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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코스 : 시어동 주차장-쉼바위-문장대-신선대 세심정-법주사-법주사 주차장(소요:4시간)
(시어동 주차장에서 단체사진 40명이 참석)
길을 가다가 한 번쯤 뒤를 돌아보면 인생이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온누리에 불심(佛心) 가득한 날, 속리산 문장대에 올라 내가 걸어 온 길의 모습이 인생로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환희에 젖어 부처가 되어 본다. 때론 가파르고 힘에부치고, 때론 오솔길 같은 길을 거슬러 오르면서 희노애락을 모두 간직한 듯한 정상을 향한 등산길이 인생의 역로를 닮아 보였다.
막 돋아 나온 잎순이 만든 신록이 역동성을 일게 하고 속세를 떠난 이방인이 되어 바라본 온누리는 숨을 멎게 하는 벅찬 감회를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올망졸망한 바위덩이들이 걸작을 만들어 산허리를 휘감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은 과히 신이 만든 걸작이다.
파륵파릇 돋아나 연초록 잎새를 만들어 내는 생명의 신비로움이 속리산(俗離山) 전체에 자리하고 있는 풍광이 경이롭고 신비하여 넋을 잃을 지경이다. 이럴땐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아까울 만큼 천상의 나라에서 싱거러운 이방인의 낭만을 한껏 즐겼다.
문장대를 세번 오르면 극락에 간다는 속설이 비문에 적혀있다. 극락의 세상이라 ! 마음이 평온하면 천국이고 괴로우면 지옥이라했던가? 그곳은 천국이요 극락의 세계였다.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 산의 의연한 모습이 그랬다.
(문장대 푯말 앞에서)
따가운 오후의 역광을 맞으며 지나친 신선대는 또다른 멋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어렵사리 함께한 40명의 악우들 모두에게 신이 내린 최고의 걸작을 음미하게 했다. 길이 험준하고 힘들면 연초록 잎새에게서 힘을 얻고 서어나무 사이로 불어 오는 산바람에 용기(勇氣)를 얻어 곧게 뻗은 굴참나무, 적색 소나무사이를 헤집고 다가오는 신선한 산소를 맘껏 마시며 그렇게 걸었다. 600여종의 식물과 동물들의 보고(寶庫)인 속리산 ! 그곳에는 지금 흰색 철쭉이 피어 감흥을 북돋게 한다.
(문장대 전경)
거친 호흡에 맞춰 걷는 발걸음 마다 힘을 주는 풍광.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리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 어느새 가슴과 어깨를 억눌렀던 속새의 파편들은 산화되고 이내 정갈한 산심(山心)이 내 마음속을 채우면 산 사나이는 금새 산의 매혹에 푹 빠져 버린다.
천황봉행을 포기하고 세심정 후게소방면으로 향했다. 간만에 악우들이 함께 모여서 산행을 한 하산길. 수직에 가까운 계단으로 된 길이 매우 가파르다. 절에 다녀오는 연료한 할머니들이 무지막하게 큰 바위 밑에서 쉬고있었는데 얼굴에는 부처님의 형상이 서려 자비와 온화한 미소가 흐른다.
세심정까지 오는 길에 무늬를 세긴 크고 신비로운 바윗덩이를 여러 번 보았다. 신비롭고 수수께끼 같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옥류가 흐르는 계곡은 상수원 보호를 위해 철망으로 막고 있어 흐르는 여울은 한층 정갈하게 보인다.
(법주사 입구 돌탑)
긴 아스팔트를 지나 법주사 입구에서 세면을 한뒤 절을 찾았는데 예상보다 인파가 적어 한적하다. 불심(佛心)이 만들어 낸 돌탑이 개울을 가득 메웠다. 아스라하게 쌓아 올린 돌탑에 불자의 불심이 가득하다.
