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똥
김애자
위장 조영촬영을 한 날
흰똥을 누었다
밀가루 잔뜩 바른
눅진한 엿가락 같은 것을
부어주는 대로 물마시고 가루약 먹고
자동인형처럼 뿌연 약물을
300cc쯤이나 마시고
밀폐된 방에 혼자 남겨진 마루타
지시대로 엎드리고
모로 눕고 제켜 눕고 일어서고
온갖 자세 뒤척이며 시달렸을 뿐인데
잡아내려 애를 써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내 살 속에 깊이 숨은 삶의 이야기들
들끓는 오만가지 생각들을
조영촬영을 하듯 찍어낼 수는 없을까
결코 쉬운 것일 수 없는 일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인지도 몰라
한밤의 공원을 혼자서 걸어본다
걸음마다 성찰하며 되새김질하며
걷고걷고 또 걷고
만보를 넘도록 끝없이 걸어본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 올 때까지
나 어쩌면 오늘 밤에 그날처럼
눅진하고 편안한 흰똥같은
그런 시 한 편 낳게 될지도 몰라
첫댓글 ...............................!!!
^^*
주옥같은 시어 만나셨네요.
걸으면서요~~
늘 건강하세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