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이철원 |
이 같은 오름세가 곧 ‘입사관 전형 정착’으로 이어지고 있는진 의문이다. 지난 5년간 입사관 전형을 둘러싼 논쟁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모호한 평가 기준, 서류 위조 가능성은 입사관 전형 반대론자가 제기하는 ‘단골’ 의혹이다. 일부 주장은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9월 18일 지적장애 여중생 성폭행 사실을 숨긴 채 성균관대 입사관 전형에 합격한 사실이 알려지며 합격과 입학이 동시에 취소된 A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입사관 전형의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입사관 전형으로 대입 관문을 통과한 대학 재학생과 졸업생에게 물었다. 이와 함께 △교육과학기술부(입사관 전형 주관 부처) 담당자에게 직접 들은 사안별 의혹에 대한 해명 △전·현직 입사관의 고백 △현직 교사가 들려주는 현장 지도의 고충 △‘입사관 선진국’ 미국의 사례도 함께 싣는다.
문제1 잠재력 평가한다고?
‘최저 등급’ 개념 도입… 사실상 수능 점수가 당락 좌우
어학시험 성적 ‘다다익선’… 대놓고 ‘특이 경력’ 요구도
‘내신성적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점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었던 지원자의 잠재력을 다각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한다.’ 대교협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입학사정관 전형 도입 취지’다. 하지만 실제로 수험생의 잠재능력‘만’ 보는 대학은 많지 않다. 연세대 등 일부 상위권 대학은 ‘수능 최저 등급’을 설정, 사실상 수능으로 최종 합격자를 가려낸다. 일부 대학에는 공인어학시험 성적 등 점수로 환산되는 외부 이력도 제한 없이 제출할 수 있다.
홍영진씨(이화여대 사회과학부 재학·2012학년도 입학)는 외국어고를 졸업한 후 올 초 이화여대 입학사정관 전형인 ‘자기개발우수자전형’(2013년 폐지)에 합격했다. 당시 그가 학교 측에 제출한 서류엔 토익(TOEIC)·텝스(TEPS)·중국한어수평고시(HSK) 등 공인어학시험 성적표가 다수 포함돼 있다.(그의 토익 점수는 만점에서 불과 10점 모자란 980점 선이다.) “공인어학시험 성적이 대입에 유리하다는 건 외국어고 재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에요. 제가 나온 고교 진학 담당 선생님도 입시 현황 데이터를 보시더니 ‘공인어학시험 점수를 제출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죠. 고교 시절 학교에 이화여대 입학처 관계자가 온 적이 있는데 그분조차 ‘공인어학시험 성적을 제출하면 입시 평가에 유리하다’고 귀띔하셨어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저 같은 외국어고 출신 학생도 공인어학시험 성적을 높이려면 학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학(모집단위)별 특성에 맞는 소질과 잠재력을 평가하겠다’는 입사관 전형의 당초 목표 역시 상당 부분 변질된 것으로 나타났다. 오바댜씨(서울과학기술대 글로벌융합산업공학과 재학·2012학년도 입학)는 “입사관 전형이 자리를 잡으며 ‘스펙의 등급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분야 관련 소질이나 적성과 관계 없이) 독특한 이력이 많은 학생일수록 좋은 대학이나 학과에 합격할 확률이 높아요. 실제로 최상위권에 속하는 A대학은 (과학동아리 활동처럼) 평범한 경력보다 (특허 출원과 같이) 진입 장벽이 높은 이력을 좋아하는 걸로 알려져 있죠.”
문제2 사교육 필요없다고?
입사관 전형 합격 대학생 과외도 성행… 30분에 ‘50만원’
전형료, 일반 전형의 평균 1.5배… 100만원 이상 쓰기도
입사관 전형료는 일반 수시 모집 전형료보다 평균 1.5배 높게 책정된다. 한양대 입사관 전형료(10만원)는 일반 전형료(6만5000원)에 비해 3만5000원이 비싸다.(이하 2013학년도 입시 기준) 서강대 역시 입사관 전형료(9만5000원)와 일반 전형료(6만원)가 3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중앙대는 입사관 전형료와 일반 전형료가 각각 9만원, 6만5000원이다. 이들 대학은 모두 1차 시험에 떨어진 지원자에게 2차 시험 응시료를 돌려준다. 하지만 반환액은 적게는 2만원, 많아야 4만원 선이다.
지방 대학, 그중에서도 국립대 쪽 사정은 좀 나은 편이다. 일례로 경북대의 입사관 전형료는 4만5000원이다. 안상헌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회장(경북대 입사관)은 “일부 수도권 사립대학은 (해당 전형을 치르고도) 전형료가 좀 남는 걸로 알고 있다”며 비싸게 받은 전형료의 일부가 대학 측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김태현씨(서울과학기술대 건설시스템디자인공학과 재학·2011학년도 입학)는 “입사관 전형의 평균 경쟁률이 80 대 1에 이르는 B대학을 두고 한때 ‘입시 한 번 치를 때마다 건물이 하나씩 올라가더라’는 풍문이 나돌기도 했다”고 말했다.
