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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우 박사 초청 특강
출생 : 1944년 1월 16일 (경기도 양평)
소속 :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학력 : 피츠버그대학교대학원 철학 박사
수상 : 2006년 미국 루스벨트 재단 선정 127인의 공로자
경력 : 2001년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1979년 미국 노스이스턴일리노이대학교 특수교육학 교수
[지난 5월 18일 영남신학대학교에서 강영우 박사님을 초청하여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라는 제목으로 특강한 내용을 말씀하신 대로 옮기려고 힘썼으나 누락되거나 바르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주님의 평강과 놀라우신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가정과 또 하시는 학문과 섬기는 교회와 학교위에 함께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저를 지금 총장님과, 백도현 목사님께서 소개를 해 주셨는데요, 저는 여러분의 학교에서 배출한 훌륭하신 주의 종들을 미국에서 여러분 뵈었어요. 그 중에 한 분이 백도현 목사님이십니다. 백도현 목사님이 지금 여기 오셔서는 스케일 면에서는 적어진 그런 작은 자들을 위해서 목회를 하시는데 미국에서는 그 반대의 목회를 하셨어요.
제가 1988년에 목사님 교회, ‘어버너 샘페인’ 한인교회, 유니버시티 일리노이드, 미국에서 상위 10개 대학에 들어가는 대학에서 학원목회를 하시는데 거기에서 학생대표 장로, 대학원생대표 장로를 하시면서 목회를 하시는 그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했었습니다.
오시기 전에도 플로리다에서 제일 큰 한인교회 ‘마이아미 한인장로교회’ 목회를 섬기다가 다 버리시고 여기 오셔서 아주 작은 자들을 위해주는 그런 목사님을 여기서 뵙게 되어 매우 기쁘고 감사하고, 우리 진희성 총장님은 백도현목사님과 함께 저의 출판기념회에 오셨어요. 통합측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께서 서울 롯데호텔에서 크게 출판기념회를 해 주셨는데 그 때 오셔서 뵙게 되고 또 우리학교에 와 달라고 초청하셔서 2~3년 후에 이렇게 뵙게 되어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가 가장 최근에 출판한 책.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이 책이 미국에서는 연합감리교회에서 같은 내용을 한글로 「지혜가 이끄는 삶」,「성공으로 가는 일곱 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을 우리가 받고 남은 생을 보람 있게 살 수 있느냐 하는 성서적인 방법이면서 학문적으로 검증되고 체험적으로 검증된 일곱 가지 방법을 소개를 한 겁니다. 오늘은 제가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일곱 가지 내용 중에서 두 가지를 여러분께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인물이 되려면 인물을 만나라.’ 인물이 따로 정해져있는 게 아닙니다. 위대한 인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보통 사람이 인물이 되는 겁니다. 한번 따라 해 보세요. “보통사람이 인물이 된다. 위인도 우리 중에 있다, 주 안에서 나도 인물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 안에서 어떻게 성서적인 방법으로 인물이 되고 위인이 되느냐.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가 인물을 만나야 된다.
둘째 ‘섬기는 지도자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켜라’ 그러면 오늘 날 누가 지도자냐? 어떻게 우리가 섬기는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느냐?
신명기 28장 1절에서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는 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복을 주느냐 하면 무엇보다도 ‘세계 민족위에 뛰어나게 한다.’는 복을 주시고 그리고 ‘나가도 복이요 들어가도 복이요 성에서도 들에서도 복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 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인간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그 조건이 있어요. 그 조건이 뭐냐 하면 신명기 28장 1절에 ‘말씀에 순종하고 계명을 지키면’ 이게 조건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에 순종하고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 만복을 다 받는다 이겁니다. 그러면 그 말씀에 순종하고 계명을 지키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구약에서는 십계명에서, 오늘날도 십계명을 지키며는 복을 받죠. 십계명대로 살면 복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거짓증거하지 말라’ 이것은 정직하게 살면 복을 받는 거죠. 정직이라는 게 중요한 거죠. ‘부모를 공경하라’
백도현 목사님께 서울에 오셔서 굳윌인더스트리를 좀 맡아서 세계적으로 일 좀 하시라고 했더니, 그걸 다 사양하시고 대구에만 계신다고 하여 “왜 대구에만 있어야 하느냐”고 했더니 “어머님이 연로하신데 얼마를 더 사시겠느냐”라고 하시면서 어머님 곁에서 어머니를 섬기는 효도하는 일을 위해 대구에 사신다고 그래요. 목사님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복을 받는 겁니다. 구약에서는 십계명이지요.
그다음에 신약에서는 사랑의 계명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 계명을 지키며는 복을 받는다. 어떤 말씀이든지 여기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는데 여기 참 재미난게 있습니다.
서구문명은 모든 게 기독교의 문명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이런 게 다 기독교에서 나온 겁니다. 대부분 보편적인 가치 인간의 존엄성이다, 평등이다, 다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보편적인 가치관들이 다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교육에서 중요한 원리 ‘절대평가의 원리’, ‘개별화 학습의 원리’ 이런 것에서부터 이게 다 어디서 나왔느냐 성경에서 나온 겁니다. 그럼 성경에서 어떻게 나왔느냐? 성경에서 명령한대로 그 명령을 순종하는 가운데 그것이 세속적인 학문에서 검증이 되고 사람들이 체험을 통해서 검증되어 그게 법령이 된 겁니다.
고난과 역경을 축복의 통로로 삼아라. 고난과 역경이 어떻게 기회와 축복으로 되느냐? 어떤 말씀을 어떻게 순종하면 축복으로 되느냐? 이런 것이 말로만 된 것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체계화 돼서 정석으로 된 겁니다.
