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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정한 물건을 당장 갖다 버려요.”
장-마리 엘리 셋본, 아니 엘리야는 이스라엘서는 단순하게 살 수 있었다. 하시딤 주의의 신비신학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예수에 관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파리에서의 삶은 달랐다. 과거에 있었던 예수와의 체험이 되살아 나더니 거의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엘리야를 사로잡았다. 그는 다시 예수 성심 성당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미사 중에 성체를 영했다. 십자가도 다시 사서는 아무도 못 보게 옷 속에 감추고 다녔다. 요한 복음을 읽고 외우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이 좋았다. 숲속 깊이 들어가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십자가를 나무에 걸어놓고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지만 주님의 기도를 읊으면 자기가 하느님을 배반하고 있는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하였다. 그는 내면의 갈등에 관해 부인에게 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회심한 경우에서도 보듯이, 유대인들은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나 동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유대인들은 그저 바오로가 하느님을 모독했다고 여겨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보수적인 유대인들은 매일 기도 중에, 기독교 세례를 받은 유대인들을 저주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세례 받은 유대인들은 미워하고 배척해야 할 대상이 된다.
엘리야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 영적 문제를 누군가에게 깊이 털어놓고 싶었다. 그 기회는 리옹에서 휴가 중 찾아왔다. 그날 이른 아침, 그는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갔다가 도미니코회 수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 수사에게 그리스도와의 사랑에 관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엘리야의 고백을 듣고 수사는, 파리에 돌아가면 세례 받을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래서 엘리야는 예비가 교리를 듣기 시작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집에 도둑이 들면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도둑이 들어 난장판이 된 집에서 그의 부인이 바닥에 뒹굴고 있는 성경책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녀는 화가 극도로 치밀어 올라, “이 부정한 물건을 당장 갖다 버려요.”라고 남편에게 소리 질렀다.
엘리야는 자신이 예수님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려서부터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 일이 있고 그는 이혼을 제안했지만 부인은 이혼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기독교와 관련된 물건과 서적들을 전부 버리기로 결정했다.
홀아비 엘리야에게 다가가신 하느님
1994년이었다. 어느날 저녁 엘리야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문득 라디오를 틀었다. 그런데 노트르담 가톨릭 채널에 맞춰져 있는게 아닌가! 그날부터 그는 매일 가톨릭 라디오 채널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예수 성심 성당에 나가게 되었고, 이번에는 예수 성심 성화까지 사서 집으로 들였다. 그는 성화를 들키지 않게 잘 숨겨 두고는, 종종 꺼내서 성화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곤 하였다.
2002년 7월에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해 12월에는 부인마저 심하게 병을 앓았다. 당시 그녀는 일곱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는 부인을 간호하고 아이들을 잘 보살피는 데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녀는 2004년 3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크나큰 절망감과 상실감에 빠졌지만 겸손하게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겼다. 큰딸 라헬리 겨우 열 살이었고, 막내 아들 세네올은 한 살배기 갓난아기였다.
홀아비가 된 엘리야는 이제 율법에 따라 안식일에 먹을 음식과 평일에 먹을 음식을 직접 준비햇으며, 빵과 케이크도 혼자서 굽고, 혼자서 장을 보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성당이나 회당에 갈 시간조차 낼 수 없었다.
2007년 8월 6일,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그에게 기이한 계시가 내렸다. 그는 어떤 영에 사로잡혀 느닷없이 러스티저 추기경이 죽었다고 소리 질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추기경의 죽음은 사실이었다. 또한 러스티저 추기경도 유대인이지만 가톨릭으로 개종 한 사람이었고, 죽은 추기경이 그에게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세례를 받으라고 신호를 보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그날, 엘리야는 추위에 떨며 잠에서 깨어났는데, 갑자기 예수님이 진짜 만져질 듯한 사람처럼 그의 앞에 나타났다. 예수님은 뜨거운 사랑과 기쁨과 평화로 엘리야를 가득 채워주셨으며, 이러한 체험은 몇 번 더 계속되었다.
