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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자를 이해해야 하는가
평원지역에서는 작은 집단보다는 큰 집단이 안보에 용이하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인식한 고대 중국인들은 집단이나 사회조직을 되도록 크게 만드는데 관심을 가졌고, 아울러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람을 영웅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민중의 열망에 영웅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륙의 대통일에 관한 담론과 비전을 강구해왔으니,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대륙에 거주하는 사회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큰 것이 아름답다는 미학적 의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大’의 미학이다.
그러나 큰 것이 아무리 중원지역의 안보에 용이하다고 해도 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즉, 조직이 크면 클수록 관리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조직을 통일체로 일사분란하게 다스리려면 구서원간에 또는 하위 조직들간에 갈등이 없는지 세세히 살펴서 상호간의 모순을 찾아내 미리미리 해결해주는 것이 지도자의 의무이자 덕목일 것이다.
그러려면 철저하고도 정확한 조사와 통계에 근거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실사구시적인 통치가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 실사구시적인 통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해낸 것이 이상적인 국가 및 사회체제와 그 속에서 사는 인간의 바람직한 인격의 모습을 관념적인 틀로 먼저 만들어놓고 이를 하나의 이념으로써 세계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통치 방식이었다
이를테면 삼강오륜이라는 윤리적 질서의 틀안에서 仁義로 수양된 인격체들이 상호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小康사회가 바로 이 모델이리라.
이 모델은 너무 오래 지속돼 내려져왔으므로, 이를 바꾸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래도 유가의 모델과 도가의 모델이 경쟁함으로써 이 대안이 지양되는 효과가 있었지만 송대 이후에는 아예 신유가로 통일되면서 보완적 차원의 수정만 약간 있었지 근본적 변화는 없었다.
이는 중국의 혁명이 기본적으로 역성혁명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에 기초하지 않은 관념적인 틀을 각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획일적으로 적용한다면 지역적인 저항에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통치방식을 적용하려면 필수적으로 저항을 근본적으로 무력화시키거나 길들이는 작업이 수반돼야 한다.
즉, 틀이 당연한 이치임과 아울러 이 틀에 순종하는 것이 마치 천륜을 지키는 일이나 의무처럼 여기게 하는 헤게모니의 확립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매우 일찍부터 이치(틀)를 헤게모니로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발달했다.
관념적인 틀이 구체적인 세계를 구축해낸 결과 중의 하나가 형이상학적 윤리관인데, 이것은 기실 아무것도 없는 無위에 세워진 사상 체계이므로, 이것이 사람들에게 당연한 이치로 여겨지는 헤게모니로 유지되려면 이를 관습적으로 각인할 수 있는 문화적 도구나 통로가 필요하다.
이 역할을 중국에서는 한자가 떠맡았으니,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중국문화는 한자문화라고 정의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관념적인 틀인 이데올로기를 헤게모니로 만드는 데에는 대략 두가지 방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이념투쟁을 통해 헤게모니로 만드는 것인데, 이는 이념과 이념 사이에 우열을 다투게 해 다른 쪽을 배제함으로써 헤게모니로 정착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프롤레타리아 혁명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는 근본적으로 ‘부정의 부정’이라는 경쟁적 토대위에서 진행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실 안정적이어야 하는 헤게모니의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힘들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 통로를 통해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문화적 통로는 사회를 구성하는 기능을 수행하므로 근본적으로 억압과 금기에 의존한다.
그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언어와 문자의 활용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억압과 금기의 언어와 문자를 일상적으로 쓰다 보면, 그 억압의 이면에(무의시적인) 향락(주이상스)이 발생해 사용자들이 자연스럽게 억압과 금기에 복종하게 되고 이를 통해 헤게모니가 형성된다.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것은 자신을 억압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상대를 범하지 못하게 하는 금기이기도 하다.
금기는 그 너머에 금지되지 않은 무한한 향락(주이상스)이 있을 것 같은 환상을 발생시키는데, 이것은 억압이 주는 피학(마조히즘)과 상승작용을 해서 상호간에 과잉적 힘을 생산한다.
이것이 사회적 윤리로 현상한 것이 바로 장유유서인데, 이는 강압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장유가 각자 즐거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긍정의 긍정’이라는 토대위에서 헤게모니로 정착된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적 통로에 의해 형성된 헤게모니는 그 과정에 저항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합의가 자연스럽다는 장점이 있다.
한자가 발휘하는 힘에는 두가지가 있다.
즉, 단순하게 한 사회의 기록수단인 문자로서 갖는 기능적 힘이 먼저 있고, 아울러 이 힘을 바탕으로 해서 증폭되는 신화적 힘이 존재한다.
한 사회에 통용되는 문자는 그들이 쓰는 언어의 특성과 그대로 담기 위해서 고안된 문자이므로, 그들의 사고와 문화를 반영하는 기능이 내재돼 있기 마련이다.
이 기능적 힘은 배를 부르게만 하면 제 기능을 다 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를 바꾸고 역사를 바꾸는 힘은 이 기능적 힘만 갖고서는 부족하다.
이를 뛰어넘는 증폭된 힘, 또는 취하게 하는 힘이 있어야 신화가 가능한 것이니, 이 힘이 비유컨대 술의 힘이자 시적인 힘이다.
한자의 신화적 힘은 한자의 태생적인 기능적 힘이 강렬한 사회적 욕망을 만났을때 가능했던 것이다.
슬라예보 지젝은 《죽은 신을 위하여》의 서문에서 발터 벤야민의 말을 뒤집어 “신학이라는 꼭두각시는 언제나 승리한다. 신학이 역사적 유물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면, 누구와 싸워도 그 게임은 승산이 있다.
오늘날 역사적 유물론은 알다시피 보기 흉할 정도로 삐쩍 마른 터라,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한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을 여기에 원용한다면 신학은 신화적 힘에, 역사적 유물론은 기능적 힘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신화적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힘은 기능적 힘의 도움과 조종 없이는 발휘될 수 없다.
