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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에세이집 [☆그리운 날은 서해로 간다2☆]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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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날은 서해로 간다 2]
오영미 에세이집 / 시와정신산문선 8 / 도서출판 시와정신(2018.10.16) / 값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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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드드득 따다닥 훨훨
오영미
저희 서산의 가을 소리를 들어 보신 적 있나요? 퍼드득 따다닥 이것이 요즘 겨울을 맞이하기 위하 철새들의 고향인 서산의 막바지 가을 소리랍니다. 새들의 날개 홰치는 모습이 얼마나 요란한지.
오후 4시경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처앉아 있을 즈음, 서편하늘 낙조에 무리 지어 나는 새들의 운무를 즐기실 수 있어요. 가창오리 떼들의 살아있는 생동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퍼덕이는 몸부림과 나의 마음을 유혹이라도 하는 듯 기러기떼의 날개 모양은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고귀하고 우아한지. 내 마음이 벌써 그들 곁으로 날아가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지요.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위치한 천수만은 아시아 대륙의 보물로써 지리적인 여건과 간척지로 인해 형성된 넓은 논의 에너지 보유량에 의해 가을, 겨울 동안 많은 철새가 찾아오는 중요한 서식지예요.
천수만에는 철새들이 많이 월동하고 있는데요.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가창오리, 청둥오리, 흰죽지, 논병아리, 기러기, 고니 등 수없이 많은 철새가 천수만 담수호에서 겨울을 나고 있거든요. 개체 수가 많을 때는 40여만 마리가 관찰되기도 하고, 종수도 120여 종으로 국내 최대의 종수를 자랑하며 천연기념물도 16종 이상이 천수만에 오는 것으로 조사 되었는데 지금은 가창오리떼, 흰뺨검둥오리, 기러기 등이 많이 와 있어요. 어제는 도요새가 45마리 정도 관찰되기도 해서 우리들을 기쁘게 해 주었지요. 청둥오리의 귀여운 몸짓과 노랑부리지어새의 도도한 자태를 보며 탄성을 자아내는 사람들.
국내 최대 철새들의 낙원인 천수만! 온 세상 모든 새가 모인 듯 드넓은 간척지! 길게 누운 간월호, 부남호와 양옆의 끝이 안 보이는 논! 하늘과 섬들이 주홍빛 노을로 물들 무렵 천수만에서는 황홀한 장관이 펼쳐지는데요. 이 새들이 먹이를 찾아 일제히 무리 지어 비상할라치면 무서울 정도로 따닥거리는 굉음과 함께 하늘은 온통 새까만 점들의 행진이 머리 위에서 빙빙 돌아 뭇 사람들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데 이때의 순간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 탄성과 괴성만이 존재할 뿐 그저 눈으로 바라보며, 귀로 들을 수 있는 멋진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방조제를 쌓으며 형성된 간월호(A지구)와 부남호(B지구), 습지, 경작지에는 앞으로 10월 말부터 120여 종 2백 10만여 마리의 철새들이 날아들게 되는데 지금부터 한창 서서히 철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해서 11월 경이면 철새 탐조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절정기를 이루게 되지요.
여름에는 바다와 호수로 손님을 끌고, 겨울에는 큰고니(천연기념물201호)와 기러기류(325호), 원앙새(327호)에 황새(199호)까지 날아들어 간척지의 들판을 가득 메워 천혜의 관광지로써 전혀 손색이 없는 이곳에서 철새들은 간월호와 그 주변의 서산간척지 논과 천수만 일대의 바다와 개펄 등지를 오가며 바쁜 겨울나기를 하는 한편 사람들에게는 활력을 선사해주는 겨울철 진객으로 좋은 구경거리가 되어줍니다.
