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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희망을 갖지 않게 하는 일
흔히들,
"아무리 어렵고 힘든 경우라도 희망을 잃어선 안 돼!" 하는 말을 하곤 한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일도 매우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야."고도 한다.
맞는 말이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도 매우 일상적인 우리네 삶의 자세일 수 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러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으니……
어차피 와야 할 순간은 오고 말았다. 인야는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동안 신세를 진 것은 어떻게든 나중에라도 갚으면 되겠지만, 아닌 것은 아니었다.
쥐뿔도 없는 것이, 남의 집에 얹혀 사는 주제에도 고고한 척은 다 하고 할 말도 다 하며, 지킬 것은 다 지키는 '도도한 사람'이라는 안나 부인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인야가 바람이라도 쐬려고 집을 나오자, 답답한 자신의 심정을 달래기 위해 독일 주교를 찾아갔다던 안나 부인이... 그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희망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 말 전하기가 힘들면, 내가 직접 전할 수도 있다."
처음엔,
'무슨 이런 황당한 말이 있담? 그리고 어떻게 성직자란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지?' 하며 기가 막히기도 했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어쩌면 너무나 냉철하고 현실적일 수도 있는 그 말이 오히려 섬뜩하기도 하면서, 그 말도 안 될 것 같은 말이 인야에게는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그래서 희망을 갖지 말아야 할 베를린을 인야는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인야는 내쫓겼다. 아니, 자신의 발로 걸어 나왔다.
더러워서 그 집에서 지 발로 걸어 나온 것이었다.
거리엔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심한 배신감과 자신의 무능이 뒤범벅이 되어선지, 속이 다시 뒤틀리고 있었다.
'아, 이러다가 다시 배에서 피가 새면 큰일인데……' 하는 생각이 이제는 공포 수준이어서, 얼른 약부터 먹어야 했다.
그리곤 거리를 떠돌았다. 그렇지만 갈 곳은 역시 동물원역 플랫폼밖에 없었다.
그래도 하늘과 운명은 인야를 기차역 플랫폼에서 자게 방치하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도 편한 잠자리를 연결시켜 준 것이었다.
노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집을 나와야 할 급한 사정이 생겼다는 얘기를 했더니, 10분쯤 후에 다시 전화를 걸라고 했다.
다시 전화를 거니 일단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해서 그 집으로 갔다.
그런데 인야가 도착하자, 바로 자신의 차로 동생 집에 데려다 준 것이었다. 다행히 그 분은 그 속사정까지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그 동생분이,
"마침 비어있던 방 하나를 오늘 정리했는데……" 하면서 인야를 맞아주었다.
꼼짝없이 거리에 나앉을 처지였는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생각지도 않았던 편한 잠자리, 그것도 제법 큰 독방이 생긴 것이었다.
'이게 현실인가?'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인야는 자신의 운명이거나 팔자가 참으로 묘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제일 먼저 떠오른 게 G였다.
전화를 걸었더니 반갑게 받았는데, '코펜하겐'에 가겠다고 하자... 15일 날 오라는 것이었다. 그때나 머물 공간이 생긴다면서.
'그때까지 내가 여기 베를린에서 견뎌낼 수 있을까?'
그날, 안나 부인 집에서 완전히 나왔다.
어차피 마무리는 깨끗하게 지어줘야만 했다.
그런데 그 집에서 만든 흙 작업 문제가 골칫덩어리로 떠올랐고, 아무리 생각해도 굽긴 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걸 가마 있는 곳까지 차로 옮기는 일을 부인의 독일인 남자친구가 해주었기 때문에, 나머지 짐까지 그분의 차에 싣고 집을 나온 것으로 뒷마무리를 깔끔하게 지은 셈이었다.
어쨌거나 베를린 생활이 조금씩 정리되어 갔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던 일이지만, 어차피 이제는 한국행이 확정된 모양새였다.
최종적으로 함부르크엔 한 번 더 가봐야 할 것이었다. 서 00씨에게도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이나 다다음 날 함부르크에 가서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고, 그의 지원을 조금 받고... 그리고 코펜하겐에 들렀다 비행기에 오르면, 한국이 될 것이었다.
