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지역의 불교 (1) / 방육
-인사말씀-
미주현대불교사 편집부의 청탁을 받아 러시아,모스크바,기타 독립국연합(C.I.S.)카르믹 공화국(Kalmykia- Republic)등지에서 약 8년여에 걸쳐서 단신 포교활동을 수행한 바 내용에 관해서 사실대로 소개하고져 펜을 들었다. 기록으로 가지고 있던 일기장 등의 원고를 분실하고 나니 새삼 당시를 회상하면서 기억을 더듬니까 힘이 들었으며 내용도 미비하고 부족한 점을 독자여러분께서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또 중복되는 글문도 나오는데 그것은 독자들께서 강한 인상과 기억을 가져주시라는 필자의 생각이다.
이미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쏘련 연방인 U.S.S.R.이 막을 내린 1992년 5월경부터 필자는 모스크바 로드러가 시외인 그린타운이라는 곳에 아파트를 정하고 自坊으로 불법당을 모시고 주로 러시아인 상대로 불교전파와 친선교류등의 활동을 하다가 최근 미국 뉴욕 자방으로 돌아와 한시름 놓은 상태에서 비승비속으로서 당시를 기억하며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원래 문장력이나 식견도 부족하고 천박한 처지에 일체의 시시비비등이 見聞觸知皆近菩提라 나에게는 소중한 인생공부의 되었음을 확신하면서도 회광반조 하면서 후회 안하고 지내고 있다.
신심이 지극한 러시아 스님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혹 여한이 있다면 러시아 불교의 부흥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움도 못주고 원력을 세웠던 세계평화불사리탑의 건립을 못하고 돌아오게 된 것은 한국포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한 없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결코 이것은 개인불사가 아니기에 한국을 방문하여 불교신문을 통해서 동참을 종요한 바도 있고 한국블교종단협의회도 방문하여 호소도 하였으나 중국불교와 밀착된 교류때문에 러시아까지 관심을 가질수가 없는 처지라는 이야기를 듣는 수 밖에 없었다. 한국불교계가 러시아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하며 이직 佛緣이 미숙함을 절실히 느끼면서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선구자나 개척자 그리고 희생적 봉사자들의 역사적 중요성과 그들의 어려움을생각하게 된다.
필자가 러시아에 와 보니 오염되지 않은 나라이며 이질적 문화인 전통,관습,생활양식등을 접해보니 그들의 슬라부 민족들 문화적 전통이라는 것이 동양적인 면이 너무나 많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고서 다시한번 친밀감을 느낀다. 이러한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 무서운 공산주의를 신봉했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필자의 발견이란 한 민족문화의 형성이라는 것이 그들만의 민족자체의 내용만 가지고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타민족 문화와도 접촉되어서 변용된 과정을 거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으로 지구촌 민족의 문화,언어,관습등 역사적 배경과 전통은 달라도 결국 뿌리는 하나가 아닌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이였다. 그래서 러시아인들 하고는 종교 신봉여하를 초월 금방 친해지기 시작하니 아! 여기가 진짜 사람 살 곳이구나 하는 느낌이 와 닿느는 것이었다.
필자가 거주하는 작은 불당에는 잘도 알고 러시아 동서남북에서 각계 각층의 불교인,요기,지압하는 사람,침선하는사람,접신자,무속인들이 찾아왔는데 나는 흔연히 맞아주었다. 특기할 것은 여기 모스크바에서 불교국가인 카르믹 공화국의불교청년들을 알게 되었으며 그중에 후일 나의 제자가 된 대학생인 라부단(Ravdan)이라는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일본산묘법사계(日本山妙法寺系)의 러시아 불자들을 알게 되고 특히 ?X만 협회의 무당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보리야드 불자들과도 만나게 되어서 이질감을 떠나 금방 친하게 되었다.
U.S.S.R. 러시아 연방은 자고로 그들의 전통종교인 러시아정교(Orthodox-Church)가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물론 기독교계열이지만 신구교를 합해서 러시아식인 정통교라고 보면 된다. 러시아에 공산주의가 종식되고 민주화 개방이라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부터 종교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자 급진적으로 타국의 종교가 러시아로 모스크바로 밀려왔다. 한국에서도 개신교,통일교,순복음교회,불교,원불교등이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로 집결하게 된 것이다. 불교를 보면 아르미타 고려인들의 특별초청으로 조계종에서 원명스님이 먼저 들어왔고 다음에는 일본산묘법사, 대만의 佛光山에서 성운대사계열에서 먼저 들어갔고 필자는 1992년 5월 석가탄신일에 모스크바에 들어갔다.
