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0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한국 영화 최고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의 마지막 장면은 줄타기의 명수인 장생(감우성 분)과 공길(이준기 분)이 줄 위에서 하늘로 도약하며 멈춘다. 그들이 어디로 떨어졌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굳이 니체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인생이 줄타기와 닮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자신을 줄 타는 광대에 비겨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왕의 남자’에서는 광대만이 줄을 탄 것은 아니다. 대신들도 아슬아슬한 벼슬길이라는 줄을 탔고 연산군도 마찬가지로 절대권력이라는 줄을 탔다. 광대가 줄을 타다 떨어지면 망신을 당하고 몸을 다치는 것으로 끝내겠지만, 삶이라는 줄에서 떨어지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 치명상을 입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까지 다치게 한다.
인생이 줄타기라면 줄을 타는 비법은 무엇인가? 중심을 잡는 것이다. 삶에서 중심을 잡아 넘어지지 않는 기술을 중용(中庸)이라 한다. 중(中)은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이고 용(庸)은 변하지 않는 항상함, 혹은 평범한 일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용(中庸)이란 ‘항상 중심을 잡는 것’ 또는 ‘일상생활에서 중심을 잡는 것’을 말한다. 중(中)이란 신체의 균형뿐만 아니라 개인이 느끼는 감정의 조화에서부터 사회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조화와 균형을 지탱하는 핵심이다.
중(中)의 중요성은 공자(孔子)의 손자 자사(子思)가 지은 ‘중용(中庸)’에 나타나기 이전에도 먼 옛날 중국의 여러 나라에 전해 내려온 사관들의 기록을 공자가 정리하여 편찬했다고 하는 ‘서경(書經)’에서 이미 강조되고 있다. 서경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인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은 공자뿐만 아니라 모든 유학자에게서 가장 훌륭한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다. 요는 순에게 정권을 물려주면서 네 개의 글자도 함께 물려주었다. 윤궐집중(允厥執中), 즉 ‘오로지 중을 잡아라’는 것이다.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 전 순 임금은 자기 이복동생의 시샘을 받아 두 번 죽을 고비를 넘긴다. 한 번은 동생이 순에게 지붕수리를 시키면서 순이 지붕 위로 올라가자 사다리를 치우고 불을 질렀다. 이때 순은 미리 준비한 삿갓 두 개를 펴서 땅으로 뛰어내려 위기를 모면하였다. 또 한 번은 우물을 파게 하여 그 우물에 흙을 넣어 순을 생매장 하려고 하였으나 순은 옆으로 빠지는 통로를 미리 마련해 놓았다가 동생이 흙을 메울 때 다시 땅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지붕은 너무 높아서 위태롭고 우물은 너무 낮아서 위험하다. 지붕과 우물은 지나치고 모자라는 곳이고 평지는 균형이 잡힌 곳이다.
이 이야기는 삶 속에서 중심을 탁월하게 잘 잡는 순의 자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순의 자질을 미리부터 알고 있던 요 임금은 순을 사위로 맞이한다. 사위로 맞이하되 딸 한 명과 혼인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황과 여영이라는 두 딸과 한꺼번에 맺어주어 순을 테스트 한다. 두 딸과 모두 함께 갈등 없이 조화롭게 지내는 것을 확인하고는 왕위를 물려주었다. 두 여인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중심을 잃지 않는 능력을 보고 나라를 맡길 만하다고 본 것이다.
이후 선정을 베푼 순 임금은 때가 되어 나라를 우(禹)에게 물려주었다. 우는 곤(鯤)의 아들인데, 곤은 순 임금이 맡긴 치수사업(治水事業)을 잘못해서 사형을 당해 죽은 인물이다. 홍수를 다스리는 것을 치수라고 한다. 홍수가 물이 과한 것이라면 가뭄은 물이 부족한 것이다. 치수를 한다는 것은 물을 적절한 상태, 즉 중(中)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순에게 임무를 맡은 곤은 요즘 댐을 만드는 방식과 비슷하게 물길을 막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런 방법으로 잠시 치수에 성공한 듯이 보였으나 몇 년 뒤 너무 많은 비가 내려 제방이 무너져서 오히려 더 큰 피해가 났다. 이 책임을 물어 곤은 사형을 당한다.
곤의 후임으로 공교롭게도 그 아들인 우가 발탁되었다. 이 일을 맡은 후 우는 종아리에 털이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치수를 하느라 다리에 물을 적시지 않는 때가 없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