단, 여기서 주의할 것은 신화적 힘 뒤에 기능적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모르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발각되면 신화적 힘은 무너지게 돼 있다.
중국이 일찍부터 언어. 문자학에 눈을 뜨게 된 배경
헤게모니는 기실 언어의 효과로서 이의 획득은 곧 권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권력은 헤게모니의 유지를 위해서 항상 언어를 장악해야 한다.
고대의 통치자들은 소리(시니피앙)로 사물과 행동에 일일이 이름을 붙임으로써 사물과 행위들을 의미론적으로 폐쇄시키려 하였으니, 이는 바꿔 말하면 모든 사물과 행위를 하나의 상징체계 안에 포섭한 후 이 체계를 독점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이 체계안에 종속돼 있는 모든 사물과 행위들, 즉 세계를 장악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표상이라고 부른다.
표상이란 부정형의 실재를 의도된 정형으로 고착시킨다는 의미에서 권력이 된다.
이러한 표상의 권력하에서 통치자가 의도하는 바대로 특정한 의미와 가치가 조작될 수 있는 것이다.
권력은 이데올로기로 표상되고, 이데올로기는 언어에 의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효과이므로 권력은 담론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간은 체계로서의 말에 의해서 말해지고, 세계는 담론 체계에 의해서 그 모습이 묘사되고 기술된다.
담론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그 대안으로 과학을 통해 세계를 객관적으로 설명한다고 하지만 니체가 간파한 대로 아무리 과학으로 세계를 탐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묘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학도 결국은 수사학, 또는 담론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인간은 담론체계에 익숙해짐으로써 권력의 체계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때가 인간이 지식의 주체가 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담론은 주인 기표를 텍스트로 조직해 주체에게 주입시킬 때 주체는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그 담론이 매우 효과적으로 헤게모니를 갖게 된다.
이때 텍스트가 시적일수록, 그리고 주입의 대상인 주체가 어릴수록 유리하다.
왜냐하면 시적 텍스트일수록 감성적 호소력이 강하고 주체가 어릴수록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텍스트가 이데올로기를 말할 때 기표들을 조직하는 형식, 다시 말해서 修辭가 중요한 것이지 내용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지시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못된다.
아동교육에서 시와 노래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성의 역사성을 설명하면서 어린 시절에는 현재라는 순간에 살지만 나이가 들면서 기억이 현재의 인상을 제압한다고 설파했다.
그러니까 어려서 배우고 접한 텍스트는 현재의 실제로 받아들여지면서 세계로 고착되고, 나아가 주체의 여생이 형이상학적 세계가 된다.
소쉬르, 뒤르켐, 프로이트 등이 발견한 “인간의 언어와 행위, 그리고 사회는 이를 지배하는 이면의 규범이나 체계가 있다”는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주체의 행위란 텍스트가 무의식상에 구조화한 내재적 체계가 발현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텍스트의 제작은 권력의 진실을 기획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자본권력은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면 그 소비자는 그 상품과 더불어 어떤 영웅적인 주체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언어를 각종 방송, 언론매체를 통해 퍼뜨리려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아직 더 탈 수 있는 멀쩡한 중고차를 버리고 빚을 내서라도 신제품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본권력은 이를 위해 ‘파이낸싱’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꿔주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대타자의 담론이고, 이 담론은 유효하게 유지시키기 위해서 자본권력은 매체를 장악하려는 것이다.
한 대에 나온 《설문해자》, 《석명》등을 비롯한 각종 문자서들이 관학으로 출현한 것은, 권력이 주체들(백성)의 욕망으로 인하여 다양하게 나타나는 환상들을 억압하여 권력의 담론을 형이상학적 실재, 곧 헤게모니로 인식하도록 하는 기획의 결과인 것이다.
중국의 경우 이러한 권력의 기획에 한자가 동원됐던 것이다.
헤게모니는 궁극적으로 해석권의 장악에서 결정된다.
즉, 아무것도 결정돼 있지 않은 실재적 세계는 상징적 질서에 의해서 규정되는데, 이 규정이 바로 내가 인식하고 살아가는 세계의 본질인 것이다.
이러한 세계를 구성하는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힘은 설득력 있는 해석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여기서 해석의 설득력은 사회구성원이 즐겨 접하는 텍스트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텍스트들은 실재에서 떨어져나와 메타적 위치로 올라가 현실을 규정하는 질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우리가 경전이나 고전을 높이 떠받드는 것은 이 때문이며, 이는 또한 죽은 아버지라야 강력한 권위의 질서(거세 또는 금지)로 귀환한다는 살부신화의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춘추공양전》에 보면 “현실에서는 허락한다 하더라도 문장에서는 허락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는 말하자면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사건이 실재에 일어났다 하더라도 텍스트(경전)가 이를 사건으로 규정해주지 않으면 아무런 사건도 아니라는 말이다.
즉, 사건이나 사물이 실재로서 존재한다고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아버지와 같은 상징적질서가 서 있어서 존재로 규정해주어야 비로소 존재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삶의 윤리적 근거로 삼는 텍스트가 우리 자신의 존재를 얼마나 중대하게 좌우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설해문자》란 어떤 책인가
우리가 자전에서 글자를 검색하고자 할 때에는 먼저 부수를 찾아간 후에 부수를 제외한 나머지 필획 수에 해당하는 난 속에서 찾으면 된다.
이 부수라는 개념은 허신이 처음 고안하여《설문》편집에 활용한 것이다.
문자가 권력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한무제 때 동중서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신흥 지주계급의 세력을 등에 업고 정권을 수립한 한대정권은 고조 유방이 평민 출신이어서 구귀족세력의 반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등 정통성 문제로 고심해오고 있었다.
동중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창출해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오행설과 삼통설이다.
이들은 모두 한대의 정권이 우연히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천명으로 예정돼 있었음을 설명하기 위한 담론이었다.