달라이라마와 필자 방육스님
원명스님은 주로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포교를 하고 있고 모스크바에 부처님 도량을 하나 마련하였다. 창건주는 한양여행사 池浩天거사이며 한국에 가서 사미계를 받고 온 러시아 승려 日海스님께서 원명스님의 제자로서 한국 스님의 노릇을 하고 있다. 필자는 원명스님 부재중에 부처님 오신날 법회등에 한 두번 나가 지도한 일이 있다. 모이는 사람들은 모스크바에 상주하고 계시는 외교관 사업가 유학생들인데 친목겸해서 나오시는 초심자들이다.
원불교에서도 교무를 파견하고 있다. 1994년부터 시내에다 교당을 만들고 모임도 하면서 주로 교포들과 2세들 자녀 어린이 교육을 담당하고 계셨다. 교무 선생의 말씀에 의하면 원너불교가 전통불교가 아니어서 러시아인들이 접근하는데 망설이는 것 같아서 지역에 적응될 수 있는 포교 방식을 연구해야 겠다고 한다. 필자도 원광대학교 졸업생이기에 아주 반가웠다. 필자의 건강이 안좋아 보인다고 한국으로 귀국하라고 권유하면서 저녁에는 호텔로 죽을 가지고 오셨다. 지금도 원불교 선생들의 인자하신 마음씨를 잊지 못한다.
러시아에는 아직 중국사찰은 없어도 개별적으로 포교활동을 잘한다. 레넨그란드대학 교수인 Touchnore 같은 권위있는 불교학의 석학들이 자원자로 나서 거사 대중불교를 하고 있는데 대만에 유학생을 선발해서 보내며 장래 도제양성에 적극 임하는 호라동을 전개하고 있다. C.I.S.광대한 지역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의 뉴스와 정보는 빠르게 전달되고 있었다. 카르믹 공화국에 사는 한 젊은 여성이 대만 불광사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해서 Touchnore 교수에게 추천서를 한통 써준일이 있다. 필자도 대만 불광사 모임에 자주 나가는데 1989년에 성운대사로 부터 비구계를 받아서 L.A.에 있는 서래사(西來寺)가 나의 본사로 되어있다.
티베트불교계열인 카르믹공화국(불교국가)는 모스크바에 정식으로 포교사를 파견하지는 않고 있으나 많은 카르믹공확국 청년들이 모스크바에 있는 일본산묘법사로 모여들었다. 日本山妙法寺는 러시아 전역을 무대로 크게 활동하는데 러일전쟁의 적대감정을 일소하는데에도 크게 노력하고 있다. 명실공히 러시아 불교 부흥을 돕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본국에서도 여러 곳에서 개인이나 교단차원에서 도와주는 것 같다. 물론 소의경전은 법화경이며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봉창 수행을 한다.
일본사묘법사는 종단차원의 지원과 일본 독지가들의 지원하에 러사아 불교의 주도권을 잡아본다는 좋은 뜻에서 아주 열심이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 초심자 불교인들을 대거 일본으로 보내 유학도 시키고 관광도 시킨다. 이 무렵 창설된 모스크바 불교협회도 운영비가 없어 일본산묘법사에 기대니 주도권은 자연 묘법사가 장악하고 있는형편이었다. 필자는 서울에 가 불교계에 이런 사정을 전하며 백방으로 지원과 동참을 호소하였으나 시기가 미숙하여서 인지 반응이 없었다.
필자가 러시아에 있을때는 공산주의가 무너지는 시기여서 이 나라 사람들에게 마음의 식량 즉 종교가 필요했다. 러시아 정교는 전통과 건물만 우지하고 아직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으니 젊은 러시아 청년들은 새로운 이념과 사상을 갈구하는 주요한 시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때에 종교가라면 소명의식을 갖고 그들에게 참사랑과 자비심과 참종교의 영적양식을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에서는 개신교와 순복음교회 등에서 미리 준비된 세계선표전도기금을 가지고 종단차원에서 나섰다. 불교는 언제나 종교자체의 진리나 교리는 우월하나 현대적 감각이 둔하고 후생사업이나 복지사업등의 적극적 자세가 부족하다. 이러한 점은 대만불교가 자비의 관세음보살 신앙심이 구현되고 있는 모범적 불교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러시아 정부 외교부는 종교 성직자에게 종교 비자를 내주지 않고 있다. 타종교의 경우 무역회사등 출장업무자의 자격으로 복수 비자를 어렵게 만들어서 러시아에 들어와 근무하는 실정이었다. 필자도 서울무역회사의 증명으로 거액을 들여 복수 비자를 사용하게되어 상주가 가능하였다.
