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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춘의 영화이야기 2
지난 회에는 영화이야기의 서론과 Oscar賞에 대해 얘기를 해 보았다. 이어서 이번에도 오스카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보통 영화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는 것은 역시 연출가의 실력이 우선이겠지만 그에 버금가는 것이 또한 연기자들의 연기이다. 최고의 연기를 선 보였던 大 배우들이 오스카상을 과연 몇 명이나 수상했을까? 아마 훌륭한 연기를 보인 배우들은 아마 거의 오스카를 수상했을 것이다. 우선 오스카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들을 살펴보았다. 이 자료들은 직접 아카데미영화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일일이 찾아내어 집계한 것이므로 상당한 공이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우선 연기 부문에서 오스카 남우주연상, 즉 아카데미 최우수남우주연상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오스카를 3번씩이나 수상한 배우가 있다. 월터 브레넌이다. 그는 , , <켄터키>에서 3번이나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허나 모두가 남우조연상이어서 다양성 면에서는 부족한 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조연상이 주연상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작품들에서는 조연들이 작품성을 더 살리는 경우도 많이 본다. 월터 브레넌보다 더 돋보이는 배우는 잭 니콜슨이다. 그도 3번의 오스카상을 수상했는데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남우주연상, 그리고 셜리 맥크레인과 공연했던 <애정의 조건>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는 이 작품들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작품들에서 명연기를 선보인 바 있는 그야말로 대배우이다. 이를테면 원조 에서 연기한 조커는 지금도 그 어떤 배우도 追從不許다. 히스 레져의 유작으로 死後 오스카남우조연상을 수상한 , 또 배트맨이 아니고 조커가 주연인 영화 <조커>에서 오스카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호아킨 피닉스까지도 잭 니콜슨의 조커를 기반으로 다른 모습으로 표현해 낸 분신들이다. 오스카를 3번 수상한 배우가 또 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다. 그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그 역할에 몰입하여 무서울 정도의 광기의 연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갱스 오브 뉴욕>에서 같이 출연했던 레오나드 디카프리오가 촬영 도중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칼에 맞아 죽는 줄 알고 두려웠다고 했을까? 그는 에서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던 아일랜드의 예술가 크리스티 브라운 역할을 필두로, 에서 광기의 석유업자 사나이를, <링컨>에서의 링컨대통령 역할로 오스카주연상을 3번이나 받았지만 그 외의 작품들인 <아버지의 이름으로>, <프라하의 봄(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순수의 시대>,<전망 좋은 방>, <라스트 모히칸>, <크루서블>, , 등 에서도 그의 광기의 연기는 한 치의 빈틈도 없다.
오스카남우주연상 수상자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3번 수상>
월터 브레넌(Westerners, Come and get it, 켄터키)
잭 니콜슨(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애정의 조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My left Foot, There will be blood, 링컨)
<2번 수상>
말론 브란도(워터프론트, The Godfather1)
게리 쿠퍼(요크상사, Highnoon)
로버트 드 니로(The Raging Bull, The Godfather2)
멜빈 더글라스(허드, Being there)
더스틴 호프만(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레인맨)
잭 레몬(Mr. Roberts, Save the tiger)
프레데 릭 마치(우리 생애 최고의 해,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안소니 퀸(삶의 욕망, 혁명아 사파타)
제이슨 로바즈(줄리아, 대통령의 사람들)
스펜서 트레이시(용감한 선장, 보이스 타운)
피터 유스티노프(스팔타카스, 톱 카피)
톰 행크스(필라델피아, 포레스트 검프)
마이클 케인(한나와 그 자매들, 사이더 하우스 룰스)
케빈 스페이시(유주얼 서스펙트, American Beauty)
진 핵크먼(프렌치 코넥션, 용서받지 못한 자)
덴젤 워싱톤(Glory, 트레이닝 데이)
마하살라 알리(Moonlight 그린 북)
크리스토퍼 왈츠(바스터스:거친 녀석들, 장고:분노의 추격자)
물론 오스카남우주연상을 1번 수상한 배우는 많아서 모두 열거하지 못하겠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연기라고 평가 받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피터 오툴은 오스카상을 <앵무새를 죽여라(알라바마에서 생긴 일)>의 그레고리 펙에게 빼앗기고 그 뒤 몇 번 더 도전했으나 계속 불발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오스카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 것이다. 최고의 연기로 오스카를 못 받은 배우는 또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크라크 케이블이다. 그의 명연기에 조금도 못 미치는 의 로버트 도나트가 차지했으니 어이가 없는 경우이다. 하지만 크라크 케이블은 다른 작품 <어느 날 밤에 생긴 일>로 오스카를 받는다.