베를린에 와서 해놓은 것 하나도 없는 인야는, 안나 부인 집에서 나왔다는 해방감과 한국에 돌아간다는 상황에... 후련함마저 느끼는 것 같아 ,'나도 참, 철도 없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며칠은 더 베를린에서 버텨야 하는데.
플랫폼 한 구석에 앉아 깨알 같은 글씨로 뭔가를 한참 동안 적는 인야를 뒤에서 서성이며 보던 독일 여행객 한 사람이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길래, 아까부터 깨알 같은 글씨로 종이를 가득 채우면서도 멈출 줄을 모르는 걸까?'
이 세상 그 누구라 한들 사연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지금의 인야는 정말 사연이 많은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또 기차가 들어왔다. 여행객들이 움직였다.
인야도 이젠 임시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고 있는 흐린 오후, 인야는 베를린의 어느 한 공원에 앉아 있었다.
임시 숙소에 있자니 갑자기 서글퍼져서 나온 것이었다.
오전에 함부르크의 서 00씨 전화를 받았는데, 거기에 머물 수 있는 방이 있다고 오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베를린을 떠나기에 앞서 도심 벽화 사진이라도 좀 찍어두자고 도심을 싸돌아다녔다.
이제는 떠날 입장이라 한국에 돌아가서도 써먹기 위한 '공공미술에 대한 자료 수집'이었다.
그런데 베를린에서 늘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처럼 동물원역 플랫폼이나 FU의 사과나무 밭, 또는 달렘도르프 길을 배회하던 인야는, 갑자기 베를린에서 남아있을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는 온몸에서 힘이 죽 빠져나가는 건 물론 서글퍼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최근 뜻하지 않게 맞닥뜨렸던 긴박하고도 심각했던 여러 사건으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베를린 생활에서 가급적 빨리 벗어나고 싶었었는데, 이제 떠날 날짜가 다가오다 보니... 이루지 못한, 아니... 시도조차 해보지도 못한 채 떠난다는 사실이 굴욕일 수밖에 없어, 그에 따른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회한에 잠기게 했다.
다시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인야는 함부르크에 가려고 버스 터미널에 나왔다.
그렇게 짐을 메고 다니는 것도 이젠 지겨운데, 그동안 몇 번 왔다 갔다 해서인지... 이제는 낯이 익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다 살아가게 마련인데, 나는 맨날 어디를 이렇게 떠도는지......'
알맹이는 빠진 껍데기만 어디론가 떠도는 기분이었다. 9월은 깊어가는데, 인야는 정말 많이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함부르크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서 00씨의 식당을 찾아갔다.
배낭이 꽤나 무거웠다.
밤 10시가 다 되어 도착하니, 서 00씨 형 부부가 일을 하다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특히 반갑게 맞아주는 걸로 보면 이미 서 00씨가 그들에게 인야 얘기를 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인야는 그들의 약간은 동정어린 시선이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해서...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밥을 먹고 서 00씨 형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11시가 되어, 그제야 자유의 몸이 된 서 00씨가 인야를 차에 태우고 어딘가로 달리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인야는, 그가 묻지도 않았는데 베를린에서 있었던 일을 거짓으로 꾸며 얘기해 주었다. 미리 입막음을 시켜놓을 계산으로.
물론 늘 자신을 진실하다고 믿는 그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그 누구에게라도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모르는 상태로 넘어가는 게, 두루두루에게 훨씬 낫다는 판단이었던 것이다.
"모든 게 다 내 탓이지요. 돈이 없어 남의 집에 묵었던 게 잘못이었구요……"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서 00씨도 거기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눈치여서 다행이었다. 그보다는 인야의 지난번에 왔을 때, 장출혈이 있었다는 말에 깜짝 놀라며,
"아, 어쩐지 얼굴이 노리끼리 뜬 거 같아 이상하긴 했지만, 나는 집 문제가 걸려서 그런가보다 했었지요." 하며 "몸이 아파서 어떡합니까?" 하고 가슴 아파 하면서도, 이번에도 역시,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아주 간다는 생각보다 상황을 봐가면서 하고, 언제라도 한국 상황이 안 좋으면 다시 오세요. 그러면 그때는 또 독일 상황이 호전돼 있을 수도 있는 거니……" 하면서 인야가 독일과 끈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것만으로도 인야에게는 심적으로 커다란 위안이 아니 될 수가 없었다.
