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아 나 살려라면서 똥빠지게 도망을 쳣다고 한다.
금산에서 이 얘기를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안다.
"하도리"란 말이 있다.
내가 쓰는 사전(동화사 정선 새국어사전)에서 이 말을 찾았지만
나와있지 않았다.
우리 수렵인들 사이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로
일제치하에 통용되었든 일본어의 잔재가 아닌가 한다.
어떤 짐승에게 호되게 당한 엽견이 뒤에 그 짐승과 마주치면
당한 기억이 살아나 꼬리 내리고 내빼는
경우에 이 말을 쓰는 것 같다.
그럼 엽견만 하도리 할까?
엽견뿐만 아니라 엽사도 하도리 하는 걸 보았다.
여기,
한 예를 들어본다.
지금은 나와 거리를 두게 되었지만 준식이란 사냥꾼이 있다.
같은 단체 회원으로 몇 차례 나와 돼지사냥을 한 적이 있는데,
한 6ㅡ7년 됐을까?
여름 무더위 가시고 논에 벼가 이삭을 내밀어 끝을 갖추었을 즈음에
유해조수구제 차 돼지를 잡으러 간 적이 있다.
허가가 나 만 나와 있기에 총 한 정에 준식이 멧견 6마리에
내 견 한 마리를 차에 실었다.
평소에도 준식이는 개를 많이 끌고 다녔다.
적게는 6마리 많을 땐 12마리를 풀었다.
통제가 제대로 안되다 보니 한 번 견들이 싸움이 붙었다 하면
그날은 사냥을 접게 되고 때로는 며칠 산행을 포기해야 되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땐 차 바퀴에 쓸 만한 개가 치이기도 했다.
그날도,
한 수 하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멀리 나갔다.
금산에서 장선리라 하면 오지 중에 오지로 통한다.
이 장선리를 목적하고 꾸불꼬불 임도를 오르다
장선리 약간 못 미친 곳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개 풀고 있을 만 한 멧자리 찾았지만
그날 따라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두어 시간, 어떻게 하여 자지산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자지산은 석산이다.
암반이 들어나 있고 크고작은 돌들이 여기저기에 쌓여있다.
산 허리를 도는 데 사람으로 치자면 배꼽이랄 6부쯤으로 나아갔다.
장시간의 산길에 총을 멘 어깨에 무게가 느껴졌다.
준식이에게 말했다.
준식아 네가 형이냐 내가 형이냐?
형님이 형님이지요.
그래?
그러면 네가 대장이냐 내가 대장이냐?
형님이 대장이지요.
그러면 대장인 내가 이 무거운 총을 메야겠냐?
총 이리 주세요.
준식이가 내게서 총을 받아 메었다.
때에 준식이가 하는 말
형님 총에 몇 발 장전되어 있어요?
네 발이다. 왜?
네 발 씩이나요? 한 발이면 되지 뭣하러 네 발을 넣고 다녀요.
너 시방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냐?
한 발 가지고 돼지 떨어뜨리면 되잖아요. 제게는 한 발이면 충분해요.
석산이라서 그런지 돼지 흔적 같은 건 없고 짐승 다닌 길도 없었다.
준식이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선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트롯트 가수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의 곡에
돼지는 아무나 잡나로 작사해서 불러댔다.
지형이 지형이니만큼 개들은 멀리 빠지지 않고
앞뒤 가까이에서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뭉쳐 다니는 데
우리 누렁이가 위엣 쪽으로 올라 붙는 것이었다.
그런 누렁이가 갑자기 앙칼지게 짖었다.
아!
그곳에 돼지가 있었다.
암반 위 묵은 소나무가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고
그 소나무 밑에서 거대한 멧이 벌떡 일어났다.
마치 영화 스크린처럼 가리는 부분없이
눈 앞에서 그대로 장면이 펼쳐졌다.
돼지는 잠에서 깨어나 뭔가 상황판단이 되지 않았는지
세차게 한 번 몸을 털었다.
준식이네 개들이 몰려 올라갔다.
준식아 쏠 준비해라. 놈은 우리 앞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다.
사실 돼지는 우리 있는 곳으로 올 수 밖에 없는 지형이었다.
준식이네 개가 누렁이와 합세하여 돼지를 포위하자
돼지는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우리 있는 데로 머리를 틀어 달려왔다.
됐다 싶었다.
나로부터 10m 아랫쪽에 있는 준식이를 보았다.
준식이, 거총을 하지 않고 있었다.
당황한 빚이 역역했다.
그러더니 총을 들고 만세를 부르며 약간 위엣쪽에 있는 내게로 달려왔다.
돼지는 정확히 준식이 서 있든 자리를 지나쳐
꽁무니에 개들을 달고 아래로 달려 갔다.
그런 돼지가 150m쯤 아래에서 개울로 뛰어들었다.
나도 보았고 물론 곁의 준식이도 보고 있었다.
준식아 됐다,는 말과 함께 아래 돼지와 개들이
대치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 내려갔다.
현장에 이르렀다.
그런데 왠지 뒤가 허전했다.
뒤따라 왔어야 할 준식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가며 준식이를 찾았지만 없었다.
준식이는,
총을 든 준식이는?
허탄했다.
돼지는 개들에게 묶여 개울에 쳐밖혔는데
총을 든 사냥꾼이 사라지다니!
개고 돼지는 뒷전이고 준식이를 찾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이름을 부르며 찾아 산을 돌았다.
그러기를 40여분, 겨우 휴대폰이 터져 그와 만날 수 있었다.
400m 골짜기 아래, 거기에 인가 두어채가 있는 데
그 곳에 준식이는 가 있었다.
화를 내기에는 너무 기가막혔다.
겨우 내가 한 말이라고는 왜 여기에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준식이는 돼지가 그리 튀었다는 말을 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돼지 않잡기를 잘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너무 커서 끌어 내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네가 끄냐? 회원들 추심하면 지금이라도 다섯 명은 부를 수 있다.
그 돼지 잡아도 너무 질겨 먹을 수 없어 않잡길 잘 한거라니까요.
누가 너더러 먹으랬냐? 너 안먹어도 먹을 사람 많다.
맥 떨어지는 공렵이었다.
총을 준식이 손에 쥐어 준 내가 잘못이지 하는 자책의 날이었다.
앞서 한달도 안됐을 것이다.
면허 처음 따고 두 달 않된 순명이는 정면으로 달려오는
100kg의 숫 멧을 다섯 발 쏘아 넝마를 만들었었다.
자칭 멧사냥꾼이란 녀석이 그깟 돼지를 보고 도망을 쳐?
뒤에 들은 얘기지만 준식이는 엽장에서 목을 서다가
5마리 떼멧이 정면에서 달려오자
똥이 빠지게 도망을 쳤다한다.
나 사는 금산에서 이 얘기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