2007년 9월 엘리야는 하느님에게서 또 다른 표징을 받는다. 어느 날 저녁, 아이들과 함께 TV 채널을 돌리다가 마침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와 아이들 모두 그 드라마에 푹 빠지는 바람에 다음 방영일을 항상 손꼽아 기다리게 된 것이다.
극 중에서 특히, 훗날 교황이 되는 주인공 학생이 십자가의 성 요한의 책을 받아 다 읽은 다음, 어느 유대인 친구에게 다시 선물로 주는 장면을 보며 엘리야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그 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하여 아예 십자가의 성 요한의 전집을 통째로 구매하여 하나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마리아의 동정성을 받아들이기기 어려웠고,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도 심각한 우상숭배처럼 생각되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책을 읽는 동안 그는 가르멜 수도회의 한 신부를 알게 되었는데, 그 신부는 엘리야에게 묵주기도를 바쳐보라고 권했다.
처음에는 묵주기도 자체가 달갑지 않았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했던 묵상기도를 따라해 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묵주기도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묵주기도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성모님께 자기를 봉헌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즈음에 그는 성모 신심에 관한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책도 사서 읽었다. 그 책 덕분에 그는,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통해서 참사람이 되셨다는 사실과 우리 모두는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게 다가가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의 마음은 이렇게 예수님께 끌리고 있었지만, 그의 이성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가슴이 말하는 것과 머리가 말하는 것
세례를 받고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시점에, 엘리야는 유대인이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해 이렇게 썼다.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세 위격의 하느님이 동시에 오직 한 분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시며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오직 인간의 이성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유대인이라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떠나갔다고 전한다. 예를 들면 요한 복음 6장 51-58절에서 그런 경우를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모종의 광기, 즉 십자가에 대한 광기 위에 형성된 종료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나는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이성과 이해 능력을 벗어나는 것들에 근거한 종교라는 점에서 이 말을 한다. 예수님이 하느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서 유대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가 하느님인지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믿음과 은총이 없이 인간의 머리로는 결코 예수님이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없다.”
엘리야는 세례를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 했지만, 이성으로는 아직 가톨릭 신앙과 교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날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했다.
“당신은 세례에 대한 강한 열망을 불어넣어 주셨지만 아직 당신에 관해서는 어떠한 것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참된 믿음에서 멀어졌고 유대인들에게서 돌아섰으니, 우리는 당신을 거짓말쟁이며 하느님을 모독한 자로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간단합니다. 로마의 저 위대한 랍비였던 에밀 졸라(그가 계약의 궤를 열자 예수님이 나타나 축복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너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 나는 다른 곳에서 너를 원한다.)에게 하셨던 것처럼 저의 지성을 밝혀주시든가, 아니면 사도 바오로에게 하셨던 것처럼 차라리 제 영이 새로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제는 제발 저를 내버려두십시오. 혼자서 일곱 아이를 데리고 사는 것만으로도 이미 제 삶은 벅찹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아 두렵고 너무 힘겨워서 끔찍한 죄를 저지를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들을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불쌍한 아이들은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벌써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었는데, 이제는 아빠마저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아이들에게 또다른 충격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제 아이들을 보살펴주시든자 아이면 저를 이제는 그냥 좀 내버려두십시오. 아멘.”
엘리야는 즉각 하느님의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오순절을 앞두고 나무르에 있는 베들레헴 수녀원의 초대를 받아 머물고 있는 그에게 하느님께서 응답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
금요일 아침, 엘리야는 나무르의 수녀원 성당에 있었다. 그때 토리노의 예수님 수의에 묻어 있는 그리스도의 형상에 시선이 향했다. 갑자기 수의에 찍힌 예수님의 얼굴에 생기가 돋아났고 예수님이 눈을 뜨시는 게 아닌가! 그가 자기가 지금 알 수 없는 어떤 새로운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지나자 수의 속의 예수님이 눈을 감았고 그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어떤 명확한 응답을 듣고 자기에게 있던 모든 의심과 불이 단번에 해소된다는 희망으로, 수의 사진 속의 그리스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수의 속의 예수님이 또다시 눈을 떴다.