비록 자신이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나선 상태이기는 하나,
'이대로 물러설 수만은 없어!' 하는 오기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베를린에서 있었던 일은 인야로 인해서는 독일 내에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비록 끝은 안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인야를 위해 잘 해주려던 안나 부인을 위해서는... 더 없이 잘 된 일이었다.
서 00씨는 인야를 비어있는 한 아파트에 내려놓고는,
"푹 쉬셔!" 하면서 "이건 내일 차비로 쓰슈!" 하고 50마르크를 놓고 돌아갔다. 그러니,
'도대체 이 사람은 나에게 누구이기에, 이토록...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기만 할까?'
인야는 멍하니 서 있었는데, 오늘도 잠자리가 바뀐 것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혼자라 마음이 편해서 좋았다.
어느덧 자정이 넘어 한 시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혼자라는 사실이 아늑하도록 편했다.
'내가 혼자 있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떠돌면서 혼자 사나보다......'
낯선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잔 뒤 눈을 뜨니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그 즈음 인야는 5시에서 6시 사이에 눈이 떠지곤 했는데, 7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난 걸로 보면 제법 잘 잔 것이 분명했다. 날마다 바뀌는 잠자리에 예민한 몸이 적응을 잘 못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야는 몸을 지붕 없는 밖에서, 추운 곳에서 자도록 내팽개쳐지지는 않았다. 그게 팔자인지 운명인지는 모르지만, 그러지 않기 위해 자신도 애를 썼던 것이고, 어쩌면 믿지도 않는 신이 도와주었을 거라고... 감사를 드리기도 했다.
그렇게 하도 들쭉날쭉한 생활을 하다 보니, 어머니께 연락을 못 드리고 있었다.
그 당시 인야에게는 국제전화를 거는 것마저 자제를 해야 하는 경제력 때문이었다. 그런 자신이 안타깝기도 했다.
'참, 못났다.'
다음 날 어머니는 그런대로 가벼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저는 잘 지내고 있는데요, 어머니 안녕하신가 해서요.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어쩌면 이번 추석엔 한국에 갈지 모르니, 어머니 혼자만 알고 계시고, 그 전에 다시 연락드리기로 하겠습니다."
"그려? 알았다."
어머니는 인야의 말씀을 무조건 믿으시는 분이라 이 상황을 모르셨다.
그렇지만 추석에 간다는 말씀을 들으시면서는 기분이 좋으신 듯 음성이 매우 밝았다.
그렇게 어머니를 속이긴 했지만, 어머니가 좋아하시니 인야도 예상했던 것만큼 우울하지만은 않았다.
어머니의 기쁨은 곧 인야의 기쁨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어차피 마지막이라서, 이번에는 피터씨를 안 보고 떠날 수는 없었다.
마지막 인사는 해야만 할 정도로, 인야에겐 중요한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모처럼(마지막으로) 피터씨에게 전화를 거니, 집에 없는지 자동응답기가 울렸다.
그래서 루티의 가게에 직접 찾아갔더니, 일을 하던 루티는 깜짝 놀라며 인야를 맞아주었다. 그리곤 근황을 묻더니 그 건물 위층에 사무실을 갖고 있는 '그라씨(Grassy)'씨에게 한 번 가보라고 했다. 인야에게 뭔가를 엮어주려 함이었다.
너무 바빠서 루티는 같이 가지 못했고, 거기서 연락이 닿은 피터씨가 와서 점심을 사주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오는데, 피터씨가 뭔가 인야의 가슴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순간 그것이 돈 봉투일 거라는 사실을 감지하면서 거부하려 했는데,
"인야, 괜찮아……" 하고 안심시키더니, "지난번 우리들 초상화를 선물한 것도 있는데, 이건 약소한 것이긴 하지만,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돼." 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인야는 이번에도 전혀 예상치 않은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인야가 루티 가게에서 전화를 걸고 점심 먹으러 만나러 가는 사이에, 피터씨는 돈 1,000마르크를 봉투에 넣어 준비해 두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인야더러,
"인야, 기회는 언제든지 올 수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 하는 말을 남기면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고,
그것으로 그분과는 이별을 한 셈이었다.
