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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물든 600년생 은행나무 아래로 관광객이 지나고 있다.
이튿날 새벽에 신륵사에서 남한강의 물안개를 찍을 생각이었으나 비가 많이 내려서 포기해야 했다. 아침 7시 30분에 여관을 나섰는데, 다행히 신륵사에 도착하자 비가 그쳤다. 신륵사는 빼어난 경관으로 인해 드라마 [장길산], [부모님전상서]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강월헌과 석탑 뒤로 보이는 남한강 풍경이 여유로웠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다층전탑을 둘러보고 계단을 내려서자 600년생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물든 풍경이 단연 돋보인다. 비가 내리면서 잎을 많이 떨구었지만, 오히려 바닥마저 노랗게 물든 풍경이 늦가을을 풍취를 한결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극락보전의 다층석탑 앞에 서 있는데, 어딘선가 비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적묵당 앞에서 한 스님이 비에 떨어진 가을을 쓸어모으고 있었다. 스님의 비질하는 소리와 그 풍경이 너무 좋아 그 앞에서 한동안 촬영에 열중했다.
여주세계생활도자관 전경 신륵사 입구의 여주세계생활도자관에서는 ‘세라믹판타지’라는 어린이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다양한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시선을 끌었다. 도자관을 둘러본 후 목아불교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박물관 내에 자리한 사찰음식전문점인 ‘걸구쟁이네’에서 곤드레비빔밥을 먹었다. 조미료를 안하고 내놓는 음식으로 평소 싱겁게 먹는 필자의 입에는 아주 잘맛는 음식이었다. 된장, 튀김, 나물 등에서 특유의 향이 그대로 품어져 나와 입맛을 살려준다.
목아불교박물관 역시 늦가을의 정취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특히 전시관 본관 건물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쿨이 발갛게 물들어 가고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야외의 연못과 다양한 불상과 석탑 등 볼거리가 많았고, 실내전시관을 가득 메운 불교 관련 전시물들이 불교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곳 역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는데, 오히려 신륵사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찾아오는게 이상할 정도였다. 오전 일찍부터 움직인탓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잠시 고달사지에 들렀다.
고달사지에서는 석불좌(보물 제 8호)와 원종대사 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제 6호) 등이 자리한 복원터가 고달사의 옛 위용을 잘 보여주었다. 단풍으로 물든 주변풍광으로 인해 문화재적 가치가 더 빛나보였다. 위쪽에 자리한 원종대사혜진탑(보물 제 7호)과 고달사지 부도(국보 제 4호)는 빼어난 불교예술이 숨쉬고 있었다. 아래부분에 새겨진 용이 하늘로 오를듯 기상이 넘치고, 부도 벽면에 음각된 불상 역시 며칠 전에 새겨놓은 듯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다시 여주시내로 들어서서 영릉으로 향했다.
영릉은 생각외로 볼거리가 많았다. 입구에 세종대왕의 지시로 발명된 해시계를 비롯해 다양한 천체 관측기구들이 있어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는 공간이다. 저 해시계들이 정말 잘 맞나 궁금해서 그림자의 위치를 살펴보니 시계와 같은 12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해가 계절에 따라 높이도 다르고, 동선이나 방향이 약간씩 다른데 당시의 과학기술로 정확하게 그림자의 위치를 계산해서 시계를 만들었다는게 놀라웠다.
세종전에서 세종대왕과 관련된 전시품을 살펴보고, 세종대왕동상과 제실을 둘러본 후 훈민문을 지나자 벌써 30분이 경과했다. 홍살문을 지나 영릉으로 가는 산책로 주변은 잔디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주변의 드넓은 잔디광장은 가족나들이객의 휴식공간으로 더없이 좋았다. 수복방과 비각을 지나 영릉앞에 섰다. 영릉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합장한 능이다. 능 정상에서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는 탁트인 풍경이 더없이 마음에 들었다. 잔디가 넓게 펼쳐진 가운데 송림숲이 우거져 있어 아늑한 어머니의 품같이 다가온다. 내려오는 길에 수라간과 정자각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공간이다.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이곳에서 1시간을 넘기면서 일정에 쫓기는 상황이 되었다.
