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5축은 질서가 있다
몽골의 주산업은 목축이다. 목축은 거처를 정하여 소, 말, 양, 돼지 같은 가축을 기르는 것이고, 방목(放牧)은 가축을 놓아기르는 것이다. 방목 방식은 가축을 넓은 목장이나 목구(牧區)에 넣어서 방목 동안 계속 이용하는 고정 방목과 방목지를 몇 개의 작은 목구로 나누어 순환이용하여 초지를 일정 기간 휴식시키는 윤환 방목이 있다. 윤환 방목은 초지를 황폐화시키지 않는 합리적인 방법이다. 유목은 거처를 정하지 않고. 물과 풀밭을 찾아 옮겨 다니며 가축을 기르는 것이다. 유목(遊牧)은 크게 유목(遊牧, Nomadism)과 이목(移牧, Pastoralism)으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일정한 장소 없이 물과 목초가 있는 곳을 찾아 옮겨가는 형태의 유목을 말하고, 후자의 경우 정해진 거주지가 있으면서 여름과 겨울, 혹은 일정 시기마다 정해진 목축지를 오가며 이동하는 형태로 유목과 정착식 목축의 중간적인 성격이다.
우리의 생활에서도 가축과의 일상은 윷놀이 말판(도, 개, 걸, 윷, 모)으로도 나타나고, 육갑의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로 나타난다. 십간은 천간(天干)이며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의 10개 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십이지는 지지(地支)로서 자(쥐), 축(소), 인(호랑이), 묘(토끼), 진(용), 사(뱀), 오(말), 미(양), 신(원숭이), 유(닭), 술(개), 해(돼지)로 이루어진 12개의 동물로 나타난다. 말판의 4축(돼지, 개, 양, 소, 말)을 포함하고 정주민의 농사와 밀착된 짐승(쥐, 닭, 토끼, 뱀, 잔나비, 호랑이, 용)들로 이루어 졌다. 우리민족도 원래는 유목생활을 하다가 농경정착민이 된 것이다.
유목이 주산업인 몽골에는 짐승들이 너무 많다. 몽골에서는 가장 중요한 짐승을 5축(五畜)이이라 한다. 오축 외에도 야크, 개, 늑대, 여우, 토끼, 타르박(몽골 토끼쥐), 매, 등등 온갖 짐승들이 많이 있다. 돼지처럼 자력갱생이 불가능한 짐승은 초원의 가축이 되지 못한다. 개는 많이 기르지만 먹지는 않는다. 개는 가축이 아니라 양몰이를 하는 등 집안의 일군으로 다루어서 그런지 가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나귀, 닭, 돼지는 정주지역의 동물들이기 때문에 몽골에서 살기 힘들다. 몽골 유목은 5축(五畜)인 말, 소, 양, 염소, 낙타가 중심인데 유목생활에서 나타나는 오축의 특성을 간단히 살펴보자.
말은 가장 빨리 달리는 가축이다. 초원을 달릴 때 보면 말이 가장 앞서 가고 개가 뒤를 따른다. 개는 말을 앞질러 달리지 못한다. 말이 영물이라는 사례는 많다. 늑대가 술에 만취한 사람을 공격을 할 수 있는데, 술 취한 사람이라도 말을 타고 있으면 늑대는 공격하지 않는다. 안장에 앉은 사람이 대취해서 정신이 없는데도 말은 주인의 집을 찾아서 돌아온다. 술에 취해 꾸벅꾸벅 졸다 말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데 말은 발걸음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뒤뚱거리며 걷지만 등위에 탄 사람의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에 안전하다.
소는 성비(性比)가 가장 불균형을 이룬다. 숫소는 어려서 대부분이 거세당하므로 황제 소는 풍채가 늠름하여 웬만한 사람도 그 기개에 압도당할 만하다. 말과 소는 서열이 확실하다. 소는 말에게 없는 뿔을 가지고 있지만 소의 무리 속을 말이 헤치며 달린다. 소가 풀을 뜯더라도 뿔을 피해주고 비켜주면서, 말도 피해 가면서 사고 없이 말은 소 무리를 벗어난다. 소는 말보다 낮은 서열이어서 말의 길을 가로막는 법이 없다.
겨울이 되면 초원의 풀들이 눈 속에 파묻히면 가축들은 최소한의 풀로 생명을 유자해야 한다. 그럴 때 소는 말의 똥이라도 먹으며 살아간다. 말의 배설물은 약 70%가 소화되지 않은 풀이다. 어려운 초원의 삶에서 나온 생존 방법이지만, 말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이 누운 똥을 받아먹고 사는 짐승’인 소를 하찮게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는 속담에 나오는 우생마사(牛生馬死)처럼 소의 느긋함이 말의 순발력과 강렬함을 이기는 것이다.
양은 가축 중 숫자가 가장 많고 몽골 사람들이 가장 많이 즐겨 먹는 가축이다. 양은 우두머리를 무조건 따르고, 가장 유순하여, 기르기도 쉽고, 죽음도 간단하고 깨끗하다. 양은 눈이 나빠서 앞을 잘 못 본다. 움직이는 소리가 나면 그 쪽으로 계속 움직이므로 잡기도 쉽다. 양은 대개가 염소와 섞여서 산다. 저녁 때 양과 염소를 다 집으로 데리고 와서 같은 우리네 넣지 않고 양은 양 우리로, 염소는 염소의 우리로 들어가게 한다. 그렇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염소는 찬 공기에 약하고, 양들은 시원한 공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를 나누는 것이다. 합사해도 교잡(交雜)은 되지 않는다.
