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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과의 영적 싸움
마 12장 43~45절
할렐루야! 요즘 날씨가 더워서 밤과 낮이 힘들지요.
하나님은 낮의 해와 밤의 달도 우리를 해치지 못하게 보호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함께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를 찬양하겠습니다.
유발 하라리 교수가 있습니다.
이 분은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저는 이 두 책을 읽으면서 큰 충격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영혼도 없고 자아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세포에서 진화를 했기 때문에
세포가 영혼을 만들고 자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영혼도 없고 자아도 없다고 한다면
천국도 있을 수 없고, 지옥도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도 있을 수 없고, 사탄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 말이 옳을까요?
천국과 지옥이 없고 영혼도 없다고 주장했던
세계적인 뇌과학자인 이븐 알렉산더 교수가 있습니다.
이 분은 뇌막의 바이러스로 1주일간 뇌사 상태에 빠졌습니다.
뇌가 죽어 있는 상태를 경험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천국을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뇌가 죽어 있으면 절대로 천국을 경험할 수 없는데
천국을 경험했다고 하는 것은
천국은 인간의 뇌와 상관이 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천국을 다녀온 다음에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천국이나 지옥이나 영적 세계를 믿지 않는 것은
인간의 뇌가 지상의 삶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가 지상의 삶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유발 하라리 교수도 그의 뇌로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적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할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에게서 파괴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뇌는 지상의 삶에만 맞추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은 영적인 세계를 잘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천국도 지옥도 영적인 세계도 전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혈과 육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마치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터져 버린 것처럼
모든 문제를 훤히 들여보다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삶이나 우리 주변의 삶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여러분 자신의 문제 일 수 있고
우리 가족들 중에 누군가의 문제 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압니다.
그런데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통제불능의 상태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럴 때에 ‘정신이 나갔다’ ‘귀신이 씌였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는 바로 영적인 의미입니다.
영적인 문제가 우리들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진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집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공동묘지에서 살았습니다.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옷을 벗고 다녔습니다.
그는 괴성을 지르며 다녔고, 주로 밤에 활동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통제를 해 보려고 쇠고랑에 묶어 놓았지만
그것을 끊고 도망가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누구도 그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그를 만났습니다.
그를 만다고 보니 그에게는 수많은 귀신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귀신들이 그를 통제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귀신을 몰아내고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는 그 사람을 온전히 바로 잡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이 말한 대로 혈과 육의 문제가 아니라
영의 문제에 빠져 있는 우리를 바로 잡기 위해
‘사탄과의 영적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원래 사탄은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 불려졌던,
천사 중에도 가장 높고 영화로운 천사였습니다.
그는 완전한 자였고, 지혜가 충만하여, 온전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교만에 빠져 하늘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는 지상에 와서 사탄이 되었습니다.
이 사탄은 하늘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이 땅에서 이루려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아담을 죄에 빠뜨려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고 합니다.
뱀의 머리는 사탄의 머리를 말합니다.
사탄의 머리를 장차 여자의 후손이 와서 상하게 할 것이라 하는데
그 여자의 후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제 영적인 전쟁은 하늘에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사탄의 영적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마귀의 일은 죄를 범하게 하고, 죽게 하는 일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 승리할 줄 알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탄을 아직 멸하지 않으시고 승천하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영적 싸움은 성령과 사탄의 싸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사탄을 천년동안 무저갱에 가두셨다가
영원한 불 못에 던져 완전히 멸하실 때까지는 사탄을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사탄은 아직도 불신자와 불신 세계의 임금입니다.
사탄은 거만케 하는 자요, 천사처럼 과장하여 속이는 자요,
미혹하는 자요, 거짓을 행하는 자요, 때로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자입니다.
사탄이 원하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마음에 들어가 거하려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의 완악함에 대해 교훈하시며,
귀신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에 들어가 거하며,
귀신이 거할 때 인간 상태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귀신은 회개한 마음에서 나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아멘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란,
유대인이 바벨론 포로 시대에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더러운 생활을 했던 것을 회개한 때를 가리킵니다.
마귀의 종으로 살던 저들이 회개하므로
마귀가 떠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된 때를 말합니다.
그리고 귀신이 쉴 곳을 찾아다녔으나 얻지 못하였다는 것은
속성상 더러운 곳을 찾아다니는 귀신이 저들 중에서 우상을 섬기거나
더러운 생활을 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주변에 사람들이 경건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더러운 마음을 가진 자에게 들어옵니다.
더러운 마음은 귀신이 들어오도록 원인을 제공합니다.
귀신은 인간의 약점을 통해 들어옵니다.
미신을 섬기는 자들에게 들어오고,
두려워하는 연약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들어오고,
화내고 성질내는 마음에 귀신이 들어옵니다.
제가 신학교 1학년 때 학생들과 함께 기도원에 갔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밤에 산 기도를 하기로 하고
먼저 합심하여 기도한 다음에 흩어져서 각자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학생 한 명이 기도하다가 쓰러져 버렸습니다.
쓰러져서 헛소리를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둘러업고 숙소로 내려 왔습니다.
