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서문:위화
서문 1: 마음의 소리
진정한 작가는 언제나 마음을 향해 글을 쓴다. 마음의 소리만이 그의 이기심과 고상함이 얼마나 두드러지는지를 그에게 솔직하게 말해 줄 수 있다. 마음의 소리는 작가가 진실로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을 이해하면 곧 세계를 이해한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나는 이러한 원칙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을 지키는 데는, 힘겨운 노동과 오랜 시간의 고통이 뒤따랐다, 마음은 결코 아무 때나 열리는 그것이 아니며, 더 많은 경우 오히려 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을 써야만, 쉬지 않고 글을 써야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고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떠오르는 태양 빛이 어둠을 비추듯 영감은 이런 순간에야 불현듯 떠오르는 법이다.
오래전부터 내 작품은 모든 현실과의 긴장 관계에서 나왔다. 나는 상상에 빠져 있었고 또 현실에 단단히 얽매여 있었다. 나는 자아의 분열을 분명하게 느꼈고, 나 자신의 순수하게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예전에 나는 동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진정으로 참된 작품을 소유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둘 중에 어느 하나라도 될 수 있다면, 내 마음 깊은 곳에 고통이 한층 가볍고 미약해지리라 생각했다, 동시에 내 역량도 그만큼 쇠잔해 갈 테지만….
사실 나는 지금과 같은 작가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마음이 요구하는 대로 글을 쓴다. 냉철한 이성은 나의 글쓰기를 대체할 수 없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아주 오랜 세월 분노의 가득 찬 또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작가였다. 이것은 나 혼자만 맞닥뜨린 어려움이 아니다. 우수한 작가라면 누구나 현실과 긴장 관계가 있다. 그들의 붓끝에서 현실이 요원한 상태에 처하게 될 때만이, 그들을 작품 속 현실이 찬란히 빛을 발할 수 있다. 지나간 현실을 온통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거기에는 이미 한 층에 비현실적인 색채가 덮여 있고, 그 속은 개인적인 상상과 이해로 꽉 막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진정한 현실은 역시 작가의 일상 속 현실이며,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함께 어울려 지내기 어려운 현실이다.
작가는 아침저녁으로 대하는 현실을 표현해 내야 한다. 그는 종종 그 일이 정말 감당하기 어렵다고 여긴다. 무섭게 달려 드는 진실들은 되게 추악하고 음험한 것을 하소연해 오기 때문이다. 왜 이상한 것은 죄다 여기에 있는지. 왜 추악한 사물이란 사물은 다 내 옆에 있고, 아름다운 것은 머나먼 바다 끝에서 가물거리는지, 다시 말해서 인간의 오해와 동정심은 늘 정서의 형태로 다가오지만, 그와 상반되는 사실들을 오히려 손만 뻗으면 바로 만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시인이 말한 것처럼, ‘인류는 지나치게 많은 진실을 감당해 낼 수 없다.’
일생 동안 자아와 현실의 긴장 관계를 풀어가는 작가도 있다. 포크너가 가장 성공적인 예로, 그는 화해의 길을 찾았다. 그는 중간 상태의 사물을 묘사하면서 아름다운 것과 추악한 것을 모두 포용했다. 그는 미국 남부의 현실을 역사와 인문 정신 속에 펼쳐 놓았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학 현실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기 때문이다.
성공하지 못한 작가들도 현실을 묘사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의 붓끝에서 나오는 현실이 폭로하는 것은, 단지 하나의 환경 즉 단단히 굳거나 죽어버린 현실일 뿐이다. 그들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살아갈지를 제대로 볼 줄 모른다, 그런 작가들이 시시콜콜 따지기 좋아하는 인물을 묘사할 때, 우리는 작가 본인이 바로 그렇게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묘사할 뿐 현실을 묘사하는 작품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현실과 긴장 관계에 있다. 좀 더 심각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현실을 적대적인 태도로 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속에 분노가 점차 사그라지자, 나는 진정한 작가가 찾으려는 것은 진리, 즉 도덕적인 판단을 배격하는 진리라는 걸 깨달았다. 작가의 사명은 발설이나 고발 혹은 폭로가 아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보상함을 보여 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상함이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모든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초연함, 선과 악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동정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바로 이러한 심정으로 나는 미국의 민요 <톰 아저씨>를 들었다. 이야기 속 늙은 흑인 노예는 평생 고통스런 삶을 살았고, 그의 가족은 모두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원망의 말 한마디 없이 언제나처럼 우호적인 태도로 세상을 대했다. 이 노래는 내 마음 깊은 곳을 올렸다.
그래서 나는 이런 소설을 쓰기로 했고, 그것이 바로 이 책 인생(활착活着) ‘산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사람이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과 세상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에 관해 썼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내가 고상한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
1993년 7월 27일
하이옌에서
위화
2. 1996년 한국어판 서문
“개인과 그 운명의 우정”
나는 이 작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 ‘인생’의 원제原題는 ‘살아간다는 것(활착活着)’이다. 매우 힘이 넘치는 말이다. 그 힘은 절규나 공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
… 인생이라는 작품은 개인과 운명의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감동적인 우정이다. 왜냐하면 그 둘이 서로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서로 증오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그의 운명을 서로 상대방을 포기할 방법이 없고, 서로 원망한 이유도 없다. 그들은 살아가는 동안은 흙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함께 가고, 죽을 때는 빗물과 진흙 속으로 함께 녹아든다.
아울러 인생은 사람이 어떻게 엄청난 고난을 견뎌내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중국 속담에 “머리카락 하나에 3만 근을 매달아도 끊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나는 인생이 눈물의 넓고 풍부한 의미와, 절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외에 그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인생에는 우리 중국인들이 최근 수십 년 동안 얼마나 어렵게 살아왔는가 하는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리고 나는 인생에서 풀어낸 이야기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문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의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식하지 못한 것까지 이야기한다. 독자는 바로 이러한 순간에 일어나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푸른 숲 출판사와 옮긴 이 백원담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그들의 노력으로 인생이 다른 언어로 한국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1996년 10월 17일 위화.
3.서문3:
만약 작가가 자기 작품의 어떤 권위를 갖는다면 아마도 그 본인은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만 유효할 것이다. 작품이 완성되면 작가의 권위는 점차 사라진다. 이제는 더 이상 그는 작가가 아니라 한 사람의 독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몇 년간 나의 옛 작품들을 읽으며 내가 느낀 감회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미 완성한 내 작품을 읽을 때 내 안에서는 종종 낯설다는 느낌이 솟아오른다.
2007년 한국어 개정판 서문 10년 만에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