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홍성남 신부님의 어떤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우스갯소리입니다. 지금은 이게 어떻게 조금씩 버전이 향상돼 다른 버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대목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길을 가는데 뒤에서 어떤 총각인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남자가 뭔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소리를 이렇게 들었습니다. " 같이가! 처녀" "같이가 처녀" 할머니는 자기를 보고 물론 뒷모습을 보고 부르긴 했지만 처녀라고 하는 말에 기분이 좋았을 겁니다. 아주 오래전에 들은 내용이라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전하고자는 메시지만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근데 실제 그 남자는 갈치 장수였던 것이고 그 장수가 갈치가 천원이라고 외친 것을 할머니는 잘못 알아들은 것입니다. 지금은 버전이 향상돼 이 이야기를 할머니가 댁에 가셔서 할아버지께 이야기를 하니 보청기를 잘 끼고 다시 그곳에 또 가 그 갈치 장수를 만나 다시 들어보라고 했는데 이제는 갈치가 천원이라고 이렇게 명확하게 들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에 무료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다른 곳에서 유튜브로 다시 듣게 됐습니다. 예전 버전은 보청기가 이야기 소재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웃고만 말았는데 이번에는 보청기 이야기가 나와 좀 생각할 게 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우스갯소리이지만 이걸 통해서 묵상해봤습니다. 가령 이 할머니는 동네에서 이 갈치 장수를 자주 보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아무튼 갈치 장수라고 해도 자신을 처녀로 불러주니 말입니다. 이 할머니가 보청기를 꼈든 껴지 않았든 갈치 장수는 언제나 그 가격을 외쳤다고 하는 가정 하에서 이 현상을 보면 재미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기분을 망치게 하는 것은 보청기 때문입니다. 그냥 보청기가 없이 청력이 좋지 않은 상태였더라면 그냥 천원이라는 말이 처녀로 들리기 때문에 기분만이라도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저는 여기서 중요한 걸 묵상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요즘 현대의 시대를 일컬어 정보의 홍수시대라는 말도 하긴 합니다. 어쩌면 이 홍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지도 모릅니다. 이 사례에서 나오는 보청기를 저는 이렇게 빗대고 싶습니다. 굳이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소리인데 우리는 필요없는 소리도 관심을 가지고 들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교우들과의 관계에서 연도를 하러 갔는데 전 본당에서 아는 분의 모친이 선종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어서 갔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교우 한 분이 저에게 뭔가 질문을 했는데 그게 마치 제가 방금 전에 언급한 내용입니다. 이분이 궁금한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해도 되는 그런 내용인데 굳이 몇 번이고 저한테 계속 질문을 며칠 전에도 전화를 해 물었던 것입니다. 마치 이런 사례를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냥 단순히 정보라는 그 단어가 주는 어감 그 자체만 놓고 봤을 때 요즘은 정보라는 것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무기도 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요긴할 때가 많지만 어떤 경우는 몰라도 되는 정보 때문에 괜히 알아서 힘들 때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할머니가 보청기를 끼지 않았을 때의 상황과 같은 상황이라면 그 상황이 신앙 안에서도 유사한 경우에 적용한다면 불미스런 경우도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때로 모르고 넘어갈 때가 더 신앙에 유익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귀를 막고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열어두긴 하되 우리의 안테나를 쓸데없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좋은 정보가 있고 신앙에 유익이 되는 소리에 귀를 열어둔다면 공연한 고민거리를 스스로 자초해서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걸 묵상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