간월호와 서산간척지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철새도래지가 된 것은 넓은 호수와 주변에 있는 논, 바다와 개펄 등 새들의 먹이 밭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기 때문인데요. 탐조객들은 간월호에서 오리 떼를 간척지 논에서는 기러기 떼를, 그 너머 개펄에서는 오리, 갈매기, 노랑부리저어새들이 섞여노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답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해마다 봄, 가을철이면 쉽게 볼 수 있는 철새들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찾아 헤매기 때문에 철새들에겐 사람들이 정해놓은 국경이라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따라서 짧은 기간이나마 우리나를 찾은 철새들과 그 서식지를 우리의 손으로 보호하지 않거나 철새서식지로 적합한 서식지를 인간의 이익만을 위해 파괴한다면 앞으로 영원히 그 철새들을 볼 기회마저 없어질 거예요.
아직 겨울은 아니지만, 인간에게도 생활의 낙오자가 있듯이 미처 무리를 따라가지 못한 새들과 이곳이 좋아 안 떠나고 남은 수종의 새들이 즐겁게 노닐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거든요.
얼마 전 천수만 A지구를 일반인에게 매각하고 나서 달라진 풍경이 있는데요. 간척지에 농사를 지을 때면 볍씨를 뿌릴 때도 헬기가 떠서 드넓은 들판에 뿌리고 농약을 줄 때도 헬기가 일괄적으로 뿌려주었지만, 요즘은 전체면적의 약30%가 개인소유로 들판에 직접 농약을 주고, 콤바인으로 직접 추수를 하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더군요.
이곳에서 농사짓는 쌀은 1년동안 50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생산량을 자랑하는데요. 많이 생산해도 걱정인 것이 쌀이 남아 돌아가기 때문에 소비량이 없다는 겁니다. 추수가 끝난 후 2-3주동안 떨어진 낱알만 주어도 하루에 4-5가마를 주울 수 있다고 해요.
저희 서산에는 감천 배, 생강, 육쪽마늘, 어리굴젓 등 특산물 말고도 이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철새도래지 천수만의 자연적인 볼거리를 보유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요.
환경보존과 생태 보호를 목적으로 아직은 개발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 고장에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천혜의 철새도래지 천수만을 그대로 살리면서 많은 사람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관광여행 코스를 개발하여 주변에 있는 해미읍성과 개심사, 운산 한우 목장을 연결하고 서산의 특산물을 홍보한다면 생태계도 보호되고 관광수입을 올림으로 지역경제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봤어요.
아, 새들이 세상을 나는 것처럼 나도 새들처럼 하늘을 훨-훨-날고 싶다.■
비판과 비난은 관심과 애정이 깔린 회초리
오영미
오전 6시가 되었는데도 아직 밖은 깜깜하다. 창문을 열어보니 이른 새벽 출근을 해야 하는지 군데군데 불을 밝혀 놓은 모습이 보인다. 희미한 가로등 빛을 등에 업고 낮이면 소음으로 정신없을 자동차들이 찬 이슬 맞아가며 가지런히도 숨죽이고 있는 모습은 또 다른 아이러니다.
아, 그러고 생각하니 내가 이렇게 차곡차곡 글을 모아 온 것이 작년8월이었던가! 그 이전부터 KBS대전방송국 라디오 통신원을 하게 되면서 KBS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는데 이곳에 자그마한 내 방이 만들어지게 되니 작은 사명감 같은 것이 타올랐던 거다. 못생겼지만 사진이 올라가고, 내 이름 석 자가 판에 박히게 되자 은근한 부담이 올 수밖에.
한편으론 학창시절 끄적였던 버릇을 기억하며 내심 즐겁기도 했고, 직장생활 할 적에 사보편집과 의전 활동, 사내방송 등의 경험을 되살려 이왕 나이는 먹었지만, 아스라이 사라질지도 모를 내 꿈을 이곳에 펼쳐보리라 그렇게 굳게 다짐을 하고 나를 세우며, 채워서,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칼럼방 제목을 ‘가얏골 사랑방’이라 정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사는 곳이 서산이고, 삶을 상징하는 것이 ‘산’이라 생각했는데 서산을 상징하는 산이야 몇 되지만 그중 제일 맘이 끌리고 장엄한 것이 ‘가야산’이다. 거기에 옛 향수와 추억을 느끼기에 좋은 ‘골짜기’와 훈훈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랑방’을 합성화했다.