여자주연상 부문은 어떨까? 남우들보다 여우들의 인기 집중도는 더 강하다. 남자들보다 아무래도 여우들이 수적으로 적은 모양이다. 오스카여우주연상 수상은 캐서린 헵번이 4번이나 수상하여 이 부분 최고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4번 수상>
캐서린 헵번(Morning Glory, 초대받지 않은 손님, 겨울의 라이언, The Golden Fond)
<3번 수상>
잉그리드 버그만(아나스타시아, 가스등, 오리엔트살인사건)
메릴 스트립(크레이머대 크레이머, 소피의 선택, 철의 여인)
<2번 수상>
에리쟈베스 테일러(버터필드8,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루이스 레이너(위대한 지그필드, 大地)
베티 데이비스(Dangerous, 지저벨)
제인 폰다(귀향, 클루트)
샐리 필드(노마래, 마음의 고향)
비비안 리(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올리비아 데 하빌랜드(To Each His Own, 상속녀)
글랜다 잭슨(Touch of Class, Womon in Love)
셜리 윈터스(안네 프랑크의 일기, 푸른 천조각)
매기 스미스(미스 진브로디의 청춘, 켈리포오니아 슈트)
헬렌 헤이스(마델란클로데의 죄, The Airport)
죠디 포스터(피고인, 양들의 침묵)
제시카 랭(투씨, Blue Sky)
힐라리 스웽크(소년은 울지 않는다, Million dollar baby)
르네 젤위거(콜드 마운틴, Judy)
프란시스 맥도난드(파고, 스리 빌보드)
케이트 블란쳇(에비에이터, 블루 재스민)
역시 1번 수상한 여배우들은 많다. 여우주연상에는 남우상보다 더 재미있는 사연들이 있다. 秀作인 뮤지컬영화 의 오드리 헵번은 거의 맡아놓은 오스카를 <메리 포핀스>의 신인 쥴리 앤드류스에게 예상외로 빼앗겼는데, 그 다음 해 쥴리 앤드류스는 그야말로 최고의 연기를 선 보인 에서 여우주연상이 유력했지만 같은 해 경쟁했던 여우는 의 히로인 쥴리 크리스티였다. 막상막하의 연기로 경합을 벌였지만 결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났다. 그해 오스카 여우주연상은 의 여우가 수상했는데 그 여우가 바로 또 쥴리 크리스티였다. 어느 누가 봐도 오스카는 의 쥴리 앤드류스나 의 쥴리 크리스티가 받아야만 했다. 결국 쥴리 앤드류스는 오드리 헵번에게 빼앗은 오스카를 1년 뒤 쥴리 크리스티에게 빼겼다고나 할까? 그 모든 것이 심사위원들이 벌인 일들이었다.
작품의 수준이 뛰어나려면 연출자인 감독의 실력이 비범해야 한다. 늘 그랬지만 大 감독 아래에서 최고의 영화들이 나오는 것이다. 영국의 데이비드 린과 미국의 윌리암 와일러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들은 연출한 영화마다 명화였으니 과히 거장이라고 불리울 수 있었던 것이다. 데이비드 린은 대작영화의 대명사이고, 윌리암 와일러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로 유명했다. 자! 올해 2020년도에 봉준호가 수상했던 오스카감독상을 수상한 감독들을 살펴보자.
