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정연순*
그와의 동침이 끝났다. 입술도장을 콕 찍고 그가 돌아선다. 물 위에 발자국을 찍는 물총새의 몸짓 같다. 싱겁기 짝이 없다. 여운이 묻어 있지 않는 입술로 둘 다 웃지만 끈을 푼 듯한 해방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내 혼수 이불을 꿰매는 날 나는 종일 투정을 부렸다. 그만한 요에 둘이서 자야 한다니 너무하다 싶어서였다. 이불을 요로 만들어달라고 떼를 써 보아도 엄마는 ‘모르면 가만이나 있어라'하면서 웃었다. 비웃는 눈치가 역력했다. 언니한테 내 편이 되어달라고 해도 눈만 흘겼다.그러던 두 여인이 어른이 된 날더러 “요가 크지?”하고 놀려먹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역사는 요 위에 쌓여 갔다. 날마다 고단한 몸과 마음을 부려놓았고 눈을 뜨고 새날을 맞이했다. 꽃과 나비의 환희도 적과 동지를 넘나드는 냉전의 아픔도 켜켜로 쌓였다. 절벽 같은 그의 등에 대고 흘린 눈물도 삶의 무게가 주는 한숨도 절절히 배었다.
유행 따라 요가 침대로 바뀌었다. 유행은 세월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일기 쓰기도 서서히 변해갔다. 추억이 늘고 대화는 길어졌다. 품에서 나와 손을 잡을 뿐임에도 오래된 친구의 너그러움과 닻을 내린 여유를 실감했다.
그럼에도 그와의 동침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고요하고 아늑한 가운데서 누리는 완전한 휴식이 아쉬웠다. 그즈음부터 독립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의 코고는 소리가 천정을 뚫을 듯 맹렬해지는 기세를 견디다 못해 민원을 제기하면 즉시 내 소음도 만만찮다는 역공이 돌아왔다. 게다가 그는 날 들여다보면서 ‘피곤했구나.잘 자네. 그래, 잘 자거라.’한다니 졸지에 나만 옹졸녀가 되곤 했다.
몇 살을 더 먹었다. 아차 하는 순간 그의 디스크가 고장 났다. 내 어깨에도 오십견 통증이 발광을 했다. 찜질기며 쿠션이며 잠자리 보조용품 2인분이 방에 가득이었다. 둘 다 돌아누울 때마다 끙끙 아얏! 자지러졌다. 화장실은 왜 또 그리 자주 가는지, 도무지 잘 수가 없었다.
마침내 독립을 선언했다. 싱글 침대 사자. 그러자. 그가 단박 동의했다. 의외였다. 뽈죽 배신감을 느꼈다. 그가 뭘 그러냐, 조그만 참으면 나을 거야, 혹은 누가 들으면 닭살이라 할망정 싫어, 같이 잘래, 했으면 나는 짐짓 열녀티를 내면서 조근 조근 설득을 했을 것이다. 그 재미도 못보고 오늘 침대 두 개가 들어왔다. 하나가 먼저 떠나면 누구에게 침대를 주기도 좋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어느새 그의 숨소리가 고르다. 이것이 집에서 쓰는 마지막 침대일까. 다시 큰 침대로 바꾸는 날을 기대하지 않는다. 순리가 아니므로. 다만 그와 나의 마음이, 영혼이 날이 갈수록 더 깊이 동침하기를 바란다.
* 수필가
울산태생, 경남여중, 고교 졸업, ‘수필문학’으로 등단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첫댓글 요즈음 우리네 집안의 풍경이요.정경이 떠올라 빙그레 웃게합니다.혼수 이불에서 큰 침대로 ,싱글 침대에서 각방...코 고는 소리에까지....감사합니다.
유우머와 위트가 살아 넘치는 좋은 수필이군요. 재미있게 읽고 나갑니다. 건필하십시요.
실감있는 굴입니다 사실 나이먹어 갈수록 더 가까이 붙어 자야 하거늘 무언가 모르게 간격이 벌어지고 모르던거. 않보이드거. 없던 냄새도 자꾸만 보이게 되니 점점 떨어질 수 밖에없지요. 않던 코고리도 들리게되면 참 힘들어지는데.......실감나는 글 마음에 닿습니다 건필하시길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