그 순간 그는 어떤 영적인 표징을 보았는데, 하느님에 관한 모든 진리가 가톨릭 교회에 계시되었다는 강한 확신을 거기서 얻었다. 동시에 그는 하느님에게서 아주 큰 은총을 받았는데,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지키며 살기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탈무드에 기초한 자신의 보수적인 입장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메시아이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신 참하느님이시라 고백했다. 그리스도는 모든 선의 근원이시고 그가 하느님을 믿는 이유가 된 것이다. 그는 이제 율법 학자로서 모든 것을 복음의 빛에 비추어서 해석하게 되었다.
“이제는 구약 성경을 읽으면 어디서든지 예쉬 그리스도에 관한 구절들을 접하게 된다. 예수님에 관한 언급은 예언서에만 한정 되지 않는다. 나는 구약 성경 전체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주님께서 내 지성과 내 눈을 밝혀주셔서 이제는 성경을 완전히 새롭게 읽기 되었다. 바오로는 자기 눈을 가리고 있던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나 또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엘리야는 세례를 받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면서 수도원 성당을 떠났다. 안식을 규정과 음식에 관한 규정을 포기했다. 랍비가 입는 옷도 벗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자유롭게 입고 다녔다.
“나는 교회에 대한 사랑을 배웠다.”
몇 달간의 예비자로 교육 후 2008년 9월 14일 십자가 현양 축일, 엘리야는 베들레헴 수녀원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고 장-마리 엘리야(요한 마리아 엘리야)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이이서 두 아들 요셉-라파엘과 므나켐 다른 아이들도 똑같이 세례를 받았다. 그의 자녀들 중에서 레베카만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세례를 받고 몇 달 후 그는 페트로넬라를 만났다. 엘리야의 아들 가브리엘이 그녀에게 “저희 아빠랑 저희를 돌봐주세요.”하면서 엘리야와 페트로넬라의 사이를 이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엘리야는 얼마 후에 재혼하였고, 3년 후인 2012년 1월에는 나타나엘이 태어났다.
엘리야기 가톨릭으로 개종하자 그의 친지들과 유대인 공동체는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를 증오하는 이메일이 쏟아졌고 심지어 협박까지 받았다. 그동안 친하게 지내왔던 유대인 친구들은 모두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들에게 엘리야는 유대인이 아니며, 죽은 자나 다름이 없었다. 다른 종교로 개종한 유대인은 유대인 사회에서 미움과 멸시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엘리야와 그의 아이들은 유대인에게서 증오와 폭력의 표적이 되었고, 시시각각으로 위협을 느꼈다. 예수님도 같은 민족 사람들에게서 거부당했고, 예수님에 대한 반감은 유대인 사회에서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무려 2000년이나 지났는데도 유대인 들의 생각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야는 자신의 동족들을 똑같이 미워하지는 않았다. 가톨릭 세례를 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유대인이었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이 된 것이다. 이제 그는 유대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하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이자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사랑하게 되었다. 교회에 대한 사랑에 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교회에 대한 사랑을 배웠다. 또는 예수님이 내게 교회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 주셨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분이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도 교회를 사랑하고, 죽음조차도 이 사랑은 끊어놓지 못 할 것이다.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거룩하지만, 한편으로는 죄로 가득 차있다. ....교회의 이중성에 관해서는 교회가 반석 위에 세워졌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반석은 베드로인데, 베드로가 누구던가? 그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잡아땟던 사람이다. ....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그날 나를 거부했고 나를 위해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지 않았지? 너는 내 교회의 반석이 될 자격이 없으니 네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한 말은 취소한다. ’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저,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었을 뿐이다.
교회를 한없이 사랑하신 까닭에 그리스도가 교회와 맺으신 혼인관계를 영원히 지속하기를 바라신다는 점에 사람들이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지난 수세기 동안 수많은 잘못과 과오를 저질러왔다. 하지만 교회의 남편이신 분은 한번도 이혼하려고 한 적이 없지 않은가. 물론 우리 면전에서 성당 문을 차갑게 닫아버리는 사제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픈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 자체로는 아름답고 거룩하며,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내어주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실로 놀라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교회가 어째서 그리스도의 신부인지, 교회를 어째서 우리에게 하느님을 낳아준 자애로운 어머니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Love One Another! no. 47>에서
박규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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