<4번 수상>
존 포드(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조용한 사나이, 밀고자, 분노의 포도)
<3번 수상>
프랭크 카프라(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우리 집의 낙원, 디드씨 도시로 가다)
윌리암 와일러(미니버 부인, 우리 생애 최고의 해, BenHur)
<2번 수상>
프랑크 보사지(제7천국, Bad Girl)
밀로스 포만(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Amadeus)
엘리아 카잔(신사협정, 워터프론트)
데이비드 린(아라비아의 로렌스, 콰이강의 다리)
프랭크 로이드(카발케이트, Divine Lady)
조셉 L 맹키위츠(이브의 모든 것, 세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레오 매커리(Going my Way, 무서운 진리)
루이스 마일스톤(서부전선 이상 없다, Two Arabian Nights)
조지 스티븐스(젊은이의 양지, Giant)
올리버 스톤(Platoon, 7월4일생)
빌리 와일더(아파트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잃어버린 주말)
로버트 와이즈(West Side Story, The Sound of Music)
프레드 진네만(From Here To Eternity, 4계절의 사나이)
스티븐 스필버그(쉰들러 리스트, 라이언일병 구하기)
클린트 이스트우드(용서받지 못한 자, 밀리언 달라 베이비)
이안(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Birdman, 레버넌트)
알폰소 쿠아론(그래비티, Rome)
감독들의 면면들을 보면 과히 거장들의 집합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서부극의 거장 존 포드는 정작 서부극으로 수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전설적인 서부영화(Western)인 <역마차>, <황야의 결투>, <아파치요새>, <황색리본>, <리오그란데>, <수색자>, <기병대>,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 <서부개척사>, <샤이안> 등 그의 웨스턴은 사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수색자>는 수정주의 서부극으로 100대 명화에 속해 있으며 전설적인 영화 <역마차>, 그리고 <황야의 결투>! 나는 이 <황야의 결투>를 최고의 웨스턴이라고 평가한다. 원제는 으로 실화였던 서부 애리조나주 툼스톤에서 벌어진 결투, OK목장의 결투로 와이엇트 어프 형제들과 빌 클랜튼 형제들과의 대 결투를 그린 작품으로 이 <황야의 결투> 이후 이 툼스톤의 결투는 수차례 영화화되었다. 이 작품에서 전설적 보안관 와이엇 어프 역에는 헨리 폰다, 폐병환자인 치과의사 역 닥 할리데이는 빅터 맞추어가 연기한다. 존 스타제스 감독의 또 다른 목장의 결투>에는 버트 랭카스터와 커크 다그라스가 연기한다. 어쨌든 서부극의 거장 존 포드는 오스카를 4번 받은 작품들은 모두 서부극이 아니었다. 그의 또 다른 유명 작품은 <밀고자>, <미스터 로버츠>, <모감보> 등이 있다. 내가 존 포드 영화를 마지막 본 것은 중학교 때 본 <샤이안>이었다. 역시 거장답게 그의 후반기 작품도 대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윌리암 와일러는 그야말로 최고의 감독이 아니었을까? 그는 만드는 작품들을 다양하게 섭렵했는데 각 장르마다 최고의 영화들을 쏟아내 탄성을 지르게 한다. 그의 작품들은 초기에는 수준급의 멜로영화를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작품들이 <지저벨>, <캐리>, <상속녀>, <폭풍의 언덕> 등으로 수준급의 멜로작품들을 양산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그는 점차 다양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는데 리얼리즘영화로 극찬을 받은 <우리 생애 최고의 해>(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이 사회부적응을 겪는 사회물로 후에 <람보>라는 비슷하지만 매우 다른 영화와 연결이 된다), 낭만주의 영화의 극치 <로마의 휴일>, 수준급의 서부극 <우정 있는 설복>, , 최고의 사극 <벤허>, 뮤지컬인 <화니 걸>, 갱스터 영화 <데드 엔드>, 그리고 <작은 여우들>, <미니버부인> 등 그의 작품은 장르마다 최고의 작품을 선 보였다. 한마디로 놀랄 일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내가 중학교 때 보고 가슴 깊이 진하게 남아있던 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면 당시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며 나는 여전히 테렌스 스탬프와 사만다 에거 라는 신인배우들을 기억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작품이기에 를 잠시 언급해 본다. 시청 직원인 프레데릭 클레그(테렌스 스탬프分)의 취미는 나비 채집이다. 어느 날 명문가 출신인 미모의 미술학도 여대생 미란다(사만다 에거分)를 본 후, 사랑에 빠져버리지만 사교성이 부족했기에 그녀를 포기한다. 그 뒤 축구도박에서 큰돈을 번 클레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교외에 외딴 주택을 구매한다. 그는 여전히 미란다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응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를 ‘수집’하기(collect)로 결심하고 결국 그녀를 납치해서 지하실에 감금한다. 