여주쌀밥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밥이 나오는데만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만큼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여주햇쌀로 지은 밥이라 아주 찰지고 맛있다. 항상 전라도 밥상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모처럼 경기도에서 너무 맛있는 밥상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푸짐한 전라도 한정식 못지 않은 다양한 음식들로 상이 가득한데다 맛도 좋았다.
명성황후생가는 명성황후가 태어나서 8세까지 살던 곳이다. 생가 외에 기념관, 문예관, 추모비, 연못 등이 자리하고 있다. 넓은 공간에 비하면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으로 볼거리가 그리 많지는 않다. 체험거리가 부족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일제시대 가슴아픈 역사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명성황후인데, 그 역사성에 견줄만한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일정상 마지막 여정이 되는 분원백자관으로 향했다. 영동고속도로 여주IC에 올라서는 순간부터 정체가 시작되었다. 중부고속도로 광주IC를 빠져나와 분원백자관으로 향하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분원초등학교 입구의 주차장에 주차 후 언덕길을 약 10분을 걸어가서야 만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안의 분관에 들어선 건물로 학생 수가 줄어서 활용하지 않는 방치된 건물을 리모텔링해 이용하는 것이라 했다. 내부의 전시물도 얼마되지 않아 20여 분이면 다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곳까지 찾아가는 시간이랑, 다시 주차장에서 걸어가야 하는 왕복 20분의 시간이 아까웠다.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우회도로를 만들든가 하는 방법으로 접근성을 쉽게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자관을 둘러본 후 서둘러 수원으로 갔으나 차량정체로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수원화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후라 촬영이 불가능해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제주와 충북 영동 등 취재 일정이 밀려 있어 추가 답사는 뒤로 미루어졌는데 11월19일에야 다녀왔다. 서울을 출발해 오전 11시 30분 서장대에 도착했다. 서장대는 동장대(연무대)와 함께 화성의 군사지휘본부였던 곳이다.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으로 바로 아래 화성행궁이 내려다보일 뿐만 아니라 성밖과 주변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화서문, 서북공심돈, 장안문, 화홍문 순으로 둘러보았다. 화홍문은 홍예문 아래로 하천이 흐르고 있어 여러 문들 중 가장 운치있고 아름다운 문으로 꼽을 만하다. 방화수류정은 벽돌과 목조구조가 결합된 독특한 양식을 하고 있는 건물이라 눈길을 끈다. 방화수류정은 동북각루로도 불리는데, 각루란 높은 위치에 건물을 세워 주변을 감시하는 기능과 휴식공간을 겸하고 있는 곳으로 주변경관도 빼어나다. 화홍문 옆에 있는 연포갈비에서 맛있는 갈비로 점심을 먹었다.
화성행궁으로 이동해서 2시부터 시작되는 장위영 수위의식을 지켜보았다. 장용영은 조선 후기인 1793년(정조 17)에 왕권강화를 위해 설치한 금위조직이다. 정조대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수위의식과 군례를 관찰하는 행사로 3~11월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약 1시간동안 재현된다. 정조대왕을 비롯해 장용대장 등 53명의 인원이 수위의식, 국왕행차, 군례의식 등을 선보여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조총사격시범 때는 초등학생들을 불러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해서 더욱 이채로웠다. 그런가하면 정조대왕이 관람객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또한 인상깊었다. 이런 풍경들이 조선시대를 폭넓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화성행궁은 의외로 체험거리가 풍성하고 알차다. 장용영 갑주를 비롯해 대장금 복식, 왕과 왕비, 왕자, 공주 복식 입어보기가 있는가 하면, 궁중상화 만들기, 궁중 한과 만들기, 궁중 오미자차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어 인기를 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엽전을 구입해서 엽전으로 결재를 대신하게 되어 있어 그 재미가 한결 쏠쏠하다. 그 중 궁중상화 만들기에 도전했는데, 궁중 전통의 상화인 복숭화꽃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이었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제대로 만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는 꽤나 힘든 수작업이었다. 화성행궁과 화령전을 둘러보고 연무대로 이동하자 오후 4시가 넘어섰다. 현판에는 연무대라 씌어있는데 동장대로도 불린다. 근처에 있는 국궁체험장에서 활쏘기 체험을 했다. 활시위를 당겨 맞춘다는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활쏘기 체험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 11월 25일 양평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여주 고달사지, 목아박물관, 신륵사 보충촬영을 했습니다. 답사자 : 한국여행작가협회 김수남, 김정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