이제 저의 간증으로 시작해서 신앙의 원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같은 장로교 가정에서 모태교인으로 태어났어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문호리에는 여러분이 교회사에서 아시는 ‘클락’선교사가 101년 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아주 산골에 ‘문호교회’라고, 지난해에 우리가 10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장로교 선교사가 세워준 교회에서 외할머니께서 예수를 영접하시고 저희 어머니가 모태교인으로 태어나고 저도 모태교인으로 태어났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섬기기를 좋아하셔서, 40년대 말에 남에는 대한민국정부가 세워지고 이북에는 공산정부가 세워지니까 북한에서 신학자들과 목사님들이 공산주의가 싫어서 넘어오셨지요.
1948년도부터 6.25사변 날 때까지 2년 동안 북에서 온 신학자들이 저희 집에서 피난처로 계셨습니다. 그중에서 원산중학에 계시다가 우리 집에 와서 2년 계시다 한신 차감으로 계신 차보근 선생님이라고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계시면서 저에게 기도하는 것도 가르쳐 주고, 6.25사변 때는 그분이 주선하셔서 여러 사모님들이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이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리고 선한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인도하신다. 그러니까 나는 인생을 탄탄대로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평화롭고 예수를 잘 믿는 가정이, 위험을 무릅쓰고 북에서 오신 목사님들을 섬기는 이런 가정이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열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1년 지나서 중학교에서 축구하다가 축구공에 눈을 맞아 망막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붙이려고 ○○○메디컬센터는 선진국에서 온 의사들이 치료를 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제일 좋은 병원이에요. 거기에 2년 동안 입원을 하고 수술을 받고, 또 약물치료도하고 그랬는데 결과는 실명선고였습니다. 현대의학으로는 더 이상 해볼 수가 없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불행은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어요. 실명선고를 받고 그 이튿날 어머니가 면회를 오셨어요. 어머니가 오셨을 때 제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장님이 된대요.” 그때만 해도 제가 많이 볼 수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장님이 된다고?!” 그게 저에게 남긴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장님이 된다고?!” 그러시면서 병실을 떠나서 의사한테 가서 그 무서운 선언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 집에 가셔서 여덟 시간 만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세상을 떠나셨는지도 몰랐습니다. 왜 저에게는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아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면 더 악화되고 심적 고통을 받을까봐 저에게는 알려주지도 않은 겁니다. 퇴원한 다음에야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저는 교회에서 배운 게 있으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신 하나님은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것을 신앙으로 고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조용기 목사님이 가마니 깔고 천막교회 하시는 불광동교회에 가서 2년 동안 눈물로 매달리면서 하나님께 눈을 고쳐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조용기 목사님이 저에게 친히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도 눈은 낫지 않았고, 낫지 않은 것은 고사하고 17살 된 누나가 학업을 포기하고 봉제공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어 소녀가장으로 동생들의 생계를 유지를 한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어린 두 동생의 안내를 받아가면서 순복음교회에 가서 기도를 했던 거지요. 그 누나가 2년도 못 버티고 과로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그 때를 상상을 해보세요.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면 구한다.’고 하신 그 하나님께서 2년 동안이나 이렇게 몸부림치면서 간구를 했는데 왜 내 기도는 안 들어주실까? 심각한 신앙의 갈등이 생겼어요. 두 번째는 왜 이러한 재앙이 선한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믿는 사람에게, 착한사람에게 이러한 나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는가? 이게 심각한 고민이고 갈등이었습니다. 신앙적인 갈등이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문제는 아마 여러분들도 이러한 질문을 했었을 겁니다. 또 목회훈련을 받고 많은 분들이 목회를 하실 때에도 이런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왜 나쁜 일이 선한사람들에게, 믿는 사람들에게 발생하는가? 하나님께서 왜 나의 기도는 응답해 주시지 않는가?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저는 몇 년이 걸렸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불행이 닥치고 고난과 역경이 닥쳐왔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죄를 져서, 잘못해서 바로 치시는 거다. 나에게 벌을 주시는 거다. 그렇게 그것을 저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게 서양문화에서 ‘Guilt Culture(죄의 문화)’라고 합니다. 그런데 동양문화는 원래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의 전통적인 문화는 다릅니다. 특히 유교문화의 전통에서 성서적인 문화에서 동떨어져서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경우에는 유교전통에서 체면을 중시하는 거예요. 동양문화를 ‘Shame Culture(수치 문화)’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업을 하다가 파산을 당했다. “이럴 수가 있느냐”, “이런 망신이 어디 있느냐” 우리 집에 장애아가 태어났다. 또는 내가 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면 무엇보다도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이렇게 실망을 하게 됩니다.
그저께 제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께서도 말 한마디를 금방 실수를 하시더라고요. 다름 아니라 “낙태수술은 반대를 하지만 임부나 아이의 생명에 위험이 있거나 장애 불구가 되면 낙태를 해야 되지 않겠냐.”는 겁니다. “불구가 확인되면 낙태수술을 해도 된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사실 기독교의 가치관으로는 쉽게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전통적 문화에서는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창피하고 수치스럽고 그 사람이 잘 지낼까 염려되는 거죠. 그런 것이 문화의 차이입니다. 성서적인 문화의 차이입니다.