기도원 원장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기도하는 집사님 한 분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분이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한 후
조금 있으니까 그 여학생이 제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느냐 물었더니
자기 엄마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환상 중에 엄마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엄마가 뒤를 돌아 앉아 있기에 ‘엄마’라고 불렀더니
엄마가 뒤를 돌아보는데 그렇게 무서운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이 무서운 것을 보고 그 여학생이 쓰러져 버린 것입니다.
귀신은 이 여학생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주고 그에게 들어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자
그 귀신은 다시 물러가고 그 여학생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귀신은 틈을 타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베소서 4장 27절의 말씀처럼 마귀에게 틈을 주면 안됩니다.
에베소서 4장 27절에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분을 내는 것도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의심하는 것도 불안해 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도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하여 마귀를 몰아낼 뿐만 아니라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틈을 주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귀신은 회개해도 빈 마음에는 다시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44절~4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아멘
귀신이 자기가 떠난 사람에게 다시 돌아와 보니
그 사람의 마음이 깨끗해져 있지만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악한 귀신들을 데리고 들어가 거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유상을 버리고 죄를 회개하고 율법을 지키고 깨끗한 마음을 가져도
그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이 거하지 아니하면
귀신이 다시 들어와 점령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져도 성령이 거하시지 않으면
귀신이 그 빈 마음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우리 마음 속에
성령이 거하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면 버리운 자와 같아서
귀신이 마음대로 점령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했습니다.
귀신은 성령이 거하시는 자,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어쩌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귀신 일곱을 데리고 그 사람에게로 다시 들어간다고 한 것처럼
귀신은 한 사람의 마음에 집단적으로 거하기도 합니다.
그 한 예가 거리사인 지방에 산 사람의 경우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군대 귀신이 들어가 있다고 했는데
군대 귀신은 그 수가 군단의 숫자만큼 귀신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까 그 사람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떼에 들어가라고 했더니
돼지 2천마리가 갈릴리 호수로 뛰어들어 몰살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군대 귀신도 예수 그리스도 이름 하나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통제불능에 빠지게 한 군대 귀신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항상 우리의 깨끗한 빈마음에는 예수님을 채워져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귀신은 우리에 마음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귀신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를 더 나쁘게 만듭니다.
4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아멘
귀신은 인간의 형편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귀신은 살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간질병 환저에게 들어간 귀신은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막9:22)”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악하게도 만들고 거짓되게도 만듭니다.
다투거나 도적질 하게도 만듭니다.
1993년 장위동 일가족 살해 암매장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정현 씨의 아들 이호성군이 아버지를 찾아가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배해달라고 요청하러 갔다가
아버지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
아버지를 죽이라고 하면서 죽이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 형님과 형수, 그리고 조카 한 명을 죽이고
그 집 정원에다가 암매장을 했습니다.
그 후 누나의 신고로 사체가 발굴이 되고 이호성 군이 붙잡혔습니다.
그 후 이호성 군은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왜 자살을 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너 같은 놈이 살아서 뭐하느냐’ 하면서
‘죽으라’고 자살하는 방법까지 귀신이 가르쳐 주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박효진 장로님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사람이 되어
천국 가는 날 까지 400여명의 사람들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귀신은 우리의 형편을 더 나쁘게 만듭니다.
그래서 주님은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과 말씀의 검을 가지고
귀신을 물리치라고 하셨습니다(엡6:10~17).
사탄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장해야 하며
동시에 사탄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주로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아 활동합니다.
불신앙적인 생각과 악하고 더러운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치 못하도록 의심하게 하고
모든 것을 우연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신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탄이 주는 생각을 물리치고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성령도 귀신도 인간을 원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인간의 영에 거하고, 귀신은 육에 거합니다.
성령은 인간의 인격과 자유의지를 존중하십니다.
하지만 귀신은 주인행세를 하며 인격과 자유의지를 말살하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귀신 자체가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하면서
오직 성령과 함께 사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귀신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귀신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귀신은 우리를 조종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합니다.
온갖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거짓을 사용하기 하고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자극하기도 하고
인간의 자존심을 통해 넘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귀신의 영적 세계가 무엇인지 분명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의 영적 세계에는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사탄의 말에는 질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들린 자는 횡설수설 합니다.
둘째, 사탄의 말에는 통일성이 없습니다.
가라 했다가 가지 말라 하기도 하고, 하라 했다가 하지 말라 하기도 합니다.
어제와 말과 오늘의 말이 달라집니다.
셋째, 사탄의 말에는 조화를 깨뜨립니다.
사탄의 말을 듣는 사람은 혼란스러워지고 삶의 조화가 깨집니다.
사탄은 인간 관계의 조화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말을 하게 합니다.
사탄이 더 교묘하게 활동을 하는 것은
때로는 사탄이 성령의 사람을 통해서도 말을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해 보라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사탄의 음성을 쉽게 구분합니다.
어떻게 구분하느냐 하면 성령께서 알게 하십니다.
성령의 사람은 사탄의 말을 들으면 인격적으로 거부 반응이 나타납니다.
쉽게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며 옳지 않음을 판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 목적은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목적하신 영광을 바라보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결론 맺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어도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뇌가 지상의 삶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영적인 세계가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영적으로 해결이 됩니다.
만약 우리의 삶에 통제 불능의 상태와 같이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문제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사탄의 모든 권세가 물러갈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몰아내고
성령으로 충만한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하신 영광만을 바라보며 사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