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Α)와 오메가(Ω)
교황이 새로 선출되었습니다. 266대 교황은 ‘청빈과 겸손’을 상징하는 듯 프란치스코 1세라고 불립니다. 새로운 교황이 결정된 날,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어떤 정치적 배경설명보다 하늘에 나타난 구름천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신비한 영상은 전 세계 사이버 화면을 도배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은 거룩한 인도하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표적을 연상시키는 분홍빛 구름천사는 친밀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때마침 등장한 구름천사를 하늘의 계시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계시를 무시하거나, 표적이 더 이상 없다고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맞춤 상징’은 신비감을 자극해 준 셈입니다. 사람들은 우연히 나타난 구름천사가 제공한 천기누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기대감조차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구름천사가 일파만파 급속도로 번져나간 이유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상징들은 옛사람이나 오늘 우리에게나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홍수 후에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노아의 무지개’(창 9:13), 회의하는 아브라함을 컴컴한 장막에서 불러내어 바라보게 하신 ‘밤하늘의 뭇별’(창 15:5), 아무런 전망도 없이 다만 쫓기던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던 처지에서 꿈꾼 ‘하늘 사닥다리’(창 28:12)는 인류가 공유해 온 그림상징입니다. 심지어 죄수의 입장에서 로마로 호송되던 바울이 난파 직전의 배에서 바라본 ‘해도 별도 보이지 않던 바다’(행 27:20)조차 상징이 되었습니다.
상징은 그림언어와 문자언어로 구분됩니다. 시각적인 그림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대중적이고 친밀합니다. 기호나 표와 같은 문자는 비밀 암호로 사용되었습니다. 보다 메시지를 명확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고, 때론 약자화 하여 두루 통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빌라도가 히브리어, 라틴어, 헬라어 세 가지 언어로 작성을 명령한 십자가의 명패가 대표적입니다(요 19:19-20). 히브리어가 지방어라면, 라틴어는 제국의 공용어였고, 헬라어는 일반적인 통신과 교역언어였습니다. 이를 축약하여 ‘INRI’(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로 간단히 적습니다. 상징화된 문자언어로는 ‘☧’, ‘IC XC Nika’, ‘IHS’, ‘XPS’가 좋은 사례입니다.
헬라어 알파벳의 첫 자와 끝 자인 ‘Α(알파)와 Ω(오메가)’ 역시 문자언어를 상징합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도 자신이 모든 것의 시초이며 완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에는 전능자의 권위가 배어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 22:12-13).
‘알파와 오메가’는 3세기 경 로마 카타콤의 묘비명에도 나타납니다. ‘알파와 오메가’ 두 문자는 부활에 대한 소망의 표현으로써 묘비나 석관 등에 새겨져 장례와 제사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묘비에 있는 ‘알파와 오메가’는 죽은 자가 하나님 안에서 전능자의 처음과 마지막 목표를 보았음을 의미합니다.
중세의 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 제단 위에는 우주의 지배자로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렸는데, 두 문자는 그리스도의 후광에도 기록되었습니다. ‘만유의 지배자’ (Pantokrator)로서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도에 대한 호칭 가운데 비밀스럽지만 밝히 드러나며, 문자에 불과하나 가장 심오하며, 인간이 고백할 수 있는 상상력을 뛰어넘는 최고의 이름입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