비싼 전형료는 수험생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 요인이다. 이다나씨(국민대 경영학부 재학·2012학년도 입학)는 지난해 수시 모집 당시 20개 대학에 원서를 제출했다. 입사관 전형으로 지원한 대학은 그중 절반인 10곳. 결국 그는 그해 원서 접수에만 100만원 이상을 썼다. 이씨는 “재학생이 (수능에 특히 강한) 재수생과의 경쟁을 피하려면 입사관 전형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비싼 전형료에 비해 면접 때 나온 질문은 비교적 간단했어요. C대학의 경우, 제출 서류에 자신이 읽은 도서 10권 목록을 적는 항목이 있기에 면접 전 10권을 다시 다 읽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읽은 책에 대해선 한 마디도 안 묻고 다른 대학에서 이미 나온 질문만 반복해 던지더라고요. 수험생 한 명에게 배정되는 면접시간이 10분 미만에 불과해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인정해요. 그래도 열심히 준비해 간 걸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자기소개서 작성과 면접으로 이어지는 입사관 전형은 대부분의 수험생에게 낯설다. 따라서 학교 측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일선 고교에선 인력 부족 등의 이유를 들며 입사관 전형 지도를 소홀히하는 게 사실이다. 오바댜씨는 “매년 전형 시즌이 되면 고 3 담임교사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다”고 말했다. “입사관 전형 원서를 3개 대학에 내야 하는 지원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학생에겐 교사 추천서도 세 장이 필요할 거예요. 게다가 한 반에 입사관 전형 지원자가 한 명뿐이겠어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구조상 어쩔 수 없이 진학 지도를 제대로 못 받는 학생이 생겨나는 거예요.” 윤이나씨(가톨릭대 인문학부 휴학·2010학년도 입학)는 “국어 교사 등 일부 ‘글 잘 쓰기로 소문난’ 교사에겐 학생들의 추천서 의뢰가 몰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교육에서 입사관 전형 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을 틈타 고액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문제다. 이다영씨(건국대 생명과학과 휴학·2009학년도 입학)는 “모 사교육 업체에서 ‘입사관 전형 면접 대비법에 대해 30분 강의해주면 최대 50만원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역시 입사관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간 홍영진씨의 친구 중 한 명은 실제로 인천 소재 컨설팅 학원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다. 홍영진씨는 “대치동(서울 강남구)처럼 전문 강사가 즐비한 ‘교육 특구’에선 대학생 과외 문의가 많지 않다”며 “오히려 사교육 혜택이 적은 지방의 경우 (동일 전형으로 합격한) 대학생 몸값이 점차 치솟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문제3 공부 필요 없다고?
교육 특구일수록 “공부 안 하려고 꼼수 부린다” 오해
다른 전형과 병행하려면 ‘수능 최저 등급’ 관리 필수
입사관 전형에 대한 의심은 사교육 기회가 많은 지역일수록 강했다. 서울 강남구 소재 모 고교 출신인 조은선씨(경희대 무역학과 졸업·2009학년도 입학)는 “입사관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갔을 때 친구들의 미움을 톡톡히 샀다”고 말했다. “제일 많이 들은 소린 ‘얄밉다’는 거였어요. 학교 임원 경력, 스피치 대회 수상 실적 등을 인정받아 입사관 전형을 뚫었거든요. 당시 친구들은 제게 ‘수능 성적으로 정정당당하게 들어가야지, 왜 (입학사정관 전형 같은) 꼼수를 부리느냐’는 시선을 보냈죠. 친구들이 수능 성적 올리려고 사교육에 쏟아부은 돈을 생각하면 그 말에도 일리가 있어요.”
한때 서울 강남 일대 논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신재영씨(서강대 경제학부 재학·2010학년도 입학)는 “강남 아이들은 입사관 전형을 일종의 ‘편법 입학’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하루는 한 원생이 ‘원서 제출용 자기소개서’를 한 부 가져왔어요. 평소 논술 실력과 달리 글이 상당히 깔끔하더라고요. ‘어떻게 썼느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해줬다는 거예요. 부모가 대필해준 자기소개서를 아무렇잖게 대학에 제출하는 아이, 그런 친구를 목격한 아이가 과연 입사관 전형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입사관 전형=공부에 목매지 않아도 대학 갈 수 있는 전형’이란 편견은 결국 수험생의 전반적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입사관 전형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게 많다 보니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 자연히 일반 전형 준비 수험생에 비해 수능이나 내신 성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다나씨는 “입사관 전형 하나만 바라보다간 다른 전형의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입사관 전형은 생각보다 훨씬 문이 좁아요. 경쟁률도 높은 편이죠. 입사관 전형에 ‘올인’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런 위험 요소를 미리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문제4 서류 위조 없다고?
