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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별난집별난맛(T.F.C) 원문보기 글쓴이: 洸逵(광규)
1670년(현종 11)경에 이현일(李玄逸)의 어머니인 안동장씨(安東張氏)가 쓴 조리서. 궁체의 필사본 1책. 표지에는 한문으로 ‘규곤시의방’이라 쓰여 있고, 내용 첫머리에는 한글로 ‘음식디미방’이라 쓰여 있다. 이 책은 집안의 딸과 며느리를 위하여 쓴 것으로, 뒤표지 안에 “이 책을 이리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되, 이 책을 가져갈 생각은 하지 말고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쉽게 더럽히지 말라.”는 저술동기와 당부를 적고 있다. 국수·떡·만두·김치·찜·국·약과 등 25종류의 음식 만드는 법과 술·초 만드는 법, 고기·과일·채소·해산물 저장하는 법 등 총 132조목이 적혀 있다. 특히, 고려말에 등장한 발효떡인 상화(霜花)의 구체적인 조리법이 문헌상 처음으로 설명되어 있는 점, 녹말·녹두가루·메밀 등을 이용하는 국수 종류가 많은 점, 훈연법에 의한 고기저장법이 적혀 있는 점 등은 특기할만하다. |
음식디미방" 나이 일흔에 후손을 위해
정부인 안동장씨(貞夫人 安東張氏)는 인지한 어머니로 현명한 아내로, 그리고 효심 가득한 딸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렇게 철저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냈기에 300여 년이 흐른 뒤에도 어른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남자들, 그것도 사회지도층인 사대부에 대한 최고의 호칭인 군자로도 불리워지고 있다.
그러한 장씨가 나이 일흔에 써 내려간 것이 바로 음식디미방이다. 책 뒷면에 이 책을 잘 보관하라는 당부의 말을 쓰면서 그 첫머리에 "이리 눈이 어두운데"라고 쓴 것처럼, 침침한 눈으로 평생의 경험을 되살려 조리서를 써 내려간 것이다. 그렇게 정성스레 음식디미방을 쓴 이유는 단 한가지.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음식조리법을 대대손손 전하기 위한 장씨의 마음. 이 책은 장씨가 팔십 평생을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징표인 것이다.
그런데 음식디미방을 보면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146가지 음식 중에 16가지 음식에는 음식이름 밑에 '맛질방문'이라는 말이 쓰여 있다. 맛질방문?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황혜성 : 맛질이 뭐냐 백방으로 생각하다가. 맛있는 방법이다. 방문이라는 건 방법이라는 뜻. 그러니까 이 어른이 맛있는 방법이다 하고 이렇게 여러 개로 열 몇개를 죽 써놓은 걸로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이것을 해석해서 책까지 내놓은 다음에 문제가 생겼다. '맛질'이라는 소리를 외갓집에서 하더라. "그게 아니구요 맛질이라는 동네가 있다구요." 근데 그게 장씨네 외가 동네였다.
장씨의 외갓집이 있었다는 경북 예천. 과연 맛질마을이 있다. 그리고 간판에도 맛질이라는 글씨들도 눈에 띈다.
안동권씨 일족 : 내가 알고 있기로는 말을 캐러 가는 길목이라서 맛질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이 고장에서 만드는 솜씨가 좋은 사람들이 살았다고 해서 맛질이라고 하기도 한다.
맛질마을에는 안동장씨의 외가인 안동권씨가 살았다. 지금도 일부 안동권씨들이 남아있고, 장씨의 외갓집 터도 전해져 오고 있다. 장씨는 어린 시절 친정어머니에게 듣고 배웠던 요리까지 음식디미방에 적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요리에 대한 지식을 모두 동원해서 책을 쓴 것이다. 책에 쏟은 장씨의 정성은 글에서도 나타난다.
안귀남 (안동대 국문과) : 한글이 쉽게 읽히고 쓸 수 있게 한다는 그런 장점을 가장 잘 살렸다. 문장을 하더라도, 말하듯이 했다.
실제 내용을 보면, 마치 며느리를 앞에 두고 말을 하듯이 쓰고 있다. 한문실력이 뛰어난데도 굳이 한글로 써내려 간 것은 후손들이 늘 가까이에 두고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박광용 (카톨릭대 사학과) 교수 : 정부인 장씨께서 말년에 음식디미방에 대해서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틀림없다. 거의 가보 비슷하게 보존하라는 말씀을 남겼다는 거다. 이건 본인이 학문과 도덕으로 가문을 세우고, 그 마지막 완결로 본인이 이제까지 노력해왔던 가정공동체에 대한 봉사. 또한 사회공동체에 대한 봉사로 음식디미방을 남겨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해지길 바랬던 장씨의 마음. 그 간곡한 바램이 음식디미방 곳곳에 스며 있다.
"너희들이 비록 글 잘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해도 나는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착한 행동 하나를 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아주 즐거워하여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성인이라는 분도 보통사람과 다를 바가 조금도 없고, 절륜(絶倫)한 곳만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분을 배울 수도 없겠으며, 그 모양 그 언어도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보통 사람과 다른 곳이 있다면 그 행신(行身)하는 바가 다른 것이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일용(日用)으로 모두 도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니, 배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걱정할 것이고, 애써 배우면 무엇이 어려운 것이 있겠는가?"
