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가을엔 갑사의 오리숲을 거닐어 보세요. 글/사진: 이종원
2004년 계룡산 '춘마곡 추갑사'라고 했나? 봄에는 마곡사가 볼만하고 가을에는 갑사가 볼 만하다는 말인데 황금 계절에 이 곳을 꼭 찾으라는 말은 공주사람이 만들어낸 비약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그러나 매번 푸념을 늘어 놓으면서 가을이면 어김없이 갑사계곡을 찾는 것을 보면 나 역시 갑사의 묘미에 흠뻑 빠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태조 이성계가 풍수지리에 따라 이 곳에 수도를 만들려고 했고, 박정희 시절에도 이곳이 수도가 될 뻔 하기도 했다. 연기,공주가 행정수도로 확정되었으니 백제의 고도 공주는 1466년 만에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2004년 가을을 맞이하는 계룡산자락 사람들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그걸 느끼고자 갑사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유성을 지나치니 뿌연 안개속에서 계룡사이 슬그머니 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산자락에 닭벼슬처럼 삐죽 솟은 봉우리가 강유(强柔)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산이 서울 땅을 지켜내듯 계룡산도 공주 땅을 지켜 내길 바랄 뿐이다.
입장료가 너무 비싸요. 갑사 들어가는데 주차비 4천원, 입장료 3천2백원 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랬다. 전국을 휘젖고 다니고 있지만 나는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은 거의 가져 보지 못했다. 설악산이나 오대산은 강원도 외딴 곳에 떨어져 있어 자주 찾지 않는다지만 이 곳은 대전, 충청, 호남 사람들이 제집 드나들 듯 거쳐가는 곳이 아닌가? 계룡산을 자주 찾는데 입장료가 걸림돌이 되서는 않되겠다. 민족의 영산이기에 일부러라도 자주 찾게 만들어야 한다. 만약 한가족이 이 곳에 온다면 1만 5천원을 내야 갑사를 둘러 볼 수 있다. 갑사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것은 탐승객의 몫이다. 악착같이 둘러보고 그 이상의 감동을 만들어 내면 결코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1천5백원의 감동이 있을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15만원의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신목 갑사입구에 다 쓰러져 가는 나무가 하나 보인다. 갑사 창건과 함께 살아온 나무라고 전해진다.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대웅전에 등을 밝혔는데 매일 새벽 3시마다 불이 꺼지는 것이다. 어느날 사미승이 이상히 여겨 밖에서 지켜 보고 있었다. 자시경쯤이다. 3척 장신이 대웅전에 침입하여 심지를 들여내고 기름을 발에 바르고 절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장신이 바로 이 느티나무 앞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뒤를 쫒아간 스님은 깜짝 놀라서 주지스님께 알렸고 함께 이 느티나무로 달려 왔더니 나무뿌리에 불이 붙은 것이다. 그래서 갑사 스님들은 매년 정월 초 삼일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조중봉과 영규가 이 나무밑에서 출정을 모의한 장소였다고 전해진다.
갑사 가는 길 일주문이다. 여기서부터 오리숲이 길게 이어진다.
갑사가는 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곳이다.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갈수록 더러움이 떨어져 나간다. 인생은 그저 하염없이 걷는 것. 깨우침에 지름길이 있을리 없다.
해탈문이다. 단풍이 곱게 물들면 그 화려함에 취해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차라리 붉은 단풍으로 넘어가기 직전 마지막 청록의 빛을 발산하고 있을 때 갑사를 찾으면 좋다. 이렇게 스스로 위로해야 때이른 갑사방문이 즐거울 것이다. ^^ 아침이면 더욱 느낌이 좋다. 울창한 숲 사이로 하얀 빛줄기가 삐죽 튀어나와 오솔길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에 들어오실 때 마음의 짐을 지고 오셨는지요? 이 문을 나가실 때는 모두 벗어 버리고 가세요.
