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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 스크랩 성지 사진 (21)
승리하세요 추천 0 조회 5 06.12.22 12: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에베소유적지, 서머나, 누가의 묘, 마리아의 집, 요한무덤교회, 셀죽 아데미신전터, 겐그리아, 고린도 유적박물관,


 

 


에베소 유적지 전경



니케 여신상(승리의 여신)

 


도미시안 황제 숭배 신전

 

역사상 에페소는 4차례의 네오코로스(Neokoros)가 될 자격을 얻었다. 네오코로스가 된다는 것은 황제의 신전에 파수꾼이 된다는 것으로 다른 도시들이 모두 부러워 할만한 특권이었다. 에페소는 처음으로 도미티안(81∼96년)에 대한 신전의 파수꾼 역할을 부여 받았다. 그러나 도미티안 황제가 자신의 한 하인에 의해 암살 당하자 에페스인들은 어렵게 얻은 네오코로스의 권리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그래서 그들은 황제의 아버지 베스파시안(Vespasian)을 신으로 모셔 이 신전을 그에게 바쳤다. 도미티안 황제는 사도 요한을 로마로 불러 고문을 가한 후 파트모스(밧모섬)로 유배 시켰던 황제이다. 요한은 그가 암살 당한 후 요한은 에페소로 돌아 올수 있었다. 이 도미티안 신전에서 발굴된 도미티안 황제의 조각상이 에페소스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도미티안 신전은 헤르메스와 카두세우스(의학의 상징으로써 뱀들이 서로 꼬여 있는 모양의 지팡이) 부조물로 장식된 2개의 동상 받침대 앞에 있다.

 


도미시안 신전

 


에베소 유적지 도로

 


에베소 병원터(아스클레피온 신)

 


오데온(Odeion) 소극장

 

오데온(Odeion)은 2세기에 세워진 음악당으로 극장과 같은 형태로 소극장이라고 도한다. 에베소의 정치 조직은 두 그룹이 있었는데, 하나는 보울레(Boule)라고 불리는 원로원(상원에 해당하며 300명으로 구성)으로 바로 이 소극장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또 하나의 그룹은 데모스(Demos) 라고 불리는 민회로서 모든 에베소인으로 구성되어있고 이들은 대원형극장에서 집회를 가졌다. 이 소극장은 콘서트 등 문화적 행사를 위해 사용되었는데 총 1,400명을 수용하였다. 가장 낮은 부분인 오케스트라의 중앙에 빗물을 받는 홈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원래 지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귀족 전용이었다. 맨 꼭대기의 대리석 좌석은 현재 없어졌지만, 아래 쪽의 좌석들은 잘 보존되어 있다. 계단 옆 부분에 새겨진 그리핀(머리와 날개는 독수리이고 몸은 사자인 괴물)의 발 모양은 오데온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오데온 옆에는 기원전 3세기 아우구스투스 통치때 세워진 시청 건물인 프리타네이온(Prytaneion)이 있다.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봉헌된 신성한 지역에는 영원히 꺼지면 안되는 성화가 타고 있었으며, 이 불은 크레테스라고 불리는 성직자들에 의해 꺼지지 않게 잘 관리가 되었다.

 


에베소 아데미 신전

 


에베소 트라얀 황제 신전(우물)

 

쿠레테스 도로 북쪽 끝에 위치한 12m 높이의 이 우물은 102~114년에 트라이안 황제에게 바쳐졌다. 우물 중앙 받침대 위에는 트라이안 황제의 동상이 있었고 그 발목으로부터 물이 흘러 나오게 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받침대와 오른발 한쪽만 남아있다. 이 곳에서 여러 황실가족의 동상이 발굴되어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황제 숭배신전

 


에베소 티베리우스 황제 신전

 


에베소 하드리안 황제 신전

 

하드리안(Hadrian) 신전은 크레테스 도로상에서 가장 눈길을 끈다. 목욕탕 옆의 하드리안 신전은 위대한 건축물의 본보기이다. 138년경에 지어져 하드리안 황제에게 바쳐졌으며, 고린도 양식의 신전은 정면에 독특한 부조물과 장식이 되어 있다. 건물의 현관입구에 4개의 기둥이 남아 있는데 중앙의 2개 기둥은 아치를 이루고 있다. 현관을 들어서 안쪽 정면의 박공 머리 위에는 메두사를 닮은 여성의 모습이 나뭇잎과 함께 부조되어 있고 그 아래 왼쪽부터 아테나신, 셀레나신, 아폴로신, 에베소의 창시자 안드로클로스, 헤랄데스,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아버지, 데오도시우스 황제, 에베소의 아르테미스신, 데오도시우스의 아내와 아들이 차례로 부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치문에는 행운의 여신 니케의 조각상이 있고 그 뒤 반원형에는 메두사의 조각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흉상


로마시대, 2세기,  빌라 몬타르도, 이탈리아 , 그리스산 대리석, 높이 61 , 대영박물관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117-138년)의 통치기는, 트라야누스 황제가 공격적인 대외확장정책을 편 직후에 해당되며, 로마제국의 평화적 통합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는 북방 야만족으로부터 국경을 지키기 위해 일명 하드리아누스의 벽이 건설되었는데, 이는 군사적 목적뿐만 아니라 권력의 상징으로서도 중요했다. 하드리아누스는 방방곳곳을 순례한 여행자로, 또 그리스문화의 애호가로서도 잘 알려져있다. 로마황제로서는 처음으로 턱수염을 길렀는데, 이는 철학자적 풍모 또는 그리스식 스타일에 대한 그의 추종과 연관되어 설명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하드리아누스의 스타일은 로마제국 전역에 유행했다.

