의 공동 감독작품 [서울예수]이후 [성공시대]를 거쳐 [우묵배미의 사랑][꽃잎][화엄경][너에게 나를 보낸다][나쁜영화][거짓말] 등등 나는 그의 모든 영화를 극단적으로 지지하는 열혈 마니아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항상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조금 비껴서서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자이지만 정면으로 사회 모순에 도전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피 흘리지는 않는다. 소위 먹물 출신으로 머리 속에는 똥이 가득 들어있는 문화적 속물이며, 자신의 지식을 다수를 위해 봉사하려는 데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예술적 취향도 까다로운 편이고, 자신의 미학적 시선에도 자부심이 있다. 이 모든 것이 나와 비슷하다. 그 비슷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작품이 나에게 공감대를 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모순에 가득찬 영화이다.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 기록을 경신하며 110억원이 넘는 거대한 물량을 투입한 이 영화는, 그동안 온갖 흉흉한 소문에 시달렸었다. 소문의 와중에서도 나는 장선우를 믿고 있었고 그의 영화적 역량에 신뢰감을 갖고 있었다.
역시 장선우였다. 그 아니면 누구도 이런 프로젝트에 도전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만약 도전했다고 해도 쓴물을 마시고 물러났으리라. 그렇다고 이 영화의 대중적 가치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아니다. 오직 장선우였으므로 이 까다롭고 어려운 프로젝트가 이 정도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짧은 시 한 편으로 시작한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안데르센 동화를 21세기 현대로 가져온 장선우 감독은, 이 비극적 동화를 통해 삶과 죽음 혹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전달 방식은 우회적이고 간접적이며 친절하지 않아서 대중들이 그의 영화문법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난관이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중국집 배달부 주(김현성 분)는 친구인 프로게이머 이(김진표 분)와 여자들을 만나지만, 그 앞에서 늘 먹는 것에만 신경이나 쓰는 쑥맥이다. 그는 게임방 여자(임은경 분)를 좋아하지만 겨우 더듬더듬 말을 꺼내는 그를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현실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는 가상공간에서 이루어보려고 한다.
주가 가상공간에 접속해서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려는 게임의 이름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다. 성냥팔이 소녀가 차가운 겨울철에 얼어죽게 만들어야 이긴다. 누구도 그녀에게서 성냥을 사서도 안되고 그녀를 구해줘서도 안된다. 그러나 죽어가는 성냥팔이 소녀가 환상 속에서 할머니 대신 자신을 생각하여야만 이 게임의 진정한 승자가 되는 것이다.
게임의 규칙이 매우 까다롭다. 그러나 이 기본적인 룰 속에 많은 비밀이 숨어 있다. 성냥팔이 소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화 속에서처럼 그녀가 얼어죽게 만드는 것, 그러나 그녀가 죽을 때 환상 속에서 게이머를 생각해야만 게이머가 이긴다는 룰은 이율배반적이다.
컴퓨터 게임을 영화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여러번 있었지만 그 미학적 성취도는 미미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이 어려운 시도를 가일층 진전시킨 모험적 작품이다. 그러나 아직 충분하지는 않다. 그만큼 이 시도가 어렵고 까다로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명확하다.
관객을 가상공간으로 인도하는 것은 나비이다. 나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며 존재의 본질에 관한 화두를 제공한, 장자의 호접몽 모티프이다. [스테이지 1,2,3] 등 3단계로 나뉘어져 있는 이 영화는, 주와 성소의 만남을 제공하는 1, 성소가 시스템을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키는 2, 시스템에 붙잡힌 성소를 구출하는 3로 나눌 수 있다.
결말까지도 관객의 선택에 의해 버전 1과 2로 구분된다. [성소] 게임의 패자가 되는 것과 승자가 되는 것으로, 게임 오버되는 일상적 버전과 또 다른 삶의 영역으로 인물을 이동시키는 버전이 있다. 소위 완벽한 쌍방향 인터렉티브 영화를 지향하지는 못하지만,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는 감독의 전향적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분명히 이 영화는 화제를 몰고는 오겠지만 흥행 대박을 터트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찬보다는 비판이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 장선우식 유머가 대중적으로 먹히기에는 지나치게 우리들은 경직화되어 있다. 그는 지구를 공처럼 굴리며 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으로 동맥경화에 걸려 있꺼나 아니면 지나치게 일상적으로 풀어져서 어떤 규범도 없는 편이다.
마치 장자가 그랬듯이 장선우도 말똥구리가 자신의 삶을 굴리며 유희하듯이 그렇게 디지털 혁명이 진행중인 정보화 사회의 핵심 키워드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들은 준비가 안되어 있다. 또 그이 놀이도 시나치게 선민의식이 강하다.
김현성은 수준 이하의 연기를 보여 준다. 그의 연기만 조금 튼튼했어도 영화가 몇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감독의 잘못이다. 이 정도 제작비가 투입되는 영화의 주인공을 미흡한 연기자로 메꾼 것은 변명할 길이 없다. 차라리 김진표의 연기가 훨씬 좋다. 조선족 트렌스젠더 무용수 진싱의 연기도 매력적이다. 임은경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있으나 없으나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족 하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성소에게서 산 라이터에 찍혀 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주가 전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전화는 가상게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접속할 것을 묻는 나레이션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그때 주가 걸었던 전화번호는 숫자가 전부 0 이나 1로 되어 있다. 장선우 감독의 재치가 빛나는 부분이다. 그는 단순히 말초적으로 TTL 소녀를 데리고 유희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탈 시대의 삶의 화두를 짚어보려는 것이다. 방향은 옳았지만 아직 역량은 무르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