염소도 소다. 그러나 말을 잘 듣는 소와 달리 염소는 고집이 세다. 염소는 똑똑하고 리더십이 있고 줏대가 있어 수염 값을 한다. 염소들이 리더십이 있기 때문에 양과 염소를 섞어 놓으면 어린 아이들도 양을 칠 수 있다. 염소는 잔병에 강하고 무리에서 앞장서는 버릇이 있다. 염소가 양과는 달리 풀을 뿌리째 뽑아 먹기 때문에 초원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래서 염소와 양의 사육비율(1:3)을 맞춰야 한다. 요즈음 염소가 많이 방목되는 곳이 많은데 고기보다 캐시미어 를 만드는 털 때문이다.
몽골에는 쌍봉낙타가 많다. 잔등이에 있는 혹은 사람의 뱃살 같은 지방덩어리이고 비상식량 창고이고, 기름 탱크 같은 역할을 한다. 먹을 게 없으면 등에 축적한 지방을 분해해서 영양분을 얻기 때문이다. 굶었을 때 사라진 혹은 물과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면 다시 생긴다. 먹성이 좋아서 아무거나 잘 먹는데 입안에 가뜩한 뾰족한 돌기가 있어 가시 돋친 선인장도 먹을 수 있다. 성깔이 까다로워 화가 났을 때는 침을 뱉고, 발길질도 심하게 한다. 낙타의 걸음걸이는 다른 짐승들처럼 4족 보행을 하지 않고 왼쪽 다리 두 개가 한 번에 움직이고, 오른쪽 다리 두 개도 역시 한 번에 움직이어(조로모리식) 노를 젓는 방식과 같다. 그래서 낙타를 '사막의 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낙타의 발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으며 접시처럼 넓적해 모래밭에 묻히지도 않고 강인한 지구력과 더위를 잘 견딘다는 이점으로 사실상 사막의 유일한 이동수단이어서 사막의 배(船)라고 한다. 낙타 경주도 있지만 느긋하게 걷는다. 실화에 따르면 낙타와 말을 176km 거리를 이동하는 장거리 경주를 시켰는데, 당연히 말이 이겼지만 말은 다음 날 죽어버렸고, 낙타는 멀쩡하게 계속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몽골에서는 낙타는 고기보다는 털이 대우를 받는다. 낙타털로 만든 인형이나 지갑이나 양말이나 장갑 같은 가죽제품을 많이 만든다. 쌍봉낙타는 털이 훨씬 길며, 몽골에서는 동물의 털 중에 낙타털을 염소 털 다음으로 귀하게 여긴다.
낙타는 우리나라에서는 친숙하지 않은 짐승인지라 우리 역사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왕건이 나라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거란이 선물로 낙타 50마리를 보냈는데, 왕건은 거란이 형제국인 발해를 멸망시킨 나라라 하여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사신은 섬으로 귀양 보내고 낙타들은 모두 개경의 만부교라는 다리 밑에 묶어놓고 굶겨 죽인 적이 있었다.
몽골의 설화에는 낙타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얘기도 있다. 몽골에서 낙타는 열두 띠 동물의 기관을 골고루 갖췄다고 여겨진다. 그 까닭은 옛날에 신이 열 두 해에 해당하는 동물을 지명할 때 열한 가지 동물을 다 정하고 가장 중요한 첫 번째 해에 해당하는 동물을 정하려고 보니 낙타와 쥐가 남았다. 이에 신은 다음 날 아침 가장 먼저 해를 보는 동물을 첫 번째 해의 동물로 삼기로 했다. 쥐와 낙타는 아침 해를 같이 기다렸고 해가 뜰 무렵 쥐는 낙타 등에 몰래 올라타 먼저 아침 해를 보았다고 소리쳤다. 결국 쥐는 열두 해의 첫 번째 동물이 되었고 낙타는 제외됐다. 그러나 신은 탈락한 낙타를 위로하기 위해 열 두 동물의 상징을 골고루 나눠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낙타의 귀는 쥐를 닮았고, 배는 소, 발굽은 호랑이, 코는 토끼, 몸은 용, 눈은 뱀, 갈기는 말, 털은 양, 굽은 등은 잔나비, 머리털은 닭의 볏, 넓적다리는 개, 꼬리는 돼지를 닮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낙타는 뿔이 없다. 몽골 설화에 따르면 원래 낙타에게는 뿔이 있었다고 한다. 오랜 옛날 부처님은 낙타에게 가장 작은 고환을 주는 대신 가장 아름다운 뿔을 주었다고 한다. 어느 날 사슴이 낙타를 찾아와 하루만 뿔을 빌려달라고 했다. 오늘 동물 잔치가 있어 빌려갔다가 내일 물가에서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순진한 낙타는 멋진 뿔을 사슴에게 빌려주고는 다음 날 물가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사슴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사슴은 멋진 낙타의 뿔을 가지게 되었고, 뿔을 잃은 낙타는 물가에서 물을 마시며 이 쪽 저 쪽 두리번거리는 습성이 생겼다고 전해진다(민족신문, 열두 띠 동물들의 특징, 한 몸에 가진 ‘낙타’, 2009.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