로마에서 발견되었으나 그리스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흉상은, 머리를 왼쪽으로 돌린 황제의 영웅적인 나신을 잘 묘사하고 있다. 우아한 머리칼과 수염 처리는 주로 조각끌로 처리되었다. 새겨진 홍채와 패인 눈동자 등의 눈 처리형식은, 초상 조각상에 있어서 이 시대에 처음으로 도입된 형식이다.

 


에베소 셀슈스 도서관

 

셀수스 도서관은 에페소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로 쥴리우스 셀수스가 소 아시아주의 총독으로 114년에 70세의 나이로 죽게 되자 그의 딸 쥴리우스 아퀼라가 그의 아버지 셀수스를 기리기 위해 이 도서관을 건축하여 125년에 완성하였다. 도서관의 정면 입구는 2층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는데 지혜, 행운, 지식 그리고 선행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4명의 여성들의 석상이 있다. 도서관 내부는 습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중 벽으로 되어 있어서 당시에 소장되어 있던 수 천 권의 두루마리책을 보호하게 했다. 그러나 262년 코트족 침략 때 모두 소실되었다.

 


아고라
   

아고라는 시장을 뜻한다. 대극장으로 가는 대리석 도로의 서쪽에 위치한 아고라(Lower Agora)는 네로 황제 시대에 건축된 것으로 아직도 발굴중이다. 이곳에서 3개의 문이 있다. 오데온 극장 건너편에 있는 아고라(Upper Agora)는 사방이 가로 세로 110 m로서 기원전 3세기 경에 설치된 에베소 도시 생활의 중심지였다. 아고라는 두 줄의 화랑으로 둘러싸여있고 그 뒤에 상점들이 줄서 있어서 청동, 구리제품, 등잔을 비롯한 많은 도자기 제품, 포도주, 꿀, 고기, 비단, 보석 등이 거래되었다. 그 때 당시의 모든 여성들은 이곳에 꼭 한번 오고자 했다고 한다. 다른 시장터가 모두 그러하듯이 이 시장의 한 가운데에 신전이 위치해 있었는데 이 신전은 처음에는 이집트의 이시스 신전(Isis Temple)이 있다. 로마시대에 아고라는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사람들은 밭에서 입는 옷을 입고 아고라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아고라의 기념문은 도서관 바로 옆에 있다. 아고라는 기둥과 둥근 지붕형 구조로 만들어진 대단히 인상적인 곳이다. 시장터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이 신전은 이집트의 신 세라피스를 숭배하던 신전으로 2세기에 로마의 안토니우스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에페스가 항구도시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밀접한 무역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문화교류가 활발했던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해시계와 물시계가 아고라 중앙에 놓여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문

 

헤라클레스 게이트는 대리석 받침대에 새겨진 부조물을 따서 지었다. 쿠레테스(크레테스) 도로가 시작되는 부분에 위치한 이 기념 문은 2층의 구조로 되어있었다. 여기에 있는 두개의 기둥에는 Nemea,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Heracles의 모습이 부조 되어 있어서 이 문을 헤라클레스의 문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네미아 골짜기에 사는 사자를 죽였다고 하는데 이 사자를 죽이는 일은 이 세상에서 12가지 어려운 일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이 문은 귀족과 평민의 경계선이 되었다.

 


에베소 음악당(극장)

 


 

피온산 기슭의 비탈을 이용해 건설된 이 극장은 리시마쿠스 시대에 지어졌으며 오늘날의 모습은 트라얀(Trajan) 황제 시대의 모습이다. 따라서 로마-그리스 타입으로 무척 아름다운 극장의 표본이 되겠다. 고대 극장이 모두 그러하듯이 3부분으로 되어있다. 약 18m 높이의 무대 정면 건물은 3층으로 되어있고 각종 부조와 조각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약 40 m 지름의 중앙 무대는 정교한 음향학적 구조로 되어 있어, 배우가 작은 소리로 대화를 해도 관중석 끝자리의 사람도 모두 알아 들을 수 있었다 한다. 관중석은 외곽까지 150m의 크기이며, 각 단은 22줄의 좌석이 배치되어 있어 약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곳은 기독교 역사에서도 의미 있는 곳으로 사도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 이곳에 들러 선교를 하다 에페스의 은 세공장이들로터 수난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성모 마리아의 교회

 

네스토리우스(Nestorius)가 "동정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인간인 예수의 어머니"라는 이론을 주장하였는데 이 주장이 나중에 소요를 이르키자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에페스에서 종교회의를 열 것을 명령해 약 200여명의 권위자들이 약 3개월에 걸쳐 토론한 끝에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결정하고 파문시켰다. 이 교회는 원래 2세기에 지어져 고등교육기관으로 쓰여졌다가 4세기에 교회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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