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구한 풀무더기, 부모가 필사한 〈법화경〉 당의 여주 땅 양현 북촌에 신심이 돈독하고 성실한 유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고구려와 당나라가 치열하게 전쟁을 하던 때였습니다.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싸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걸린 전쟁이었으니까요. 그렇게 한참 고구려와 당나라가 천하의 주권을 잡기 위해 밀고 당기는 팽팽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을 때, 유 씨의 아들이 징발되어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고, 우리가 잘 알듯이 당나라의 참패로 당나라군은 거의 죽거나 고구려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 씨의 아들도 포로가 되어 요동 해안 고구려의 어느 성에서 말먹이꾼으로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동족도 아닌 이민족의 포로, 그 대우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말먹이꾼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돌보는 말보다도 못한 대우, 그래서 아들은 매일매일 죽는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밤낮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부모님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시간은 덧없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당나라 포로인 말먹이꾼들에게는 밥을 주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사람도 아닌가요?”
아들은 고구려군 사병에게 그렇게 대들다가 죽도록 맞고 마구간에 버려졌습니다. 그나마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다행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틈만 나면 침략하는 당나라군에 대한 고구려인들의 분노와 증오는 극에 달해 있었던 것이지요.
한창 국운이 뻗어나가던 고구려도 당나라의 대대적인 침략으로 인해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였으니까요. 비록 당나라와의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고구려 또한 당나라처럼 휘청거리고 있었습니다. 또 언제 힘을 키운 당나라가 쳐들어올지 모를 일이었지요.
아들은 말이 먹는 풀로 겨우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죽는 것보다 못한 삶, 아들은 이제 정말 죽을 결심을 하고 말이 먹는 풀도,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고 죽음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마지막 남아있던 희미한 의식도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비몽사몽간의 꿈 속에 스님이 한 분 나타났습니다.
“기다려라!”
“누구십니까?”
“너에게는 너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님이 있다.”
아들은 그제야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그렇지만 죽는 것이 오히려 사는 것보다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아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스님, 저는 더 이상 이런 구차한 삶을 원치 않습니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유 씨 아들아, 이승은 희망이 있는 한 살아갈 가치가 있다. 네가 이곳에서 벗어난다면 분명 네가 살아갈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제가 이곳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까?”
아들은 눈이 번쩍 띄어 물었습니다.
“네가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헤엄쳐 도망가면 살아날 길이 열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명심해서 시도해 보라.”
그렇지만 아들은 그 꿈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꿈이 며칠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음식과 물을 그렇게 오랫동안 먹지 않았는데도 목숨이 끊어지지도 않고 말입니다. 그것이 이상했습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아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죽는 것은 급하지 않으니 한 번 살길을 시도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무서운 경계병이 잠시 잠을 청하는 새벽 시간을 틈타 근처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홀로 나간 아들을 높은 망루에 있는 경계병이 모를 리 없었습니다. 나팔소리가 금방 울렸습니다. 당황한 아들은 무작정 바다만 바라보고 뛰었습니다. 그러나 눈앞은 망망대해, 어디를 보아도 배 한 척 보이지 않고 오직 출렁대는 파도뿐이었습니다.
“게 섰거라!”
“저 놈 잡아라!”
군사들이 그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일단 잡히면 무조건 죽은 목숨, 아들은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에라, 죽어 버리자.”
아들은 깊은 바다에 훌쩍 몸을 던졌습니다. 때마침 몰려왔던 파도가 다시 그를 바다 저 멀리로 내동댕이쳤습니다. 아들은 허우적거렸습니다. 무서운 고구려 군사들은 피했지만 깊고 푸른 바닷물은 피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가 바닷물과 무망(無望)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바다 한가운데서 문득 풀무더기 같은 것이 그의 몸을 떠받쳐 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얼른 그 풀무더기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풀무더기와 물결을 따라 표류하던 중 어느새 서해를 건너게 되었고, 드디어 그렇게도 그리던 고국 땅 어느 언덕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로소 고국 땅을 딛고서서 붙잡고 온 풀무더기를 잘 살펴보니 그것은 국화대를 잔뜩 묶어 놓은 풀 묶음이었습니다. 그는 그 풀무더기가 너무 고맙고 신기해서 부모님을 만나면 자랑하려고 소중히 품속에 간직하고 고향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돌아오자 부모님은 아들을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들의 품속에 무언가가 들어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네 가슴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저를 살려 준 풀무더기입니다.”
“풀무더기라니?”
아들은 자랑스럽게 풀무더기를 품속에서 꺼냈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입니까? 그것은 풀무더기가 아니라 〈법화경〉 한 권이었습니다. 아들도 놀라고, 부모님도 놀랐습니다. 그제야 아들은 그동안의 일을 모두 유 씨에게 말했습니다.
유 씨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아들의 손을 잡고 자기 집 후원 별당으로 가보았습니다. 그 곳 별당은 유 씨 내외가 아들이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그 아들의 안위를 염려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법화경〉 한 질을 잘 필사하여 좋은 함에 담아 정결하게 모셔놓고 날마다 옥수와 향을 바치며 기도 발원하던 곳이었습니다.
“네가 전쟁터에 나간 뒤 난 단 하루도 〈법화경〉 필사를 거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7권 모두를 완성하여 이 함에 담아 놓았다.”
부자는 조심스럽게 함을 열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7책 〈법화경〉의 6권이 비어 있었습니다. 유 씨는 얼른 아들이 품속에 넣어 온 〈법화경〉을 꺼내어 비교해 보았습니다. 틀림없는 6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럴 수가!”
유 씨와 아들은 〈법화경〉을 앞에 놓고 공손하게 합장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 아들의 꿈 속에 나타났던 스님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사실 유씨 성을 가진 진실한 법자 그대가 ‘묘법연화경’의 묘자를 썼을 때 이미 아들의 목숨은 구해진 것이니라. 이를 아는 사람은 이승과 저승 어디에서도 흔들리지 않을진 저!”
“스님은 보현보살님이십니까? 문수보살님이십니까?”
그러나 말씀을 마친 스님은 유 씨가 묻는 말에 대답 없이 빙긋 안개가 사라지듯 그렇게 다시 사라졌습니다. 이후로 유 씨는 자신이 필사한 〈법화경〉을 마당의 탑 안에 모시고 밤낮으로 경배하였고, 이윽고 인근 마을 사람들도 동참하여 오직 이 마을만이 훗날의 전쟁 참화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법화경〉으로 변한 풀 묶음, 일상에서 우리가 다루는 무엇이 〈법화경〉으로 변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로지 우리들의 마음에 달렸겠지요. 지금 우리가 들고 있는 휴대폰으로 멀리 계신 부모님과 그동안 소원했던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다면, 우리의 휴대폰이 바로 〈법화경〉으로 변하지 않을까요? 우봉규 작가 ggbn@ggbn.co.kr |
첫댓글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법화경 사경공덕으로 사경을 헤매던 아들을 사경에서 구했네요. 나무묘법연화경 ()()()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