그는 언젠간 그녀가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될 거라고 믿고 한 달 후에 풀어줄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녀가 이해한 것은 그가 자신을 나비 채집하듯 '수집'했다는 사실일 뿐이다. 현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수집’에만 빠져있던 남자에게 염증을 느낀 미란다는 몇 번이고 탈출하려고 애쓰지만 늘 번번이 실패한다. 감금상태에서 자신의 자유와 예술에 대한 의지를 깨달은 미란다는 클레그의 마음에 들어 풀려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될까 고심하며 그가 제안한 한 달을 지내보기로 한다. 하지만 자신이 지향하는 예술과는 너무 동떨어진 이 건조한 청년의 손아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마지막 저항을 시도하는데...결말은 수집된 나비가 박제가 되듯 그녀도 병으로 인한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이 영화는 윌리엄 와일러의 후기 영화 중 秀作으로 꼽힌다. 여기 출연한 두 배우, 테렌스 스탬프와 사만다 에거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칸느영화제에서 나란히 남녀주연상을 수상한다. 대사가 크게 없고 모리스 쟈르(,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음악으로 유명)의 음악이 장면마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이 작품은 존 파울즈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소설에서는 두 남녀의 화해할 수 없는 각각의 2개의 일기로 전개되는데, 와일러는 영화에서 단순화시키기 위해 남자의 일기만을 영화화한다. 이게 소설에 비해 영화가 가진 한계였다. 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청년 클레그는 그녀를 나비 채집하듯 인간수집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병으로 죽었을 때, 그녀의 시체에마저 사랑하는 박제애호증의 모습까지 보인다. 클레그의 '콜렉터적 감수성'이란 사람마저 사물로 생각하고 수집하는 비인간적인 방식인 것이다. 영화가 꼭 소설과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튼 이 영화는 와일러의 연출력과 두 신인배우의 강렬한 연기로 지금도 秀作에 꼽힌다.
모든 감독을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특이한 사연을 갖고 있는 감독도 있다. 엘리아 카잔이다. 그는 Yale대에서 영화공부를 한 후 처음에는 연기를 하다가 연출로 뛰어든 사람이다. 그는 미국에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를 처음 소개한 바, 이는 자기표현과 심리적 realism의 새로운 형식이었다. 그는 테네시 윌리암스 작품들을 연극무대에 올리다가 후에 말론 브랜도와 제임스 딘, 웨렌 비티라는 신인배우를 발굴하여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필두로 하여 <워터프론트>를 거쳐 <신사협정>, <혁명아 사파타>, <에덴의 동쪽>, <초원의 빛>에 이르는 일련의 수작들을 만들면서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감독 중 한명으로 일어섰다. 하지만 그의 영화경력에 전환기가 되는 사건이 1952년에 발생한다. 미국하원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소환되어 할리우드에서 좌익활동을 했던 동료들을 고발한 것이었다. 당시 고발된 자들은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라 빨갱이로 지탄받으며 가차 없이 해고되어 쫓겨났는데, 자유주의 성향의 친구들 및 동료들이 카잔의 말 한마디에 영화판에서 쫓겨났던 것이다. 카잔도 한 때는 진보파였기에 그의 배신적 행위는 큰 충격을 불려 일으켰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려 쫓겨 간 사람이 찰리 채플린이다. 그는 그 후 영국에서 활동하다가 1972년에야 아카데미에서 공로상을 수상하여 다시 미국 땅을 밟았다. 카잔은 자신의 영화 <워터프론트>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극중 멀로이로 하여금 노조 간부들(즉 동료들)을 고발하도록 하는데, 이는 카잔이 자신이 했던 행위(무차별적으로 공산주의자를 가려내 희생시킨 매커시즘의 조력자로 동료들의 블랙리스트를 폭로한 수치스러운 과거가 평생 그를 따라다님)를 정당화시키는 한 방법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는 노년에 1999년 71회 아카데미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는데 전통적으로 평생공로상을 수상할 때에는 모든 아카데미영화제 관객들인 영화인들이 존경의 표시로 기립박수를 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카잔이 수상할 때 30-40%만이 기립박수를 하고 스티븐 스필버그, 조디 포스터, 바바라 스트라이샌드 등 60-70%는 일어나지 않고 야유를 보낸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이슈를 강하게 얘기한 최고의 리얼리즘 사회물의 작품들을 발표한 최고의 감독이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아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인 데이비드 린에 대해서는 이번에는 입을 닫겠다.