나름대로 서산에 살면서 피부에 와 닿는 점이 있으면 가감 없이 썼고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이기에 교육에 관해 관심을 가졌으며 나의 삶을 소중히 생각하는 여성으로, 가족의 구성원을 사랑하기에 크고 작은 생활상을 숨김없이 그대로 그려내고자 애를 많이 쓴 편이다.
서산에 사는 동안 내가 사는 이 지역에 대하여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싶다. 이곳이 내가 태어난 고향도 아니요, 어릴 적 유년의 추억이 있는 곳 아니지만 단지 하루를 사는 동안 서산의 공기를 마시며, 서산 땅을 밟으며 걸어가야 하기에 나는 이곳 서산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울러,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서 무엇을 이루며 느끼고 어떠한 구성원이 되어서 무슨 역할을 할 것인지를 늘 찾아 나서곤 한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깨우는 시금석이 될 것이며 나태해지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굳건한 초석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배움도 길지 않으며, 그렇다고 힘이 센 남자는 더더욱 아니니 함부로 이 사회에 뛰어들어 어떠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궁리했다. ‘여편네’로 명명되는 나의 모습을 어찌하면 탈피할 수 있을까. 남편의 그늘에서, 아이의 엄마로서 넘고 넘어야 할 산은 한도 끝도 없다.
여느 주부처럼 그렇게 살아왔던 흔적을 차츰차츰 지워버리며 한 줌 흙으로 밟혀야 할 인생이기에 ‘그냥 그렇게’ 만 살기는 싫었다. 아무것도 바리지 않고, 내 마음을 비워 낼 좋은 방법은 없을까? 결혼 14년 차의 겨울맞이 즈음에 나를 다시 뒤돌아본다.
서산의 주요행사 및 지역 소식, 숨어있는 명소를 발견하고 알리는 일, 지방자치제를 맞이한 행정에서 ‘지역의 알리미’ 역할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그맣고 초라하나마 이렇게 하루하루를 엮어나갈 수 있어서 늘 행복하다.
다만, 네티즌들을 상대로 글을 써야 하므로 겪는 고통과 애환도 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발췌하고, 심혈을 기울여 작성했다 할지라도 마우스를 대고 뚜껑을 열어 주지 않으면 그 속의 내용물은 사장이 되어 버리기에 제목에 무척 신경을 쓰는 편으로 네티즌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려 노력한다.
혹자는 우회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자존심을 깎아내리려 ‘꼬리’잡기를 일삼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으며, 이런 활동을 하는 나에 대한 시선을 곱지 않게 보는 이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 모든 비판과 비난은 시기와 질투가 포함된 관심과 애정이 깔린 회초리라고 생각하는데 두고두고 고마워하며 감사하게 받아들일 일이지만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내가 평범한 시민이기에 ‘서민’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긴 하지만 사회의 모범을 보이며 지역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희생 봉사하시는 분들, 자기 분야에 최선을 다하며 넉넉한 여유를 찾아주는 그런 사람을 더 좋아한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그들에게서 배우고 익힐 수 있으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분들에게서 느끼는 인생과 감정은 따로 있으며 일정한 지위를 가지고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철학이 있다. 굳이 어느 한쪽만을 편파적으로 옹호하거나 내세워 칭찬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의 장점과 배울 점을 고루고루 나눠 갖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앞으로 언제 서산을 뜨게 될지 아니면 영영 서산에서 머물게 될지 그것이야 나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내 살아 있어 땅 밟고 사는 동안 ‘끄적임’은 계속될 것이고 날이 밝음과 동시에 은은한 향기로 채워질 수 있는 ‘공간 만들기’에 열정을 바치리라.