장애인인 경우에도 보면 미국에서 10명 중 1명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할 수 없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54세가 넘으면 4명 중 1명이 장애자가 됩니다. 65세가 되면 두 명중 한명이 장애인이 됩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주된 사상이 뭐냐 하며는 이러한 장애와 불행이 죄와 마귀로부터 온다. 고통과 고난이 죄로 인해서 온다. 죄의 대가로 오는 거예요. 그런데 죄를 짓지 않았는데 죄에 대한 대가가 아닌데 이러한 고난과 불행이 온다.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면 어느 경우에 이런 것이 오느냐? 지금도 얘기 했지만 사람은 나서 성장하고 늙어서 죽게 되지요.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다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병들고 장애가 생깁니다. 요한바오르 Ⅱ세와 같은 가톨릭의 교황도 장애인이 돼서 죽었어요. 20세기에 복음을 가장 많이 전하신 빌리그레함 목사님도 장애인으로 생애를 마치시고 있습니다. 지금 장애인이어요. 눈도 못 봐요. 시각장애인이 됐어요. 파킨슨씨 증후군 장애인이 됐습니다. 이러한 교황이나 빌리그레함 목사님이 정말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세상 적으로 큰 역할과 기여를 한 이런 분들이 죄의 대가로 그러한 장애를 받는다는 건, 그건 아닙니다. 그럼 왜냐?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법칙 속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지금 미국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한 분 중에 ‘○○○’라는 전 상원의원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예수를 얼마나 잘 믿는 가정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난 4년전 대통령후보로 나왔을 무렵에 16세 된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아들이 짚차를 타고 자기네 가족과 함께 지내려고 별장으로 달려가는데 도중에 돌풍이 불어왔어요. 돌풍이 짚차를 공중으로 날려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은 죽었습니다. 그걸로 끝나지 않고 그의 부인은 유방암선고를 받은 거예요. 그래가지고 유방암을 수술 받았습니다. 대통령후보도 떨어지고, 부통령후보로 나왔다가도 떨어졌습니다. 이번에 대통령후보로 또 나올 겁니다. 그런데 부인의 유방암이 전이되어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4~5년 밖에 못 산답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은 바로 복을 주고, 악한 사람은 바로 벌준다고 하며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지요. 그런데 이런 일이 있어요. 왜? 그것도 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우주만물의 법칙에 의해서 거기 돌풍이 불어오는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있게 돼있으니까 아들이 돌풍에 죽은 겁니다. 유전인자 속에 암이 발생하는 그런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그저 한정적으로 그렇게 그 법칙 내에서 이루어진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예수를 잘 믿는 사람에게도 심지어는 사도바울에게도 이러한 일이 있습니다. 저는 사도바울을 만나게 돼서 저의 신앙적인 갈등 두 가지를 해결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서부터 10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육신의 불치병, 육신의 가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육신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을 하나님께 간구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그대로 응답해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그 병을 안 고쳐 주십니다.
신약성경 27권 중 14권을 쓴 사도바울에게도 이런 육신의 불치병이, 사탄의 사자라고까지 일컬었던 이러한 육신의 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도바울의 육신의 가시가 무엇 때문에 있느냐? 이것은 죄로 인해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사도바울에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사도바울의 육신의 가시가 저주냐? 축복이냐?
공식적으로 1991년에 구교, 신교 또 장애인 대표들 9,000명이 바티칸 로마교황청에서 해석 했습니다. ‘나쁜 일이나, 고난과 역경은 예수 잘 믿는 사람들, 선한 사람들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이 발생한 것들이 이 사람에게 저주냐 축복이냐?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축복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에 있어서도 육신의 가시는 가장 큰 축복이다. 사도바울의 생애 중에 가장 큰 축복은 육신의 가시였다.
왜냐하면 만약에 그 때에 사도바울에게 육신의 가시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오늘날 6억 5,000에 달하는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기독교를 전파하느냐 이겁니다. “당신들이 장애인이 된 것은 죄의 대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기독교의 신앙을 그들에게 전파 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하면서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하나님을 사랑의 실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의 육신의 가시가 없었다면, 오늘날 교황이나 빌리그레함 목사님 같은 분들은 장애가 없이 건강하게 다 하늘나라에 간다라고 한다면 그러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존귀 하나님의 실체를 전도할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사도바울을 보라. 나쁜 일은 사도바울과 같은 인물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죄로 인해서 오는 것도 있지만 죄로 인해서 오는 것만이 다가 아니고 죄와 무관하게도 온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에게 육신의 가시가 없었다면 오늘날 6억 5,000 장애인을 향한 복음 증거나 설교는 문이 닫혀버리게 된다. 그러니 얼마나 큰 축복이냐 이겁니다. 바울은 세상을 떠난 지가 2,000년 가까이 되는데 2,000년 후인 오늘날에도 그 가시 때문에 “사도바울을 보라”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저도 사도바울 때문에 내 하나님께서 눈을 고쳐주시지 않았을 때 이것이 믿음이 부족해서 고쳐주시지 않는다 라면 지금 가서 자살해서 지옥가나 비참하게 살다가 지옥에 가나 마찬가지라고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을 만나서 사도바울의 육신의 가시가 죄로 인해 벌 받는 게 아니라면 나의 실명도 사도바울의 육신의 가시처럼 축복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때부터 “나의 실명은 장애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수행하는 도구다.” 이렇게 과감하게 선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보세요.