동중서는 이러한 담론을 정론으로 굳히기 위해서 경서의 구절들에 의거했는데, 이 구절들이 동원될 수 있었던 것은 해석(당시는 훈고라고 불렸음)이라는 작업을 거쳤기에 가능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춘추》경문의 첫 문장인 “원년춘왕정월”에 대한 해석이다.
이는 周歷에 의거하여 단순하게 연월일을 기록한 것인데도 동중서는 확대해석한다.
단순한 기일의 문장에서 천자는 땅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다는 내용을 해석해낸 것이 바로 훈고작업이다.
한대의 경전해석(경학)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발달했던 것인데 이러한 훈고는 서한경학의 주요내용이었다.
헤겔의 역설에 의하면 종교적으로 극단까지 발전하면 종국에는 이성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한대의 경학도 종교적으로 발전해나갔을때 이성적인 학문 경향과 조우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고문경학이었다.
고문경학은 그 이전의 경학(고문경학의 출현이후 이는 금문경학으로 불리게 된다)과는 달리 문맥상의 현상적 의미를 지양하고 글자가 갖는 고유한 의미를 귀납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설문》은 동한의 허신이 저술한 문자로서 모두 9353자에 대한 자해를 수록하고 있다.
특히 자형에 근거해 자의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글자들을 부수에 따란 분류, 배열한 것은 매우 독창적이다.
《설문》은 학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중국사회에 영향을 끼친 바 크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수의 발명이다.
부수의 발명은 겉으로 보면 자전의 발전에만 국한되는 듯이 보이지만 여기에는 그리 간단치않은 구조와 배경이 숨어있다.
즉, 금문경학과 고문경학이 경서의 해석을 놓고 우열경쟁을 벌인 것은 궁극적으로 지배이데올로기에 관한 논쟁이자 나아가 권력투쟁이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한대 초기에는 신화적 해석이 먹혀들어 금문경학이 왕권확립에 기여했지만 도가 지나치면서 그 효력이 한계에 다다르자 이번에는 합리성을 갖춘 담론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수요에 부응한 학술이 고문경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담론이 아무리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왕권의 헤게모니를 입증하는 기능을 포기하고서는 존재가치를 부여받지 못한다.
그렇다면《설문》의 부수와 문자 배열법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중국 고대의 名學에 대해 잠시 알아볼 필요가 있다.
고대 중국에는 언어학은 없었어도 대신에 명학이란 게 있었다.
명학이란 글자 그대로 이름에 관하여 탐구하는 학술이다.
명에 관해서는 공자를 비롯하여 묵자, 장자, 관자, 순자 등 제자백가들이 비교적 상세히 언급한 바 있고 심지어는 혜시, 공손룡 등과 같이 명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토론한 名家도 있었으며, 《이아》와 같은 명사전도 있었다.
이처럼 고대 중국에서 명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명이란 곧 사물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표상은 권력행위이다.
즉 명이 표상하고자 하는 사물 또는 대상을 당시에는 ‘實’이라고 불렀는데, 이‘실’이란 기실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카오스적인 것이어서 여기에 어떤 이름을 붙여 개념을 규정하거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면 사물의 속성이 고정된다.
“언어가 사물을 창조한다”는 말은 여기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사물의 창조는 언어의 질서를 따르기 마련인데 이것이 사물의 질서이다.
그러니까 명을 장악하는 것은 권력을 장악하는 일이 된다.
춘추전국시기의 제자백가들이 명 또는 명분과 언어에 집착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언어에 따라서 사물의 질서가 만들어진다면 명은 일종의 세계를 설명하는 논리학이 된다.
《장자》<天下편>에 보면 “《춘추》는 이로써 명분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란 구절이 있다.
《춘추》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편년체의 역사기록이다.
즉, 일관된 역사철학을 가진 한 사람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 아니므로 기록자체는 카오스적 상태, 즉 의미중립적인 상태에 있었다.
이 기록이라는 명을 어떻게 일관되게 합리적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거기서 의미화된 논리체계가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명분이자 윤리가 되는 것이다.
그르므로 여기에는 철학이 개입된다.
이를테면, 한대에 출간된《춘추공양전》은 철학에 기초한 명분, 즉 창조된 질서 중의 하나가 된다.
권력은 이 명분을 근거로 체제를 구성하는데, 체제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틀로 서야 한다.
그래서 명분을 형이상학적 질서를 굳히는 작업에 들어가는데 동중서의《춘추번로》는 바로《춘추공양전》의 명분을 형이상학화하기 위해 지어낸 책이다.
명을 매개로 하여 사물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는 언어적인 틀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하는데 이러한 학술을 고대에는 形名學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전까지는 주나라의 예치(공자는 주나라의 禮를 주공이 정비한 것으로 보았으며 자신은 이를 다시 쓴 것에 지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논어》<술이편>의 ‘術而不作’은 바로 이를 가리킨다)를 유일한 질서로 알고 있다가 춘추시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예치의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이로부터 예라는 질서가 유일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당시의 사상가들은 형명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그들이 궁극적으로 성취하려했던 것은 혼란스럽고 모순된 현실을 조리 있게 하나로 엮을 수 있는 논리적인 질서의 틀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이처럼 중국은 매우 일찍부터 통일적인 세계를 구성하고 또 유지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왔다.
중국이 이렇게 이데올로기가 발달한 이유는 앞서 설명한 바대로 광활한 대륙이라는 환경적 요소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소통의 도구로 한자를 사용했다는 점에서도 기인한다.
즉, 사물에 명을 붙일때 그 속성을 규정하거나 이미지를 각인시킬때 한자이 속성을 활용하기 때문에 형이상학적으로 사물을 고착시키기가 용이하다는 말이다.
이렇듯 사물의 속성을 해설하는 이른바 명물훈고가 발달한 데는 명학이라는 학술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이 명물훈고의 방법은 오늘날처럼 사전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닌 분류의 방식이었다.
한자의 헤게모니를 구성하는 원리
이미지의 의미화는 기표의 두 측면에서 만들어지는데, 중국어의 경우 하나는 청각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시각이미지이다.
