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학하는 사람
‘철학’(哲學)이라는 말은 매우 근대적이다. 근대 이전 동서양에 ‘철학’이란 단어는 없었다. 서양의 ‘필로소피’(philosophy)는 ‘현지(賢智)한 것을 사랑하고 희구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지혜(sophia)에 대한 사랑'(philo)이란 의미이다. 본디 소피아는 기술적이고 실용적인 의미로 쓰던 말이다. 헤로도투스는 ‘소피아’(sopha)에 ‘필로’(philo)를 합쳐서 ‘지혜를 사랑한다’는 동사로 사용했다. 그 뒤 필로소피는 ‘애지’(愛智)라는 의미의 명사로 바뀌었다. 소크라테스는 ‘학문하는 것’으로 한정했고, 플라톤은 ‘순수정신적인 의미의 지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순수한 이론의 문제’로 정의했다. 그 뒤 기술적이고 실천적인 의미가 되살아나 스토아 학파에서는 철학의 목적을 ‘덕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에피쿠로스 학파는 ‘행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학문’ 즉 ‘실천적 문제에 답하는 것’이라 했다. 이러한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의미의 철학이 그리스 말기의 신플라톤 학파에서는 ‘종교적 구제나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며, 나아가 ‘신을 아는 데 있다’고 했으며, 나중에는 ‘신학’과 동의어로 변질되었다.
철학, ‘인간과 세계의 근원에 대한 물음’
중세 말기 교회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자아의 이성과 경험에 의거한 순수학문의 기풍이 다시 일어나자 철학은 ‘세계관을 구하는 학문’으로 탈바꿈하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인식론’으로 발달했으며, 결국 철학은 기본적으로 ‘우주관’, ‘인생관’, ‘인식론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니시다 기타로 西田幾多郞, 《철학개론》 6~13면) 일본의 막부 말 명치 초의 서학자이자 계몽가인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는 ‘필로소피’를 ‘현(賢)을 좋아한다’는 뜻에서 ‘희철학’(希哲學, 철인을 희구하는 학문)이라고 옮겼다. 그 뒤에 그는 ‘희’를 생략하고 ‘철학’(哲學, 철인의 학문)이라고 썼다. 그러자 청말 민국초의 중국 계몽철학자 장병린(張炳隣, 1860~1936)은 ‘철학’이란 번역의 부적절함을 지적하였다. 그는 《순자》〈천론〉(天論)편의 전거를 들어 ‘견’(見)이란 외자를 쓸 것을 주장했으나 당시 학자들로부터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 뒤 그들이 니시의 번역을 받아들이면서 ‘철학’이란 용어는 일반화되었다.
철학함, ‘인간과 세계의 심연에 대한 통찰 노력’
철학에 상응하는 동양의 언어로는 인도철학과 불교철학에서 즐겨 사용하는 ‘다르샤나’ ( 見)가 있다. 다르샤나는 ‘본다’ 혹은 ‘통찰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인간과 세계의 근원에 대한 견해이자 통찰이다. 이것은 《순자》에서 나온 ‘견’(見)과도 상통하고 있다. 그런데 철학의 의미가 이처럼 무엇 무엇에 대한 ‘통찰’ 혹은 ‘견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철학도들은 ‘철학’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미 당대 문제 해결에서 그 시효가 사라진 ‘철학사’를 전달하고 있다. 철학교수 역시 ‘철학’을 하지 않고 ‘철학사’를 전하는 중개상 역할을 하고 있다. 철학과 철학사는 분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동일한 것도 아니다. 철학이 ‘인간과 세계의 근원에 대한 물음’이라면 ‘철학함’은 ‘인간과 세계의 심연에 대한 통찰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철학함이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인간’, ‘세계’, ‘고통’, ‘죽음’, ‘행복’, ‘자살’, ‘노동’, ‘평화’ 등등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살아있는 응답’을 내오는 ‘노력’이다. 하지만 제도권 속의 철학과와 철학교수들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명이 부족하다.
인문학 위기는 삶의 문제 고민 부재가 원인
철학교수들은 앎의 문제에만 치중할 뿐 정작 삶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때문에 대중들의 삶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하다. 그들은 인문학적인 앎의 문제에만 집중할 뿐 사회과학적인 삶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해서 대중들의 고민과 이해에 대한 철학적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인문학의 위기 담론이 무성한 것이다. 분황 원효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시대의 한복판에 살면서 백성들의 삶의 문제를 앎의 전환을 통해 해소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삼국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열 번의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통해 마음의 평안이 가능함을 이론적으로 뒷받침 해주었다. 나아가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나눠주기 위해 ‘소성거사’(小性居士)가 되어 더불어 살았다. 분황은 넘치는 인간미가 담긴 다수의 저작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때문에 그는 철학의 전달자가 아니라 ‘철학하는 사람’인 ‘철학자’였다.