사도바울의 기도도 하나님께서 Yes로 응답을 안 해주신 겁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기도의 목적이 4가지가 있습니다. 영어 이니셜로 ACTS입니다. 즉. Admiration = 찬양하기 위해서, Confession = 고백하기 위해서, Thank's = 감사하기 위해서, Submission = 하나님께 아뢰기 위해서.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 고쳐줌, 고민 등을 다 아뢰어서 답을 받는 건데, 우리는 원하는 것을 Yes로 받는 것만을 하나님으로부터 응답 받는 것으로 잘못생각하고 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눈 고쳐달라고 하고 안 고쳐주니까 하나님을 무척 원망하고 불평하고 저의 운명을 한스러워 했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기를 때 자녀들이 부모에게 요구한다고 다 들어주지는 않지요. 달래는 대로 주지를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No”, 경우에 따라서는 “기다려라 지금은 때가 아니다 때가 오면 준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Yes"하고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No"라고 하실 때도 있습니다. “No”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안 된다’가 더 좋은 응답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Waite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라 때가오면 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도 육신의 가시를 제거 해달라고 세 번을 간구했다. 세 번은 한번, 두 번, 세 번 기도 했다기 보다는 유태교의 전통에서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있다. 세 번을 간구해도 안 주시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Yes로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다 라고 결심하고 더 이상 떼쓰고 애원하지 않는 그런 신앙적인 전통에서 마지막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육신의 질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으면 즉. Yes 하셨다면 기독교의 역사가 달라집니다. 그러면 뭐냐 불행이나 신체적 장애는 죄와 마귀로부터 온다. 이것만 남게 됩니다. 사도바울을 고쳐 주셨다면 그것만 남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기도를 No로 응답을 하셔서 사도바울의 육신의 가시가 온 인류에 축복의 통로로 쓰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를 증명하는 가장 위대한 도구로 쓰임 받게 만드셨다는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년 동안 하나님께 피눈물 나는 기도를 했을 때 고쳐주시지를 않고 누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볼 수만 있다면 누나처럼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가지고 두 동생과 같이 살 수 있는데, 소년가장으로 살아 갈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안 들어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그때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얼마나 무자비한 하나님이신가. 이게 살아계신 주의 하나님이냐. 그러면서 9살 여동생을 고아원으로 보내고 13살 남동생을 남의 집 철물점으로 보내고 저는 이제 집이 없어 갈 데가 없으니까 맹인재활센터로 가보자. 왜 거기는 당장 먹고 잘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해서 삼남매가 헤어질 때 우리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언제 또 만날 수 있는가.
이러한 무자비한 하나님이라고 원망했던 그 하나님, 만약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제가 원하는 대로 눈을 고쳐줬다. 상상을 해 보세요. 눈을 떴다 하면 저는 그 때 17살 소년가장으로서 교육의 기회도 이미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눈을 떴으면 동생들하고 공장에 다니면서 같이 살았을 겁니다. 여러분 눈먼 소년의 앞날을 객관적으로 좀 생각해 보십시오. 상상을 해보십시오. 그런데 그때에 하나님께서 눈을 고쳐주시지를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Yes가 아닌 No로 응답을 하셨기 때문에 오늘날 제가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겁니다.
목사님께서 저를 소개하실 때 미국에서 최고 공직자 중 하나다. 미국에는 450만의 공무원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2,500명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립니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해야 되는 자리에요. 그 2,500명 중 500명은 대통령의 임명동의안만 가지고는 안 되고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만 합니다. 상원에서 허락을 또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이 500명에게는 ‘Honorable’이라는 경칭이 이름 앞에 붙습니다. 대통령이 저에게 편지를 쓰실 때 “Honorable Dr. Young Woo Kang”이렇게 써줍니다. 그러니까 제가 미국에서 저의 직급이 SES (Senior Executive Service=상위 관리직) Level 4 예요. 차관보입니다. 차관보가 어떤 위치냐. 미군에서 4성 장군이 Level 4입니다. 4성 장군하고 대우가 똑 같습니다.
제가 몇 달 전에 ○○기지 육군 병원에 “My disability God's Ability = 나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 이 책 천권을 기증하였습니다. 거기 원목 대령목사님께 전했습니다. 그 때 이 목사님이 저의 경력을 보시고는 저에게 거수경례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 했습니다. “당신은 정부 측으로는 나보다 낮지만 교회에서는 당신은 목사고 저는 장로입니다. 당회를 하면 당신은 당회장이십니다. 당신이 나보다 높습니다.”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지난 10월에 백악관에서 연설을 할 때도 그 이야기를 해서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높은 자리지요. 그런 지위입니다. 저는 어디 가서든지 무슨 일이 있으면 미국대사에게 직접 전화하여 만나자고 해요. 이태리에 가서 밀라노엘 갔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오리지널 그림이 거기에 있는데 사람들이 그걸 본대요. 그러니까 나도 그걸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볼까 했더니 일행들이 “그런 일 해본적도 없으면서 그걸 보냐고” 그래요. “아- 그래도 나도 간다.”고 하니까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한 대요. 그러니까 예약을 안 해서 못간데.. 그래서 로마 미국대사에게 전화했어요. “저는 대통령이 임명한 강영우 박삽니다.” 자기네들 서류 찾아보면 금방 아는 거거든요. 그러면서 내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구경하려고 하는데 구경을 못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아 그러냐고”하더니 대사가 미술관장에게 팩스를 보냈어요. ‘미국 정부의 고위공직자니까 보고 가시게 하라고’ 그러니까 미술관 관장이 직접 나와서 저에게 설명을 해주는 거예요. 30~40분 그걸 설명을 하니까 그 그림에 대해서 본 사람보다 제가 훨씬 더 많이 알았어요.