훗날 인야는 그 대목을 들여다보며 '아, 그때가 피터씨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구나! 물론 그때는 그게 마지막인 줄 몰랐었는데, 그 뒤로 다시 대면할 기회가 없었고, 지금은 돌아가셨는지 그분의 소식 자체를 모르고 있으니……' 하고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렇게 함부르크 도심에서, 한편으론 참담하고 다른 한편으론 돈이 수중에 들어오니 뭔가 든든한 느낌으로... 안도의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곤 천천히 걸어 낯선 아파트로 돌아왔다.
이미 점심을 먹었는데도 서 00씨가 가져온 라면을 보자 식욕이 당겨, 김치도 있고 해서... 바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저녁때 밖으로 나가 서울의 P와 통화했다.
그는 인야 대신 책 작업을 하고 있는 듯했는데, 미안하기도 했지만 고맙기 그지없었다.
추석 무렵엔 돌아갈 거라고 알리자 그도 좋아라 했다.
그렇지만 인야는,
'해놓은 것도 없는 주제에, 뭐 자랑이라고 돌아간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있는지……' 하는 심정에 마음이 무겁기만 해, 땅거미가 지도록 전철을 타고 돌아다녔을 뿐이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긴박하기만 했던 베를린 상황에서는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불안하거나 초조하지도 않다 보니... 한편으론 휴가를 온 기분이기도 했다.
어저께 루티가 소개했던 그라씨씨 사무실을 찾아갔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혈색 좋은 통통한 노인으로 활동적이고 외교적인 사람 같아 보였다. 그는 인야에게 미국 사람 하나를 소개하겠다며 전화번호를 주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를 않았다. 아니, 전화를 받은 여자가, 그는 미국에 사는데 지금 현재 그곳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라씨씨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동응답만 울렸다.
하는 수 없이 그런 얘기를 녹음에 남기고 돌아왔다.
그 사이에 바람이 세졌고 날은 흐려 있었다.
함부르크에 와서 어제 오늘 한 일도 그렇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어주는 게 없었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피터씨 말대로, 기회는 언제든 있다는 말을 믿고 살 수밖에……'
그런데 오후엔 반전이 일어났다.
점심 무렵에 루티의 가게에 들르다 우선 그라씨씨 사무실에 들러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그분은 반색을 하며 인야를 잡더니, 어젯밤 자신이 그 미국인을 만나 인야 얘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바로 그 미국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 미국인은 오늘 오후 2시에 뉴욕으로 떠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며... 인야더러 바로 오라는 것이었다.
인야는 택시를 타고 그 미국인을 만나러 갔다.
한스 되빌(Hans d'Orville)이라는 그는 컬렉터 겸 미술책도 출판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건물은 많은 예술가들의 인쇄물로 천장을 덮은 재미있는 구조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인야의 작품을 보고는, 특히 테라코타에 관심을 보이면서... 값을 묻기까지 했다.
한국의 '선제', '호암 갤러리'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인야의 대학 동기이자 국제적으로도 알려진 김 모도 아는 사람이었다.
바쁜 그의 일정 때문에 그 자리에서의 이야기는 대충 그 선에서 끝낼 수밖에 없었는데, 인야는 한국에 돌아간 뒤 그에게 자료를 보내기로 했고, 그는,
"내가 장담은 않겠는데, 그렇지만 최소한 여러 사람들에게 당신의 작품을 보여주기는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인야에게는 감지덕지였다.
더구나 빈 손으로 한국에 돌아갈 처지였던 인야에게, 막바지에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밥을 챙겨 먹고, 다시 루티 가게에 가다가 전시 조직에 전화를 해보았다.
그런데 그 사이에는 내내 불통이더니 그날은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자시 소개를 하면서 일요일에 떠나니까 오늘 가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와보라고 해서 바로 그곳으로 갔다.
'Cult.ev.' 이름도 좀 이상한, 그렇지만 인야처럼 이름 없는 화가들을 위해 전시를 기획하는 모임이었다.
어쨌거나 거기에 카탈로그 등 자료를 놓았고, 연락처로 P의 이메일 주소도 남겨 놓았다.