웃지 못 할 얘기를 하고 싶다. 이 작품은 도저히 작품상 수상을 받지 못할 작품인데 받은 작품들이 더러 있다. 반면 최고의 작품성을 구가한 작품들인데 오스카에서 철저하게 천대받은 명작들도 많이 있다. 우선 오스카작품상 후보작으로 지명된 最惡의 작품들을 열거해 보겠다.
*죠지 시드니 감독의 <닻을 올려라>: 춤 안무는 귀여웠지만 작품상에 닻을 내리기에는 너무 가벼웠다.
*마빈 르로이의 <쿼바디스>: 좋은 검투사 영화를 찾고 있으신가요? 위험을 감수하세요. 지나치게 긴 이 서사영화에 지루해 질 겁니다.
*세실 B 데밀의 <지상 최대의 쇼>: 거장이 만든 평범한 작품. 아마 역대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 중 최고의 미스테리일 것이다. 거장 세실 B 데밀 감독이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고, 또 이 작품이 오스카작품상을 수상했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마이클 앤더슨의 <80일간 세계일주>: 줄지어 등장하는 카메오보다 못한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변변찮은 기행영화는 커다란 상을 집으로 가져갔다.
*존 웨인이 감독한 <알라모>: 알라모를 기억하라! 졸음이 쏟아지는 영화를 위해 터무니없는 수상 캠페인을 벌인 이후 누가 알라모를 잊을 수 있겠는가?
*조셉 L 맨키윗츠의 <클레오파트라>: 제임스 카메론이 1997년에 <타이타닉>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역사상 가장 비싼 영화라는 타이틀을 가지는 게 언제나 좋은 일이었던 건 아니다. 아마 이 영화는 들어간 엄청난 돈 때문에 후보로 지명되었나 봐!
*아서 힐러의 : 사랑은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거라면 이 최루영화에 대한 사과는 누구나 해야 하는 걸까? ㅎㅎ 그래도 이 신파조 영화에도 이 명언만은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Love means not 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죠지 시튼의 <에어포트>: 헬렌 헤이즈가 두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얻었을지는 몰라도 스타들이 잔뜩 출연하는 이 실패작의 좌석은 역마차 클래스에 속한 게 확실하다.
*죤 길러민의 <타워링>: 타는 불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따분한 영화로 재난영화의 정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가수 바바라 스트라이샌드가 연출한 <사랑과 추억>: 스트라이샌드가 연기한 로벤슈타인의 비중이 너무 커지면서 원작 소설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본 실패작으로 돌변해 버렸다. 근데 왜 이 영화가 작품상 후보이지?
이런 이해 못할 후보작들이 더러 있다. 이번에는 반대로 오스카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최고의 작품성을 가진 영화들을 조사해 봤다. 우선 가장 애석한 명작은 챨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다.
*<시티 라이트>(챨리 채플린): 유성영화의 시장성에 밀린 채플린의 마지막 무성영화의 걸작
*<킹콩>(메리안 쿠퍼): 사람들이 모험영화의 아이콘을 모른 척 지나쳤을 때, 커다란 유인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한 건 누구였을까?