일본 동경에 가서 볼일을 보면서 쉬퍼 미국대사에게 전화를 했어요. “당신 시간이 되면 잠시 면담을 하고 갔으면 좋겠다.”라고 했더니 오라고 그래요. 그래서 11시 약속을 하고 택시를 타고 간 거예요. 그랬더니 정문 앞에서 어떤 사람이 “It's my great Honor to meet here Dr. Kang. 강 박사님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그래요. 그래서 나는 수위가 그러는 줄 알고 “Who are you?”라고 하니까 “I'm ambassador Schieffer”라고 대답합니다. 대사가 나온 겁니다. 정문까지 나와서 나를 데리고 집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이쯤 대우받고 살면 성공한 삶이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의 축복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 저의 눈을 뜨게 해주셨으면 저는 9살 된 여동생과 13살 된 남동생과 셋이서 같이 살았을 거예요. 셋이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눈이 안 고쳐졌으니까. 소년가장으로 공장에도 못 가고 신문팔이나 구두닦이도 못 하고 나는 집에 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우리는 뿔뿔이 헤어지는 바람에 맹아학교에 가서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이렇게 6년이 지나가지고 연세대학교를 들어갔어요. 그 때에 연세대 근처에 조그마한 집을 마련하고 셋이 함께 살았어요. 영영 못 만날 줄 알았는데 6년 후에 고아원에 있던 여동생을 데려오고, 남동생은 18살에 해병대를 지원하여 청룡부대에 갔다가 68년도에 제대하고 돌아 왔어요. 그래서 세 식구가 몇 년을 같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연세대학을 졸업 맞고, 유학을 가고,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미국시민 권자가 되고 이렇게 되니까 또 제 동생들도 성장해서 자기 가정을 가지고 살잖아요. 그 동생들을 다 미국으로 초청했습니다. 지금 조카가 다섯 명인데 남동생은 대학도 못 나오고 고등학교를 겨우 나왔는데 세 명의 딸을 길렀어요. 첫째 딸은 공인중개사고 사위가 박사에요, 둘째 딸은 치과의사이고, 셋째 딸은 컴퓨터계통에 박사학위를 인디아나 대학에서 하고 있어요. 여동생은 대학 나오고 서울신학대학에 사서로 근무를 하다가 교회에서 신랑을 만났는데 제가 유학 시켜서 박사 되고 교수되고 그리고 남매를 주셨어요. 아들은 컴퓨터엔지니어로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간부로 일하고 있고, 딸은 약학박사 약사로 병원에서 근무하고, 저의 아들 둘은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대학원까지 미국에서 최고로만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고등하교 은사가 대통령과 같아요. 부시대통령을 가리킨 선생님이 30년 후에 같은 과목을 우리 아이에게도 가리켰어요. 링컨대통령 큰아들하고 동문이에요 동문. 지금 큰아들은 불과 34세에 세계적인 안과의사가 되었습니다. 학회가 있을 때면 한 학회에서 4개의 연구발표를 한꺼번에 했습니다. 미국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교수입니다. 작은아들은 법학박사 변호사로 미국 상원에서 제일 높은 보좌관입니다. 상원 본회장의 수석 법률보좌관입니다. 수천 명의 보좌관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보좌관들을 선정하는데 여러분들이 신문지상을 통해서 보셨을 겁니다. 작년 금년 연속해서 최우수 보좌관으로 뽑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우수하게 조카들도, 아들들도, 며느리들까지도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지금 저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대통령을 가리킨 대통령의 은사가 저에게 “강 박사님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과 더불어 당대에 우리 모두가 부러워하는 명문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러워한다.”라는 말은 한국 사람이 부러워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미국 사람들이, 대통령까지 가리킨 미국의 지도층 인사가 부러워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때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제가 바라는 대로 Yes로 응답해서 고쳐 주셨다면 오늘날 이러한 축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을 제가 만났지만 저는 이 사도바울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축복중의 하나였지요. 나쁜 일들이 왜 선한 사람에게 발생하는가? 나의 기도는 왜 응답해 주시지 않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중에서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만났느냐 하며는,
제가 눈을 못보고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사는 것에 대해 지금은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지만 10년 후에 대학을 나오고 또 대학원을 나오고 교수가 되고 또 자리를 받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릴 그런 날도 있을 것이다. 눈 뜬 사람들을 위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러한 꿈을 가지고 그리고 또 내가 다른 눈먼 사람들에게 짐 안 되고 눈 뜬 사람들을 위해서 처음 책을 쓴 것이 ‘빛은 내 가슴에’ 였어요.
1982년 참 오래전이죠. 그게 지금 신씰리티 장로교회의 출판사, 미국에서 죤락크 처치에서 1981년에 나왔습니다. 영어로 최초로 나온 책이 ‘A light in my heart’예요. 장로교에서 나온 거고 연합감리교에서 출판된 것이 ‘My disability God's Ability(나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 ‘A light in my heart’가 나왔을 때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거죠. 세계적인 부흥강사인 로버트슐러 목사님이 저를 초청해 가지고 ‘능력 있다’라는 시간에 간증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가이드포스트 발행인인 노만 빈센트 필 박사님이 전성기 때 저를 초청해서 가이드포스트에다가 저의 간증을 하게 해주시니까 22개의 언어로 막 나가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책을 안 썼더라면 그런 일은 없는 거죠. 또 작은아들이 다니는 학교 교장선생님을 통해서 아버지 부시대통령에게 선물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 책을 보내줬어요.
그 책을 받으시고 편지에 뭐라고 하시느냐 하며는 “당신은 인생에 등을 돌려야 할 그러한 절망적인 한계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노력하고, 추종해서 오늘날 지도자의 떳떳한 설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러시면서 “당신은 그 로마서 8장 28절에 산 증인이다” 로마서 8장 28절이 뭐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 모든 것 속에는 당신의 고난도, 고통도, 눈물도, 이별도 다 선을 이루어 주셨다.” 이 선을 이루어주는 게 아무에게나 선을 이루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어떤 사람에게 이루어 주느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고통과 고난 속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나님을 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도 선한역사를 하시는, 나쁜 일을 통해서도 선한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의지하고 그리고 투쟁하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 이게 산 증거다.
“당신의 이야기에는 인간의 고귀한 가치 4가지가 들어있다. 첫째는 신앙이다. 주님 하나로 인생의 항구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힘들어서 감당하지 못할 때 포기하지 않고 신앙으로 힘을 얻어서 그 어려움에 도전해 승리할수있는그신앙. 그리고인간으로서의지(Selfdetermination),그리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끈기(Persistence),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생의 삶 자체가 모두 다 기적인데 당신의 삶은 더 큰 기적이다. 이러한 기적을 만든 사람은 당신주위에 있는 긍휼히 여기는 가슴을 가지고 당신에게 사랑을 베푼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더 큰 기적이 이루어졌다.”
이 편지를 읽고 얼마나 감동 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마음이 신앙인의 가치가 아니겠습니까? 고맙다고 답장을 하고 이렇게 돼서 친구가 된 겁니다.
