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2022년 삶의 시간이 흔적만 남기고 과거의 경계선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단 하루만 남겨 놓고 있습니다. 과연 내가 의지하며 살아온 그 많은 시간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과거라는 공간 속으로 떠밀려
가면 흩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쌓이는 걸까? 이러한 의문은 해가 바뀔 적마다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해를 마지막으로 넘기는 것으로 알고 있는 12월 31일 자정에서 새해 1월 1일로 넘어가는 시간은 순식간이라 표현을 사용하는데, 순(瞬)은 눈 한 번 깜빡거리는 것을 의미하고 식(息)은 숨 한 번 내쉬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또한 생각이 스치는 한 순간처럼 짧다 하여 일념이라 말하기도 하죠. 특히 불가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찰나라고 말하는데 실체를 지니고 있는 듯 보이는 세상의 존재물은 사실 한 찰나마다 생멸을 반복하고 있어 실체가 없으므로 찰나무상이라 가르칩니다.
과거는 실체가 사라지는 것이고 현재는 실체가 있지만 바로 꿈과 같은 미래에서 현재 들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니 시간은 아무래도 영물같이 느껴집니다. 시간은 무념으로 바라보면 흔적도 없는 듯하고 유념하게 바라보면 실체로 다가오는 것 같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흘러가는 시간은 무심하게 바라보고 오는 시간은 유념해 살피며 새로운 계획으로 새해부터 출발한다면 꿈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갖는다고 생각해 봅니다. 우린 보통 평소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기 위해서라면 늘 같은 위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연적인 장애물을 벗어나야 비로소 내가 살고 있는 이외 것들을 볼 수 있게됩니다. 그래서 그랬을까? 한문에는 산(山)과 견(見)이라는 두 글자가 있는데 두 자를 조합하면 현(峴)이 됩니다. 고갯마루라는 뜻으로 올라서면 멀리 보인다는 뜻이 됩니다. 지는 해나 떠오르는 해를 제대로 보려면은 고갯마루가 제격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년과는 달리 선술집에 모여 앉아 통음하던 습관을 버리고 산에 올라,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2022년을 배웅하기로 하였습니다. 사자성어(四字成語)에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글이 있습니다.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의 준말로 지혜 있는 자는 사리에 통달하여 물과 같이 막힘이 없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의리에 밝고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므로 산을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해마다 하나, 둘 사라지는 친구들의 주변을 살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늙음이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흔들어 놓습니다. 기억과 언어와 생각과 행위마저도 어눌하게 하고 본모습도 빛바래게 합니다. 갈수록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건사되는 것은 없습니다. 퇴락은 완고한 자연의 법칙이니 무엇을 탓할 일도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맥 놓고 모든 것을 망연하게 바라볼 것만은 아니 것 같습니다.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맺어진 의리를 산과 같이 중후하고 물과 같이 막힘없는 사리로 매듭지으려면 요산요수의 성찰이 필요다는 생각에서 취한 일몰 행사입니다.
일몰 후에 분명한 것은 멈춤이 아니라 일출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환희의 순간이며 해오름 이후의 시간은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텅 빈 공간을 선한 목적으로 다듬어 가며 이루는 성취는 바로 은총에서 비롯된 행복입니다. 언어적으로 목적한 바를 이루는 것을 성취라 합니다. 목적이 보편하고 선한 나눔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성취의 은총을 입겠지만 남을 그르치고 자기만의 탐욕이 선행된 것이라면 그 목적을 성공하더라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켜 자신을 얽어매는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문제 가 있는 악습들은 모두 버리고 선함으로 선별한 계획을 세워. 새날이 열리는 그 공간에는 새로운 것을 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마태복음 9. 16-20) 이 말씀은 구태의 모든 습관을 버리라 하시는 것입니다. 오랜 종교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영적교감을 거부한 채 이기심을 바탕으로 교만에 젖어드는 경우가 생깁니다. 자기 성찰을 통해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복음 말씀을 기억하며 2023년 공백을 채워 나가며 더 큰 행복을 성취하시고 나누는 일상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더 건강하시고 더 큰 행복과 은총의 길로 나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늘 배려해주시고 성원해 주시는 마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2022년을 보내는 일념으로
세베리노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