지금 우리는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의 문명 아래 너무도 급진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럴수록 네티즌들의 질적 수준 향상과 더불어 자꾸만 각박해져 가는 인간관계를 좀 더 따스하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엮어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상대방의 나쁜 점을 끄집어내기보다는 좋은 점을 칭찬함으로 참 좋은 만남을 가지면 어떨까.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나의 정신을 일깨워 주는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들과 멋진 만남을 계속 이어주게 하고 잠시 휴식 같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 KBS와 홈 지기에게 진정 감사를 드려본다.■
아들 앞에서 눈물 흘리며 한 약속
오영미
불과 사나흘 전이다. 그날 밤, 11시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앵커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나에게까지 들려 왔으니까 꽤 볼륨을 크게 했었나 보다. 거실에 누워 TV를 보던 남편이 독백 비슷하게 한마디 던진다.
“앞으로 장호한테 음료수 많이 못 마시게 해. 탄산음료 많이 마시면 당뇨병에 골다공증까지 걸린다니까~” 장호가 탄산음료를 많이 마시니까 걱정이 되었던 거다.
이튿날 아침, 식탁 앞에 앉은 장호에게 다짐이라도 하는 듯 일렀다.
“장호야, 아빠가 그러시는데 음료수 마시지 말라 그러더라. 몸에 좋지 않다니깐 앞으로는 엄마가 녹차 끓여서 냉장고에 넣어 둘게.” 말이 끝나자마자 중얼거리며 받아치는 말이 “며칠이나 갈라고요.” 하는 게 아닌가.
순간 심장과 가슴이 싸늘해지면서 숨이 멎는 듯 앞이 캄캄해졌다. 이놈이 도대체 엄마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까. 아무런 생각 없이 뱉어낸 말에 내가 너무 민감한 건 아닌지, 장호가 생각하는 엄마에 대한 이미지는 과연 어떤 것이란 말인가. 잠깐 복잡한 카테고리를 물고 늘어짐을 접어두고는 밥 먹는 아이를 붙잡고 한마디 쏘아 붙였다.
“뭐야? 너 엄마한테 하는 말버릇이 그게 뭐니? 널 위해서 한 말인데 그렇게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뭐야?”
아무리 감정을 숨기려도 서운함과 괘씸함이 봇물 터지듯이 밀려와 인내의 한계는 이미 무너져 버렸기에 한번 따져 보자는 심산이었다. 이런 말싸움에 안방에서 자고 있던 남편이 잠자코 듣고 있더니만 설상가상으로 아들 편이 되어 나보고만 뭐라고 쏘아붙이더군.
“아니, 학교 가는 애 붙잡고 아침부터 뭐 하는 거여?” 하며 소리 지르길래
“저를 위해서 한마디 한 말에 속상한 말대꾸를 하잖아요.” 했더니
“이따 저녁에 오면 그때 차근차근 얘기하면 되자녀.”하더라고요.
“지금이 속상한데 저녁때까지 어떻게 참으라는 거예요……”하고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닭똥 같은 눈물이 핑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식도, 남편도 다 소용없구나. 두 남자가 나만 외톨이 되어 왕따를 시키는구먼. 여태껏 나는 시집와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차츰 밀려나고 있는 거야. 누가 나를 위해서 그러나? 저를 위해서 그런 건데 그렇게 비아냥거리다니. 그래 두 남자끼리 잘났으니 잘 먹고 잘살아라!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혼자서 그 많은 생각을 읊어대려니 자꾸만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려 급기야는 설움에 북받쳐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의 이런 순간적인 감정에 아들은 심각해진 표정이 역력했고 남편도 당황한 듯 짜증섞인 목소리로 아들 녀석한테 뭐라 그런다.
“야 인마-엄마가 말하면 네~하고 들어야지 왜 말대꾸 하구그랴 인마~.”
그쯤이면 이미 내 기분과 감정은 무너진 상태이므로 나의 편을 들어주는 그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부엌 바로 옆에 있는 작은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얼굴을 파묻고 나의 존재와 가치가 허물어짐에 대해서 끊임없이 슬퍼했다.
급기야는 남편이 장호를 등교시키기에 이르렀고 나는 벌겋게 부어올라 삐걱거리는 눈을 찬물에 몇 번이고 헹구어낸 후 가만히 고개를 들어 거울 속의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 왜 이렇게 민감한 거니?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이야. 너 바보아냐?’