그렇듯 그날 오후엔 느닷없이 뭔가를 한 느낌이었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는데, 베를린도 아닌 함부르크에서 생각지도 않은 뭔가 끄나풀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베를린 가마 굽는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다 잘 됐다고 했다.
테라코타 넉 점이 무사히 구워져 나온 것이었다. 어찌 보면 그것도 베를린에서 했던 조그만 흔적일 수 있었다.
모처럼 인야는,
'나에게 이럴 때도 있나?' 하고 믿겨지지 않아 놀라면서도, '왜, 이제 와서?' 하는 불만 같은 것도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서 00씨는 인야를 아파트에 혼자 내버려둔 게 걸리나 보았다.
그동안 참참이 신경을 써주는 것도 모자라, 혼자 처박혀 있지 말고 자기 식당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성화더니, 어젯밤에는 전화까지 걸어와 일 끝낸 뒤 자기 집에 가서 저녁을 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물론 어차피 그는 늦게까지 일을 하는 사람이라 자정이 다 되어서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경험을 곁들이며 혼자 있을 때의 심정을 얘기했는데, 인야는 그것이 위로하는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가 생각하듯 인야가 그리 참담한 심정이 아니라는 데에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좌우간 인야는, 그가 생각하듯 그다지 우울하지는 않아서... 그의 경험담을 들으면서는 오히려 소리 내어 웃기까지 했다.
아무튼 그렇게 저녁을 먹고 그 집에서 자고 돌아왔다.
다음 날은 활짝 갠, 가을 냄새가 완연한 날이었다.
아침에 샤워를 한 뒤 옷 몇 가지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등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을 맞았다.
'뭘 해먹는다지?' 하면서 주방의 한 문을 열어보니 국수가 눈에 띄었다.
순간 서 00씨가 갖다 준 시큼한 김치가 떠올라, 어쩐지 국수가 먹고 싶어서 그냥 생각대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김치를 썰어 넣고 삶은 국수에 섞어 비벼먹었다.
그런데 어찌나 맛있던지,
'식당 차려도 되겠네!' 하면서 혼자 웃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뭔가 조금 평화로우면서도 홀가분한 기분으로, 함부르크에서 마지막으로 여유 있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공원에도 가고, 시 외곽 안 가본 데도 가보고.
그날은 바람이 스산하게 부는, 그러면서도 맑은 날이었다.
함부르크는 잔디밭도 참으로 넓었다. 더구나 시내 중심부에 이렇게 너른 호수를 가진 공원이 있을 줄은, 그동안 몇 번씩 와보고도 몰랐었는데.
바람이 불어선지 연 날리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그러나 그 연들은 색깔이 화려한 나일론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연들이라, 어릴 적 대나무를 깎아 창호지로 만든 연과는 그 느낌 자체가 달랐다.
'아, 연(鳶). 하늘 높이 나르다 줄을 놓으면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렸던 연…… 그 시절부터 나는 연을 허무함으로 여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혹시 내가 지금, 줄을 놓친 연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건 아닌지…… 산 너머로 행복을 찾으러 떠난 사람은 아닌지…… 그래서 산을 넘으니, 더 높은 산이 계속 앞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은 아닌지……'
그날도 연을 보니 허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원에서 나와 전철을 탔다. 이번에는 도시의 북쪽으로 가보았다.
철로변의 나무들 때문에 풍경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시 외곽으로 달릴수록 집들은 낮아졌고, 따사로운 초가을 볕을 받는 나무들이 바람에 나풀거리는 전원적인 풍경들이 펼쳐졌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 역에서나 내려 시골길을 싸돌아다녀 보고 싶었으나 너무나 생소한 곳이라서 관두었다.
아파트에 돌아오니 피로가 쏟아져 소파에 누워 한 시간 반여를 정신없이 잤다.
으스스 추워서 깨어나 보니 저녁이었다.
감자와 달걀을 삶아 따끈한 것들을 호호 불어가며 저녁 식사로 때웠다.
'아, 마음 편한 게 제일인 것을……'
다음 날 짐 정리도 끝냈다.
멕시코에서 온 것과 바르셀로나에서 가져온 것을 다시 포장해서 싸놓았다.