1974년에 문화방송에서 만든 특집극 ‘눈먼 새의 노래’ 안재욱 김혜수씨 주연하고 그런 드라마죠. 그 드라마 에필로그에 출연하셔서 그 얘기를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거기에 출연하니까 더 격이 높아지는 거지요. 1975년 UN에서 장애인의 날 그게 방영이 됐어요. 1997년 5월 2일 날 루즈벨트 대통령 기념관 음악회 전야에 또 백악관에서 그게 상영이 됐습니다. 이렇게 만남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거지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크신 축복을 주셨는데 그냥 달라는 대로 다 주신 것이 아니고 승리의 삶, 성공의 삶을 사는 주춧돌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만남의 기회를, 만남의 축복을 주셔서 제가 오늘날 있게 된 겁니다.
고난과 역경이 다 축복이 됐는데요. 제가 이 책(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의 5장에 ‘고난과 역경을 축복의 통로로 삼아라.’라고 네다섯 가지를 교육학적관점에서 썼습니다. 특별히 목사 후보생들은 전부 제 책을 필독서로 정하기 바랍니다. 제가 책장사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러한 책이 별로 없습니다.
인제 남은시간에 “섬기는 지도자 되어 세상을 변화시켜라” 제7장으로 가는데요, 제가 한국에서 맹인으로 사는 게 큰 저주로 생각했어요. 왜 그러냐 하면 눈을 못 보게 되니까 다른 사람들로부터 천대와 멸시를 받게 되지 않습니까. 저는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또 자랑스러운 연세인상도 받고 제가 연세동문으로는 최고로 들어갑니다. 그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도 처음에는 제가 입학원서를 냈을 때 맹인이기 때문에 입학원서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시대를 앞서가는 기독교 대학에서도 그럴 정도이니까 한국문화 속에 장애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심했죠.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장애가 천대꾸러기로 되는데 기독교의 신앙과 가치관이 실천되는 미국문화 속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가 여기 대구도 혼자 왔습니다. 그러면 불쌍한 점이 많지요. 불쌍한 점이 많지만 저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참 좋아해요. 왜 그러냐 하며는 미국에서 버릇이 돼가지고, 여행을 혼자 지팡이를 가지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진짜로 잘 믿는 그런 섬기는 지도자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뭔 줄 아세요?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누가 이웃이냐?” 이랬을 때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그러니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명령입니다.
이제 우리가 끝맺음을 해나갑니다. 어떤 명령이든, 어떤 말씀이든 말씀에 순종을 하며는 하나님께서 뭘 준다고 그랬어요? 만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 아들들을 남들이 다 부러워하게 길렀는데 그걸 어떻게 그렇게 기르게 되었냐 하며는 제가 미국에서 고등 교육사를 배우는데 그 교육과정에 필립스아카데미 역사가 나오는 거예요. 필립스아카데미는 뭐냐 하면 미국 최초의 대학교육 준비학교, 다시 말하면 고등학교의 효시입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생기고, 중학교 생기고, 고등학교 생기고, 대학교 생긴 게 아니에요. 거꾸로 생긴 겁니다. 미국에서는 하버드대학교가 제일 먼저 생겼어요. 그리고 예일, 프린스턴, 컬럼비아, 코넷, 브라운 등이 생겼어요. 이 여덟 개 대학을 ‘아이비리그’라고 합니다. 역사기 깊은 대학들입니다. 그 게 생긴 다음에 거기에 들어가서 성공적으로 학문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학교가 생긴 게 'College preparatory school'이에요. 그것이 고등학교가 된 거예요.
필립스아카데미의 역사가 나오는데 건학이념이 뭐냐 하며는 “Not for oneself”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그러면 여러분 공부를 왜 해요? 여러분 목회를 왜 해요? 무엇 때문에 목회를 하시는 겁니까? 무엇 때문에 공부하느냐 이말 이에요. 나 자신을 위함이 아니면 누구를 위해선가 그랬더니, 이게 어디서 나왔느냐 하며는 성경의 두 가지 명령에서 나온 거예요. 고린도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명령이에요. 공부를 누구를 위해서 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목회를 누구를 위해서 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물이 되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거요. 그게 목적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두 번째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거는 누가복음 6장 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가 받을 것이다.” 공부를 누굴 위해서 해요? 남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남 주기위해서. 내가 왜 살아요? 왜? 남 주기위해 삶을 사는 거예요. 더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해 사는 거 이게 건학이념이에요.
그래서 저는 그날부터 우리 아이들을 그 때 큰아들은 세 살이고 둘째는 두 달 되었을 때입니다. 두 아들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그때부터 저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들을 그 학교에서 ‘나 자신을 아닌’ 이런 교육을 시켜야 되겠다. 그래가지고 준비해서 결국은 두 아들이 다 필립스아카데미 출신입니다. 필립스아카데미가 두 개있는데 큰아들은 ‘엑서터(Exeter)’ 출신이고, 둘째 아들은 ‘앤도버(Andover)’ 출신입니다.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어느 학교에서 인물들을 제일 많이 냈느냐? 이거를 100년 통계로 추론을 했더니 돈 버는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천만장자를 제일 많이 배출한 학교가 필립스아카데미 였습니다. 명예를 추구하라고 가르친 게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지역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위해서 쓰는 그런 공부를 하라고 했는데 명사들이 제일 많은 겁니다. 명령을 하는 그런 다스리는 리더가 되지 말고 섬기는 지도자가 되라고 했는데, 대통령을 위시한 높은 권력에 있는 사람들을 제일 많이 배출한 학교가 이 학굡니다.
그러니까 이제 성경 말씀대로 보며는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느냐 이겁니다.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라”,“주라”, “네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주라” 이렇게 말씀을 지키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지켜져서 이런 축복을 받는 거죠.