나만 혼자라는 외로움에 저녁 늦게까지 쏘다니다 집에 들어오기를 이틀째, 나의 화장대 거울 앞에 빨간 장미꽃 한 송이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고 학원에 갔다 돌아온 아들 녀석이 반갑게 포옹으로 맞아준다. 경솔했던 나의 언행들이 부끄럽게 느껴지며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내 속상했던 마음을 아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남자가 나란히 누워 영화를 보고 있길래 아들의 손을 꼭 잡고는
“장호야, 너 앞으론 엄마 속상하게 하지 마. 네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살고 싶지 않단다.”
“네, 알았어요.”하고는 씩 웃으며 바라보는 눈길이 따사롭게 느껴졌다.
그렇게 무언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그이의 사랑 베개를 베고 살그머니 침대 위에 누웠다. 난 매일 아침 일찍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먹음직스러운 체리 그림이 그려있는 주전자에 물을 가득 붓고는 선운사에서 사 온 ‘우전 수제 덕음 차’를 끓이고 있다. 주전자 안에서는 내가 흘렸던 그 눈물이 수증기 되어 뽀얗게 피어오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남편의 건강을 위한, 사랑의 물이 끓고 있다.■
아들의 뒷모습에 코끝이 찡
오영미
오늘 아침 따스한 밥을 해 주면서도 한 마디 수능에 대한 얘기는 서로 하지 않았지요. 무언의 침묵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수저와 젓가락 소리만 공허한 공간을 울릴 뿐이었어요. 시험 잘 보라는 말이 되려 부담이 될까봐 그랬습니다. 등교 시간만 20여분 일렀지 여느 때와 똑같이 현관문을 나와 차 안에서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날씨가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따뜻하게 옷을 입으라고 당부했건만 교실 안에 히터를 틀어 놓기 때문에 덥다며 츄리닝 차림의 간편 복장이었죠. 학교 앞에 다다랐을 때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장호의 손을 꼭 잡아 주며 차분히 아는 문제만 잘 풀어라 말해 주었어요.
엄마 손을 힘껏 꽉 잡아 보라 하였더니 아귀에 너무 힘을 주어 손가락이 으스러질 뻔하였지요.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마음이 놓였습니다. 장호를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교문 앞에서 후배들이 북을 두드리며 응원하는 함성에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는 것을.
장호의 등은 이미 보이지 않았지만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되돌려 학교 교문이 보이는 골목에 주차해 놓고 물끄러미 그곳을 바라보았어요. 갑자기 밀려오는 서러움과 울컥거림, 이런 것들이 이슬 되어 눈시울을 적시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치밀어 오르며 왜 그리도 슬프고 아프고 아리던지 미칠 지경이었지요.
그간 내가 아들에게 소홀했던 부분들은 없었던가. 왜 없었을가만 단 한번 불평불만 없었던 아들. 나로 인해 불만족했던 순간들은 없었을까? 왜 없었겠니. 그래도 의연하게 견뎌준 너. 아, 이런 것이 어미의 마음이구나! 하는 것을 또다시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녀석이 벌써 커서 수능을 보러가다니. 인생의 첫 관문이 될 시험을 치르러 가다니.
플래카들르 흔들며 아우성치는 동생들의 함성소리가 오늘따라 왜 그리도 사랑스러운지. 어여쁜 아들딸들아, 다 누구의 사랑으로 이곳에서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며 응원하느냐! 한참을 차 안에서 꼼짝을 못 하다 밖에 나가 장호가 들어간 교문 앞에 다가가기라도 해야겠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야트막한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간간히 보이는 학부모님들 마음.
장호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오늘 또 알겠더구나. 네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는지 자신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너 하고 싶은 공부 열심히 해라. 네가 원하는 곳으로 당당히 걸어가렴.
이제야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심으로 돌아와 몇 자 적어 봤단다. 그간 노력하고 준비한 너의 내공을 유감없이 펼치길 기도하고 기원할게. 장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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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머리에
제가 서산에 정착한 지도 어언 3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이 글들을 아껴오기까지 꽤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낯설고 황량하기만 했던 예전의 서산이 지금은 가장 발전가능성이 있는 유망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을 잘 실천할 수 있는 리더와 시민의식이 결합되어 ‘온통서산’이라는 명제로 도약하고 있는 곳이 바로 서산입니다.