청각이미지는 기실 중국어뿐만 아니라 모든 언어에서 의미 생성의 매개로 기능한다.
즉 소리를 매개로 하지 않는 언어는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소리가 소통의 매개가 되기 위해서는 음소가 통일돼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우리가 외국어를 듣고 이해하지 못하는 근본원인은 음소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안에서도 음소가 통일돼 있지 않으면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방언분기의 개념이다.
중국은 지역이 광활해서 음소를 통일된 상태로 유지하기가 곤란하여 방언의 분기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학자 자오위안이 <나의 언어사전>에서 기술한 바와 의하면 중국에서 분기가 가장 극심한 방언은 환남 방언인데, 이 방언구는 겨우 54킬로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는 사람들끼리 언어 소통이 곤란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 경내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끝으로 가면 거의 외국어수준으로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언어에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은 반만 년 이상의 역사를 통일 국가체제로 유지해왔다.
언어가 다르면 사회도 분화, 또는 분열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도 말이다.
이 힘의 원천을 중국인들은 한자로 보고 있는데 이는 근거있는 주장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자의 속성을 분석해보면 충분히 근거가 있는 주장이라 판단된다.
즉, 이러한 언어의 한계를 보완한 것이 문자이다.
한자는 의미를 시각이미지의 형태로 표기하였기 때문에 음소는 다르더라도 의미는 모호하나마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미지는 표상하려는 대상과의 유사성, 즉 동기가 높아서 의미의 분기를 크게 일으키지 않으므로 의미를 보편적인 범주로 공유하는데 유리하다.
‘孝’자의 자형은 동아시아 지역의 효사상의 근본관념을 형성하였고, ‘中’자는 중용의 관념을 형상화해 그 형상대로 해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인간관계에서 중간에 머물면서 한쪽으로 튀거나 치우치지 않으려 한다.
역사를 보더라도 극단적인 발전을 회피하려 하므로 동아시아에서는 혁명다운 혁명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유토피아도 바라보려 하지 않았음을 별견할 수 있는데 이는 바로 ‘中’자가 생성하는 관념에 기초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것이 바로 한자의 표의성이다.
중국인들은 보편적 범주를 공유하는 데 유리한 이 표의기능으로 글로 묻고 글로 답하는 이른바 筆問筆答의 소통방법을 고안해냈다.
이 방법은 중국 경내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역내에서도 활용이 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국제성을 가졌다.
이러한 소통방법은 앞서 언급한 한자의 표의성뿐 아니라 좀더 근본적으로는 중국어의 고립성에서 기인한다.
하나의 문장이 성립되기 위해서 형태변화, 시제, 수 등의 문법적 요소들이 논리적으로 일치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한국식이나 일본식의 문법이 다소 개입되어도 보편적 범주의 의미파악에는 지장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어에는 사실상 문법이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문법은 기실 유럽언어에서 나온 개념이다)
이 표의성이 세계와 대상들을 보편적으로 창조하는데 기여했으므로 중국은 통일체제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에서 아이콘, 이모티콘, 로고 등과 같은 이미지들이 국경을 넘어 돌아다니며 의미를 공유시키는 현상을 통해서 우리는 논리성의 정화인 컴퓨터가 궁극적으로 비논리적인 이미지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또한 한자가 갖는 표의성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여실히 입증하는 예이기도 하다.
논리성을 극도로 추구하다보면 종국에는 비논리를 만나게 된다는 헤겔의 역설이 여기서도 증명된다.
넓은 대륙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중국인들은 이치라는 것을 고안해냈다.
이 이치를 ‘理’라고 불렀는데, 쉽게 풀어 말하자면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이자 아울러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질서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치를 먼저 인정한 다음 그에 따라 실천하는 문화패턴을 형성했다.
여기서 ‘인정’이란 기실 믿음을 뜻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주역》은 중국인들이 실천의 근거로 삼는 대표적인 ‘이치’를 담은 텍스트이다.
《주역》의 원리는 이른바 八卦의 조합으로써 변화의 패턴을 만들어 놓고 사건의 추이를 이패턴에 맞춰 연역적으로 해석해서 예측하는 것이다.
팔괘란 사물의 변화요소를 하늘, 늪, 불, 우레, 바람, 물, 산, 땅 등으로 선정한 후 각 요소의 속성을 추상화해서 乾, 兌, 離, 震, 巽, 坎, 艮, 坤 등 여덟 개의 괘로 상징한 기호체계이다.
《좌전》의 역사기록은 주역의 이치에 따르지 않는 것은 곧 실패를 뜻한다는 케리그마를 전달하므로 부지불식간에 이치는 그들의 행위와 실천을 지배하는 강력한 상징으로 기능해왔다.
이처럼 주역의 이치는 그것이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에 관계없이 오직 사람들의 믿음에 근거해 현실과 실천을 지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관념이 믿음으로 발전해서 헤게모니가 된것은 한자의 이미지가 주는 합리적 설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사회적 틀로 기능해온 가장 중요 한 윤리가 三綱이다.
삼강이란 사회적 조직의 근본 기초를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지아비와 지어미의 관계로 보고 전자(임금, 아비, 지아비)와 후자(신하, 아들, 지어미)를 주종관계로 규정하는 선언이다.
선언이 정통성을 가지려면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는 합리적 설명이 있어야 한다.
즉 전자와 후자는 선천적인 우열관계에 있어야 하는데 그 관계가 한자를 자연스럽게 설명한다는 말이다.
담론이 정론이 되어 사람들이 영속적으로 따른 규범으로, 다시 말해서 형이상학적 이치로 기능하게 만들려면 절대로 변화하거나 움직여서는 안된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담론의 시작을 우조천체로부터 시작한다.
《천자문》도 “천지는 그윽하고 누르며, 우주는 넓고, 거칠다”로부터 시작하지 않는가.
고대 중국의 천문학은 모두 이러한 수요에 의해 시작되고 발전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삼강이 형이상학적 윤리가 된 것 역시 천문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한다.