경내에는 법주사팔상전(法住寺捌相殿:국보 제55호)을 비롯하여, 쌍사자석등(국보 제 5 호), 석련지(국보 제64호),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한편 법주사의 정신을 상징하는 중심 법당이던 용화보전(龍華寶殿)은 1872년(고중 9) 경복궁 복원을 위한 당백전 주조의 명목으로 불상이 압수되고, 헐리게 되었다. 이 터에 1964년 시멘트로 만든 미륵불입상이 조성되었다가 86년에 청동미륵대불로 대체되었다.
법주사는 동국여지승람 및 조선불교통사의 법주사에 대한 설화는 신라 24대 진흥왕 14년(553년)때 의신스님이 천축국에서 공부를 마치신 후,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귀국 후학을 양성할 목적으로 절을 지을 터를 찾던 중, 흰 노새가 현재의 법주사 터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고 울부짖었다. 자리에 멈춰 산세를 둘러 보니 수려해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 노새의 등에 싣고 다니던 경전, 즉 부처님의 법이 이곳에 머물렀다 해서 절이름을 법주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초대형 불상앞에서는 행사가 이어지고 고교생들의 연주회에이어 여성 합창단의 합창이 거대한 부처님상 앞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경내에 단 수많은 연등이 엄숙함을 자아내게 했는데 저절로 숙연해지는 체험을 했다.
금동미륵불상 금동미륵대불(金銅彌勒大佛)은 천왕문을 들어서자 왼편으로 예전 용화보전이 있던 자리에 최근인 1996년에 높이 33m에 이르는 대형불상으로 세워진 미륵불이다. 지하에는 예전 용화보전의 전통을 이어 석실법당인 용화전을 두었다. 1872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창할 때 당백전을 만들려고 헐어갔으며, 용화보전도 무너져 미륵삼존의 연화대석 세 개만 남아 있었다. 그러던 것을 1964년, 이 용화보전 자리에 시멘트로 만든 미륵불입상이 세워졌었는데 1990년에 현재의 불상을 완성한 것이다.2002년 사찰에 다니는 3만명의 시주한 돈으로 금 80kg를 덮어 지금의 금동미륵대불이 되었다.
종교 심리란 것이 결굴 마음에서 비롯되나 보다. 이름을 세긴 중생들의 소박한 소원이 연꽃이 되어 부처님에게 전해지고 있었고 세상에 전하는 메세지 <나눔으로 하나되는 세상>프라카드가 인상적이다.
한참을 부처님과 눈을 마주치며 소망을 빌며 나의 뜻한 바가 이루어 지길 간절히 기도올렸다. 거대한 불상앞에서 나를 인도 해 줄 구세주를 만나 순박한 소원이 이루어 지길 기원했다.
복잡한 법주사를 벗어나 수백년 된 숲길을 지났다. 자연 체험길도 있어 그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사찰 주변은 먹거리판도 벌어져 운치를 더했다. 구운 가래떡을 먹었는데 불심과 관계가 있나 보다.
다리가 아파올 무렵 먼 4시간의 산행은 끝나고, 병치레를 하는 정2품 소나무 곁에서 나눈 하산주, 처음 찾은 악우들이 많은 오늘의 하산주는 정겨웠다.
<병치레 중인 정2품 소나무> 공원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연산홍 꽃이 만발하고 꽃이 탐스러워 꽃이 되어 사진을 찍었다.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한 소나무를 뒤로하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고돌아 울산을 향했다. 복잡하리다던 번잡함은 없었고 시원스럽게 달려 9시반에 울산에 도착했다. 몸과 마음이 새처럼 가벼워 훨훨 날아갈 듯 하다.
<만발한 연산홍 꽃속에 안긴 필자> |
첫댓글 법주사.. 작년 수학여행 다녀온곳~~~사진 즐감하고 갑니다...행복하세요~~~
넘~~좋다.
너무나~~ 간 만에 아니 추억이 깃던곳이라 꼬옥갈려고 했는데~~~~ 무한인 모든 분들 부처님의 자비가 넘쳐 흐르시기를 빌어드립니다.
잘보고 갑니다 자주 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