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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nba에 게이선수가 있는가’ http://cafe.daum.net/ilovenba/7n/215427 란 글로 존 아미치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엔 그 글의 연장선인데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제이슨 콜린스 이야기입니다. 커밍아웃 당시의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짜집기 글인데요. 재미는 덜하지만 좋게좋게 읽어주세요.
커밍 아웃
2013년 4월 15일
보스턴 테러가 일어난 후, 제이슨 콜린스는 ‘사람의 삶이 한치 앞을 알 수 없는데 왜 진실되게 살지 않았나’란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기로 마음 먹는다. (워싱턴 소속이었던 그는 17일에 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뤘다)
2013년 4월 29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FA 신분의 센터는 진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낸다.
"I'm a 34-Year-old NBA Center. I'm Black. And I'm Gay."
그의 에이전트 안 텔렘은 콜린스의 커밍아웃이 그의 FA 계약에 영향을 줄까 봐 왜 지금 공개적으로 밝히는 거냐며 7월 FA 시장에서 계약을 맺은 뒤로 미루자며 그를 설득했지만, 콜린스는 농구 경력보다도 자의 인생이 중요하고 그동안 외로움과 고립됨을 느꼈다며 예정대로 SI와의 만남을 진행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최초가 되려는 의도는 없었고 그저 이 이야기를 밝힐 수 있어 행복해요”
이로서 2001년 18픽으로 데뷔한 7피트 센터는 미국 4대 프로스포츠 중 최초로 커밍아웃한 현역 선수가 되었다.
*커밍아웃 후 경기를 뛴 미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선수는 MLS의 로비 로저스다.
그는 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10 월드컵 예선, 09·10년 골드컵 미국 대표를 한 87년생의 축구선수로 2013년 2월 홈페이지에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축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며 커밍아웃을 이유로 은퇴했었다가, 5월 27일 LA 갤럭시 소속으로 복귀하며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교체 출전한 그를 향해 2만 명의 관중은 함성을 보냈고 동료들도 그를 반겼다. 경기가 끝난 뒤 뉴욕 타임스는 그를 재키 로빈슨에 빗댔으며 로저스는 트위터를 통해 ‘새로운’ 데뷔에 관한 흥분을 전했다.
커밍 아웃 후 반응
5월 1일 제이슨 콜린스는 ABC 방송에 출연해 우려했던 바와 다르게 많은 격려와 지지를 받고 있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그러나 개중엔 부정적인 시선도 역시 존재했다.
긍정적 반응
오바마는 개인적으로 콜린스에게 전화를 걸었을 뿐 아니라 기자들 앞에서도 그의 용기를 칭찬하고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권익 신장 정책을 펴고 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도 “미국 사회에 있는 동성애자들의 권리 신장에 아주 좋은 선례가 될 것”이란 성명을 밝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성명에서 “제이슨의 발표는 스포츠와 성 소수자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고 그의 딸이자 콜린스의 친구이자 동창인 첼시도 페이스북에 그를 지지하는 내용을 밝혔다.
그밖에도 여러 정치인들, 마이클 콜 슈워츠 인권캠페인단체 국장을 포함한 여러 인권단체, 가디언지를 포함한 언론 등에서 콜린스를 지지하는 의견을 표현했다. 스포츠 계에도 긍정적 반응이 잇따랐다.
코비 브라이언트
매직 존슨
스티브 내쉬
닥 리버스
이밖에도 보쉬와 제리 스택하우스, 로렌스 프랭크 전 넷츠 감독 등 여러명의 선수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 SNS, 인터뷰를 통해 지지를 보냈으며 NBA 선수협회와 데이비드 스턴 당시 NBA 총재와 콜린스의 스폰서 나이키도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NBA 경력에 커밍아웃을 더한 최초의 농구선수 존 아미치도 "앞으로 더 커다란 영향을 사회에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라며 의견을 전했다.