먼저 사회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세가지 관계가 안정돼야 한다.
그러려면 세가지 관계가 확고한 주종관계로 규정돼야 하는데 이 관계가 되려면 주인은 완벽해야 하고 종에게는 결여가 있어야 한다.
이를 입증할 증거를 찾기 위해서 그들은 하늘에 주목했고 거기서 해와 달을 발견했다.
일 년 내내 밝은 빛을 발하고 꽉 찬 日이 이지러져 있고 비어있는 月을 대비시키면서 완전한 존재인 주인이 결핍된 존재인 종을 지배하는 것이 옳다는 담론이 함께 정당성을 갖는다.
즉, 우등한 것이 열등한 것을 지배하는 것은 결코 인위적인 담론이 아니라 천륜적인 정론이라는 관념이 뇌리에 각인된다.
그래서 등장한 형이상학적 이치가 세 개의 벼리, 즉 삼강이다.
여기서 벼리란 그물의 실을 감아주는 테두리의 굵은 줄을 말하는데 이는 사람의 행위와 실천의 근거가 되는 윤리와 질서를 상징한다.
이러한 관념적 배경으로부터 “하늘의 해가 하나이듯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이른바 불사이군의 신조가 생겨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담론을 이미지를 주는 매개로 우주천체와 유비시켜놓으니까 이치와 힘이 강력해져서 천체가 바뀌지 않는 한 절대 바뀌지 않는 헤게모니를 갖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지역에서 主從적 윤리 관념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것이 한자의 시. 청각이미지가 형성시킨 강력한 관념의 한 예이다.
한자가 구성하는 사물의 질서
일반인들 중에는 흔히 한자를 표의를 위한 상형문자로 여겨 그림 그리듯 그려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자가 그림문자에서 시작한 면이 있지만 한자가 그림은 아니다.
만일 그림이라면 중국인들 비롯해 한자를 많이 외우고 쓰는 사람들은 기억력이 비상한 것이리라.
한자가 음소문자에 비해 사용하기가 다소 어렵고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은 이에 적응할 수 있는 나름의 원리나 원칙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것이 바로 한자의 造字규칙이다.
즉 한자는 일정한 규칙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글자 수가 많아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자는 단어를 표기하는 표어문자이기 때문에 단어가 새로이 생겨나면 원칙적으로 그에 따라서 새로운 한자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조자방식은 무원칙한 게 아니라 기존의 글자에서 가지를 쳐나가는 파생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렇게 해야 그 많은 문자들을 쉽게 외울 수도 있고, 관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문자의 파생을 일컬어 전주라고 부른다.
전주란 기본적인 형상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념상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거나 어음상에 변화가 발생했을때 새로운 글자가 파생적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형태와 장소, 즉 속성과 구현이라는 두 가지 상호관계의 측면으로 합성해 보았는데 이것은 형상이라는 조자법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그러다보니까 단어와 단어 사이에 연관성이 발생하고 아울러 파생관계가 만들어졌다.
이 파생관계가 바로 육서에서 말한 전주의 본질이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사물이 생겨서 이를 표기하기 위해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내는 운동과정은 전주이고, 이 과정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글자를 만들어내는 방식 중의 하나가 형상인 것이다.
즉, 파생글자를 만들어 내기에 형상이 용이하다는 것뿐이지, 파생운동과정에서 구체적 조자는 상형, 지사, 회의 등도 동원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점을 혼동하면 안된다.
아무튼 형성으로 만들어지는 글자들은 그들 사이에 파생관계를 구성하는데 이러한 글자들 사이의 관계는 다시 사물과 사물의 관계로 대체되면서 사물의 질서를 형성한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제작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
사물의 의미를 이미지로써 규정해 주는 한자의 메타인식기능을 이데올로기를 당연한 이치로 여기도록 유포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
이것이 한자가 권력에게 매우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계는 묘사에 의해서 구축되는 것이고 이 묘사는 합리성보다는 오히려 감성에 호소할 때 설득력을 갖는다.
따라서 감성적인 인식에 주로 의존하는 한자의 시. 청각이미지가 세계를 구축하는 힘은 신화성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은 다시 이데올로기를 깊이 각인시킨다.
레비스토로스는 신화를 “거친 현실을 극복하고 사물의 질서를 도보하는 논리적 도구”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해서 인간 앞에 던져진 카오스의 실재 세계를 사람이 살 수 있는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려면 사물을 분절해서 창조하고 사물들 간의 관계와 질서를 부여해서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과학적 사유능력이 덜 발달했던 고대인들에게 신화적 사유는 매우 중요한 논리적 도구로 작용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화는 체제 이데올로기를 사회 구성원들의 뇌리에 흔적으로 남기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신화가 구축해놓은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헤게모니가 획득된다.
한자의 경우 이러한 메타 인식적 기능은 시각이미지와 청각이미지의 차원에서 각각 일어나고 있다.
시각이미지의 차원이란 이미지 자체로부터 존재론적으로 의미를 생성해내는 가차를 뜻하는 것이고, 청각 이미지의 차원이란 한자의 독음을 따라 속성이 구체적인 사물로 발현되는 전주를 각각 지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메타적 해석이란 주체(문자 사용자)가 문자의 의미를 자신의 의도한 대로 규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 규정된 의미가 글자의 이미지와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내심의 의도(이데올로기)가 너무 드러나 보이면 신뢰도가 떨어지므로 최대한 원본 대상의 유사성을 객관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의도를 드러내지 않은 해석이 훈고의 기술인 것이다.
바르트는 일찍이 텍스트가 저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저자는 죽는다는 이른바 ‘저자의 죽음’을 설파했다.
한자도 매 글자를 처음 만들 때마다 그에 해당하는 원의나 본의는 있었겠지만 그 글자가 저자를 떠나 유통되는 순간 저자가 의도했던 원의는 사실상 잊혀져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없어진 한자를, 사용자가 글자의 이미지, 즉 자형에 따라 갖가지 문법으로 재구성하면 다양한 해석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글자의 자형만은 보고 자의를 마음대로 꾸며낸다는 이른바 ‘望形生義’는 이 때문에 가능했다.