2) 철학한다는 것
‘철학함’이란 무엇인가. 당대의 가장 핵심적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철학적 노력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는 무엇인가. 아마도 ‘민족 통일’과 ‘빈부 해소’ 및 ‘평화 실현’ 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남북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장면을 본 나의 마음은 매우 착잡하다. 우리는 지난 해방공간(1945~1948) 이래 과도한 이념논쟁에 의해 분단되었다. 이제 남북의 분단은 1갑자(60년)를 넘고 있다. 한민족의 역사문화 의식의 회복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이념과 지역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어 가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무엇일까. 결국 ‘민족 통일’과 ‘빈부 해소’ 문제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까.
현실문제에 철학자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분황, 삼국시대 문제 고민했던 철학자
추석을 앞두고 60년 만에 만난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장면은 감동과 함께 아픔을 가져다 주었다. 국민소득 2만 불이 넘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 대구의 한 영세민 아파트에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굶어죽은 한 모녀의 일도 생각키워 진다. 분단의 상처와 빈부의 격차에 인해 생겨나는 고통의 문제에 대해 철학자는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가. 첨예한 현실 문제에 대해 철학자는 어떻게 철학적 인식을 내올 수 있는가. 7세기를 살았던 삼국의 백성들은 삼국의 분열과 전쟁으로 고통 속에 살았다. 삼국 황제들의 끊임없는 영토 확장 정책은 늘 백성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쟁의 윤회를 끊을 수 있는 길은 과연 없는 것일까. 그 시대를 살았던 분황은 그러한 고민을 했던 철학자였다. 그의 ‘일심의 철학’과 ‘화회의 논법’ 및 ‘무애의 철학함’은 바로 이 대목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보여 지기 때문이다.
생명체 살리려는 철학적 저항
분황은 고구려와 전쟁을 벌이고 있던 나당 연합군의 암호풀이를 해준 적이 있다. 그는 매복에 걸려든 김유신군(軍)에게 소정방이 보낸 암호를 “빨리 군사를 돌려라. 송아지와 난새를 그린 것(紙畵鸞犢)은 둘이 떨어지라는 것을 일컫는다”(謂畵犢, 畵鸞二切也, 《三國遺事》 권1)고 풀어주어 전세를 뒤바꾸게 해 주었다. 이와 달리 이 암호를 “‘화독’과 ‘화란’ 둘은 반절을 일컫는 것이다”로 풀어 ‘혹환’으로 읽을 수 있다. ‘혹’은 경상도 지역의 발음상 ‘속’이 되어 ‘속환’(速還)이 된다. 이것은 곧 “빨리 병사를 돌이키라”고 읽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그가 특정의 편에 서서 전쟁에 참여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현실적 참여를 정치적 당파성에 입각해 볼 것이 아니라 생명체들을 살리려는 한 철학자의 철학적 저항(철학함)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사상계 갈등 해소, 화쟁회통 논법 확립
분황의 87종 180여권의 저작에는 7세기를 살았던 그의 철학함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부처와 범부, 열반과 생사, 보리와 번뇌 등으로 대비되는 이항들을 화회의 논리로 통합시켜 동아시아 사상계의 갈등을 해소시켜 나갔다. 당시 동아시아의 주요학문이었던 삼론과 열반 및 지론과 섭론, 자은(법상)과 화엄, 정토와 선법 등의 사상이 자종의 우수성만을 강조하려 할 때 그는 해당 사상 성립의 ‘시기’와 ‘이유’ 및 ‘내용’과 ‘관계’ 등을 고려하여 한 길로 교통정리를 해 내었다. 그 과정에서 그의 ‘화쟁회통’의 논법이 확립되었다. 민중불교 혹은 서민불교와 상통하는 삼계교와의 긴밀한 연관도 그의 철학과 철학함의 맥락에서 엿볼 수 있다. 이처럼 분황은 당대의 문제를 해소시키기 위한 철학적 인식을 모색하며 온몸으로 철학하였던 철학자였다. 내가 이 에세이에서 분황을 이 시대에 소생시키는 이유는 곧 당대의 가장 첨예한 의단(화두)을 자신의 문제로 껴안고 철학하였던 한 철학자의 숭고한 삶과 생각을 묻고 배우기 위해서이다. 2009.09.30.
고영섭/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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