“나보다 네가 널 더 잘 알 것” 추천서 안 써주는 교사도
교내에서 작성되는 기록 중 상당수는 위조 가능성 ‘다분’
‘(학교생활기록부와 교사 추천서 등) 지원자의 출신 고교에서 작성된 기록물의 내용은 100% 진실’이란 믿음은 입사관 전형의 첫 번째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취재 중 만난 입사관 전형 합격자들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교 현장은 서류 위조에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윤이나씨는 교사 추천서를 아예 자기 손으로 썼다. “고 3 때 여러 대학 입사관 전형에 원서를 넣었어요. 지금 제가 다니는 가톨릭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 대부분이 교사 추천서를 요구했어요. 담임 선생님께 추천서 작성을 부탁했더니 ‘내가 널 아무리 알아도 너보다 더 잘 알 순 없지 않겠느냐’며 우회적으로 거절하시더군요. 결국 그 대학들엔 제가 쓴 추천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게 뭔지 아세요? 바로 그 선생님이 당시 우리 반에서 성적이 우수한 다른 친구 추천서는 써주셨다는 사실이에요.”
신재영씨는 ‘학교 외부에서 얻은 이력은 일절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현 제도의 허점을 비판했다. “제가 고교생일 때만 해도 대부분의 선생님이 각종 서류를 거리낌없이 위조하셨어요. 교원평가 당시 A선생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를 B선생님에게 맡기면 A선생님이 B선생님의 ‘모범 답안’을 불러주는 식이었죠. 학교에서 주는 큰 상은 대부분 학부모회 간부 자녀 몫이었어요. 학교폭력을 일삼던 친구가 교사 추천서 잘 받아 일본 K대학 입사관 전형에 합격한 경우도 봤습니다.”
입사관 전형 5년사 국내 대입 제도에 입사관 전형이 처음 도입된 건 지난 2007년이다. 초창기엔 사정 단계에서 △다면 평가 △진로·적성 개발이란 두 가지 요소가 강조됐다. 이에 따라 내신 성적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 같은 ‘학습’ 요소뿐 아니라 각종 ‘태도’ 요소가 주요 평가 잣대로 자리 잡았다. 또한 지원자의 전공 적합성을 따지기 위한 수단으로 동아리 활동 내역 등의 비중이 커졌다. 일반적 전형 형태는 ‘1차 서류, 2차 면접’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전형 방식은 ‘합격 여부를 판단할 객관적 지표가 없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었다. 수상 실적이나 공인어학시험 성적 등의 비(非)교과 영역 성과가 많이 반영되면서 특수목적고 출신 합격생이 급증한 것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비판이 커지자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010년 ‘입사관 전형 기준’을 마련, 외부 이력 대신 교내 활동만으로 지원자를 평가하도록 각 대학에 권장했다. 일명 ‘회피·제척제’가 마련된 것도 그 즈음이다. 회피제는 입사관이 자신에게 배정된 응시자 중 사적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있을 경우 이를 자진 신고하는 제도를, 제척제는 각 대학이 교직원 인적 사항을 미리 파악해 응시자와 혈연 관계에 있는 입사관을 사정 작업에서 강제로 제외시키는 제도를 각각 일컫는다. 지난해엔 입사관 전형으로 입학한 카이스트(KAIST) 학생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입사관 전형 입학생 추후 관리 프로그램’이 정부 재정지원 사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관계자가 말하는 ‘내가 겪은 입사관 전형’ ①전직 모 대학 입사관 A “지난해 말, 1년8개월간의 입사관 생활을 정리했다. 비정규직 임용에 따른 불안정한 신분과 그에 따른 경력 개발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입사관을 ‘단순 일용직’ 취급하는 교직원들의 보수적 시선이었다. 입사관으로 일하다 보면 종종 곤란한 상황을 겪는다. 내가 근무할 때만 해도 우리 대학 입학처에 근무했던 교직원 자녀가 입사관 전형으로 합격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전부 ‘부정 입학’으로 매도할 순 없다. 일하면서 접한 대학 대부분이 최소한의 기본 자정 능력은 갖추고 있더라.” ②부산 소재 일반계 고교 교사 B “수시 1차 접수 기간엔 교사 1인당 최대 25개의 추천서를 써야 한다. 특히 지방 학교이다 보니 수도권 대학에 제출할 추천서는 교사들도 상당히 신경 써서 작성한다. 반면 학생 수급이 여의치 않은 지방 사립대에선 추천서 작성 작업 자체가 요식 행위인 경우가 태반이다. 교사가 직접 대학 측에 연락해 ‘추천서 분량을 줄여달라’고 요구하면 숫제 ‘(추천서는) 대충 써도 되니 서류만 제출해달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