대구광역시의 지명을 원래는 ‘大丘’로 썼었는데 ‘언덕 丘’자가 공자의 이름과 같으므로 영남의 유자들이 이를 피휘해서 ‘언덕 邱’자로 고쳤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사물의 개체화는 계열화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사물을 하나의 구조적인 틀 속에 편입시켜 전체적인 조직을 구성한다.
개체화가 역설적으로 전체화의 도구가 되는 셈인데 이는 레비 스트로스가 “고유명사의 제조는 개체의 독립성을 말소하는 것”이라고 설파한 경구로도 증명된다.
우리는 이름이야말로 유일무이한 자신을 표상하는 나만의 기호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나만의 것이어야 하므로 이름을 지을때 어떻게든 다른 사람의 이름과 중복되지 않게 하려 한다.
어쩌다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름이 유일무이한 자신의 품성이나 지향하는 인품을 표상하는 것 같지만 이름을 분석해보면 이와는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朴利浩’라는 이름을 갖고서 분석해보기로 하자.
우선 朴은 성으로서 가문을 표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김씨, 이씨, 최씨 등 다른 성씨들과 변별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이다.
만일 ‘朴’이 표상하기위한 것이라면 그 표상의 내용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성이 ‘박’이라는 것도 ‘김씨’도 아니고 ‘이씨’도 아니고, ‘최씨’도 아니라는 말이다.
‘朴 ’자가 순박하다라는 뜻이라 해서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을 순박함을 추구하는 가문 출신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음으로 이름의 마지막 글자인 ‘浩’를 먼저 보자.
‘浩’는 이 가문의 이른바 항렬을 지시하는데 이는 박씨 가문 내의 종적서열을 변별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문의 계보나 지파가 많이 갈라지면서 같은 가문내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사람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종적서열을 추적할 길이 없어 위아래가 모호해질 것 같지만 그럴 염려가 없는 것이 이 항렬만 확인하면 누가 윗세대인지 누가 아랫세대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이 가문에서는 五行의 서열로 항렬을 제정하는 원칙을 정했는데 만일 항렬이 根인 사람을 만났다면 금세 자신이 서열상 윗세대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왜냐하면 오행의 순환에서 물은 나무를 낳으므로 물 水가 변으로 들어간 浩자가 나무 木을 변으로 하는 根자보다 앞에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항렬도 ‘나’를 표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운데 글자인 利는 어떤가?
박이호씨의 부친은 결혼하자마자 앞으로 낳을 자식들의 이름을 짓기 위한 원칙을 정했다.
그는 평소 동양철학의 기본텍스트인《주역》을 좋아했으므로 그 첫구절인 ‘元亨利貞’을 자식들의 이름에 차례로 넣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朴利浩’는 말할 것도 없이 셋째 아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두 번째 글자도 ‘나’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친형제 사이의 서열을 변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이름을 짓는 것은 ‘나’의 개체성을 등록하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기실 가족이라는 사회조직내에서 나의 위치만을 표상하는 좌표기능만 하는 것이다.
요즘은 예쁜 이름을 짓는다고 ‘하나’ ‘두나’ ‘세나’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근본적으로 변별 기능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푸코는 일찍이 국가라는 ‘정치적 형식’의 효과는 ‘개별화하는 동시에 전체화’하는 데 있다고 설파했다.
시민을 개별화하는 것이란 다름 아닌 시민 개개인에게 주민등록변호를 부여하는 일이다.
이 주민등록번호는 결코 중복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을 개별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을 일련번호의 상징체계를 통해서 국가 체제라는 틀에 편입시키는 행위이므로 기실 전체화가 된다.
고유번호가 역설적이게도 시민을 국민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자가 한어의 음운체계를 매개로 하여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고 하나의 전체적인 틀로 엮는 것 역시 국가가 개인들에게 고유번호를 부여함으로써 국민의 일원으로 등록시키는 일과 같은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처럼 이름과 번호를 부여하는 개별화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개체성과 독립성을 말소하는 행위가 된다.
이것이 바로 한자가 지배하는 권력의 본질이다.
이처럼 한자는 자신의 질서대로 사물을 창조하고 조직함으로써 세계를 대리 보충한다.
그러므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람들이 인식하고 사는 세계는 기실 한자가 재현한 세계이고 따라서 그 세계의 질서는 다름 아닌 한자의 질서를 뜻한다.
누군가가 한자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면 그것은 세계를 재현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체계’라는 말이 객관성을 띠는 것처럼 보여서 재현이 아니라 ‘기술’했을 뿐이라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어떠한 기술도 그것이 언어인 이상 자의성을 피할 수는 없다.
자의적으로 세계를 기술했다면 그것은 곧 권력이 아닌가?
앞에서 살펴봤듯이 허신은 부수라는 개념을 도입해 한자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설문》을 편찬했는데 이것이 중국 초초의 자전이라는 학술적 의미를 넘어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은 물리적 힘이 아닌 문화적 역량으로써 견고한 세계관을 창조하여 통치의 틀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틀은 완성도가 너무 높아서 이후 중국이 정체성을 크게 도전받지 않고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오는 데에는 크게 기여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대안적 세계를 고안해내거나 받아들이는 데에는 큰 걸림돌이 된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속성이나 이미지나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감성에 기초한 사고이므로 사물을 분석적으로 보은 이성적 사고에는 취약하기 때문이다.
대안적 세계가 이미지로 구축된 세계를 밀어내고 대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른바 한자문화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자 : 역설을 수용하는 중국문화의 패러다임
중국은 광활한 대륙을 통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관념적 틀인 이치를 중시했다.
그런데 이치란 어디까지나 하나의 상징체계이기 때문에 극복할 수 없는 모순을 안고 있다.