그 짐을 선박운송으로 서 00씨가 한국에 부쳐주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하루 정도 더 함부르크에 머물다 베를린에 가서 테라코타를 찾아 포장하고, 이 모 선생네 한글 프로그램 디스켓도 갖다 주고......
이제 남은 건 인야가 떠나는 일뿐이었다.
그날 진종일 궂은비가 내렸다. 전날의 맑은 날에 비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바뀐 날씨였다.
비가 오니까 나가기가 꺼려져 오후를 빈둥빈둥 보내고 있었다.
날씨만큼이나 우울했다.
어쨌거나 떠나는 건 상황이 안 좋아서,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는 결과라... 더욱 안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할 만큼은 했다고 인야는 생각했다.
여러 악조건이 함께 했다.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니 독일 경제에도 타격이 심했고, 사람들이 지갑을 닫다 보니 인야 같은 사람이 기회를 잡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인야는 여기서, 독일의 어느 주교가 말했다던 '희망을 갖지 않게 하는 게 도와주는 것이다'라는 말을 배웠다.
배웠다기보다는 그 말에 기가 질려서 여기가 싫어졌다.
그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희망을 버릴 순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회는 언제 어디서든 있을 수 있다.'는 피터씨의 말을 믿고 싶었고, 그런 격려를 해준 그분께 감사드렸다.
그러니까 인야는 카톨릭 주교의 말보다 피터씨의 말에 더 공감을 하면서, 앞으로도 희망을 걸면서 살아갈 생각이었다.
갑자기 하늘이 더 어두워지면서 비가 세지는 것 같더니 저녁을 해 먹는 사이에 멎었다.
'그냥 이렇게 집에서 시간만 허비하지 말고 밖에 나가보자. 관광객이라고 해도 좋다. 함부르크에서의 마지막 밤을 머릿속에 기록해 두자. 보는 것은 안 보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으니까.' 하면서, 안개비가 뿌옇게 내리는 세인트 폴리(St. Pauli)에 갔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토요일이어서인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한쪽은 성 상품 가게(Sex shop)가 주를 이뤘고, 건너편엔 윤락녀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약간의 호기심과 두려움도 섞인 자세로 그 거리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시끌벅쩍한 음악, 그리고 음탕한 모습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과 행인들이 뒤엉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그 홍등가를 제외한 도시는 착 가라앉아 무겁고 우중충한 안개비가 내리는 음울한 공간일 뿐이었다.
짙은 갈색 지붕과 빨간 벽돌에 흰색 틀 창의 집들이 많은 무거운 도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낯선 아파트로 돌아왔다.
함부르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 뒤 대충 아침식사를 했고 짐 정리, 집 정리도 끝냈다.
고마움의 표시로 판화 한 점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서 00씨 전화가 오면 나가면 되었다.
날씨는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낮은 구름으로 덮여있는 잿빛 그 자체였다.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베를린으로 돌아가 코펜하겐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서울로 가면 되었다.
서 00씨 형님 댁에서 점심을 먹자마자 밖으로 나왔는데, 그들은 식당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서 00씨와 그렇게 헤어진 게 싱겁다 못해 아쉽기도 했지만, 그의 말마따나,
"우린 또 만날 테니까, 헤어지네 만나네 그런 거 너무 따지지 맙시다!" 해서 웃기까지는 했는데,
그런 소탈함이 좋았다.
인야는 멍한 상태로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약 10초만 늦었어도 버스를 타지 못할 뻔했다.
버스를 타자마자 문이 닫혔고, 출발했다.
베를린.
인야가 좋아할 수 없는 도시였지만, 버스에 오르고 그곳을 향하는 사이는 뭔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래, 함부르크도 끝났고, 이제 베를린도 이런 식으로 떠나면 되는 거겠지……'
베를린엔 오후 4시 반쯤 도착했다.
노 선생님 댁에 전화를 거니 아들이 있어서 바로 온 뒤 내내 TV만 보았다.
잠은 잘 잤다.
'이제 나가서 못 다한 일들을 마무리하자.'
그렇게 함부르크 일은 정리가 됐고, 베를린에 돌아오는 것으로 한 대목은 끝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