의욕과 열정, 숨은 끼를 발산하여 앞만 보고 달린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기억의 숲으로 엮어지게 된 거죠. 서산에 살면서 보고, 배우고, 느낀 이야기들을 친근감 있고 편안하게 써 내려간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 kbskorea.net칼럼방에 게재했던 글을 퇴고하지 않고 그대로 옮겼습니다.
그때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으므로, 현재의 입장과 다르게 표현되었을 수도 있지만 순수함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당당하고 싶었습니다. 지난날의 내 삶이며, 내 열정이며, 내 감성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소중한 의미를 사랑했고, 자녀교육에 대한 명제를 찾느라 애썼으며, 지역사랑 펼치기 운동에 동참하며 홍보를 시작한 것이 많은 사람에게 박수와 갈채를 받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사소한 집안 이야기며 자식을 키우며 느끼는 엄마의 마음, 내 고장에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들과 아쉬운 순간들을 기억하고 공유하면서 공감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하루가 글감이 되고,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신들린 듯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서산의 축제뿐 아니라 전국의 축제장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편집을 하며 글을 쓰고 나면 새벽 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줄도 몰랐고 귀찮거나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거침없이 치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신나게 앞만 보고 지낸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는 위로를, 또 어떤 이에게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을 것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게 됩니다. 내 살아온 반세기를 뒤돌아보기도 하면서 차분한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면서 지나온 절반에 대하여, 그리고 남은 내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입니다.
꿈꾸는 이상들이 현실에서 실현되기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실천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추수를 마친 빈들의 넓은 가슴같이 비우고 내려놓으려 합니다.
길었다고 생각한 지난 여정이 꿈같이 흘러갔습니다. 주저하기 보다는 지금이 최선임을 깨달아 만학의 기쁨으로 큰 성취감을 맛본 순간이야말로 내 삶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야 저에게 큰 스승이 생겼고, 친구가 생겼고, 동지가 생겼고, 나무와 숲, 그리고 더 큰 자식들이 생겼습니다. 내가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후회 없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연마하여 진정한 삶의 가치를 누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나의 전부를 여러분께 내놓으며 부끄러운 마음도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회자정리 거자필반’의 뜻을 헤아려 수많은 인연 중 소중하고 아름다운 만남을 가져가려 합니다. 아프고 슬픈 인연보다 기쁘고 아름다운 인연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에세이집 『그리운 날은 서해로 간다1.2』는 살아가는 동안 내 삶의 흔적이며, 곁에서 오래도록 함께 할 동반자들과 더불어 독자에게 휴식을 주는 자양분이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더 멋진 인생을 준비하길 바랍니다. 기쁨 충만한 사랑 간직하기 바랍니다.
동고동락해 온 가족과 제2의 고향으로 머물게 해 준 서산에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존재감을 갖게 해 주는 가족의 의밈를 되새기는 기회로 삼으며, 말하지 않아도 묵묵히 믿고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아, 나의 과거와 나의 고백과 나의 청춘을 다듬는 일이 이렇게 좋을 수가!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지금 다시 그 느낌을 살리라면 어림도 없는 시간입니다. 그런 시간을 지금 다시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이렇듯 글은 몇 년이고 묵혔다 꺼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해 설렘도 있지만, 장독에 묻은 묵은지처럼 깊고 알싸한 맛을 되새기면서 또 다른 미래에 대한 준비를 지금 시작합니다. 공주에 계신 부모님과 국방대학원 입학 준비를 하고 있는 아들 며느리 손녀, 그리고 당진 시부모님과 형제자매들, 이 글을 읽고 계실 독자 여러분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출간의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그리운 날은 서해로 간다1.2』를 위해 끝까지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김완하 교수님과 편집에 심혈을 기울여 주신 성은주 교수, 정우석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격려와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 나태주 시인과 신익선 문학평론가에게 큰 절 올립니다. 저는 코발트빛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그리운 서해에서 가을을 담고 있을 겁니다.