길게 숲길이 이어지다가 절집에 와서는 S자로 휘어지면서 마지막 숨고르기를 하게 만든다. 극락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다.
강당 '계룡갑사'라고 쓰여진 현판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충청도 사람의 우직함이 글씨에 배어 있다. 사찰 이름도 단 두글자다. 그래서 '으뜸 甲' 자가 유난히 강렬하게 느껴지는가 보다. 소풍 나온 비구니 스님이 강당의 창문을 활짝 열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나도 마음의 창을 열어야 할텐데.....
동종 (보물 478호) 강당 옆에는 선조때 만들어진 동종이 있다. 고리 역을 하고 있는 용 두 마리가 하고 있는데 그 표정이 살아 움직인다. 종에는 비천상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장보살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ㄱ' 자 모양의 진해당 건물이다. 7칸의 큼직한 건물로 대웅전을 감싸고 있다.
대웅전 석축 갑사는 백제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기록 되어 있다. 아마 웅진시절 중요한 사찰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천년동안 이어지다가 정유재란으로 잿더미가 되어 지금의 건물은 조선 중후반기의 건물이란다. 그러다보니 백제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유구는 거의 찾아낼 수 없다. 대신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석축만이 백제인의 자연미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자연에 대한 겸손이랄까? 부처님에 대한 능청이라고 할까? 그 순수함이 맘에 든다. 다포식이면서 맞배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내부의 닫집도 화려하다.
적묵당 툇마루에 걸터 앉아 절집 풍경을 만끽해 본다. 마당을 거닐고 있는 스님의 뒷모습도 새록새록 감동을 심어준다.
지붕위에 걸린 빠알간 감도 탐스럽다.
"나 아직까지 체력에 자신있어." 호기를 부리며 팔굽혀 펴기 시범을 보여주는 스님의 모습도 순수하기 그지 없다.
스님의 자유시간 수원에서 단체로 소풍나온 비구니 스님들이 갑사의 소박함에 취해 본다. 신세대답게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도 보기 좋다. 비구니 스님들에게 1시간 30분 자유시간을 주어졌나보다. 강당에서 윤장대를 돌리는 스님도 있고, 용문폭포를 보러 갑사계곡을 올라 가는 스님도 있고 반대 아랫마을로 가는 스님도 보인다. 그런데 강당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스님이 보였다.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인 모양이다. 계단에서 친한 스님이 내려왔다.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스님...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스님 저 좀 동행해주세요." 그들은 총총걸음을 옮기며 오리숲으로 사라진다. 뿌연 연무처럼......
성질 급한 단풍나무가 벌써부터 빠알간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그 아름다움을 아우릐는 계룡산이 길게 이어진다. 이렇게 갑사의 명장면들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다.
표충원 갑사가 아름다운 것은 이 땅을 지키는 호국사찰이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갑사는 왜군과 대항하는 승병궐기의 깃점이 된 것이다. 조용히 암자에서 수행하던 영규대사는 철당간 꼭대기에 올라 사자후를 토해냈다고 한다. 그는 왜병이 북상하자 800여 승려를 이끌고 충청도의병장 조헌선행과 연합하여 청주성을 수복하고 충청도를 지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금산전투에서 800여 승병과 함께 장렬하게 순절하셨다. 영조때 스님의 공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표충원을 세웠다고 한다.서산대사 , 사명대사 그리고 영규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그러나 눈엣 가시인 갑사를 왜병들이 그냥 내 버려 주지 않았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왜병들은 천년고찰 갑사를 하루밤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월인석보 판목 보장각 갑사에는 월인석보판목 (보물582호)이 있다.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쳐 엮은 월인석보는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공덕을 찬양한 것이다. 이 판목은 우리 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것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나서 한글을 이용하여 처음으로 만들 글이어서 한글연구에 귀한 자료란다. 한글날 갑사 여행후기를 쓰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우리나라 고유의 개인 삽살개가 장각을 지키고 있다.