모스크바의 거리에 나가보면 서울 YMCA청년들이 방학을 이용하여 자원봉사 전도반으로 여기까지 와서 가두 전도하는 것을 가끔 목격하였다.
러시아의 종교활동과 불교
러시아 정교는 긷독교 신교와 구교인 천주교를 혼합한 것 같은 민족종교인데 공산정권 치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계승되어 내려왔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 뿐만 아니라 역사가 오래된 도시에서는 반드시 그러한 교회의 전당이 아름답게 산재하고 있음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지붕이 둥글고 아치형으로 솟아 있는 아랍권 건축양식과도 흡사한 건물이다. 신도수가 얼마인지 알수 없으나 출입하는신도들은 안보이고 단지 관광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러시아인들에 의하면 국민정신의 주축역할을 하면서 지금도 변함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순복음교회가 크레부린 궁 안에서 집회를 하려고 할때 즉각 중단하게 한 것도 그들 러시아 정교의 힘이라고 한다.
그들은 통일교나 불교등 어느 종교집단도 크레무린 궁전내 집회를 불허하고 있다. 매년 부처님 오신 날 행사도 어린이 회관에서 모스크바불교협회와 일본산묘법사가 공동으로 거행한다. 이러한 가운데 보수적인 러시아 정교도 점차적으로 개방되면서 범종교활동을 통해서 타종교 집단하고도 문화교류와 친선도모를 하는 경향이 있다. 카톡릭 로마의 바티칸교황청이나 그리이스 희랍종교하고도 접촉교류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에서 들어오는 기독교는 크게 환영은 안하는 반면 동양종교는 비교적 호감을 갖는다 한다.
러시아 불교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계열은 보리야드 불교이다. 옛날 지도로 소련연방( U.S.S.R)을 보면 동쪽으로 외몽고 북방으로 보면 바이칼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를 끼고서 한 나라가 있으니 불교국가인 보리야드공화국이라는 신생독립국이 있다. 몽고계의 러시아인이다. 라교라는 불교가 그 나라의 국교처럼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라마불교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며 세틱즘이 농후하다. 거기다가 자존심마져 강한 불교도들이다. 중국(西天西域國) 몽고를 거쳐서 북상한 바 몽고식 불교라고 보면 이해가 될것이다. 즉 몽고의 토속적 민속신앙과 접촉변용되어진 독특한 불교가 곧 라마불교라고 보면 되겠다. 필자는 1993년 본국 조계종 서의현스님이 초청하는 동남아불교지도자 대회에 러시아불교대표의 일원으로 그들 라마불교계 스님 2명과 동행한 바 있다. 그당시 우연한 기회에 러시아를 방문중인 티베트 법왕 달라이 라마과 모스크바 모처에서 점심공양을 같이 하였는데 서울대회에 가지고 갈 메세지를 법왕에게 청하여 서울대회에 전달했다.
보리야드 불교와 티베트 불교는 유사한 점이 많은데 즉 그들만의 의전과 고유한 의술을 겸유하고 있는점이 비슷하다. 승려들이 靈肉을 공히 치료한다는 것이다. 병도 치료하고 영도 다스리는 식이다. 그러기에 자연 승려들의 사회적 인식과 위치는 완전 특수계급에 속한다.이나라의 승려의 지위는 대단히 높아서 정치인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정교일치의 나라이다. 이들 스님들이 대표로 외국에 나갈 때 공항에서 귀빈실을 이용한다. 정교일치의 국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밀교적 수행으로 증득한 신비성과 일종의 초능력인 신총지묘력으로서 후생적 의료사업도 영위하고 있으니 이상적인 현대불교가 아닌가 하고 좋게 보고 싶다.[계속]
2001년 1월 1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