"내가 늘 세상 사람을 안타까이 여기는 일은 물질이 있다 해서 그것을 바르게 쓰지 못해서 의리를 해치고는 서로가 멀어지는 일이구나! 의리는 무거운 것이고 물질은 가벼운 것이다. 물질이나 재화는 지금은 없다 하더라도 뒷날에 다시 생겨날 수 있는 것이고, 의리는 한번 어기게 되면 영영 사람이 나빠지고, 또 뒷날 깨쳤다해도 그 사람에게 빌려고 하지만 쑥스러워 지는 법이다. 정말 의리는 무거운 것이고 물질이나 재물은 가벼운 것인데, 어찌 무거운 것을 버리고 가벼운 것을 갖고저 하는가? 조그마한 물질을 차지하는 데에 인색해서 세상사람이나 가까운 일가친척과 또 누구에게나 마음을 섭섭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우리 선조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일이 쉽지 않았다. 조선시대, 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유교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요리 관련서적이 거의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중기 양반가의 음식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양반문화도 살펴 볼 수 있었다. 그건 일흔 나이에 정성스레 자신의 평생의 경험을 써내려 갔던 한 여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146가지 음식의 조리방법을 한자한자 꼼꼼하게 써내려 갔을 노년의 장씨 모습. 상상만으로도 책 안에 담겨졌을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이 한 권의 요리책은 장씨의 치열했던 삶의 결과물인 것이다.
음식디미방이라는 요리책을 통해 만나 보았던, 330여 년 전 이 땅에 살던 한 여인 정부인 장씨. 그동안 여성으로서 정부인 장씨의 삶에 대해 이견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장씨의 팔십 평생은 여성이 아닌 한 인간의 삶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 터전이 가정이든 사회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던 한 인간의 삶. 그것이야말로 가치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330년전, 요리책이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것도 조선의 유교적인 사회분위기에서 일흔 된 여성이 책을 썼다는 것은
더욱 흥미를 자극한다.
문제의 책은 바로 음식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을 가진 음식디미방이다.
음식디미방의 첫 장을 열면 1670년대 조선 양반 가의 문화가 진수성찬으로 펼쳐진다.
1. 음식디미방-요리백과사전
안동에 살던 정부인(貞夫人) 장씨에 의해 쓰여진 음식디미방. 한글로 씌어진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다양한 음식의 조리법이 종류별로 나뉘어 체계적으로 적혀있다. 국수, 만두를 비롯한 면병류, 어육류, 소과류, 주류까지 종류가 모두 146가지다. 조리법 뿐 아니라 그 발상이 비닐하우스와 비슷한 보관법에까지 정통한 이 책의 저자는 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 정부인 장씨의 학문적 소양
.장씨는 숙종때 이조판서까지 지냈던 갈암 이현일의 어머니다. 그녀는 1598년 안동장씨 장흥효 가문에서 태어났다. 대학자였던 부친을 둔 덕으로 그 시대 보통 여자들과는 달리 자연스레 학문을 접할 수 있었던 그녀는 시경,서경까지 터득하였고, 글씨, 그림실력도 뛰어났다.
3. 실증적 요리서 중 최초!
음식디미방 이전에도 요리책은 있었지만, 한문으로 쓰여져 있고 간단한 소개정도에 그쳐 실용성과 편리함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 책은 내용이 한글로 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46가지 음식에 대한 장씨만의 비법과 조리기구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지금도 이 책을 따라서 그대로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다.
4. 양반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 음식디미방
당시 양반집에서는 다양한 술을 빚었다. 탁주는 주로 종들이 마시게 했고 손님접대에는 청주를 사용했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손님접대문화가 다양한 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음식디미방은 조선시대 문화를 읽게 해준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음식디미방은 단순한 요리서가 아닌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5. 시대적 소명에 충실했던 정부인 장씨
최근 정부인 장씨의 가정에 대한 충실을 예찬한 이문열의 소설에 대해 여성계에서는 현대여성이 추구하는 삶에 역행되는 것이라며 반박했다. 하지만, 이런 분분한 논쟁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정부인 장씨의 삶에 대한 평가는 그녀의 시대적인 배경을 통해서 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7세기 임란,호란으로 무너진 질서가 재 복구되던 시기,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6. 맛질방문이란?
음식디미방에 적힌 음식 중 16가지 음식 밑에는 맛질방문이라는 말이 쓰여있다. 이 말의 뜻을 놓고 갖가지 해석이 대립하던 중 실제 뜻은 참으로 소박한 곳에서 드러났다. 정부인 장씨의 외갓집이 있던 곳이 경북 예천에는 맛질마을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 친정어머니에게 듣고 배웠던 요리까지 음식디미방에 적으면서 ‘맛질방문’이라 쓴 것이다.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해지길 바라는 그녀의 마음은 맛질방문을 통해 얻어진 최고의 요리책, 음식디미방 곳곳에 스며있다.스레 학문을 접할 수 있었던 그녀는 시경,서경까지 터득하였고, 글씨, 그림실력도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