상징이란 카오스에서 그물처럼 건져 올린 하나의 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 틀에서 빠져나간 부분들이 잉여의 상태로 상징 주위를 배회하다가 돌발 상황을 만들어 상징체계를 뒤흔들어 놓는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상징이 마치 전체인 양 지배하게 되면 언젠가는 이 거짓이 쌓여서 상징의 허구성이 스스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 시점에서 止揚이 일어나고 헤겔의 역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모순의 본질이다.
이를테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는 부르주아지가 각각 잉여가 되어 모순을 발생시킨다.
이 모순이 결국은 혁명으로 발전하는 것이므로 하나의 체제가 안정을 유지하려면 이 모순을 어떻게든 완화시켜야 한다.
중국에는 역사의 흐름을 뒤바꿀 만큼 획기적인 혁명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혁명이 없었다는 것은 잉여가 세력화되지 않도록 모순을 적절히 흡수해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혁명이란 일종의 역전 현상으로서 이는 모순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충분히 쌓였을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이성적 사상이 싹트고, 이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종교적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종교와 이성이 각각 해결하지 못하는 모순이 누적됐을때 궁극적으로 봉착하는 결과 때문이 아니던가.
중국에서는 중용사상이란 게 있어서 역사가 극단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최대한 연기시키는 기능을 수행했는데, 기실 이것 때문에 중국의 문화는 그렇게 종교적이지도, 또한 이성적이지도 않는 속성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중용의 연기 기능은 이러한 모순을 흡수해서 역사의 발전이 극단적으로 흐르는 것을 억제하는 기능에 다름 아니었다.
중국인들이 중용이라는 지혜를 고안한 것은 바로 한자를 사용하는 가운데 터득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징체계는 역설이 불가피하다.
이치도 상징체계에 속하므로 이러한 역설의 딜레마를 피할 수 없을 텐데, 중국은 이치를 통치 이데올로기의 근간으로 삼았음에도 어떻게 역설을 피해올 수 있었단 말인가?
거칠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역설을 배제하지 않고 안고 삶으로써 모순을 흡수해왔는데 그 중심에 한자 패러다임이 있었다.
중국역사에서 이것이 가장 잘 반영된 사건이 한대에 유행했던 참위와 문자 수수께끼를 이용해서 미래를 예언한 측자술이다.
讖은 원래 민간에서 유행했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미신적인 은어였고, 褘는 유가의 경전을 신의 이름으로 해석한 것이었는데 나중에 이 두 가지가 권력투쟁에 활용되면서 참위로 합쳐졌다.
이를테면 서한 말기에 당시 섭정이었던 왕망은 “안한공 망이 황제가 될 것임을 고하노라”라는 참문을 퍼뜨려서 실제로 제위에 올라 新이란 정권을 세웠다.
그 이후 황족인 劉秀도 “유수가 군사를 일으켜 패악부도한 자를 체포할 것이며 卯金이 덕을 닦아 천자가 될 것이다”라는 참문을 퍼뜨려 정권을 다시 찾고 동한 정권을 세웠다.
여기서 ‘묘금’은 말할 것도 없이 ‘유’자를 파자한 것이므로 한 왕조를 세운 ‘유씨’를 가리킨다.
이러한 미신적 행위가 사람들에게 먹혀들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정치불안, 관료들의 부정부패, 세금의 과중한 부과, 토지제도 붕괴로 인한 부의 편중 등 사회적 불안요소로 인해 민중봉기가 빈번히 일어났으므로 백성들이 불투명한 미래를 담보할 근거를 욕망했기 때문이다.
이때 그럴듯한 참문과 그에 대한 해석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불안한 나머지 그것이 속히 실현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참문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해석이 근거를 가져야 하는데 이때 한자의 자형과 그 표의 기능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참위의 상당 부분이 문자 수수께끼에 가까운 문자참인 것은 이 때문이다.
혼돈의 상황에서 어떤 상징을 내세워 예언을 하게 되면 이것이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는 주체란 욕망의 시선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에 실재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보이지 않는 실재에 상징을 만들어주면 그것을 통해서 비로소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희망이야말로 잉여 부분이 상징체계 내의 존재로 흡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이는 기능적으로 보자면 오늘날의 언론과 유사한 것이므로 권력을 장악하려면 참위를 먼저 장악해야 했다.
그러나 참위는 잉여의 존재를 모두 커버하려는 상징체계이기 때문에 언제 반전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잉여의 존재인 실제계의 침범을 쉽사리 허용하기 때문에 정권에게는 매우 불안하고 위험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왕망이 참위로 황제가 되었지만 역시 참위로 멸망한 것이 그 예이다.
그래서 광무제는 정권을 잡은 후 이를 금지했다.
이후 참위는 역대 정권들도 철저히 금지해서 더 이상 유행하지 않았지만 민간에서는 측자술이라는 이름으로 모양만 바꾸어 여전히 전해 내려왔다.
한자는 근본적으로 이미지를 근거로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존재론적으로 사유한다는 사실이다.
존재론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작은 돌출적 존재들, 즉 잉여부분을 인식의 중심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곧 잉여 존재의 입장에서는 상징의 안으로 포섭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희망이다.
그렇다면 굳이 극단에까지 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더라도 잉여는 영원한 부재를 면할 수 있다.
측자술의 예에서도 보듯이 인식되지 않던 한 점 한 획의 존재가 이미 운명을 결정했는데 굳이 혁명의 위험부담을 질 필요가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중용이 유지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혹자는 중국에 혁명이 부재했던 이유를 과거제도에서 찾기도 하는데, 이 역시 같은 원리에 근거한다.
과거제도란 인재의 수급을 통해 체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상징체계이다.
즉, 시험의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인재의 성격이 결정되고 나아가 누가 체제의 중심이 되는가가 정해진다.
