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큰 맘 먹고 가봤습니다..
백수의 바쁜 일정을 쪼개고 쪼갰지요.. ^^;
시작부터 끝까지 본 것은 아니구, 제목 그대로 어슬렁거리기만 했기에
전체적인 스케치를 하긴 힘들 거 같구..
나름대로 준비도 해갔어요..
흰색마스크에 검정 매직으로 war를 쓰고, 빨간 매직으로 X를 그려넣은 백수로서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을 들여서 말이죠~
어떤 할아버지처럼 사과박스 뒷면에 쓴 것보단 돈이 더 들었지요~
사람이 북적거리는 것이 전형적인 다운타운의 토요일 오후더군요.. 3시 광주의 번화가 밀레오레 앞 시작이라는데, 제가 도착한 네 시에도 100여명의 대열이 그대로 있대요~ 반가운 맘으로 그 대열로 향했지요..일단 깃발이 하나도 없었어요.. 젊은 행동(공식적인 시위 주관 단체)의 프랑카드와 선전물 외에는... 그것이 오히려 낯설더군요..
근데, 가까이서 낯바닥들을 보니 아는 얼굴들이 한 둘이 아닌거에요~ 몇 마디 나눠보니 대부분이 남총련 학우들이더군요~ 막간에 사회자가 "추운데 바위처럼 율동이나 합시다"라는 선창에 사회자부터 대열에 있던 모두가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걸 보고 예삿놈들(!)이 아니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누가 하든 한다는 것이 중요한 거고, 그네들의 자랑스런 초대형 깃발도 내릴만큼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는 건데....
다채로운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 역력했드랬습니다.
대학생들은 반전평화가 박힌 주문제작된 풍선을 나눠주고, 고딩 몇 명은 고딩답지 않은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나눠주고, "오월의 빛"이란데서는 평화의 꽃씨를 천 원씩 팔고....
뭐, 이 정도면 색다를 것도 없지만...
무대 공연 출연진들이 재밌었어요~ 내가 봐도 프로급인 사물놀이패의 난장에 이어, 꼬맹이들 열 댓명이 준비한 반전 노래와 율동(이게 젤 히트였어요!) 자칭 "래퍼"의 인사(웃기게도 시디가 없다고 인삿말만 하고는 가버리대요)..... 전 계속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대학생 문예단이 격렬한 배경음악에 맞춰 액숀가면춤(문선단이라고들 부르는)을 추는 찰나에서 자리를 떴습니다. 이해가 안가는 것은 공연을 했던 사람들은 더이상 자리를 지키지 않고 떠나버립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대열 속에는 학생들 밖에 없어서 영낙없이 학생행사가 되버립니다.
자리를 떴다는 것이 길 건너편 버스 승강장입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멀거니 그네들을 볼라치니 퍼뜩 "숲 속에서 숲을 보는 것과 숲 밖에서 숲을 보는 것이 이리도 다른가" 라는 생각이 들대요~ 그 몇 가지가..
대열은 삐까번쩍한 밀레오레 건물 앞 도로변에 뭉뚱그러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보행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생각했는지, 아님 밀레오레의 주말 성수기를 생각했는지 밀레오레 앞 넓은 광장은 피하고 도로변 1개 차선만 점령했더군요. 보아하니 쪽수도 얼마 안되서 광장을 점령해도 보행하기 충분하고, 오히려 차선을 막고 행사를 하니 주말시내 교통은 더더욱 막혀 욕은 더 나오는 것이 당연할 테니, 후자의 사정을 고려한듯 하대요~
게다가 대열은 항상 그랬듯 여전히 차가운 아스팔트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무대에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쟤들 저러다 치질 걸릴텐데"라는 안쓰러움이 절로 들 정도로... 동정표로 관심을 유발하려는 것도 아니고......
더 가관은, 몇 명 되지도 않는 행사장 주변을 경찰들이 빼곡하니 에워싸고 있다는 겁니다. 인도쪽에는 배치하지 않아 안에서는 몰랐는데, 건너편으로 와보니 경찰들과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해야 하고 그 틈새로 행사장이 보입니다.. 학생들이 약속된 차선을 넘어서는 걸 막기위해 그런걸까요? 아님, 지나가는 차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숲 밖에서 숲을 보니 행사장이 경찰로부터 포위되어 있는 형국 그대로였습니다. 저랑 같은 자리에서 행사장을 관망하는 사람들이 몇 몇 더 있었습니다. 우리의 형사 아찌들.. 저두 군대시절 그 계통에 있어봤기에 척보면 압니다. 저 아찌들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닌지... '저 넘들이 백날 파닥거려봤자 어차피 우리가 쳐놓은 그물 속인데, 뭘~' 손오공을 손바닥안에 뛰놀게 했던 부처의 맘같이...
아랫 글은 같은 날 서울의 반전시위를 보고 조정환 씨가 쓴 글입니다. 역쉬, 내공이 쎄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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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앞에서 생긴 일 : 태양의 시간과 촛불의 시간 - 조정환(http://waam.net/)
1. 3.15 반전행진은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시위대는 종묘공원에서 국세청 앞까지 몇 개의 차선을 따라 '전쟁반대' '파병반대' 'Stop the War'를 외치며 걸어갔다. 이 중에는 굽은 허리에도 불구하고 한 아름 꽃을 든 할머니, 'Peace'라고 얼굴에 색깔 그림을 그린 어린이들, 평화를 위한 연대라고 쓴 피켓을 든 외국인들, 미국의 전쟁을 반대하는 미국인이라고 가슴에 쓴 미국인 ...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종이 비둘기들이 머리와 어깨 위에서 날고 있었는가!