*<아이 기르기>(하워드 혹스): 오손 웰스에 이어 아카데미는 결국 천재를 무시하는가? 오스카는 천재들을 늘 무시했다. 오손 웰스, 죤 휴스톤, 알프레드 히치코크, 스탠리 큐브릭, 데니스 호퍼, 하워드 혹스, 우디 앨런이 그랬다.
*<오명>(알프레드 히치코크): 캐리 그랜트, 잉글리드 버그먼, 비와 나치, 느와르를 등장시킨 히치콕의 위대한 손길을 얕잡아 본 것을 감안할 때, 오명은 매우 적절한 제목이다.
*<아프리카의 여왕>(죤 휴스톤): 험프리 보카트는 오스카를 향해 항해하면서 뱃고동을 울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영화에 걸었던 기대는 좌초하고 말았다.
*<사랑은 비를 타고>(스탠리 도넨):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 뮤지컬을 빼먹은 눈부신 선택을 한 아카데미 유권자들은 홀딱 비에 젖고 말았다.
*<수색자>(죤 포드): 포드의 팬들은 이 전설적인 서부극이 후보에 오르지 못한 이유를 아직도 찾고 있다.
*<뜨거운 것이 좋아>(빌리 와일더): 코메디의 고전인 이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지명되지 못한 건 진짜 짜증나는 일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스탠리 큐브릭): 아마도 이 몽상적인 SF 판타지아가 아카데미에게는 너무 복잡했던 것 같다. 영화 속 컴퓨터 HAL 이 좀 더 단순했다면 유권자들이 좋아했을까? ㅎㅎ 역사상 최고의 SF영화가 그렇게 저평가 당하다니......(참고로 평자들은 최고의 SF영화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블레이드 러너>, 라고 얘기들 한다)
*<맨하탄>(우디 앨런): 뉴욕에 바치는 우디의 밸런타인 선물은 오스카의 캘리포니아 입맛에는 너무 역겨웠음에 틀림이 없다. 근데 아카데미는 왜 뉴욕을 싫어할까? 우디 앨런과 마틴 스콜세지를 보면 안다.
결론은 아카데미는 천재들을 싫어한다고 볼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처음에는 엄청나게 천대를 받았다. 그의 능력이 너무 커지니 할 수 없이 인정한 것인가? 영국의 천재 감독 알프레드 히치코크는 할리우드 진출 시 명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제니퍼 존스의 남편)의 영화 제작에 대한 충고에 화가 나 미국행을 포기했지만 세계영화의 본산인 할리우드에 결국 안 갈 수가 없어서 더럽지만 첫 작품만은 셀즈닉의 의견대로 만들고 다음 작품부터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가겠다고 굴욕적으로 제의를 받아들여서 만든 그 첫 작품 <레베카>는 바로 오스카작품상을 수상한다. 히치코크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러나 그의 최고의 작품은 , , <오명>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처음에는 와 <칼라 퍼플>, 가 오스카에서 철저하게 외면을 받았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도 오스카가 외면한 전형적인 케이스이다. <시네마 천국>과 이 모두 외면당하고 결국 노년에 오스카 평생공로상을 수상하고 어이없게도 수작이 아닌 쿠엔틴 탈란티노 감독의 영화 <헤이트풀 8>에서 음악상을 수상했다. 또 1977년에 세계음악에 새로운 리듬인 디스코를 센세이션널하게 선보인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는 전례 없는 10곡의 밀리언셀러 곡 중 단 한 곡도 주제가가 작곡상에 들지 못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룹 The Bee Gees의 음악적 예지력을 아카데미가 몰라본 것이다. 아니 아카데미는 새로운 것을 싫어해서 보수를 고수한 것일까?
영화이야기라고 하다 보니 영화사에 있었던 팩트만 가지고 나열한 느낌이 든다. 뭐 내가 영화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사실 영화이야기라면 작가주의 감독들이 표현한 그들의 시대철학적 의미나 탐미주의 정신들을 살펴봐야 할 터인데. 또 다음을 기약해야겠다.