이것을 학문적으로 보며는 남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삶이 성취동기유발이 되는 겁니다. 나이 많은 우리세대에는 부모님들이 공부를 하라 그래도 꼭 “너를 위해서 공부하는 거다”이렇게 말했어요. “공부를 해서 남 주냐 너 위해서 하는 거다” 그때 당시는 어느 정도 동기유발이 됐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가난했기 때문에 의식주 문제가 급했습니다. 오늘날 아이들보고 “너 위해 공부해라” “너 위해 공부해라”하며는 얘네들이 지금 부족한 게 없는데.. 너무 먹어서 비만증에 시달리는데... 그런데 정말 남을 위해서 더 좋은 세상 만드는 꿈을 가지고 공부를 한다고 해보세요.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까.
작은아들이 로스쿨(법학전문대학)에 다닐 때 여름방학이 되어 법률회사에 가서 실습을 하면 3만 달러를 받아요. 그런데 의회에 가서 하면 2천불을 줍니다. 그래도 2천불을 받고 의회에 가서 케네디 상원의원 밑에서 실습을 한 겁니다. 돈의 유혹이 많지요. 그렇지만 나는 돈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려며는 의회에 가서 2천불 받고 실습하는 것이 낫다. 그렇게 결정한 거예요. 그러니까 돈은 지금도 딴 사람 만큼 못 벌어요. 그래도 부자예요. 상원에서 받는 것이 다른 곳에서 받는 것의 삼분의 일 정도밖에 안되지만 그것도 엄청 많은 돈을 받고 있으니까 그래서 잘 살아요.
그게 교육학적으로는 동기유발이 되는데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또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로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선한사마리아인이 뭐를 했습니까? 제사장은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피해갔습니다. 레위 사람도 피해갔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피해간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가졌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명령하신것은 그 말씀에 순종하려면 우리가 긍휼이 여기는 마음 이걸 가져야 됩니다. 그게 영어로는 'Compassion'입니다. 'Com=together' 함께 라는 얘기고, ‘passion’은 열정, 열애 이런 걸로 우리가 쓰고 있지만 거기에는 'pain, suffering' 고통, 수난, 비애의 뜻도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Compassion’은 남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 남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마음이 컴패션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가치관의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구원이고, 두 번째가 컴패션입니다. “너희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이 컴패션을 가지고 살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에요. 분명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아닙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지팡이를 짚고 혼자 길을 가며는 저의 약한 모습을 보고 컴패션을 느끼고 “도와줄까요?” 하며 접근을 해 옵니다. 그래서 저는 길에서 여러분들과 같이 강한 사람, 눈이 있어서 강한 사람들은 만나기 어려운 주지사도, 장관도, 국회의원도 만나요. 그 사람들은 장관으로 만나는 게 아닙니다. 국회의원으로 만나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들을 어떤 사람으로 만나느냐 하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컴패션을 가진 사람으로 만나는 거에요.
처음에는 전 그걸 몰랐어요. 국회의원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준다고 서있을 적에도 그걸 몰랐어요. 검사장이 서서 그걸 아이들을 줘서 내가 받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분들한테 물어봤습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생면부지의 외국학생에게 이렇게 친절을 베풀 수가 있습니까?” 그 사람들의 대답은 일괄적이었습니다. “크리스천 컴패션(기독교인의 긍휼이 여기는 마음).”
저는 그 다음부터는 약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가서 목소리 들으면 아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도 일부러 먼저 찾아가서 인사하고 그러지 않아요. 목소리 듣고 아는 사람이면 먼저 인사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안 그럽니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다 섞여 있을 때 저는 안 찾아가요. 가만히 서 있습니다. 아는 사람 안 쫓아가요. “아 저 사람이 눈을 보지 못하고 불편해 하는구나. 내가 가서 도와줘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저한테 접근을 해 옵니다. 그 사람은 진짜에요. 그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면 컴패션을 가진 사람이 왜 진짜냐? 왜?
이제 결론으로 가는 겁니다. 리더십을 'Giving order' 명령을 해서 “따라와라”이렇게 하는 다스리는 리더십. 이게 전통적인 한국에서 발달된 리더십이지요. 기독교에서 예수님을 기초로 해서 발달된 리더십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섬기는 리더십입니다. ‘servant leadership’ 섬기는 리더십입니다. 그럼 섬기는 리더십이 뭐냐? 섬기는 리더십이 자원봉사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자원봉사는 섬기는 리더십이 아니에요.
섬기는 리더십이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어요. 발을 씻어 주니까 제자들이 감동을 했어요. 감동을 해서 제자들이 충성을 다짐한 거죠. 그래서 섬기는 지도자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섬김으로서 감동을 시켜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거예요. 그게 다스리는 리더십하고 달라요.