타 스포츠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는데 MLB의 매팅리 감독은 콜린스를 재키 로빈슨과 비교했으며, NFL의 브렌던 아이언바데조는 “콜린스가 더 멋진 미국을 만드는데 기여했다”라고 크리스 클루이는 “성적 취향과 운동능력은 아무 관계가 없음을 증명했다”라고 말했다.
유명한 동성애 선수인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도 지지의견을 밝혔고 BNL 이탈리안 오픈 출전 중이던 페더러도 콜린스의 커밍아웃에 대해 "내가 들은 바로 아직 게이는 없었지만 NBA에서처럼 테니스에서도 충분히 게이 선수가 커밍아웃할 수 있을 것"이라 긍정적 의견을 표현했다.
부정적 반응
하인스 워드는 NBC의 라디오방송에서 자신은 게이 선수들에 대한 편견이 없지만 NFL은 아직 공개된 게이 선수를 받을 준비가 안 되었다며 커밍아웃에 대해 우려섞인 의견을 표했다.
“NFL의 라커룸엔 다양한 선수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고 커밍아웃하면 일부 선수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어요.”
크리스 브루사드 Chris Broussard
가장 부정적 의견을 낸 인물은 ESPN의 크리스 브루사드로 그는 커밍아웃 소식이 이어지자마자 Outside the Line란 프로에서 콜린스를 비난했다.
“동성애를 공개하는 것은 신과 예수에게 죄를 저지르는 겁니다. 이는 혼전 성관계, 간통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크리스천이라고 볼 수 없어요.”
*제이슨 콜린스는 신앙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며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한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말해왔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 중 인내와 이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방송 이후 ESPN은 크리스 브루사드의 발언으로 인한 진통을 겪었고 공식적으로 “우리 방송은 다양성을 존중하며 콜린스의 커밍아웃을 환영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브루사드의 의견 피력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5월 2일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전미기독교남성연합에서 또한번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저를 위해 기도해준 참석자분들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많은 미움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받고 있어요. 지금 NBA의 선수와 코치 매니저 그리고 영향력있는 목사들도 저에게 격려전화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 의견에 동조하는 스포츠 스타도 있었는데 세계적 골프선수 버바 왓슨이 그러했다. 2014년 PGA투어 마스터스 토너먼트 우승자이자 현재 세계랭킹 3위인(15년 3월 26일) 왓슨은 트위터에 ‘브로사드의 신념을 존중하고 성경을 믿는다’라고 밝혔고 이후에도 게이가 되는 것은 죄악이라 말했다.
당혹스런 반응
캐럴린 무스 Carolyn Moos
콜린스의 커밍아웃이 가장 당혹스러웠을 인물은 전 약혼녀 캐럴린 무스일 것이다.
01년부터 03년까지 WNBA센터였던 그녀는 제이슨 콜린스와 09년까지 무려 7년간 사귀고 약혼까지 했었다. 그녀는 커밍아웃 후인 5월 1일 TMZ와의 인터뷰에서 콜린스가 커밍아웃 전날 그녀에게 연락해 자신의 동성애자였고 그것 때문에 헤어졌던 거라고 사실을 말해줬고 그녀는 그때야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사귀는 동안엔 단 한번도 콜린스가 게이일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고 밝혔는데, ...그녀는 그래도 앞으로 콜린스가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란다며 대인배적 모습을 보여줬다.
커밍아웃의 파급력 및 행보
2013년 6월 8일
찰스 바클리는 스포츠 라디오 쇼인 ‘댄 패트릭 쇼’에 출연해 본인이 16년간 3명의 동성애 선수와 뛰었다고 밝혔다.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그들과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눴기에 이러한 일들이 사실이라 덧붙였다.
13년 6월 11일
제이슨 콜린스가 스탠포드 대학시절 룸메이트였던 조 케네디 3세의원과 함께 보스턴에서 열리는 동성애자 퍼레이드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13년 12월 11일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와 함께 스위스 제네바 유럽 유엔본부에서 열린 세계 인권의 날 특별행사에 참여해 동성애자의 권리신장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고, 전 NBA 선수 존 아미치가 했듯이 IOC와 FIFA에 대회 개최 시 동성애자의 인권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콜린스는 나브라틸로바에 대해 "난 내 우상 중 한명의 옆에 앉아있다"며 감회를 밝혔다.
