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미국 성공회 애틀랜타 교구장 후보로 뽑힌 로버트 트라시 신부는 승인 8일을 앞두고 탈락했다.
개인 신용도와 교통법규 위반 같은 품행을 살피는 신원조회에서 신용카드 빚이 문제가 됐다.
자산은 1만800달러인데 빚이 12만2000달러였다.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고 공적 의사결정에 장애가 된다는 결론이 났다.
스캔들이나 공금 유용이 아니라 카드 빚이 걸림돌이 된 드문 사례다.
▶신용카드는 이기(利器)이자 재앙이다. 우리 신용회복위원회에도 카드 빚을 감당 못한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31세 주부는 옷과 화장품을 카드로 사고 400만원을 제때 갚지 못해
생활정보지에 나온 대납업자를 찾았다가 오히려 카드 빚이 700만원으로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업자가 요구한 대로 카드 석장을 맡겼더니 카드깡을 해버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것이다.
▶'제3의 화폐'라는 신용카드의 발상은 밥값에서 나왔다.
1949년 미국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는 뉴욕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뒤 지갑을 안 갖고 온 것을 알고 곤욕을 치렀다.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듬해 '식사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다이너스(Diners) 카드를 만들었다.
다이너스 카드는 1960년 영국·일본으로 건너가 세계로 퍼졌다.
우리는 1978년 외환은행이 해외여행자에게 비자카드를 발급한 게 처음이었다.
▶30년이 흐르는 사이 우리는 택시비까지 신용카드로 치르는 '카드 천국'이 됐다.
한국은행이 그제 밝힌 신용카드 발급 숫자가 9624만장. 경제활동인구 한 사람이 넉장꼴로 갖고 다니는 셈이다.
1인당 5.3장으로 세계 최고인 미국보다는 적지만 싱가포르(2.98장) 영국(2.36장) 네덜란드(1.92장) 독일(1.31장)보다 훨씬 많다. 하루 평균 1133만건, 1조2000억원을 카드로 긁는다.
▶신용카드가 2003년 카드대란 직전의 1억488만장에 육박하면서 신용불량자가 양산될 걱정이 커졌다.
미국은 금융위기를 맞자 연체기록이 있거나 집값이 폭락한 지역 주민 등에게 카드 발급과 대출을 제한하고 있다.
치솟는 연체율을 잡으려고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카드를 취소하는 고객에게 300달러 인센티브를 줄 정도다.
지갑에 꽂혀 있는 카드를 꺼내고 싶을 때마다 그게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이라는 생각을 떠올려야 한다.
김동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