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말하는 우주와 우주의 지식은 상대적 진리이며 변할 수 있다. 태양계의 행성이 우리 세대에서 변했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배워온 지식이 틀리게 되었고, 스티븐 호킹 자신이 주장한 주장 역시 180도로 다르게 주장하는 등 과학의 시대에서 과학이 진리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에 반해 성경은 창세기 1장을 통해 하나님이 우주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경험하거나 확인을 해서가 아닌 믿음으로 받는 사실이다. 창세기 1장에는 창조의 기사와 함께 만물의 주되심이 드러난다. 피조물인 인간에게 땅과 복, 번성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자신의 백성과 교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1.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2. 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וְחֹ֖שֶׁךְ עַל־ פְּנֵ֣י תְה֑וֹם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 פְּנֵ֥י הַמָּֽיִם׃
창세기 1장에는 6일간의 창조가 기록된다. 각날의 창조는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구절로 시작되며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00날이니라"라는 구절로 마무리된다. 그렇게 창세기를 읽으면 자연스레 3절부터 31절까지가 6일간의 창조가 되며 1절과 2절은 분리된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드셨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창세기 1:1을 1-6일 창조에 대한 요약적 선포로 생각한다. 이런 관점으로 볼 경우 창조가 시작되는 3절 이전에 있는 2절은 마치 땅과 바다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간격이론과 하나님과 물질의 공존설이라는 근본적인 성경 메시지와 차이가 있는 해석이 등장한다. 성경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신학으로 일관하며 두 차례에 걸친 창조를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1장 1절은 한글 개역개정은 "태초에"라고 번역한다. 그렇지만 "브레시트 바라"와 같이 히브리어 원어 구절의 용례를 찾아보면 1장 1절과 가장 흡사한 호세아 1장 2절을 비추어 해석의 윤곽을 잡을 수 있다. "바라"는 완료형 동사로 어떤 행동이 완료 되었음을 나타낸다. 창조가 완료된 시점의 묘사, 그래서 1장 1절을 직역하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한 시초에
1절에 번역한 "시초"가 1-6일보다 앞선 시간으로 볼 수 있겠지만 첫째날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디 그리고 이어지는 2절은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연속이 아니라 1절에 창조된 하늘과 땅의 상태를 묘사한다. 이렇게 해석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히브리어 구문상 동사가 먼저 나와야 하지만 주어인 "땅(하 아레츠)"가 먼저 나옴으로 땅에 대한 관심과 집중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해석을 이렇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한 시초에
"그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장 2절은 1절에 창조된 지구의 상황을 부연 설명하는 상활절로 네 가지로 설명한다.
1) 땅이 혼돈하고
2) 공허하며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것은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3)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와 차이를 뚜렷하게 하며 하나님의 대적이 아닌 창조된 지구를 덮고 있는 물을 뜻한다.
4) 하나님은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 영으로 번역되는 "루아흐"는 바람,호흡 으로도 번역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지구에 강림한 하나님의 임재로 생각할 수 있다.
창세기 1장 1절과 2절, 그리고 3절까지 이어지는 연결을 놓치지 않고 이해할 때 창조기사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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