아버지 부시대통령이 대통령이 됐을 때 취임연설을 하러 나와서 “우리 기도합시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 했어요. “하나님 아버지 나에게 대통령의 권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대통령의 권력을 나를 위해 쓰지 말게 하시고 내 가족을 위해 쓰게 하지 마시고, 오로지 백성을 섬기는데 만 쓰게 해 주소서” 그러니까 섬김으로서 그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마음을 사는 거예요. 섬기는 지도력의 핵심은 감동이에요. 감동. 다스리는 리더십의 핵심은 권윕니다. 권위. 자기가 서 있는 권위에 의해서 이끌어가는 것이 다스리는 리더십이고, 예수님이 시조가 되신 섬기는 리더십은 컴패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컴패션이 없는 사람은 노벨상을 받는 학자는 될 수 있어도, 과학자는 될 수 있어도 이세상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그러한 대중적인 지도자는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목표에 도달하려며는 기독교의 복음전파에 성공하려며는 여러분 사회의 어떤 것이든지 성공하려며는 컴패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왜? 컴패션이 없으면 어느 분야에서도 섬기는 지도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시 가문이 지금 미국에서는 가장 중요한 가문이지요. 그 가문에서도 가장 중요시 가르쳐 내려오는 게 컴패션입니다. 아버지 부시대통령은 어릴 적에 독방을 갖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어머니가 독방을 안 줘요. 돈이 있는데도 안 줍니다. 서로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컴패션을 배우지 못하면 장차 생면부지의 모르는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컴패션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최근에 부시대통령 여동생이 쓴 책이 있어요. 책 제목이 “My father My presedent(나의 아버지 나의 대통령)” 이런 제목의 딸이 쓴 자서전인데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의 부모가 첫 아들과 자기를 기르는데 할머니가 가르쳐준 컴패션을 또 가르쳤다는 겁니다. 이 첫아들은 장차 대통령이 될 사람이죠. 그 어머니가 독방을 안 주면서 컴패션을 가르쳤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80이 넘도록 독방을 못써봤다는 겁니다. 어려서는 어머니가 안줘서 못쓰고, 고등학교에 가니까 룸메이트 있고, 대학에 가니까 또 룸메이트가 있고, 결혼을 하니까 또 룸메이트가 있어가지고 평생을 독방을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아들에게(그 아들이 지금의 부시대통령이죠) 컴패션을 가르쳐 준다고 듀플렉스(duplex house = 2세대용 주택)하우스로 이사를 갔답니다. 두 집이 함께 살게 되어 있는데 화장실은 하나 였답니다. 자기네는 세 식구가 살고 옆집에는 아주머니 혼자서 사는 그런 집이래요. 그래서 화장실을 함께 쓰니까 불편함도 경험하고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사를 갔데요. 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때로는 화장실에 들어가면 한 시간이 지나도 안 나온답니다. 그러니까 이 두세 살짜리 아이가 오줌과 똥을 누러 가야하는데 갈 데가 없잖아요. 그래가지고 야 이거 너무 불쌍해서 안 되겠구나 너무 균형이 깨지는 구나. 그래서 1년 살고 화장실이 따로 있는 집으로 갔답니다.
이만큼 컴패션이 중요합니다. 저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래요. “하나님이 강 박사님을 편애하시는 것 같다. 나는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해도 만나지지가 않는데 강 박사님은 어떻게 가는 곳곳 좋은 사람들, 훌륭한 사람들, 위대한 사람들을 이렇게 만나느냐?” 그건 딴 게 아닙니다. 왜, 저의 약한 점 때문에 기독교의 가치관 특히 컴패션을 가진 사람들이 신앙심을 발휘하려고, 약한 자를 섬기려고 컴패션을 가지고 접근하는 가운데, 이 컴패션은 섬기는 지도자의 선결 덕목이기 때문에, 이게 없으면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위대한 인물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한국말로 끼리끼리 만난다. 그러지요. 예수 믿는 사람들, 참 진실로 믿는 사람들, 컴패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어느 분야에 가든지 다 지도자들이거든요. 그런 사람들과 같은 신앙관을 가지니까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거예요. 의도적으로도 그런 만남이 이루어지는 거죠. 이렇게 해서 섬기는 지도자가 되어 함께 세상을 변화시켜 가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켄트 키스(Kent M. Keith) 박사의 섬기는 '지도자의 역설적인 십계명'을 영어로 그리고 한글로 소개하며 끝을 맺습니다. '지도자의 역설적인 십계명'을 소개함으로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 도 자 의 역 설 적 인 십 계 명
Paradoxical Ten Commandments of Leadership
1. 모든 사람들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People are illogical, unreasonable, and self-centered.
Love them anyway.
2. 여러분이 착한 일을 하면 다른 속셈이 있어서 착한 일을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착한 일을 계속 해야 합니다.
If you do good, people will accuse you of selfish ulterior motives.
Do good, anyway.
3. 여러분이 성공을 하면 아첨배도 생기고 그릇된 친구들도 생기게 됩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성공은 하셔야합니다.
If you are successful, you will win false friends and true enemies.
Succeed anyway.
4. 오늘 선행을 한 것이 내일 잊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선한 일은 계속 하셔야합니다.
The good you do today will be forgotten tomorrow.
Do good anyway.
5.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면 불이익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정직하고 성실한 인생을 사셔야합니다.
Honesty and frankness make you vulnerable.
Be honest and frank anyway.
6. 대의를 품은 사람이 졸장부에 의해 쓰러지는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 가슴에는 큰 뜻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The biggest men and women with the biggest ideas can be shot down by the smallest men
and women with the smallest minds.
Think big anyway.
7. 보통 사람들은 약자를 동정하면서도 강자를 따라갑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소수의 약자들을 위해서 투쟁하는 삶을 사셔야합니다.
People favor underdogs but follow only top dogs.
Fight for a few underdogs anyway.
8. 여러 해 동안 공들여 쌓은 탑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는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 탑은 계속 쌓아 올려야합니다.
What you spend years building may be destroyed overnight.
Build anyway.
9.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도 배신당하거나 공격을 받는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십시오.
People really need help and may attack you if you do help them.
Help people anyway.
10.여러분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이 세상에 주고도 이빨로 물려 뜯기고 발길로 걷어차이는
수도 있습니 다.
그럼에도 여러분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이 세상에 주는 그러한 삶을 사십시오.
Give the world the best you have and you'll get kicked in the teeth.
Give the world you have anyway.
여러분 이러한 지도력을 가진 섬기는 지도자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 시키게 되시기를 축원하면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일시 : 2007. 05. 18 10:00~12:00
장소 : 영남신학대학교 대강당
제목 :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
강사 : 강영우 박사
첫댓글 박집사님, 어쩌면 이렇게도 자세히 기록하셨습니까? 저는 부지런히 따라 적는다고 적었지만 제대로 연결이 안되었는데. 집사님은 거의 완벽하게 특강 내용을 옮기셨군요. 성도님들이 많이 보고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집사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