2018년 가을
오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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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나도 시를 쓰는 사람이지만 더러는 산문을 씁니다. 시로 쓰지 못한 생각이나 느낌을 긴 호흡에 담는 것이지요. 생활 가운데 오고가는 진솔한 느낌을 간결한 문제로 쓰셨군요, 기시가 감동을 주로 하는 글이라면 산문은 설득을 목적으로 삼는 글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영미 씨의 산문은 우리를 설득하고서도 남는 바 능력이 잇다고 봅니다. 부디 앞으로 오영미 시인의 시업이 풍성해지면서 성공이 있기를 바라고 간간이 써내는 산문에 또한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한 권의 산문으로 엮어지는 오영미 시인의 또 다른 자서전을 우리는 자세히 오래 들여다볼 일입니다. 그러면 한 시인의 인생과 글이 더욱 예쁘고 사랑스런 모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 나태주 시인
오영미 시인의 이번 산문집은 산문으로 풀어낸 산문시라고 할 만하다. 운문보다 이해하기 수월하고 호흡이 ㅃ짧은 반면에 유의미는 크다. 더욱이 매양 서로 다른 주제와 소재를 차용하여 써내려간 산문들이 현재 오영미의 생활터전인 ‘서산’을 사랑하고 ‘서산의 삶’을 조명한 충청남도 ‘서산’에 의한 서산의 인문지리서이자 성찰의 기록들 아닌가. 낯익은 일상들이 낯익은 얼굴로 반겨주는 미소를 만나면서 독자들 역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미소를 짓다가 더 흥에 여우면 누군가가 그리워지리라. 그러다가 마침내 푸른 파도가 집을 짓는 변화무쌍한 생명의 보고보고, 서해바다로 달려가 ‘그리운 날에는 서해 바다로‘ 가는 자신을 발견하리라.
― 신익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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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미 시인∥
∙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공주애서 성장하였고
∙ 충남 서산에 살고 있다
∙ 2015년 계간『시와정신』가을호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하고,
∙ 한남대 문예창작과 석사를 수료하였다.
∙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을 역임하였으며,
∙ 한국시인협회, 충남문인협회 이사, 충남시인협회, 서산시인회, 소금꽃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시집으로『벼랑 끝으로 부메랑』『올리브 휘파람이 확』『모르는 사람처럼』『서산에 해 뜨고 달뜨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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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미 시인, 에세이집 '그리운 날은 서해로 간다 1,2' 출간
[ 대전일보 > 지역 > 충남 ] 2018-10-31기사 편집 2018-10-31 11:04:05
◀[서산]오영미 시인이 에세이집 '그리운 날은 서해로 간다 1,2'(시와정신 산문선 8, 9)를 출간했다. <사진>
오영미 시인의 이번 산문집은 30년간 서산에 살면서 지역사랑과 자녀교육, 시인의 삶과 축제·여행 등을 두 권으로 엮었다.
'그리운 날은 서해로 간다 1,2'는 인터넷 kbskorea.net에 칼럼을 쓰기 시작하며 가족이라는 소중한 의미를 사랑했고,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과 지역사랑 펼치기 운동에 동참하며 홍보를 시작한 것이 많은 관심을 받으며, 계기가 됐다.
풀꽃 시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은 표사 글에서 "시가 감동을 주로 하는 글이라면 산문은 설득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글입니다. 한 권의 산문으로 엮어지는 오영미 시인의 자서전은 인생과 글이 더욱 예쁘고 사랑스런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축복의 말을 올렸다.
계간 '시와정신' 가을호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하고, 한남대 문예창작학 석사를 수료했다.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시인협회, 충남문인협회, 충남시인협회, 서산시인회와 소금꽃 동인 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으로 '벼랑 끝으로 부메랑', '올리브 휘파람이 확', '모르는 사람처럼', '서산에 해 뜨고 달뜨면' 이 있으며, 2018 충남문학상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박계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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