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은 정상일씨. 회사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농구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허재'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을 알고 놀랍니다. 아직도 허재의 이야기가 재미있을까요? 한때 남자농구 최고의 스타였으며 지금은 프로농구 KCC 이지스의 감독인 허재.(글 쓰기 좋게 '허재'로 할게요) 허재가 관련된 농구 이야기라면 대부분의 팬들이 대충 알고 계신 거 아닌가요? 술 얘기? 허재의 주량이 엄청나고 그래서 음주운전으로 면허 취소가 되고 뺑소니로 구속도 됐다는 등의 이야기? 그러나 기본적으로 허재의 주량은 농구 판에서는 대단한 수준이 아닙니다. 농구계에 '술 챔피언'으로 불리는 사나이는 적잖습니다. 고려대 농구팀 감독을 역임한 박한 감독의 주량이 전설적이라고 하지만 'One of them' 아니던가요? 김인건 한국농구연맹(KBL) 경기본부장도 대단한 분 아닙니까? 1998년 늦은 가을 쯤이던가요. 박한ㆍ김인건ㆍ최종규(전 TG삼보 감독)ㆍ김동욱(WKBL전무) 제씨가 하루 전 목포에서 함께 밤을 새워 술을 마셨다는 겁니다. 박한 감독의 얼굴에 웃자란 수염이 비껴오는 석양에 반짝거릴 때 김본부장이 박감독을 바라보며 말했죠. “어이, 한이. 가지?” 박감독은 그 선한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어요. “형, 살려 줘요.” 한 자리에서 술을 마신다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김인건 본부장이 무서운(?) 이유는 ‘연투’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술 마시는 데도 ‘선발 투수형’과 ‘마무리 투수형’이 있다고 해요. 김인건 본부장은 어느 쪽도 해낼 수 있는 전천후인 셈이죠. 야구에서 모델을 찾는다면 시도 때도 없이 마운드에 올라 던지기만 하면 이겼던 ‘너구리’ 장명부를 생각하면 됩니다. 타고난 어깨, 아니 간(肝)입니다. SBS농구단 감독 시절 간조직을 점검했다는데 의사 말이 이랬답니다. “신생아 간입니다.” 허재는 이런 전설들과 비교할 정도가 못됩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소위 ‘2차’를 갈 때쯤이면 얼굴 표정이 굳어요. 열두 시가 지날 즈음엔 눈꺼풀이 내려앉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죠. 물론 체력이 좋아서 취해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이 때부터 술이 끝없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허재가 술꾼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이튿날 겪게 되는 숙취죠. 두주불사라는 프로야구 삼성의 선동열 감독은 현역 시절 밤새워 술을 마시고도 이튿날 완봉승을 거둔 사나이입니다. 허재는 어찌됐든 영향을 받는 편이라고 해요. 허재가 마시는 술 얘기를 하면서 꼭 밝히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허재는 정말 필요하면 술을 끊는 사람입니다. 1997~98시즌 기아 소속으로 뛰면서 현대와 챔피언을 다툴 때 그는 술을 끊었습니다. 7전4선승제의 승부를 하면서 먼저 2승을 거두자 선배들이 몰려와 술을 사겠다고 했어요. 허재가 싫다고 하자 선배들은 "자리에 나와 인사만 하고 들어가라"고 했죠. 허재는 할수없이 약속 장소로 나갔어요. 당시 기아를 맡고 있던 최인선 감독이 후배 정상일씨(지금은 여자농구 삼성생명의 코치지요)를 운전수 겸 감시원으로 딸려 보냈답니다. 선배들의 집요한 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허재는 정말 한 방울도 술을 마시지 않았대요. 그 자리가 파했을 때 허재는 자신을 태워 온 콩코드 승용차의 시동을 걸었습니다. 조수석에는 허재 대신 폭탄주를 여러 잔 마신 정상일씨가 고주망태가 되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해 챔피언결정전에서 손등뼈가 부러지고 등 근육을 다친 ‘허재 선수’는 눈부시게 선전해 최우수선수(MVP)가 됐습니다. 기아가 3승4패로 타이틀을 현대에 넘겨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현대에 이상민ㆍ추승균ㆍ조성원 등 MVP 후보가 즐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한 팀 선수가 MVP가 된 경우는 허재 뿐이죠. 현대의 외국인 선수 조니 맥도웰의 팔꿈치에 맞아 눈두덩이 찢어진 허재가 반창고를 붙인 채 골밑으로 치고 들어가는 사진은 지금도 한국 프로농구의 명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