여기에서도 물론 체제에 흡수되지 못하는 잉여부분이 존재하게 되고 뿐만 아니라 그 세력이 쌓여가면서 역전을 준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력은 축적되지 않았고 혁명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과거제도가 아주 조금씩이긴 하지만 지속적으로 잉여를 상징체계 안으로 흡수해왔으므로 중용의 상태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권력이 아무리 부패했어도 바늘구멍만 한 등용의 길이라도 언제나 열려 있어서 약간씩이나마 모순의 원인을 제거해왔다는 사실이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암행어사 박문수’와 같은 민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부패한 관료사회를 척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역설적이게도 별로 공정해 보이지 않는 과거제도를 통해서 유능한 평민 출신의 인재, 즉 잉여부분이 상징체계 안으로 들어가 합법적으로 이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잉여존재들에게 자신들도 상징체계 내에 자리를 부여받을 수도 있다는 희박한 희망이나마 생기므로 체제가 흔들리지 않게 된다.
중국의 이러한 역사적 현상은 그들이 존재론적인 사유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잉여적 존재를 상징밖으로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즉 상징체계에 포섭되지 않은 잉여부분이 그냥 무시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상징체계를 폐쇄하고 잉여적 존재를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을 때 혁명은 일어나게 돼 있는 것이다.
과거제도가 귀족들 사이에서만 유통되는 폐쇄적인 제도였다면 오늘날의 중국은 없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엘리트가 지배자가 되는 이 불합리한 제도가 몇백년간 유지돼온 것은 잉여 존재를 조금이나마 체제안으로 흡수해온 기능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모순과 역설에 적응할 줄 아는 존재론적인 사유방식은 중국문화에 전반적인 성격으로 전이돼 있다.
이러한 성격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오 러, 하오 러!” : 중재, 아니면 선동?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조그만 사업을 하는 어느 조선족 동포는 이런 말로 한중문화를 아주 간단히 비교했다.
“한국인은 이웃 사람이 무엇인가를 해 돈을 벌면 너도나도 함께 뛰어들어 그 일을 따라하고, 중국인은 이웃 사람이 돈을 벌면 그가 어떻게 돈을 벌고 쓰는지 구경합니다.”
우리는 돈을 벌면 우선 좋은 옷을 사 입고, 차를 중대형으로 바꾸며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옮기는데 이는 자신을 과시하기 좋아한다는 의미에서 노출증적인 문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비교한다면 구경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문화는 관음증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개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대중문화가 중국에서 한류라는 이름으로 크게 각광받은 것은 노출증의 문화가 관음증의 문화와 제대로 맞아떨어진 결과가 아닌가 하고 추측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음증적인 구경문화는 어떤 배경에서 발생했을까?
중국은 상고시기부터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갖가지 기술들을 발전시켜왔다.
그 결과 엄격한 위계질서에 기초를 둔 봉건전제주의 체제가 매우 일찍부터 형성되어 국가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켜왔다.
이 봉건전제주의 체제는 민주주의 체제가 도입된 오늘날에도 관념적으로는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이것은 봉건 이데올로기 자체의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헤게모니로 정착되는 데에는 가혹한 형벌과 같은 강력한 제제수단이 동반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봄이 옳다.
이런 체제에서 오랜 기간 살다보면 사람들은 주체적이 되기보다는 정해진 틀에 적응하려는 경향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정해진 틀을 벗어나면 가혹한 형벌과 제제를 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틀 안에 있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틀을 벗어나는 행위일까?
가장 현명한 판단은 일단 남들이 하는 것을 두고 보는 것이다.
남들이 먼저 하는 것을 보고 결과가 괜찮으면 따라 해도 되고, 만일 그들이 당했다면 절대 따라하면 안된다.
과도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거나 괜히 잘난 척하고 나섰다가 당하는 자를 그들은 어리석은 자로 부른다.
《노자》의 “훌륭한 기교는 마치 서툰 것처럼 보인다”라는 구절은 이러한 생각을 정당화하는데 좋은 구실이 된다.
이것을 더 밀고 나가면 ‘어리석은 자가 곧 총명한 자’이고,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라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래서 중국역사에서 외적이 쳐들어 왔을 때 죽기 아니면 살기로 방어한 예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만리장성은 세계사에서 가장 거대한 방어벽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성만큼 많이 뚫린 방어벽도 세계사에서 없다는 사실ㅇ리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외적에게 침략을 당하면 일단 피하거나 복종하면서 두고 본다.
두고 보면 결국에는 침략자들 스스로가 멸망하는 것은 역사의 정해진 이치가 아니던가?
이것이 바로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라는 이른바 ‘통이 크다’는 중국문화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아편전쟁의 패전에서 충격을 받은 중국의 지식인들은 유럽의 근대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울러 이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기도 했다.
루쉰 역시 이 근대성의 시각에서 중국의 존재론적 사유가 갖고 있는 이중성을 보게 되었고, 이러한 사유의 부조리와 비합리성을 자신의 소설《아큐정전》에서 신랄하게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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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한문학을 하시는 분의 사유의 공간이 이렇게 넓고도 깊을 줄 몰랐는데.... 언어학, 기호학, 역사학, 철학, 인류학, 사회심리학을 아우르면서 한자와 중국역사에 관한 오밀조밀한 서술이 두껍지도 않고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분의 천자문에 관한 해설서도 읽어볼 참입니다. 다 읽었으니 콩세알 도서관에 기증하겠습니다. 어차피 우리 집에서 읽을 사람은 없으니....-.-;;;
v펑키님 고맙습니다. 사볼려고 했던 책인데 이렇게 상세하게 후기도 올려주시고 책도 주신다니 감사하게 읽겠습니다.
김근씨의 천자문 해설서가 욕망하는 천자문인가요....
고전수다에서 천자문 할 때 읽은 책인데 저자나 출판사 뭐 이런 것을 책 덮자마자 까먹어서..........
가져다 주실거면 내일 전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삼분의 일쯤 읽다가 그만뒀습니다. 담에 찬찬이 다시 읽어봐야지 근데 좀 길어요
펑키님의 활발한 글을 보니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