2014년 1월 28일
오바마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에 6명이 초청되었는데 그 중엔 제이슨 콜린스와 보스턴 폭탄테러 구조영웅이 포함됐다. (그에반해 세월호 구조영웅은..) 그밖에 워싱턴 빈민가에서 15년 동안 봉사한 유치원 교사, 아프가니스탄에서 혼수상태에 빠졌다 살아난 코리 렘스버그 중사도 일원이었다.
14년 2월 10일
NFL 진출 가능성이 있는 미주리 주림대의 마이클 샘이 ESPN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했다. 2013년 SEC 올해의 수비선수이자 스포르팅 뉴스가 선정한 올 아메리칸 팀인 마이클 샘은 NFL 진출이 성공한다면 현역 최초의 NFL 게이선수가 된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팀 동료와 코칭스태프는 13년 8월부터 사실을 알았으며 그를 지지해줬다고 한다.
이 소식 후 NFL은 “샘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능력만 있으면 NFL에 진출할 수 있으니 그를 환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14년 2월 23일
01년부터 08년까지 동료였던 키드가 감독으로 있는 친정팀 브루클린 넷츠와 10일 계약을 맺고, 24일 첫 경기에 투입되며 공식적으로 4대스포츠 최초의 현역 게이선수가 되었다. 레이커스와의 원정경기에서 10분간 뛰며 2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1개의 슛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진 못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코트로 돌아와 정말 좋았다. 달라진 것은 없었으며 팀이 이겨서 더 좋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경기에 참여했던 데론 윌리암스는 “역사적인 순간이었고 콜린스가 팀에 들어와서 기쁘다”라고, 파우 가솔은 “나는 경기에만 집중했다. 콜린스를 다시봐서 좋았고 그의 용기를 존중 한다. 10일 계약 이후에도 계속 봤으면 좋겠다”며 의견을 말했다.
14년 2월 28일
NBA 공식 온라인 용품 판매 사이트 NBAStore.com에서 제이슨 콜린스의 제품이 상위 5개 중 4개를 차지했다. 홈·원정 유니폼과 여성용 원정 유니폼, 이름과 등번호가 새겨진 남성용 티셔츠가 그 주인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르브론 제임스의 용품이었다.
14년 3월 1일
컴백한 콜린스의 유니폼 번호는 98번이었는데 이는 그가 커밍아웃 전에 커리어 후반에 쓰던 번호였다. 그 번호의 의미는 98년 일어난 고문과 살인, 유기의 흉악한 동성애 혐오자 범죄인 '매슈 셰퍼드 사건' 때문인데 콜린스는 1일 셰퍼드의 가족을 찾아 자신의 유니폼을 선물하는 자리를 가졌다. NBA와 콜린스는 NBAStore.com에서 얻은 수익과 본인이 입었던 유니폼을 통한 경매 수익금을 셰퍼드 재단을 포함한 여러 동성애 단체에 전달했다.
14년 3월 15일
5일에 두 번째 10일 계약을 맺었던 콜린스는 넷츠와 잔여시즌 계약을 맺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엔 주전으로 출전해 39분을 뛰며 8득점 3리바운드 2스틸을 기록했다.
14년 4월 9일
NCAA 디비전1 64라운드에서 메사추세스 대학은 테네시에 패해 떨어졌다. 그리고 2주 후 코치 데렉 켈로그는 팀 미팅을 소집했고 팀의 슈팅가드 데릭고든은 동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했다.
