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목포 성 콜롬반 병원에서 진짜 못생긴 여자 아이가 한 명 태어났다. 우리 언니의 말에 따르면 눈이 많이 오던 겨울에 엄마가 파란색 모포에 그 못생긴 아이를 안고 우리집 마당을 들어섰다고 했다. 어릴 때 대체 얼마나 못생겼었는지는 내가 어릴 적 내 얼굴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 언니는 지금 들어오는게 설마 내 동생인가 싶었단다. 그나마 커가면서 인간화되어 한시름 놓았다고 훗날 엄마와 언니가 말해주었다.
어릴적 나는 정말로 이사가 가고 싶었다. 딱히 집이 무너질 것 마냥 안 좋다든가 교통이 불편하다든가 하는 것도 아닌데 다른 애들이 이사가면 그것이 마냥 부러웠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드디어 이사를 갈 기회가 생겼었다. 그 때 내가 얼마나 열심히 동네 과일가게에서 얻어온 사과박스 상자에 내 짐들을 챙겼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사 간 집은 썩 좋지는 않았지만 학교를 늘 다니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행복해했다. 하지만, 이사 간 집에 이제 막 완전히 적응 할 무렵 우리는 다시 예전 집으로 이사 왔다. 애초에 완전히 이사 간 게 아니라 낡은 한옥집을 허물고 다시 짓는 동안만 잠시 이사 간 것 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2개월간의 다른 집 살이를 제외하곤 태어나서 지금까지 목포고등학교와 청호중 사이 한복집 옆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머리가 좀 굵어지니 나는 우리집의 위치가 정말 절대적으로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피자나 자장면을 시킬 때 항상 “목고랑 청호중 사이 빨간 벽돌집이요.” 라고 말하곤 하는데 중요한 것은 빨간 벽돌집인게 아니라 바로 ‘목고와 청호중 사이’라는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항상 세를 내주던 방에 하숙을 하게 되었다. 상대는 당연히 목고생들. 그 때문에 우리 언니 친구들은 심심하면 우리집에 왔다. 남자들만 여덞명이 사는 집이 궁금해서 그런 것 같았다고 나중에서야 언니가 실토했지만 끝끝내 그 당시 얼굴로 유명했던 하숙생을 보러 왔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 유년시절의 대부분이었던 ‘목고 앞 하숙집’ 시절에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은 바로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목고 축제날 이다.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날 내가 파랑색 티셔츠에 검은색 반바지를 입고 삼천리표 네 발 자전거를 타고 목고 축제에 친히 방문 했던 것. 학교 교문에서 본관 건물로 올라가는 아스팔트 길에 시화전을 했었다. 모두 액자속에 뭐라뭐라 시가 적혀 있었는데 내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어항에 금붕어 한 마리가 있고 어항 벽면에 시가 적혀 있었던 그 것.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시 내용이 뭐 그런 것 이었겠다고 생각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짜리가 시에 대해 알면 뭘 얼마나 알겠는가. 나는 그 금붕어를 파는 줄 알았다. 그래서 시화전을 지키고 있던 학생에게 계속 금붕어를 달라고 졸랐다. 내가 계속 조르자 그 학생은 끝내 그 시의 주인을 불러 사정을 이야기 했고 그 시의 주인은 나에게 그 금붕어를 넘겨주고 자기는 다시 금붕어를 사러 갔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새삼 미안하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덜떨어진 면이 있다. 우리 아버지는 그런 내 상태를 ‘멍청한건 약도 없다’라고 칭하셨고 그 말에 대해 딱히 불만을 갖지는 않는다. 내 띨박함에 최고를 보여준 것은 바로 2005년 3월 26일 토요일 바로 오늘. 중학교 시절 목여중만 주5일제 시범학교라서 정말 부러워했었는데 나에게도 토요일날 학교를 안 가게 되는 기회가 주어지니 내 뇌가 너무 들떴었나 보다. 오후 4시경 솔솔 잠이 와 자려다가 화장실이 날 부르길래 한 번 갔다오니 내 방 문이 잠겨 있는 것.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방 열쇠는 여러개인데 오로지 내 방 열쇠만 하나라는 것. 그리고 그 하나의 열쇠는 지금 내 방 안 교복치마 속에 조용히 들어계신다는 것. 고로 이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 1층이었다면 창문 열고 들어왔겠지만 내 방은 2층. 열쇠공을 부르면 되지만 집에는 동생과 나 밖에 없고 돈도 없다는 것. 멀쩡한 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부모님이 오실 때 까지 다른 방에서 기다리겠지만 나는 꼭 내 방 침대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그래서 옥상에 올라가서 벽을 타고 내 방 창문으로 내려오는 방법을 택했다. 아무래도 그 때 내가 잠시 미쳤었나 보다. 아니 미친게 분명하다. 내가 이소룡인가 성룡인가. 밧줄도 사다리도 없이 어떻게 창문으로 안전하게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나는 용감했다. 내 방 창문과 연결된 꽤 단단한 인터넷 전선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어찌했겠는가 그걸 잡고 영화처럼 쭉 내려가서 내 방 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겠는가 내가 119 대원도 아닌데 당연히 그 줄 잡고 내려가다 계속 내려가 버렸지. 내 발이 닿은 곳은 내 방 창문이 아니라 아래층 아저씨가 아끼시는 분재였다. 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집은 1층도 아니고 2층이다. 게다가 옥상은 3층이다. 말이 선을 잡은 거였지 실은 3층 옥상에 마1층 마당으로 떨어 진 것이다. 나는 사고를 친 후에야 내가 잠시 미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조금더 후 였다. 아버지가 돌아오시고 내가 그 말을 하자 아버지는 나를 멍청이로 매도하시고 너는 오늘 죽을 뻔 했다고 말씀하시니 그제야 내가 죽을 뻔 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대놓고 자살 행위를 했는데도 나는 살려두 신 걸 보니 하나님은 굉장히 친절한 분이실지도.
이 얼마나 명랑한 일은 겪었단 말인가. 이 명랑한 세상에서 설치기엔 아직 나는 너무 덜 컸다. 좀 더 내공을 쌓은 후에 이 명랑한 세상에게 다시 도전 해 봐야지. 어쩌면 그 땐 진짜 잠긴 내 방 문을 옥상에서 인터넷 전선 타고 창문으로 들어와 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것을 다시 시도한 후의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려나.
여하튼, 나는 잘 살고 있다. 계속 잘 살지 아니면 중간에 살기 힘들 정도의 시련을 만날지 신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그 때마다 내 특유의 엉뚱함과 무모함 그리고 명랑함으로 이겨낼 자신이 있다. 세상이 정해준 정석대로의 완벽한 인간은 아니지만 좀 덜 완벽한 인간이라도, 아니 완벽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라도 완벽한 인간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이 나이를 먹고 비슷비슷하게 사니까 나는 완벽한 인간을 만나도 절대 기죽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이 자신감이 학년이 높아질수록 조금씩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나니까.
첫댓글 ㅉㅉ ㅋㅋ 골롬반이야?? ㅋㅋ 아죠 골름이라하제??????? 하이튼~ ㅋㅋ짝꿍창피해!
목고랑 청호중 사이 빨간 벽돌집.....ㅋㅋ집에서도 목고생들 교실이 보인다며ㅋㅋㅋ너네집 놀러가자 빨리 ㅋㅋㅋㅋㅋㅋㅋ
나한테 관심이 너무 많아. >_<; 우겔겔; 그리고 지은아, 그 말은 나한테 읽으라는 말 같구려, 내 읽어주리다.
유희야유희야~ 나 결국 다시썼어~ 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