2. 행진대의 선두에 선 방송차가 멈추어 선 지 얼마후 방송차에서는 '통제에 따라 인도로 올라가 달라'는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2열 2열'하며 시위대를 따르던 전투경찰들이 갑자기 방패로 사람들을 밀기 시작했다. 종로 2가의 좁은 인도가 떠밀린 사람들로 넘쳤다. 폭력이 조직적으로 행사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위대는 이렇게 인도로 밀렸다.
3.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보신각 맞은 편 국세청 앞에는 전투경찰들이 좁은 인도의 양쪽을 막은 채 좁디 좁은 통로만을 남겨 두었다. 한줄씩, 그것도 몸을 옆으로 젖혀서만 '모욕적'으로 통과할 수 있는 통로였다. 양 옆에 몇 줄로 도열한 전경들은 간신히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피켓을 내리라' '깃발을 내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시위대는 인도에서 다시 전경들의 몸으로 만들어진 이 비좁은 통로로 내밀렸다.
4. 마치 어두운 동굴 통로와 같은 이 좁은 통로를 전경들은 수시로 막았다 열었다 했다. 1만명에 이르는 시위대들이 한줄로 서서 그것도 가다 막히다 하면서 그 좁은 길을 지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겠는가? 광화문에서의 촛불집회는 예정보다 1시간을 넘어 8시가 되어서야 시작될 수 있었다.
5. 그렇다면 국세청 앞에서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인가?
.......공포. 공권력이라고 불리는 국가 폭력이 다중들의 마음 속에 불러 일으킨 '공포'.
그곳에서 공포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비굴과 수치가 소용돌이 치며 활력의 위축이 나타났다. 실제로 전쟁반대!, 파병반대!, 전쟁중단!의 모든 함성들, 외침들은 중단되었고 사람들은 중앙통제되는 도로의 기계신호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간신히 통로를 빠져나온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도열한 전경들 옆에 서서 '빨갱이놈들. 죽여야 할 것은 김정일이야'라고 외치는 한 장년 남자의 호통이었다.
6. 이것은 일종의 공포의 체질(체로 가루를 치거나 액체를 거르거나 밭는 일)이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전경들의 몸으로 만들어진 체'를 통과하게 함으로써 광화문으로 진입할 시위대의 수를 줄이는 것. 그리하여 이후에는 오직 이 공포와 싸울 준비가 된 사람들만 집회와 시위에 참석할 수 있게 하려는 것. 그리하여 다중들을 공포의 정도에 따라 분할된 지배 가능한 대중으로 조직하는 것.
7. 3월 1일 탑골공원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으로 행진할 때에 전투경찰은 차도에서 인도로 시위대를 과격하게 밀었고 그래서 몇 사람이 쓰러져 다쳤다. 3월 15일에 전투경찰은 시위대를 인도로 민 후 다시 저 어두운 '전경 통로'의 검열을 거치게 했다. 3월 22일로 예정된 반전행진에서 경찰은 사람들을 이제 어디로 몰아 넣을 것인가? 지난 3월 9일(?)에 연행당했던 사람들을 집어 넣었던 그 철창일 것인가?
8. 폭력의 이 점증법(漸增法)은 노무현 정부의 '참여' 담론을 희화적인 것으로, 우스갯 소리로 만든다. 노무현의 '국민'들은 참여를 제한당하고, 저지당하고, 마침내 금지당한다. 노무현의 정치에 전투경찰의 '참여'는 더욱 높아지고 다중들의 '참여'는 점점 제한된다. 다중들의 반전평화 행진에의 참여는 은밀하게 억제되고 대한민국 정부의 이라크 전쟁에의 참여는 공공연히 추진된다. 노무현의 개혁은 아주 빠르게 희망을 동력으로 하는 개혁이 아니라 공포를 동력으로 하는 개혁으로 성격전화하고 있다. 그럴수록 그를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이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속도는 빨라진다.
9. 아직 채 한달로 되지 않은 '토론' 정부가 '행동'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 '전쟁의 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촛불이 꺼져야 한다. 너희들의 가슴 속에는 자신의 삶을 밝힐 수 있는 불이 없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제국의 태양이지 촛불이 아니다. 그 태양의 은덕만이 너희를 먹여 살릴 수 있다. 촛불의 시간은 끝나야 한다.'
10. 그러나 굴욕의 국세청을 지나 광화문 교보빌딩 앞 광장에 다시 모여 아침이슬을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생각한다 : '태양의 시간은 슬픔의 시간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사막으로 만든다. 사회의 위에서 초월적으로 작열하는 태양보다 우리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촛불들이 더 소중하다. 촛불의 자율(autonomy)은 태양의 경제(economy)와 공존할 수 없다. 촛불의 시간의 지속만이 기쁨을 창조할 수 있다. 촛불의 시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전쟁의 불이 피어오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