ESP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저는 지금까지 거짓인생을 살았어요. 이제 운동선수들이 숨기지 않고 좋아하는 운동을 마음껏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년 전 커밍아웃을 한 제이슨 콜린스는 제게 용기를 줬고 그를 받아준 NBA를 보며 지금이 그때라고 느꼈어요. 성정체성은 문제가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사실 고든은 그동안 팀에 잘 융화되지 못했고 동료들은 고든을 게이라고 놀리며 거리감을 유지했다. 그러나 계속 부인하던 고든이 공식적으로 진실을 밝히자 동료들은 오히려 용기와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별개로 콜린스는 4월 타임지의 커버이자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 100명에 선정된다.
14년 5월 11일
마이클 샘이 NFL 2014드래프트에서 7라운드로 세인트루이스에 지명되었다.
14년 5월 20일
제이슨 콜린스가 어느 팀과 경기할 때 게이에 관련된 욕설을 들었는데 무시했다고 밝혔다.
14년 8월 31일~10월 22일
미국 4대 스포츠 최초로 커밍아웃 후 드래프트에 픽된 마이클 샘이 8월 31일 방출되었다. 프리시즌까진 괜찮았으나 개막을 앞둔 53인 로스터엔 포함되지 못했다. 제이슨 콜린스는 트위터를 통해 ‘살아가다보면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여정이 길어질 수 있다’며 그를 지지하는 의견을 표했다. 이후 9월 댈러스 카우보이스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며 가능성을 이어갔지만 10월 22일 결국 연습선수 명단에서도 제외되며 게이선수의 NFL 데뷔는 훗날로 미뤄야했다.
14년 11월 19일
제이슨 콜린스가 브루클린에서 열린 넷츠와 벅스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 공식 은퇴 인터뷰를 가졌다.
2015년 3월 9일
야후 스포츠에서 NCAA와 NBA를 담당한다고 발표했다. 그 외에도 그는 동성애 인권신장을 위한 명사로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키는 7피트지만 리바운드도 블록도 별로였던 콜린스는 11년 플레이오프에서 전성기였던 하워드를 수비할 때 외에는 빛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꽤 오래도록 기억될 선수가 되었죠. 이전의 존 아미치는 은퇴 후에 그리고 이번엔 커리어 극 종반의 커밍아웃이라 사실 좀 김빠지는 느낌도 있는데요. 짜집기하면서 만일 스타플레이어가 커리어 정점에서 커밍아웃 한다면 어떨까란 상상, 우리나라에선 커밍아웃 운동선수가 언제쯤 가능할까란 상상을 한번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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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봤습니다. 제이슨 콜린스의 최고 전성기는 역시 애틀시절 2010-11시즌 플옵 1라 시리즈때 주전센터로 뛸 때죠ㅎㅎ
대단한 사람이네요. 전 이성애자이지만 혹 동성애자라도 절대 커밍아웃할 용기는 못 낼 것 같네요
플옵 로스터에 들긴 했는데 안뛴거 ㄷㄷㄷ 웨이브는 안했어요.
헐 수정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전 약혼녀도 몰랐었다니 ㄷㄷ
그러게요.완벽한 양성애자 였는지..
대단한 용기네요. 단 하루라도 진실된 삶을 살고자 했던 그의 용기를 존중합니다.
7년이나 연애했는데 게이였다는거 알게 된 전 약혼자는 좀 불쌍하네요
덕분에 좋은 내용 잘봤습니다.
프렌즈 나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것만 보고 미쿡은 동성연애 에 대해 그냥 무덤덤하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구 있구나 .. 하고 생각했었는데 콜린스가 미쿡 4대 스포츠 선수 중 커밍아웃한 첫번째 선수였다니 놀랍네요. 선수 시절엔 참 싫어하던 선수였는데 (뉴저지 팬이라 ㅋ 키드 카터 제퍼슨 보다 리바운드 못하는 주전 센터라니 !!! ) ... 그 용기 존중합니다. 커밍아웃 했다고 끝이 아니라 커밍아웃 후부터 진짜 챌린지 들 살면서 많이 닥칠거 같은데 힘 내시길 바랍니다
그러게요 현역 땐 확실히 힘든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