갑사 사적비에는 공사에 참여한 승려, 시주자, 석공, 각공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그 아래쪽에는 부도군이 자리잡고 있다. 돌만 얹어 놓은 것도 있을 정도로 부도는 소박하다.
적묵당 올라가는 계단
전통찻집이다. 그윽하게 흘러나오는 계곡물과 더불어 한폭의 풍경화를 연출한다.
갑사 계곡물이 어찌나 맑은지 모른다. 빛에 반사된 모습이 보석처럼 영롱하다.
공우탑 대적전에 가려면 계곡물을 건너야 한다. 그 초입에 공우탑이 서 있다. 갑사에서 짐을 져주며 오르락 내리락 했던 소가 있었는데 그 영리한 소가 죽자 스님들이 소의 공을 기려 탑을 세운 것이다. 미물인 가축에도 정성을 쏟는 스님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따름이다.
대적전 원래 갑사의 금당은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규모가 크지도 않고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대적전 앞에는 갑사부도가 탑의 역할을 대신 하고 있다.
한때 기둥을 올렸던 주초석이 보인다.
갑사부도 (보물 257호) 원래 이 부도는 갑사 뒷산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지붕돌 기왓골 모양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팔각몸돌에는 힘이 넘치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꿈틀거리는 구름 문양 위에 천인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져 있다.
기단에 새겨진 사자문양이다. 고개를 돌리고 뒤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용맹스럽다.
기단에 새겨진 사자문양이다. 사람이 사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대적전의 기와골과 부도의 기와골이 잘 어우러진다.
갑사 부도에서 철당간을 가려면 대숲 터널을 지나야 한다. 그 곳에서 바라본 부도와 대적전의 모습이 기가 막히다.
철당간 (보물 256호) 전국의 폐사지를 다니면 황량한 들판에 당간지주만 덜렁 하나 올라가 있었는데 이렇게 당이 하늘로 치솟고 있는 모양을 보니 느낌이 새롭다. 역시 당간지주는 당이 올라가 있어야 제 맛이 난다. 더구나 이 철당간은 통일신라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천년 넘게 계룡산을 지켜온 셈이다. 원래 직경 50cm철통 28개를 이어 만들었다고 하는데 고종때 네 마디가 부러져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공의 용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어 기쁘다. 5번째 철통에 철띠로 세 번이나 돌려 고정시켜 놓은 것이다. 하늘을 찌르는 당간..그걸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이 솟는다.
해가 저만치 떠올랐는데도 달은 숨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용문폭포 계룡산 7개 계곡중에서 가장 빼어난 곳이 갑사계곡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을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용문폭포 주변이다. 용문폭포는 갑사에서 계룡산쪽으로 500미터를 산을 오르면 나타난다. 높이는 8미터로 조그만 폭포지만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끊기는 일이 없다고 한다.
폭포는 갈길 바쁜 스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갑사를 떠나며 오리숲에서 주차장으로 향하다가 소풍 나온 스님을 만났다. 1시간 30분동안 자유시간이 주어졌던 모양이다. "스님...다른 스님들은 산으로 올라 가셨는데 스님은 어인 일로 주차장쪽으로 가십니까?" "글쎄요." "대중들과 함께 하기 위해 그곳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 아닙니까?" "별 말씀을요...그냥 아무 생각없이 왔어요. 혹시 어떤 일을 하세요?" "전국에 여행을 다니면서... 사찰 사진도 찍습니다." '그럼 불법을 공부하십시요. 그럼 더욱 심오한 사진을 찍을 겁니다. " 이것이 갑사가 내게 준 선물이다.
*주의 모든 원고와 사진의 저작권은 저작자에 있습니다. 사전동의 없이 무단게재 할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됩니다
|
첫댓글 갑사가 이렇게 멋있는 곳이군요. 가보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